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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아 Mar 15. 2023

내 안에는 연진이도, 동은이도 있었다.

#넷플릭스 #더글로리 #동은 #연진 #10대 #학폭 #가해자 #피해자

"엄마는 내가 죽도록 맞고 오는 것과, 죽도록 때리고 오는 것 중에 어떤 쪽이 더 마음이 아플 것 같아?" 김은숙 작가의 딸이 작가에게 어느 날 던진 질문이었다고 한다. 넷플릭스의 '더글로리' 이야기로 한참 커뮤니티가 뜨겁다. 회차를 거듭하며 머릿속 아련하게 나의 학창 시절이 떠오르고 학폭 관련 연예인들의 몇몇 얼굴도 스쳐 지나갔다. 


약자를 괴롭히는 것, 더군다나 보호받아야 할 학교 집단 내에서의 폭력이란 어떠한 형태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이다. 또래 집단 안에서 얼마나 악랄하고 잔인한 형태의 폭력이 자행되고 있으며,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그것이 제대로 처벌되지 않고 있는지... "저건 드라마이기 때문에 과장된 이야기겠지요?"라는 글에 줄줄이 이어지는 "현실과 다르지 않다 아니 현실은 때로 더 하다."는 수많은 증거의 댓글이 이어진다. 나의 사춘기 그리고 10대를 돌아본다. 어리고 아름답지만 동시에 몹시 불안정하고 규정지을 수 없는 상태의 순수함. 그리고 세상과 나 스스로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규정지을 수 없기에 미쳐있는 어떤 것에 끝까지 가볼 수 있는 위험하고도 열정적인 생명체 그 자체였던 듯하다. 


나의 위험 천만했던 고등학교 1학년 시절은 지옥같이 힘들었다. 친구 관계에서 자행되는 학폭과는 다른 이유였지만, 담임 선생님이 이유였기에 학교 가는 길이 끔찍이도 싫었다. 그리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살을 시도해보기도 했던 어두운 시간이었다. 이사를 아주 멀리 가지 않는 이상 관내의 전학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대안학교 입학을 알아봐 달라고 애원했다. 부모님은 수없이 학교를 드나드셔야만 했다. 수치심, 죄책감, 분노, 두려움, 증오가 끈적하게 녹아 붙어 어떤 것으로도 정의 내릴 수 없는 죽은 존재로 그 기간을 살아갔다. 눈빛엔 어쩌면 살기가 또 한 편으로는 살려달라는 애원이 가득 담겨 있었는지 모르겠다. 담임교사를 죽일 수만 있다면 죽여 버리고 싶었고 나도 죽고 싶었다. 그를 죽일 수만 있다면 내가 지옥에 떨어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를 무너뜨릴 수만 있다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꿈에서는 그를 찔러 죽이고, 불태워 죽이고 찢어 죽였다. 결국 1년 간 담임교사의 수업 시간 내내 단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 시간은 내게 만겁의 시간처럼 길게만 느껴졌다. 어쩌면 담임교사에게 나는 연진이었을 수도 아니면 동은이었을 수도 있다. 


왜 10대에 겪은 모든 경험의 기억은 더 강렬한 것일까. 좋고 나쁘게 각인된 기억들이 끊임없이 반복 재생된다. 여전히 그 시절의 기억은 꽤나 선명하다. 아니 어쩌면 선명하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교실 안 기억에 갇혀 있는 나를 무의식 속에서 만난다. 20년이 넘게 지난 세월이 우습게도 여전히 나는 나무 책상에 앉아 있다. 교복을 입고 있고, 친구들과 함께 웃고 있다. 시험을 치고 있고, 도시락을 먹고 있다. 교무실 담임의 책상을 보고 있고, 책상을 부서져라 내리치는 담임을 싸늘하게 내려보고 있다. 


이유 없이 누군가를 잔인하게 괴롭힐 수도, 또 끔찍하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내 손에 고데기가 들려져 있었을 수도, 아니면 내 살이 지져지고 짓무르고 있었을 수도 있었다. 세상은 어차피 불공평한 것이라는 것을 학교라는 울타리로 만들어진 안전 하지만은 않은 작은 세상 안에서 이미 배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울타리였을까, 철장이었을까. 돌아보면 학교 담벼락 위에는 정말 가시철조망이 둘러져 있었다. 그건 보호였을까 감금이었을까. 세상에서 보호받는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서로가 서로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잔인하게 누군가를 내려다보고 있었을지도, 때론 입가에 슬픈 웃음을 가득 머금은 채 지독한 복수를 결심하고 있었을 수도 있었다. 


결국 내 안에는 연진이도, 동은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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