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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아 May 22. 2020

매일 아침 집으로 출근합니다.

#엄마 선생님께 #양육비를 입금해주십시오 #전업주부의 자존감을 위하여

나는 전업주부다. 엄마도 평생 전업주부로 살아오셨다. 물론 출산 전에는 10여 년 간 다니던 직장이 있었고, 임신 후 원해서 일을 그만두었다. 물론 병행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직장 스트레스를 안고 아이들을 허덕이며 키울 자신이 없었다. 워킹맘은 집에서도 회사에서 죄인이라 했던가. 회사 선배가 워킹맘으로 살아내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며 더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 왕관의 무게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포기했고 양가 어른들께서는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이 남는 것이라며 기뻐하셨다. 하지만 이어지는 피할 수 없는 수식어 '경단녀'. 경력 단절 여성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과, 이제 거대한 조직에 기대어 내 존재를 명함으로 증명할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작아지게 했다. 10여 년간 갑옷이 되어 주었던 경력을 벗어버린 후엔 홀가분 함과 동시에 허전했다. 아무 곳에도 소속된 곳에 없다는 사실은 금세 적응되지 않았다. 자연스레 몸 담고 있는 가정 안에서 '엄마', '아내', '딸' 그리고 '며느리'라는 직책이 내 이름을 대신했다.


물론 아이들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소중하고 예쁘다. 내가 선택해서 퇴사를 선택했기에 후회도 없다. 스트레스 없이 태교를 하고 싶었다. 몸 가짐을 바르게, 좋은 것만 보고 들으며 먹으며 건강한 행복함을 선택했다. 매일 저녁 아빠 목소리로 책을 읽어 주었다. 출산도 굳이 아가에게 좋다는 '자연주의 출산'을 택해서 무통 주사며 촉진제 등 의료적 행위 없이 온전히 34시간 진통을 감내했다. 완전 모유수유에 천 기저귀를 사용하고 아쉬움 없이 키우려 주변에서 유별나다 할 만큼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아이들의 중요한 시기를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함께 살아냈다.


하지만 아이들이 소중한 만큼 나도 소중했다. 내가 무너지면 아이들을 지킬 수 없었다. 엄마는 로봇이 아니다. 24시간 365일 휴일도 퇴근도 없이 일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아이들이 너무 예쁘다는 말이 내가 힘들지 않다는 말과 같은 뜻은 결코 아니었다. 임신 출산 육아의 과정에서, 엄마가 행복하지 않은데 아이들이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나의 자존감을 내가 돌봐야 했다. 처음에는 이것저것 요구하는 것들이 신랑에게 미안했다. 전업 주부인 엄마가 나를 키웠기 때문에, 으레 돈 안 버는 내가 가사노동과 육아를 전담해야 한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들 다 하는 육아와 가사노동을 두고 유별나게 대우받고자 하는 것이 민망했다. 하지만 점차 육아가 100m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더 당당하게 '행복한 엄마'가 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순히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것이었고, 신랑을 위한 것이었으며 결국 지속적이고 건강한 가족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우리 부부가 고안해낸 것들이다. 기본적으로 내가 유아 교육을 전공하고 국제 학교에서 일했던 경력 덕분에 더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단순한 '육아'로 보는 것보다 존중받아야 할 '노동'으로 인정하기 쉬웠다. 원래 급여를 받고 남의 아이들을 교육하던 일을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1. 저녁 6시, 엄마는 육아 퇴근한다.

신랑이 퇴근 후 집으로 오면 저녁 식사를 함께 한 후, 나는 육아 및 가사 노동에서 퇴근한다. 저녁 상을 차리는 것까지가 나의 몫이고, 이후 저녁 식사 상을 치우고 아이들을 씻기고 잘 준비까지 마치는 것은 아빠의 몫이다. 빠르게 움직이면 저녁 식사 후 잠들기 전까지 2시간 정도의 자유 시간이 확보된다. 그 시간 동안은 나가서 술을 마시건, 방에 들어가 친구와 통화를 하건, 욕조에 누워 입욕제를 풀어놓고 피로를 풀 건 나의 자유다. 사실 재우는 것까지 아빠가 하는 것이 목표인데, 너무 나와 애착 형성이 강하게 된 아이들이 아직은 엄마 없이 못 잔다. 계속해서 서서히 연습 중이다. 아빠가 재우기까지 할 수 있다면 적어도 5시간 이상은 자유롭게 퇴근 후 워라벨을 즐길 수 있다.


2. 양육비를 입금해 주십시오.

육아와 가사 노동이 정말 무보수 노동이 아니라면 말로만 존중하지 말고, 경제적으로 보상을 해주기로 하였다. 물론 어차피 부부가 함께 모으는 돈이라 남편 통장에 있으나, 아내 통장에 있으나 결국은 합쳐질 재산이라는 가정하에 우리는 가사와 육아를 당연히 무보수로 받아왔다. 하지만, 어차피 합칠 것이라면 내 노동의 대가를 눈으로 보고 싶었다. 말은 쉽지 다들 어느 비싼 교육 기관보다 엄마가 데리고 있는 것이 제일 좋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말로만 하지 말고 실제 기관에 아이들을 맡겼을 때 드는 비용을 계산하여 입금하는 것이다. 우습지만 돈을 받으면서 내 마음 가짐도 달라졌다. 원래 국제학교에서 일하며 교육기관에서 해왔던 대로 교육 프로그램을 연간, 월간, 주간 커리큘럼으로 짜서 벽에 붙이고 일일 계획표에 따라 규칙적으로 주 5일 아이들을 케어했다. 수업 중에 아이들은 나를 '엄마 선생님'이라 불렀다. 물론 교육 기관에서는 교사 역할만 하면 되었지만, 이 곳에서는 영양사, 조리사, 청소부, 세탁소 운영까지 동시에 해야 하는 것이 함정. 하지만 양육비를 내고 나의 교육, 양육 서비스를 받으러 오신 귀한 고객님들을 모시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해 본다.


3. 엄마 일하러 갔어.

주어진 퇴근 후 저녁 시간을 처음에는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풀었다. 베쓰 밤(입욕제)을 사다 욕조에 풀고, 신나는 노래를 틀어 놓고 두 시간을 방해받지 않으며 목욕을 즐겼다. 가끔은 집 앞 펍으로 걸어 나가 혼자 바에 앉아 맥주를 마시기도 했다. 때로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두 시간 원 없이 수다를 떨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을 주 5일 하기엔 허무했다. 점점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시작했다. 휴식이 잘 된 나는 의욕도 생겼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브런치를 시작했다. 관심 있는 자격증도 알아보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결과가 어찌 되었든 나를 위해 온전히 시간을 투자한다는 사실이 오랜만에 무척 충족감을 주었다. 처음에는 아이들도 '엄마 어디 갔어요?' 하면, 신랑이 '엄마 퇴근했어. 잘 때 오실 거야.' 했었는데, 이제는 '엄마 일하러 갔어.' 한다. 듣기 좋다. 엄마도 엄마의 일이 있다는 사실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더 열심히 공부도 하고, 책도 읽고 글도 썼다.


4. 남은 밥 먹지 않기.

회사를 다니던 아가씨 시절에는 계절에 따라 맘에 드는 립스틱 색도 고르고, 유행하는 옷도 사며 나를 가꿨다. 친구를 만나 밥을 사기도 하고, 가끔은 비싸다는 고디바 음료를 마시면서도 'ㅅㅂ비용'으로 합당하다 생각했다. 내가 일해 내가 번 돈은 눈치 보지 않고 썼다. 모을 만큼 모으고, 써야 될 때는 과감히 썼다. 하지만 엄마가 되고 나니, 자꾸 손이 작아졌다. 신랑에게 돈을 받아 쓰는 것이 이렇게 눈치 보이는 일이었나 싶었다. 눈치를 주지도 않는데 알아서 움츠러들고 있었다. 아이들 옷과 신발 사는 것은 아깝지 않은데, 어디 나갈 일도 없는데 옷과 신발은 사서 뭐하나 싶어 점점 더 인색해졌다. 맘에 드는 것을 골라 장바구니에 담아두고도 결제를 선뜻 못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존감에 전혀 영향이 없다면 괜찮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오랜 시간 누적될 때는 문제가 생긴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억울해진다. 그래서 갖고 싶고 필요한 것이 있다면, 과감하게 나를 위해 투자한다. 물론 한 달에 한 번씩 명품백을 사라는 말은 아니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하는 미저리 같은 엄마가 되고 싶지 않다면 스스로 피해의식을 갖지 않을 정도의 선에서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절대 아이들이 남긴 밥은 먹지 않는다. 일할 때 기관에서 아이들이 남긴 밥을 교사가 먹지 않듯이. 남겨뒀다가 다시 아이한테 줄 수는 있어도 내가 서서 허겁지겁 먹어치우지는 않는다. 나도 나를 그런 존재로 인식하는 것이 위험하지만, 아이들도 그 모습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엄마는 남긴 음식 먹는 사람이 아니다.


5. 프로페셔널한 자세로

우선 양육비를 받기로 했으니 마음 가짐을 다시 가져본다. 나는 경력 단절 여성이 아니라, 새로운 경력을 쌓는 중이다. 그러므로 돈 받는 시간에는 양육 전문가이자 가사 전문가로서 성실하게 임무를 수행한다. 근무 시간은 아이들 기상 시간부터 저녁 식사 시간 까지. 가능하면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에 일어나서 씻고 출근 준비를 한다. 정장을 입고 풀메이크업을 할 필요는 없다. 다만 잠옷에서 실내복으로 갈아입고, 머리도 빗고 입술에 립밤이라도 바른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아이들과 집 안에만 있었더니 사람이 몇 주간 잠옷만 입고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잠옷을 하루 종일 입고 있으면 그 마음가짐으로 무기력하게 하루를 살게 되었다. 아무래도 프로페셔널한 자세로 삶에 임하면 적극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을 처음 어린이집에 맡기면서 부디 마음씨 따뜻하고 사랑 많은 지혜로운 담임 선생님을 만나길 두 손 모아 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제 그 기도의 답이 나라면 내가 그런 교사가 되어 주어야 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아이들의 중요한 시기를 행복하게 채우길,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나의 젊은 시기를 열정 가득한 '엄마 선생님'의 새로운 경력으로 채울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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