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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아 Apr 11. 2021

자연주의 출산과 닮은 해외 육아

#해외 육아 #미국 육아 #자연주의 출산 #부부의 책임 #온전히 누리기

첫째 임신 사실을 임신 테스트기로 확인했던 순간, 우리는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렸는지 모른다. 그리고 바로 이어진 산부인과 찾기. 가까우면서도 우리가 편안하고 안전하게 출산할 수 있는 곳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여러 친구들의 추천도 들었다. 그 당시 국제학교에 교직원으로 근무 중이었던 터라 함께 성경 공부를 하던 가까운 외국인 교사들이 출산을 했던 '자연주의 산부인과'가 떠올랐다. 어쩌면 당연하고도 조금은 무식한 이야기지만, 아가씨 때에는 사실 별로 출산 방법이나 산부인과에 관심이 없었다. 더군다나 분만 시설이 이렇다 저렇다 들어도 잘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저 그 친구 교사들이 어차피 출산을 할 거면 미국이 아니라 굳이 한국에서 출산을 하려고 노력하기에 의아했을 따름이다. 산부인과 시설이 호텔 같다, 의료진들이 너무 친절하다는 등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어 알고 있었던 그곳을 찾아갔다.


다행히 집에서 5분 거리에 그 친구들이 출산을 했던 '자연주의 출산'을 하는 산부인과가 있었다. 워낙 많은 교사들이 그 병원에서 출산을 했던 터라 산부인과 원장님은 나를 보자마자 국제학교 교직원으로 친근하게 대해주셨다. 친구 아이를 다 받아주셨으니 나도 왠지 믿음이 갔다. 하지만 '자연주의 출산'에 대해서는 공부를 해야만 했다. 자연주의 출산에 대한 여러 정의들이 있지만, 내 마음을 가장 움직였던 것은 바로 의료진 중심이 아닌 부부 중심의 출산이라는 것이었다. 병원 스케줄에 맞춰 출산을 재촉하지 않는다. '아기는 자기가 나오고 싶을 때 나온다.'라며 충분히 때를 기다려 준다. 의료 개입이 불가피한 위급 상황을 제외하고는 의료 처치를 최소화한다. 산모를 금식시킨 후 서늘한 분만대에 눕히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호텔 방 같은 곳에 신랑과 둘이서 오롯이 분만 과정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산모는 끝까지 힘을 내야 하니 간식도 물도 틈틈이 먹여주도록 권한다. 당연히 원하면 무통 주사를 맞을 수는 있다. 하지만 무통 주사를 맞으면 산모는 진통 중 아무 감각이 없어지고, 아이 혼자 세상에 나오기 위한 사투를 벌여야 하므로 함께 아이의 움직임을 느끼고 온전히 그 과정을 소통하며 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권하지는 않는다. 대신 자연스러운 호르몬 분비를 돕고, 온 인류가 오랜 시간 해왔던 방식대로 최대한 산모의 상태를 존중하여 출산을 유도한다. 제모, 관장, 회음부 절개 등의 조치도 하지 않는다. 방의 불은 가능하면 어둡게, 자궁에서 나올 아이가 놀라지 않도록 배려해준다.


첫째도 둘째도 3.8kg에 머리 크기도 주수보다 2주나 차이 나게 컸던 아이들을 둘 다 자연주의 출산 병원에서 낳았다. 분만 경험을 돌이켜볼 때 기억나는 가장 큰 감정은 '평화로운 환희'였다. 당연히 산고는 정말 지옥 같았지만 동물의 왕국에서 본 분만 장면처럼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진행되었고, 그 모든 과정이 정말 생명 그 자체로서 아름답고 강렬했다. 산고를 분만에 필요한 당연한 과정으로 받아들이자 악을 쓰거나 소리 지르지 않아도 되었다. 충분히 호흡하며 조용히 우아하게? 낳을 수 있었다. 임신 기간 내내 함께 해주셨던 산부인과 원장님은 분만 과정을 옆에서 지켜만 보셨고, 힘내라며 입이 마르면 오렌지를 까서 입에 넣어 주셨다. 폭풍 같은 산고 중에도 원장님의 엉뚱함 때문에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는 신랑 보고 폰을 달라 하셔서 모든 분만 과정을 동영상으로 촬영해주셨다. 아이는 수중 분만으로 낳았고, 놀랍게도 회음부는 전혀 손상이 없었다. 따뜻한 욕조에서 나와 침대에 누워 아이를 온몸으로 안았을 때의 그 감동적인 희열이란...! 잊을 수가 없다. 인공적인 약물이 투여되지 않아서인지, 틈틈이 잘 먹어서인지 아니면 정말 호르몬의 기적인지, 어리지 않은 나이에도 몸에 상처 하나 없이 빠르게 회복했다.


그렇게 낳은 두 아이를 안고, 미국에 왔다. 이 곳에서 육아를 하며 느끼는 한국과 다른 점! 바로 온전히 육아가 부부에게 맡겨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한국에서 느꼈던 의존성을 책임감으로 바꿔야 했다. 이 머나먼 곳에서는 가까이 양가 가족과 친척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대신 타인의 재촉도 간섭도 없다. 이런 모든 의사 결정 과정이 자연주의 출산을 하며 느꼈던 감정과 무척 비슷했다. 자연스럽게 인류가 오래 해왔던 방식대로 둔다. 다른 아이들의 양육 속도와 우리 아이의 양육 속도를 비교하지 않는다. 경쟁적인 사교육 기관에 보내는 대신 자연 속에 더 자유롭게 풀어 키울 수 있다.


그리고 한국과 달리 아빠의 육아 휴직이 훨씬 자유롭다. 회사에서 아무도 눈치 보는 분위기가 아니다. 주어진 휴가를 다 쓰고, 무급으로 쉬어도 충분히 이해해준다. 워낙 육아 휴직을 쓰는 아빠들도 많으니 오래 쉰다고 별로 눈에 띄지도 않는다. 당연히 업무로 돌아가서는 다시 제 업무를 찾아 빡세게 일해야겠지만. 그것 역시 개인의 선택으로서 존중해준다. 또 아이를 기관에 맡길지, 데리고 있을지, 집 안에서 어떤 언어로 아이를 키울지 역시 온전히 부모의 선택이다. 교육 기관에 보내는 시기도 제각각이고, 학교 가서 글자 모르는 애들은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운 분위기도 아니다. 워낙 이민자들이 많다 보니, 언어가 부족한 경우 따로 ESL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해준다.


피부로 느끼는 가장 큰 차이점은 필요 이상의 도움을 주는 사람도 없지만, 그래서 필요 이상의 간섭도 없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우리가 고민하여 의사 결정을 하기도 전에 양가 어른들 포함 주변 지인들, 친구들, 어른들의 온갖 의견이 난무한다. 결혼을 하는 순간부터 아이는 언제 가지는지, 몇 명을 낳을지, 아이 이름은 무엇으로 할지 등 왜 엄마 아빠가 아닌 그들과 이야기 나누어야 하는지 의아한 것들을 함께 의논해야만 했다. 그래서 아이를 많이 가져도 적게 가져도, 직장에 엄마가 복귀를 해도, 안 해도 이게 온전히 부부의 선택인지 양가 어른들의 압박인지, 사회의 분위기인지 헷갈리는 것이 많았다. 하지만 여기서는 모든 갑론을박의 소음이 음소거된 듯하다. 고요하다. 정말 어려운 순간이 아니라면 불필요한 도움도 없지만, 또 그래서 모든 것이 온전히 부부의 책임이다.


또 좋은 점은 정말 맑은 자연 속에서 아이를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땅이 넓다 보니, 도심지에 살아도 늘 자연이 가깝다. 아이들이 아스팔트 대신 흙을 밟으며 뛰어다니고, 마당의 지렁이를 잡아 흙 이불을 덮어주고, 도마뱀을 보며 환호한다. 매일 담장을 타고 놀러 오는 다람쥐는 아이들이 이름도 지어줬다. 동네 놀이터 옆에서는 사슴이 뛰놀고, 새가 날아와서 처마에 집을 짓고 알을 품는 곳에서 우리도 셋째를 품고 있으니, 정말 자연 속에 어우러져 사는 기분이다. 맑은 공기와 환경 속에 아이들이 뛰놀며 자연스럽게 자연과 친구가 된다.


그리고 현실적인 부분에서 가장 크게 작용하는 것은 주거 문제의 해결이다. 형편이 넉넉하진 않더라도, 비록 외벌이 일지라도. 우리가 벌어서 우리 집은 해결할 수 있다. 어른들의 도움 없이 충분히 홀로 서기가 가능하다. 물론 모기지로 나눠 갚는 것이지만 한국보다 훨씬 주거 선택이 용이하니 서울의 닭장 같은 아파트가 억 소리 나게 비싼 것에 비하면 한결 여유롭다. 당연히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공간도 여유롭다. 층간 소음에서 자유로우니 한창 콩콩 콩콩 뛰어다니는 아이들에게 매일 뛰지 말라고 잔소리를 할 필요도 없다.


이 모든 것이 온전히 부부의 선택이다. 우리가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진다. 딱히 도움을 기대할 곳도 없지만 그래서 눈치를 봐야 할 곳도 없다. 사는 곳도, 자녀 교육도, 육아 휴직 기간도, 언어 교육 방식도 가족계획도 오직 우리가 정한다. 그렇게 진짜 '책임'을 배운다. 책임감이 생기니 더 근본적인 질문을 자주 한다. 부모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할지 생각한다. 다른 어른의, 사회의 의견들을 수용하고 중재하는 시간에 온전히 아이들에게 더 집중할 수밖에 없고 동시에 더 나은 어른이 되기 위해 고민할 시간도 생겼다. 불필요한 잡음을 걷어내고 나니, 더 삶의 목표가 명확해진다. 그렇게 아이들을 키우며 우리도 자란다. 정말 자연주의 출산과 해외 육아는 닮은 점이 많다. 자진해서 자연주의 분만 방식을 택했을 때 왜 그렇게 미련하게 애를 낳느냐며 경악했던 사람들과, 지금 온전히 연년생의 독박 육아에 만삭인 나를 보며 혀를 차는 사람들은 비슷한 시선을 보낸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선택을 존중한다. 무식하고 조금은 촌스럽지만, 그래도 나는 이 자연스러움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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