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추억 여행기
95. 찰나의 은인들
2002년.
보따리 강사로 전국을 누빌 때
가장 힘든 건 잠이 부족하다는 거였다.
밤 열차에서는 대개 선잠인 데다
아이라도 울라치면
그날 잠은 다 잔 것이다.
찜질방은 코 고는 소리가
고출력 서라운드로 울리는 통에
잠은 커녕 귀가 다 얼얼하다.
보통 하루 6시간 강의를 해야 하는데
잠이 부족하면
매우 힘든 여정이 되고 만다.
암튼 그 시절
전국의 사우나와 찜질방은
종류별로 꽤 섭렵했다.
조폭이 설치는 사우나,
귀신영화에 나올법한 폐교 활용
찜질방에 나 혼자 자기도 했다.
암튼 그날은 순천을 가기 위해
일요일 자정에 용산에서 출발하는
밤기차를 탔다.
아.
마침 할매들이
내 앞에 세 개의 자리를
차지했다.
오 마이 갓.
잠은 다 잤군.
졸다 깨다
종착역에 다다르면 누군가 깨우겠지.
아니었다!
하필 경전선이라
순천을 지나치고 나서야 잠이 깼다.
소오름.
진주 쪽으로 가기 전
간이역에 퍼뜩 내렸다.
이미지 출처: 연합뉴스
황망하게 내리니
역무원 아저씨가
내 몰골과 얼굴을 보더니
추가 요금을 받지 않고
모른 체하고 얼른 가라고 손짓했다.
고맙습니다!
아무도 없는 시골 간이역에서
택시 올 때까지도 잠은 쉬이 깨지 않았다.
2005년.
부산으로 오는 고속버스.
고향에서 6시 넘어 막차를 탔다.
부산까지는 4시간 반이 넘는 여정.
1시간을 달렸을까.
갑자기 뒷자리 아가씨가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버스는 휴게소 가까운 곳에 대고
나와 승객들은 아가씨 응급처치에
그야말로 비상사태였다.
그때 뒷자리 어떤 여성분이
혹시 뭐 먹었냐?
짬뽕?
홍합은 봄에 독이 있다,
그래서 그렇다고 진단했다.
간호사라고 했다.
이제 환자 가족은 부산에서 오려면
12시쯤 되어야 하고
호출한 앰뷸런스를
누군가는 환자와 함께
기다려 주어야 한다.
일요일 밤 막차는
내일 출근을 위해서라도
가야 한다.
서로 눈치를 보는 와중에
그 간호사가
“내가 있을 테니
모두 가세요~”했다.
아. 남자고 여자고
붓싼 사람들은 결정적일 때 멋지다!!
그렇게 비겁한? 우리들은 떠났고
두 여자는 휴게소에 남았다.
고마워요. 간호사 양반.
1985년.
여름방학 학보사 엠티는
몇 박 몇 일로 충주 일대를 돌았다.
학교 예산으로 다니는 거라서
숙소도 음식도 괜찮았다.
신입생인 나는 럭셔리한
여행에 달 뜬 상태였다.
그리고 그때는 왜 그렇게
술 담배를 많이 했는지
전날 숙취를 안고
버스에서 졸다 깨다
충주 탄금대에서 잠시 쉬게 되었다.
그 틈에
치기 어린 2학년 선배와 동기 녀석들이
강 건너 수영으로
횡단하자고 나선 모양이다.
나야 운동도 못하고
여자 동기들과 노닥거렸는가
그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암튼 밥 먹자마자 물에 뛰어든
다섯 명은 그 넓은 강 중간에서
그만 힘이 빠져 버렸다.
이미지 출처: http://www.heritage.go.kr
한 선배가 쥐가 났고
당황한 나머지들은 살려달라
목이 터져라 외쳤다.
절체절명의 위기.
교수도 동료들도 바라볼 뿐
그저 안타까운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때 무슨 드라마처럼
강 건너 작은 보트가 출현했다.
철부지 다섯 명 모두를 구했다.
그리고 우리 쪽 강변으로
데리고 왔다.
죽다 산 사람 챙기랴
사색이 된 교수와 직원들 소란에
우리는 그 아저씨에게
감사의 인사조차
제대로 못했다.
아마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던지
그분은 쿨하게 떠났다.
찰나의 은인들이여.
현세에 복을 못 받아도
후대에 꼭 복 받으실 겁니다.
아멘.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