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열 명이 있으면 그중 다섯은 쓰레기이며 셋 정도는 그래도 노력하는 사람이다. 한 명은 아직은 나쁘지 않지만 멍청해서 곧 물들게 될 사람이고, 나머지 한 명은 천사 또는 성불한 직장인일 것이다. 당신 근처의 누군가가 쓰레기가 아니라면, 당신은 그 또는 그녀를 잘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또는, 병원에서 일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거나, 아니면 끄트머리의 세 명에 다행스럽게도 그 사람이 속하는 것일 수도.
그런데 이건 간호사가 아니라 그냥 인간 집단의 특성일 수도 있다. 아빠가 항상 상위 이십 프로 정도를 빼고는 다 거기서 거기라고 했거든.
악을 들여다볼 때는 조심하라고 했다. 그 심연 역시 나를 들여다 본다고. 그리고 근묵자흑이라고 했잖아? 나는 물들고 싶지 않다. 이미 늦었을 수 있다. 아마 어느 정도는 틀려먹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거기까지기를 바란다. 언제가 될지 모를 이곳을 떠날 그날까지, 나는 더 물들지 않을 것이다. 뭐가 뭔지 알아야 피할 것 아닌가.
아무튼 그렇다. 이건 신나게 이 집단을 욕하는 글이자, 그 피할 대상을 명시하는 긴 메모다. 내가 뭔데? 간호사다.
지금의 이 병원 이전에는 다른 곳에서 일했다. 일한 시간을 합치면 4년가량이 된다. 환경 자체에 적응하지 못해 징징거리는 시기는 지났다. 단지 일이 힘들고 사람과 이 일 자체가 낯설어 눈물짓는 시절도 아마.. 끝났을 것이다. 욕할 자격? 얼마나 더 있어야 그런 게 정당히 주어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아예 백지 같은 상태는 아니라고 본다.
열에 다섯, 나아가 여섯이 쓰레기라는 통계치에는 당연하게도 아무런 공신력이 없다. 극한의 환자수와 업무강도, 나이와 연차에서 온 상명하복. 이 셋에서 온 온갖 감정적 부침과 피로를 직종의 특성에 합해 내 맘대로 낸 결론이기 때문이다. 사람 사는 거 어디나 비슷하니 굳이 구별 지을 필요까지는 없나? 여하간 이 집단은 뭣 같은 게 맞다.
나는 이걸 굳이 간호사들만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밥벌이가 괜히 밥벌이인가. 쉬운 일이 어딨어. 다 돈 주는 만큼 일 시킨다. 사실은 더 줘야 하는데도 딱 그만큼만 준다. 요는, 힘들지 않은 일은 없고 다 제각각의 애로사항이 있잖아.
그런데, 그렇게 안 된다.
어떤 것이든 이 집단의 특성으로 대표되는 모든 것들이 다 꼴 보기 싫었다. 간호라는 단어도, 간호사라는 직업도, 그 단어들 뒤에 붙은 온갖 편견들이 직접 겪기도 전에 지겨워져서 나를 밥 먹이는 이 직업의 많은 요소가 질리도록 싫었다. 그래서 나는 모른 척했다. 비교대상이 없으니, 이 일 말고는 해 본 적이 없으니 차이를 알 길이 없기도 했다.
다 비슷하지 꼭 여기만 그런 게 어딨어, 다 똑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야 인정한다. 인정하기로 했다. 그래야 나 역시 이렇게 변모하는 걸 막을 것 아닌가.
이들은 하나같이 날이 서 있으며. 일하는 대상 앞에서 늘 웃거나 말을 높이거나 안 주고 싶은 관심을 잔뜩 줘야 하는 통에 마음의 여유는 조금도 없으며, 주어진 일들 이외에도 감각과 눈치를 총동원해 모든 동료와 보호자와 상사의 기분을 맞추고 수발을 들어야 하는 통에 분노가 꽤나 차 있다.
한두 살 위의 하늘 같은 선임이 넘기고 간 일을 떠안은 와중에 환자에게 쏟아지는 처방을 수행하고, 병원 돌아가는 꼴을 잘 모르지만 엉덩이는 무거운 의사 사이에서 난리법석을 떠는 동안 쌓이는 스트레스는 어디로 향할까? 바로 아랫연차에게 간다. 환자의 안전, 투약시간, 검체 접수, 인계, 검사 시간, 검사 결과 등등을 핑계로 그들은 후배를 갈구고 갈군다.
그래도 그 누구에게도 비난받지 않는다. 환자를 위한 일이니까. 저렇게 멍청한 애가 환자를 그렇게 보면 큰일이 나는 거니까. 쟤가 그 안내를 환자에게 안 해줘서 검사가 똑바로 안 된 거니까. 쟤가 그 노티를 의사에게 안 해서 나한테 일이 넘어오고 환자의 수혈이며 전해질 보충이 늦은 거니까. 의사가 해야 할 일을 의사가 하지 않은 것도, 검사실에서 자기들끼리 인계를 안 한 것도, 약국과 혈액은행에서 잘못을 한 것도 아무튼 그건 그 환자를 담당한 간호사 잘못이다.
이런 식으로 이유는 차고 넘친다. 그 정당한 이유들을 들어 그들은 아랫연차를 혼내고 집에 보내지 않는다. 혼낸다고 쓰고 갈군다고 읽으며 일각에서는 태운다고 한다. 그래도 그건 이상한 게 아니다. 일이 늦어진 거잖아? 이유 없이 걔를 혼낸 게 아니잖아. 그리고, 그냥 혼낸 거잖아.
그러니까, 구로 모 병원에서는 생리식염수 앰플을 따서 얼굴에 뿌리기도 했다는데, 대전 모 병원에서는 가래가 든 통을 뒤집어 씌웠다는데, 안암 모 병원 중환자실에서는 의자를 집어던졌다는데. 하긴, 나 다녔던 데에선 열 시 퇴근시간을 넘겨 새벽 세 시에 사원증을 빼앗아 던지고 다섯 시 반에야 집에 보냈는데, 인계 때는 앉은 종아리를 차이거나 꼬집힌 적도 있는데. 이건 그 정도는 아니니까.
그래서 많은 것들은 이상하지도 화제가 되지도 않는다. 일상이 된다. 어디서나 비슷한 양상으로 펼쳐지기에 딱히 쇼킹할 것도 없다. 인신공격? 누가 뭘 터뜨려 줘야 인신공격이 되지. 다 같이 미친 이곳에서는 어떤 게 이상한 건지 아무도 모른다. 그렇다. 모른다. 바깥으로 나와 보기 전까지는.
직장은 학교가 아니다. 직장이다. 나는 아직은 직장보다는 학교를 더 오래 다닌 입장인 관계로 아직도, '직장'의 생리가 뻣뻣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 누구도 본인이 알랑방구 뀔 상사가 아니라면 대체로 본인 옆의 인간에게 애쓰지 않는다. 학교에는 나를 보호하고 보살펴 주는 선생님이 있고 친구가 있었지만 여긴 아니지.
사방이 아픈 사람들 투성이인 곳이라 오히려 어떤 아픔은 아무것도 아니다. 환자들은 아파서 이곳의 병상에 누워 약을 맞고 있지만 내가 아프면 해열진통제를 꽂은 폴대를 끌고 다니며 일한다. 환자에게는 '아프시죠, 아이고' 하는 이들이 그들이 아플 땐 일말의 관심조차 갖지 않는다. 우린 다 알거든. 이걸 맞으면 안 아플 거라는 걸. 최소한, 안 아픈 상태가 되어야 하는 거고 그래도 아프다면 어쩔 수 없는 거라는 걸. 그러니까 누군가가 아프다거나 일신상의 문제가 생긴 건 사실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가엾게도, 그리고 나에게는 다행히도 병가를 쓰지 못하고 출근했잖아? 쟤가 아파서 안 나왔으면 남은 인원이 환자를 그대로 나누어 봐야 한다. 10명 볼 걸 13명, 14명 봐야 한다. 나왔으니 된 거다. 말 그대로 죽을병이 아니면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무서운 건, 나 역시 챙김 받은 적 없으니 별로 챙겨주고 싶지 않다는 것에 있다.
걔가 병가를 내서 내 오프가 잘렸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짜증이 난다. 대신 출근하게 된 나에게 그 사람이 보내는 황송한 감사 인사와 최소한의 사례를 바라게 되는 것이다. 아픈 건데? 그렇지. 맞지. 그러니 그딴 건 당연한 게 아니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이미 틀린 것이다.
그걸 친구는 피폐해져 간다고 표현했다. 돈을 받아 일하는 입장이니, 환자의 고통에는 정서적 지지를 잔뜩 해 주지만, 정작 하루 종일 부대끼며 일하는 동료에게는 그럴 이유가 없다는 논리. 괜찮냐는 인사치레 대신, 넌 대신 출근하게 된 사람한테 죄송하다는 말도 감사하다는 표시도 할 줄 모르냐는 말을 먼저 하게 되는 인간성. 뭐, 틀린 말도 아니다. 그 알량한 월급을 받고자 이걸 다 감내하는 입장인데, 내 옆의 누구든 그리 인간적으로 대할 필요가 있나? 없긴 해.
이거 했어? 왜 안 했어? 니가 해. 너. 너. 너. 언제 봤다고 너인지. 누가 너 그렇게 가르쳤어. 이것도 몰라? 공부 안 해?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이거 하고 가. 인계 하나씩 주지 마, 너 때문에 일이 안 되잖아. 니가 다 하고 가. 뭐.. 이걸 다 존댓말로 바꾼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나는 저 말들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일하는 곳이잖아. 뭐 다른 곳도 특별히 다르겠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은연중에 늘 저런 말투를 쓰지 않으려 경계했고 백 번을 참았다. 나는 나에게 저런 말과 행동을 했던 이들과 어떤 공통점도 갖기 싫었거든. 이상하다는 것을 사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싸가지 없는 게 맞고 틀린 게 맞다는 걸.
입원환자나 보호자 중에 특이사항이 있을 경우 우리는 나름의 표식을 남긴다. 병원 직원, 관계자, 어딘가의 누구, 어떤 전문직 등 그 어떤 언질보다 더 주의하게 되는 게 있다.
간호사. 개중에는 괜찮은 사람들도 있다. 간호사라는 사실이 부각되지 않는 경우들. 그러나 그들은 꼭 티를 낸다. 진상을 많이 겪어서 그 진상짓을 잘 아는 건지 원래 성격이 그리 생겨먹은 건지, 병원에서 사람 꽤나 갈궜을 법한 그 익숙한 말투로 의학용어를 써가며 컴플레인을 하고 사람들을 볶는다.
모든 대학병원 간호본부에서 예의주시하는 지표가 있다. 신규간호사 퇴사율이다. 간호사만큼 신입 인력의 퇴사율을 관리하려 드는 직종이 있나? 애초에 그걸 왜 그렇게까지 관리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부분은, 통상 태움이라 부르는 인간관계 문제다. 교대근무 형태, 업무 강도, 타지에서의 생활 등 요인은 들자면 한도 끝도 없지. 그러나 다들 알고 있다.
들어온 지 한 달, 두 달이 안 된 신규가 그만둔다? 그땐 일도 어차피 제대로 잘 못 할 때다. 다시 말해 많이 안 시킬 때다. 아니라고? 그게 아니라면 못해도 편의를 봐줘야 하는 시기다. 안 그랬다는 뜻이다. 왜 못하냐고 갈구고 집에 안 보냈다는 의미다. 어쨌든, 태움이다.
이리저리 감안해 일을 평균치까지는 할 수 있을 만한 기간은 짧게 잡아야 6개월이다. 시시때때로 바뀌는 상황, 검사며 시술마다 챙겨야 할 사항들, IV 확보는 물론 갖가지 부자재들을 상황에 따라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되기까지는 그 정도의 시간은 필요하다. 동시다발적으로 여기저기서 나를 찾아대는 상황에서 얼타지 않고 일을 쳐내려면 일 년은 봐야 한다. 그런데, 당연히 그렇게 할 수 없고 응당 적응기를 거치는 중인 신입이 그만둔다? 트레이닝 기간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거지. 병원도 그걸 알고 있다. 태움이니 뭐니 하는 단어가 매스컴에 한창 오르내렸고 그게 병원의 위신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걸. 그래서 관리하려 든다. 이상한 방식으로.
인력을 늘리고 환자수를 조정해 전체의 업무량을 줄이는 식이 아닌, 무작정 신규의 편의를 위해 나머지 인력들에게 부담을 가중한다. 악순환이다. 그 신규는 결국 거기 있을 거니까. 신규로 묶이는 기간이 끝나면 갑자기 늘어나는 업무에 허덕이거나, 때를 기다리던 나머지 간호사들의 외면과 미움을 받거나. 아니면.. 둘 다거나.
사람을 시시각각 닦달하고, 아파도 쉴 수 없고, 사방에서는 나를 감시하는 것처럼 보고 있거나 유니폼만 입은 사람이면 나 좀 봐 달라며 붙드는 환경에서 살아남은 그 신규는 이제야 열 명 안에 들어간다. 여섯 명 안에 들지, 나머지 셋으로 계속 고군분투할지 갈리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 천사 한 명? 그건 그 사람의 천성이 그런 것이기에 변화한다거나 선택하는 것으로는 해당되지 않는다. 아마 쓰레기 넷에 멍청이를 두 명으로 올려야 할지도?
선임 중 하나는 몇 년 전 나와 함께 퇴근하던 길에, 간호사들의 그 말투가 너무 싫다고 했다. 연차가 낮으면 아닌 척하며 일을 떠넘기는 것도, 매번 다 자기 잘못으로 돌리고 다 본인이 멍청해서 그렇게 된 일인 양 혼내는 게 질린다고 했다. 그만둘 거라고 했다. 자기는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런 그녀는 신규에게 인계를 받고 내가 위에 써 놓은 말 중의 절반 이상을 다 쏟아냈다. 중간중간 한숨을 크게 내쉬고 아닌 척 눈을 흘기는 것까지 빼먹지 않았다. 신규는 탈의실에서 울었다. 상사한테 깨지고 우는 게 그렇게 별 일은 아니나 어쨌든.. 가여웠다. 집에 갈 시간인데 우는 게 불쌍했다. 그녀가 그따위로 반응했으니 울 수밖에 있어?그냥 울고 잊길 바랐다. 본인을 닦달하지 말고 저 선임을 욕하길 빌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실망했다. 워낙 긴 시간 봐온 터라 그 성격을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앞뒤가 딱 안 맞는 것을 보니 신기하기도 했고, 사람 참 별 거 없구나 싶었다.
한 가지 더, 쟤도 안 그만두겠다,는 얕은 절망. 그만둔다 그만둔다 말은 하지만 성격만 날로 더 더러워지는 그런 고인물이 정확히 되어가는 중이라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정말로.. 저렇게 되지 말아야겠다. 이미 되어 있다면 안 그런 척이라도 해야겠다.
톡식. 누군가 태움이나 그 비슷한 것의 주축이 될 때 그 사람을 톡식하다고 표현한다. 이 집단은 어쨌든 톡식하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그 마음을 가지고 출근한다. 여긴 그런 곳이라고. 공연히 상처받지 말자고.
받은 대로 되갚아 준다는 미친 생각을 해버리기 전에, 차라리 무감해지자고. 그래서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원래 이런 곳이며 앞으로도 이럴 곳이라고. 생각 없이 말하고, 기본적인 배려와 상호존중은 찾기 힘들고 그들은 그것을 모르는 야만인이 아닌 상황에 따라 탈부착하는 지긋지긋한 인간들이라고. 그러니 조심하라고. 그리고 스스로를 돌아보라고.
이미 그렇다면, 늦어버렸다면, 티내지 말자고.
어떤 이들은 말한다. 태움을 개선하려면 인당 환자수 축소와 업무량 조정부터 필요하다고. 맞는 말이다. 정말 맞는 말이다. 십 분이라도 조용히 숨을 돌릴 수 있다면, 매번 끼니를 거르고 8-9시간 내내 긴장한 상태로 일하지 않아도 된다면, 사람은 그래도 그 정도의 여유는 꺼내 보일 수 있을 것이다.
무슨 괴물들이 아니잖아? 괴물이 어딨어, 다행히도 불행히도.. 다 사람인데. 필요하면 상사에게 아부도 할 줄 알고 보호자 앞에서는 큰소리 안 내는, 누울 자리 볼 줄 아는 영민하고 똑같이 약은 인간들이라고.
이건 당연히 간호사들의 문제다. 하지만 간호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그러니까, 간호학과에 가도록 정해져 있는 성격 같은 건 없잖아. 날 선 분위기를 조성하는 사람들이 간호사와 간호학과로 모여든다고 설명할 수 있나? 설명할 수 없다. 사실이 아니니까. 개선하는 것에는 결국 간호사 개개인의 노력이 들지만 모든 원인이 그들에게만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사람은 완전히 악하지도, 선하지도 않잖아. 이 환경의 어떤 것이 더 나쁜 것을 자꾸 꺼내 보이게 만드는지 기민해질 필요가 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는 말을 새기고 살았다. 아닌 줄 알았는데 그랬었고 나는 내가 이것을, 이 직업을 싫어만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정말 싫었다면 진작 떠났을 것이다. 그렇게나 싫다면 당장 그만둬야 하는데 당장은 그럴 계획이.. 없으니까. 그렇다고 나만이 이곳에서의 천사나 각성한 사람 비슷한 거라는 것도 아니다. 달라진 건 없다. 내가 실습을 하던 그 병원에 처음으로 출근하던 새벽이나, 사복을 입고 이곳의 수선생님께 인사를 드린 날이나, 4오프를 앞둔 그녀에게 인사를 하던 어제의 퇴근길이나.
해본 일이 이것뿐이고, 대충 적응했기 때문에 어찌어찌 다닌다고 말해도, 꽤 자주 생경하고 낯설 때가 있어도.. 정말 아주 조금의 애정은 있나 봐. 그 조금의 애정 덕에 나는 그래도 스스로를 어느 정도는 책임질 돈을 벌고 자리를 유지했다. 언제까지 어떻게 이 일을 할지 모르니 늘 가능성을 열어 두려 했다. 이곳은, 사람들은 완전히 악할 수 없다는 그런 가능성.
다만, 이제는 인정해 두고 싶은 것이다. 나는 공연히 상처 입고 더 악독해지기 싫기 때문이다. 이곳은 꽤 자주 사람을 힘들게 하고 그 억눌린 마음이 엉뚱한 곳으로 해롭게 튀기 좋은 곳이라는 사실을.
그러니까, 몇 년, 십몇 년 간이나 변하지 않는 간호계의 변화 같은 걸 바라는 대신 나부터 살고 봐야겠다. 내가 악마가 되지 않는 게 더 우선이다. 나는 이곳에서 월급을 받고 싶은 거지 안 그래도 없는 인격까지 더 깎고 싶지는 않으니까.
퇴근 후 내가 얼마나 형편없는 인간이 되어 있는지를 어느 순간 깨닫고 쓸데없는 혐오감을 느끼고 싶지 않다.
나를 괴롭게 했던 인간들과 요만큼도 가까워지도 싶지 않다.
절대, 절대로 그들의, 이들의 이런 모습을 더 닮지 않도록 애쓸 것이다.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