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답장 말이죠
예스 24는 한 계정으로 동시에 접속하는 게 가능하다.
인터파크는 안 된다. 이는 각각 장점과 단점이 명확하다.
예스 24의 경우 내 아이디로 1회 차와 2회 차 공연을 모두 그 자리에서 (운이 좋다면) 예매하는 게 가능하다. 꼭 '올콘'이 아니더라도 내 아이디를 들쓴 아바타를 활용해 티켓을 잡을 확률을 높일 수 있다.
8시에 티켓팅이라고 하면 나는 정각에 관대하며 따뜻한 친구나 친지 등등의 용병에게 부탁한 대로 12일 자의 공연을, 그 사람은 13일 자의 공연을 누르는 식이다.
그러나 인터파크는 한 아이디로 그렇게 접속할 경우 '어, 너 딴 데서도 이러고 있던데? 우린 다음에 보자, 안녕' 하고 나를 튕겨낸다. 용병과 나 모두 티켓을 건지는 데 실패한다.
대신 인터파크는 대기열 진입이 쉽다. 내 앞에 3만 명? 5만 명? 상관없다. 아니, 상관이 없진 않은데 차라리 이 쪽이 낫다. 서버가 끊기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공연장이나 경기장 자리를 눌러볼 수라도 있다. 비록 그게 눈알과 인내심이 모두 나가 버릴 것 같은 지난한 새로고침의 시작이라 할지라도.
예스 24는 대기열 접속 자체가 어렵다. 예매 버튼을 누르면 자꾸 하얀 창만 뜬다. 그게 아니면 서버가 나가버렸다는 알림 창만 뜬다. 짧디 짧은 시간, 열 번, 스무 번의 반복 끝에 대기열이 뜬다? 아무튼 감사한 일이다. 탈덕할까, 내가 이걸 이렇게까지 보러 가야 하나, 망할 놈들, 돈 그렇게 벌어서 서버 늘리지도 않고 뭐 하냐, 아. 다음에도 이 짓을 해야 한다고? 의 끝에 여하간 줄을 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좌석은 보기도 전에 심히 진이 빠지지만 그래도 기쁘다.
그리고 일할 때도 그런 순간들이 있다. 많은가? 많아야 한다. 많아야지. 바로 의사들의 답장이다.
예스 24 예매창을 누른 후 대기열 숫자가 내 앞에 떴을 때만큼이나 기쁘다. 메신저창에 그들이 답장을 입력 중이라는 작은 글씨가 뜰 때. 정말로 짜릿하다.
'엘리멘탈이 뭔데요?'
그는 온 지 2주쯤 된 레지던트였다. 소화기 분과를 보고 있었다. 2주가 아니던가? 좋게 봐줘서 2주고, 더 오래된 거라면 딱 그만큼 더 심각한 거였겠지.
나는 키보드에 손을 올리고 뭐라고 답을 쳐야 할지 좀 고민했던 것 같다. 그걸 저한테 물어보시면 어떡해요, 선생님. 그거는 어쩌고어쩌고 어쩌고인데 어쩌고니까 일단 어쩌고 저쩌고 나서는 식이오더를 어떻게.. 하는 걸 다 쳐야 하나. 대체 뭘 어디까지 모르는 건지도 알 수 없는 질문. 결국 나는 몇 걸음 걸어가 아, 그게요. 선생님, 하고 말로 설명했던 것 같다. 그는 나의 긴 설명 끝에 아, 네. 하고 또 물었다. 그래서 오더를 뭘 내면 되는데요? 모노웰? 그건 어떻게 해야 되는데요.
입사한 지 막 1년이 되었을 시점이었다. 처방을 수행하도록 되어 있는 간호사의 전산창과 처방을 내도록 되어 있는 의사의 전산은 약간 다르다. 이게 뭘 해야 올라오는 거였더라? 그것까지는 몰랐던 나는 선임 하나를 끌고 와 선생님, 이게 나오도록 하려면 어떤 식이오더가 나야 하죠, 하고 물었던 것 같다. 그 선임도 당연히 의사처럼 오더 내는 법은 모른다. 그냥 많은 케이스를 봤기에 아는 것일 뿐.
김** 씨. 잘 지내세요? 사실 잘 지내시는지는 안 궁금하고요, 아직도 그렇게 안하무인으로 일하시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네. 그래요.
모노웰과 엔커버, 엘리멘탈은 말하자면 위장병이 좀 심한 사람들이 먹는 액체 밥이다. 그 질환으로 진단을 처음 받은 사람들은 셋 중에 선택을 하게 된다. 먹어보고 뭐가 그나마 본인 입에 먹을 만한지 골라야 한다.
엔커버는 원내 약국에서 처방이 가능하고, 모노웰은 특정 식이 처방을 넣을 경우 부식 같은 개념으로 영양실에서 올려 준다. 엘리멘탈은 원내 처방이 어렵다. 그게 입에 맞을 경우 보건소에서 수령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의사의 소견서가 필요하다. 나는 그 소견서 작성을 요청하기 위해 메신저로 대화를 건 거였다.
그리고 2년 전 당시에는 그 의사가 앉아 있던 자리 뒤에 한 박스가 쌓여 있었다. 아마 제약회사에서 샘플로 놔두고 갔겠지. 그걸 회진 중 건네며 드셔 보시라고 말하는 건 의사 몫이었다. 그 사람들이 안 하면 내가 해야 했다. 하면 되지, 하면 되는데.. 이 병동 소화기분과에 제일 많은 그 병에 제공되어야 할 약에 대해서 그렇게 질문하는 게 충격이었다. 저렇게 밑도 끝도 없이 묻는다고? 아니. 모른다고? 어떻게 모르지?
당연한 말이지만 그는 나보다 평생에 걸쳐 똑똑했고 공부를 잘했고 또 똑똑할 사람이었다. 그리고 병원이잖아. 그래서 우리가, 내가 이제껏 당신의 그 싸가지 없음을 참았잖아. 의사가 오더를 내고 나는 수행한다. 그런데.. 이런다고?
오더 코드 알려주세요, 그게 뭔데요, 뭔데요, 이거 왜 하는데요, 저도 몰라요, 또 오더 코드 알려주세요.. 비단 김 **씨만이 아니었다. 어떤 레지던트들은 일을 엉망으로 하는 주제에 말이 심히 짧았다. 검사실, 외래, 영양실 등 어떤 타 부서 사람들도 그런 식으로 앞뒤 다 잘라먹고 떠먹여 달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다. 직장이잖아? 모두가 여기가 직장임을 인지하는데, 그들과 함께하는 건 막무가내에 기분이 심히 안 좋기까지 한 중학생을 얼러서 일하는 기분이었다. 조**, 박**, 신**, **현.. 그리고 얼굴은 기억나지만 이름은 까먹은 수많은 그들. 함께 일하는 게, 함께, 가 맞나?
아무튼 그들의 처방을 수행하는 게 열이 받았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렇게나 똑똑하면서, 공부를 잘했으면서 충분히 더 할 수 있는 일은 이렇게 대충 한다는 게, 그리고 본인조차도 어떤 열의를 안 보이는데 내가 그들을 '선생님..ㅎㅎ 이거 처방 이렇게 바꿔서 나야 하고 익일자에 이 오더는 이렇게 저렇게 필요한데 혹시 확인 부탁드려도 될까요'라고 달래듯 재촉해야 한다는 게 꽤 피곤하고 또다시 화가 났다.
특정 약물을 쓰고 있어서 내일이면 혈액검사를 나가야 한다. 약물 주입 전후로 피를 뽑아 그 약제의 현 용량을 유지할지, 올릴지, 내릴지, 중단할지 봐야 하기 때문이다. 내일자에 그런 처방이 없다. 다른 건 있는데 그게 없다.
그러면 안 나가야 하나? 아니다. 나가야 하는 게 맞는데, 의사가 빠뜨린 건지 아니면 진료과에서 무슨 다른 계획이 있어서 없는 건지 물어봐야 한다.
교수가 작성한 의무기록에는 내일 척수강내항암과 골수검사를 한다고 되어 있는데, 오더창에는 어떤 진정제 처방도 없다. 바둥대고 울고 난리 칠 4살짜리 애를 재우지도 않고 그 험한 일들을 할 수 있나? 그러려고 주치의가 처방을 안 낸 걸까? 주사로 된 진정제를 쓰려면 6시간의 금식이 필요하다. 그럼 안 하면 되지, 처방이 없으니까..?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 담당 간호사가 못 '걸렀'더라도 그 뒷턴이라도 거른다. 일단 아침밥 먹지 말라고 안내한다.
문자에도, 메신저에도 영영 답장하지 않는 그들이 아니라 펠로우나 교수가 새벽 중에라도 그 구멍 숭숭 난 오더창에 진정제를 처방하고 가든, 아침에 우다다다다 오더가 다 뒤바뀌든 어쨌든 준비는 해야 하잖아. 환자는 그냥 침대에 누워만 있으려고 입원한 게 아니니까.
아무 처방도 의무기록도 써 놓지 않고서는 새벽 6시에 병동에 전화해 애 금식시켜 주세요, 했던 레지던트도 있었다. 골수검사는 오전 중에 반드시 다 해야 한다. 여섯 시부터 굶으면 진정은 열두 시에나 가능하다. 그랬더니 그녀는, 아니. 그럼 아침에 해야 되는데 왜 MN NPO가 안 됐어요?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나는.. 선생님이 오더를 안 주셨잖아요,라고는 안 했을 텐데, (근데 왜 못했을까. 틀린 말도 아닌데. 맞는 말이잖아?) 뭐라고 했을까나. 다 내 잘못인 것 같던 신규 시절의 나는 그날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아침부터 눈물깨나 뺐던 걸로 기억난다.
그들은 처방을 달라는 메신저에 답장을 하지 않고, 문자는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확인이 안 됐지만 어쨌든 오더는 나지 않는다. 차라리 그런 거라면 나았다.
가장 짜증나는 경우는 교수 또는 펠로우가 회진하며 보호자에게 하고 간 말과 오더가 다른 경우였다. 엄마아빠는 이만저만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는데 오더는 안 났다. 처방이 나야 뭘 하는데 확인할 길이 없다. 보호자는 열이 오른다. 병원이 뭐 이러냐고.
전화를 했더니, 저 퇴근했는데요? 당직한테 물어보세요. 하며 확 끊는다. 저기요, 다섯 시 이십 분이에요. 보호자는 십 분에 한 번씩은 보이는 간호사마다 붙들고 그 검사나 시술이나 퇴원 일정에 대해 묻고 나는 다른 걸 하다가도 그리로 뛰어가 처방이 안 났다는 말만 반복해야 한다. 가능한 다른 버전으로. 그리고 그 불신의 표정. 내가 세상에서 제일 무능력한 사람이자 거짓말쟁이가 된 것 같은 그 기분.
뭐 어떡해. 의사가 처방을 안 냈다니까요, 전화했더니 끊던데요? 당직한테 확인받으래요,라고 할 수는 없잖아. 그리고 당직은 환자 개개인의 그런 일을 처리하라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정말 위급한 상황이나 처방을 봐야 할 사람이지. 그 정도로 그 환자의 치료 계획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건 당연하고. 아니, 의무기록에도 저렇게 쓰여 있는 걸 당직이 어떻게 아는가. 그 교수와 레지던트 마음속에 들어가지 않는 한.
그리고 그 무반응이나 어떤 부주의함이 너무 싫을 때가 있다. 약물 용량이다. kg당 0.1mg 주라고 되어 있는 약을 통으로 다 50mg 냈다든가 (내가 되도않는 똑똑한 척을 하려는 게 아니라 병원 전산에는 정말 많은.. 것이 나와 있다. 한 번만 클릭해 보면 나온다) 저만한 애들은 늘 20cc 정도만 빼서 주던 걸 한 팩 다 내놓는다. 성인도 1g짜리 한 바이알 다 줄까 말까 한 걸 13kg짜리 애한테 1g 전체를 주라고 내놨다.
그냥 주면 되지 않을까? 오더잖아. 의사 명령이잖아. 아니다. 그 투약은 내가 한다. 그걸 그렇게 주면 나는 투약사고를 친 사람이 된다. 의사가 처방을 무슨 의도로 냈든 어쨌든 병원 전산의 그 약 옆에는 수행자가 나로 남는다. 그리고, 몸에 들어간 걸 어떻게 빼. 빽도시킬 수 없잖아.
보호자가 나한테 똑같은 걸 묻고 또 묻고 묻는 것에 대답하는 거, 클릭 한 번이면 알 수 있는 걸 묻는 거, 전적으로 본인 소관인 오더를 나한테 알려달라고 하는 거 (나도 뭘 다 아는 게 아니다. 내 전산 창에서 찾아보고 알려줘야 한다. 대체 왜? 본인도 눈 떠서 몇 번 눌러보면 알 수 있는 걸 왜 내가 찾아서 알려줘야 한다는 말인가) 다 그렇다 친다.
그냥 그 사람들의 성격이 좀 나쁘고 사회성이 떨어졌던 거일 수도 있잖아. 개개인의 문제였을 거라고. 물론 그러기에는 괜찮았던 의사들은 절대 안 잊어버리고 있지만, 파업 이후 상대적으로 병원 짬이 더 찬 펠로우나 교수님들과 소통하게 되어 업무 로딩이 훨씬, 엄청나게 줄었지만.
아무튼 그렇잖아? 그냥 걔들이 성격이 나빴던 것이겠지. 실제로 그럴 것이다. 그런 성격의 사람들만 레지던트가 되는 건 아니잖아. 그런 게 어딨어.
다른 건 다 괜찮다고, 그냥 그런 성격의 사람들이라 함께 일하기 힘들었다, 정도로 생각할 수 있지만.. 약물 용량을 엉망으로 내놓고 연락이 안 되는 건 좀 심각한 일이다. 검사? 보호자한테 욕 좀 먹고 하루 더 입원시키면 되지. 찾아보기 싫어서 묻는 거? 알려주면 되지.
누구나 다 직장에서는 헤맬 수 있잖아? 물론 나는 누구에게도 이게 뭔데요? 하고 물으면 그날로 별종으로 찍히게 되겠지만. 이곳을 떠나 이 세상 어느 일터에서든 그렇게 물으면 폐급 취급을 안 받기가 더 어렵겠지만 말이야.
내일 아침 첫 수술인데 동의서도 마킹도 되어 있지 않고 메신저와 문자에 이어 몇 번을 고민해 건 전화도 안 받는다면, 받고도 짜증만 한가득이라면.. 내일 아침 수술장 앞에서라도 하겠지. 정 안 되면 밤 번 간호사 볶아서 한밤중에 보호자를 불러내 설명을 하고 사인을 받던가. 그렇게라도 하면 된다. 그런데 약은, 용량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빠진 부분을 찾고, 또 있어야 하는데 누락된 것을 알아내 이건 왜 없냐고 묻고, 또 없는 걸 알려 챙기고, 통상 이거면 이렇게 하던 건데 저렇게 나 있을 경우 잘못 난 게 아닌지 물어 확인하는 것, 이어 처방이 추가되거나 수정되는 것까지.
오더를 거른다고 표현한다. 거르는 것도 뭘 알아야 거르지. 오더창에 나 있는 걸 수행할 줄만 아는 쌩신규들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 여력이 없다. 능력까지 갈 것도 없어. 눈 뜨고 찾아서 누르면 다 나와 있으니까. 근데 그걸 못 해.
문제는 여기서 생긴다. 검사를 보내고, 추가 채혈을 하고, 또 어딘가를 보내고, 수액을 바꾸고, 해열제를 달고 진통제를 달고 수혈을 하고 그새 수술실이나 검사실에서 온 환자를 받고 입원을 받고 하는 등의 액팅을 간신히 쳐내는 쌩신규가.. 처방을 보며 이게 맞는 건지에 대한 의문을 품을 여력 같은 게 있을, 있으면 좋겠지만 그러기 힘들다.
떨어지는 오더나 똑바로 수행하면 다행이다. 이건 신규를 향한 측은지심 같은 것에서 나온 게 아니다. 그리고 사실, 거르는 일 같은 건 없다. 그들 일인데 내가 왜 해야 하는가. 처방을 잘못 낸 건 그들인데 왜 내가 법석을 떨어야 하냐고.
하지만 모자란 신규는 나 있는 오더를 그대로 수행한다. 그게 전일자에 나 있던 처방이라 전 근무자가 한 번 걸렀더라면 그런 일이 없겠지만 오더는 계속해서 난다. 걸러줄 누군가가 없을 때, 그 간호사는 약을 중복으로 투약하고 과용량을 주입하고 안 가도 되는 검사를 보낼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약제부에서 '이거 이 용량이 맞는지 확인이 필요한데요.', 검사실에서 '이 검사 이틀 전에 하셨는데 또 하시는 게 맞아요?' 하는 연락을 줄 경우 다행인 것이다. 그 전화를 받은 누군가는 신규에게 '선생님, 이거 확인 안 했어요?', '이 용량이 들어가는 게 맞아요?'라고 화를 내겠지만.
교육 담당 선생님은 그 싸가지 없는 답장에, 응답은 없는데 아메리카노나 빨며 농담 따먹기를 하던 레지던트들을 뒤에 두고 씩씩거리는 내게 '오더리처럼 일하면 안 돼요'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반문했다. 왜요, 저 사람들도 저따위로 일하는데 내가 왜 오더리처럼 하면 안 되는데요, 쟤들은 처방을 저렇게 내놓고 히히덕거리는데 내가 왜 있는 그대로 안 하고 구태여 가서 이거 저거 바꿔 달라고 부탁해야 하는데요.
말하지는 않았다. 이유는 나도 아니까. 내 몸이 아니니까. 남의 몸에 잘못 들어간 것, 행해진 것에는 되돌릴 방법이 없으니까. 나를 위해서? 그럼 그냥 오더대로 액팅이나 하면 된다. 뇌가 감자인 것처럼 일하면 돼. 정말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잖아. 무슨 천사이거나 선인이라서가 아니라 병원은 원래 남의 몸을 고치는 곳이니까.
그들이 몇 명 돌아왔다. 병원 안의 검사실, 약제부, 영양실, 또 검사실, 다른 병동, 수술실.. 등의 돌아가는 방식을 조금은 더, 사실 많이 잘 알고 있는 펠로우들과 교수들의 자리를 그들이 원래대로 했던 것처럼 채우고 있다. 이제는 예전처럼은, 신규 때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은 화가 안 난다. 정말이야. 조금 덜 난다. 여기도 결국 일터니까.
시스템이 있고 단계가 있고 과정이 있으며 그 모든 것을 그 자리의 제각기 다른 사람들이 애써 채우고 메워내고 있는 기관이며 직장이니까. 지식 또는 감정으로만 돌아갈 수 없는. 많이 아는 것과 일하는 법을 알고 익히는 건 다른 문제잖아.
비록 또, 위관영양을 해야 하는 애한테 원외처방으로나 가능한 연질캡슐의 항경련제를 퇴원약으로 내놓고는, 영영 답장을 하지 않던 펠로우에게 짜증이 났지만, 최종적으로 전화를 받았잖아? 어쨌든 대답을 들었잖아.
반 가르거나 녹여 먹이라고 하면 되죠, 하는 말에 아. 이거 정보조회 보니까 분할하면 약물 loss 가 있어서 권장하지 않는다는데용, 하는 말에 아, 네. 해 줬잖아.
그 환자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재처방된 약을 구매할 약국에 팩스가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고 다시 처방전을 보내는 등의 뒤처리를 하며 다른 일도 하느라 꽤나 뚜껑이 열릴 뻔했지만. 근데 이제는 정말 그 정도로 화가 나지는 않는다. 그냥.. 원래 일터는 그렇게 다 얼렁뚱땅 뚝딱뚝딱 돌아가는 것 같아서. 이제야 좀 그걸 알겠다. 받아들이게 된 건가?
아냐. 그래도 답장은 좀 해 줬으면. 해 주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티켓팅은 나는, 차라리 인터파크 고를래. 너무 진 빠지는 일이야. 그들의 답장을 기다리며 애가 타는 것만큼이나 예매창이 계속 튕겨나가는 건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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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주치의들은 답장을 잘 해준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