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물
주말. 천 명쯤은 될 사람들이 길거리와 에스컬레이터와 환승구와 달리는 버스 안에서 지나쳐 갔다. 진짜 여름이라서 사람들의 옷차림이 다 알록달록하고 가볍고 바스락거린다. 새 샌들을 신어서 발이 시원하다. 이 문장을 쓰는 중에도 사람들이 백 명은 창 밖에서 걸어가고 있다. 그들도 그렇다. 이미 지금도 나를 지나치고 있다. 병실에서.
그들에 대한 생각은 박스 같은 것일지 모른다. 닫으면 안 보이는 것. 끌어모아 닫으면 언젠가 다시 잊히는 것.
그리고 내가 원치 않아도 다시 열게 되어 있다고.
직장이니까.
이름부터 판도라의 상자였다. 영광. 무엇의, 누구의 영광일까. 누가 지어줬어. 너에게 성을 남겨 준 사람들은 어디서 뭘 하니. 그 사람들 아니면, 그 시설 다른 담당자? 또는 그 박스에서 네 존재를 최초로 본 사람?
너무 많은 질문이 떠오르려 했다. 이름이 드라마틱한 탓이다. 거기다 나는 호사가잖아. 사람들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어떻게 지나쳐. 이름이 영광. 성씨. 베이비박스. 족제비 같은 얼굴. 눈썹 한참 위로 잘린 앞머리.
산소줄을 고정할 때면 괜히 작은 이마 위의 머리를 한 번 쓸었다. 그 짧은 길이가 사람의 손길이 닿았다는 증거 같아서, 입퇴원이 딱히 의미가 없어 보이는 그 병세에도 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조금 안정되는 것 같아서 그랬다.
근무가 길었다. 네 개 하고 나이트, 친구를 하루 만나고, 또 네 개. 하루 쉬고 또 데이부터 시작하는 다섯 개짜리 근무. 병원 생각이 줄어들 간격이 부족했다. 눈을 떴을 때 걔 얼굴이 먼저 생각이 나서 정말 내가 미쳐버렸나 생각했다. 글쓰기 때문에 그런 사연을 굳이 짜내듯 기억하게 된 건가 고민했다. 하루짜리 노는 날에도 부드러운 피부가, 불쌍하게 생겨 귀여운 이목구비가 생각나 괴로웠다. 내 휴일은 그런 연고 없는 애를 의미 없이 떠올리기 위해 있는 게 아니었다.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 원망스러웠다. 이럴 거면, 키울 여력 안 되면 낳지 말지, 라고 많은 날들을 지나며 생각했다. 사실 그들은 모두 시설에서 잘 지내고 있었다. 멍청하고 책임감 없는 부모 아래서 크느니 차라리 거기 있다 대학병원에 오는 게 나았다. 길거리에 버려지지 않고 베이비박스에 들어가 있었으니 그래도 지금까지 십 년을 산 거였다. 내가 딱히 동정할 필요가 없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그게 맘대로 되냐고.
간병인은 형편없었다. 이러다가는 도로 충치까지 생겨서 돌아갈 것 같았다. 당연히 해 줘야 할 관리를 하나도 해 주지 않았다. 한여름, 침을 제때 안 닦아 줘서 트는 것 같은 피부에 뭘 발라주는 정성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제가 이 닦아 주시라고 했잖아요. 물품 안에 챙겨드렸는데, 이거 피 아니예요? 굳은 거. 언제부터 이랬어요?
그 노인은 닦아 줬다는 말만 했다. 살갗이라서 안 닦인다고. 피 색이 섞인 초록색 찌꺼기가 큰 앞니에 붙어 있었다. 입술이 다 누렇게 말라붙어서. 바빴다. 석션도 안 해, 산소줄 꽂혀 있는 거 봐 주는 것도 안 해. 화를 낼 여력이 없었다.
주세요, 제가 할게요. 일곱 시인데, 하루 세 번 밥 먹인 후에 이를 훑어 주라고 줬던 스틱 셋이 그대로 자리에 뜯지도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생리식염수를 묻혀 이를 열심히 훑었다. 나를 보는 건지, 아닌 건지 알 수 없는 그 불쌍한 눈. 떠올라서 짜증난다. 당연히 그 찌꺼기는 녹아서 떨어졌다.
보이시죠? 이래도 이게 안 되는 거예요?
나는, 몰랐지. 살점인 줄 알았는데..
몰랐다. 모르셨다고. 뭐라고 더 말하겠는가. 내일부터는 좀 해 주세요. 멀쩡한 이 다 썩어서 집에 가겠어요, 라고 했다. 후회스럽지도 않았다. 그게 내 최선이었다.
진료과에서는 기어이 퇴원을 시켰다. 그전날 열이 두 번이나 났다. 못 갈 줄 알았는데 출근하니 이름이 사라져 있었다.
퇴원을 준비하며 시설 관계자와 전화를 했다. 열이 나긴 했는데, 교수님은 내일 퇴원한다고 하셔서요. 내일 몇 시에 애기 데리러 오실지 확인 가능하실까요. 열이요? 몇 도요? 38도 대로 두 번입니다. 아니, 그러면 퇴원하면 안 되는 거 아니예요? 애초에 열 나서 온 건데. 그리고 수술도 해야 하는데, 며칠 있다가. 아, 그렇죠. 그게..
열 나는 건 먹는 항생제를 가지고 가면 될 일이라고 했고 수술은 미루면 된다고 했다. 모르지. 나는 그 병원에서 수술을 얼마나 그렇게 쉽게 미뤄주는지 알 수 없다. 얘가 그렇게 중환일지도 알 수 없었다. 연건동 가보니 그 병원에도 아픈 애들이 수두룩이던데. 아니, 세상 아픈 애들 어디 다 숨었나 했더니 여기에 있었나 싶게 다 그 병원는 더 많이 모여 있던데.
그 중에서도 우선순위로 밀릴 수 있을지는 몰랐다. 내가 어떻게 알아. 내가 아는 건 얘가 무연고 아동이라는 것뿐이다. 돈도 없고 빽도 없고 유난인 보호자도 없는. 시설 관계자들은 이 교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싫었다. 그게 그렇게 쉬워요? 왜 이렇게 퇴원시키는데요. 난 그냥 일개 간호사니 뭐 아무런 상관이 없었지만. 그냥 싫었다.
왜 며칠 더 데리고 있지 않는 걸까. 나도 알지. 대학병원. 급성기 치료가 끝나면 퇴원시키는 거. 근데 얘는 딱히 호전되질 않았어. 오히려 입으로 먹다가 콧줄까지 쓸데없이 꽂아서 나간다고. 과연 부모가 쌍으로 지랄맞은 보통의 아픈 애였어도 이렇게 치우듯 보내 버렸을까 궁금해졌다.
안 보여서 좋긴 했다. 생각보다 얘가 그 불쌍한 몰골로 누워 있는 걸 보는 게 스트레스였다는 걸 알았다. 게을러터진 간병인, 오더대로 아무리 해도 딱히 나아지는 것 같지 않는 애 상태. 아프면 울었다. 시끄럽게 우는 그런 울음이 아니라 그냥 눈이 빨개져서 눈물을 흘렸다. 바보같이. 하나부터 열까지 안 가엾은 구석이 없었다.
이름이 마음에 박혀서 짜증났다. 싸질러 낳고 버린 건 얘 부모인데 왜 내가 이런 걸 느껴야 해. 가여웠다. 노티를 할 때마다 그 이름이 입에 걸렸다. 영광. 영광. 영광이라. 내가 입사했을 때도 있었고 지금도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입원을 할 이름. 새삼스럽게 이제 와서? 그러게, 이제 와서. 똑같은 얘기다. 내가 그만큼, 여유로워져서. 근데 나는 안 여유로웠다. 몇 번을 더 가고 싶었는데 다른 걸로 죽도록 바빴다. 마음만큼 잘 봐 주지도 못했다.
있으나 마나한 간병인이 냄새나는 장아찌에 햇반을 먹는 식사 시간, 병실로 들어간 나는 매번 분노를 눌렀다. 그냥 그 나이든 노인이 꼴보기 싫어서였을 수도 있고, 불쌍한 마음을 상쇄시킬 정도로 뭘 해주지 못하는 찝찝함에 열이 받아서 그래서였을 수도 있고.
영광, 수빈, 혜림.. 또 뭐더라. 많았다. 시설 아동, 으로 코멘트가 붙은 애들. 간병인들은 랜덤이었다. 잘 해주는 사람이기도 했고 아니기도 했고. 어쩌면 우리 입장에서 편하기도 했다. 뭐 하나만 밀리거나 늦어도 난리쳐대는 부모들과 다르게 이들에게는 그런 사람이 없었으니까. 시설 관계자는 깨끗하게 세탁된 병원복을 지퍼백에 넣어 내밀었다.
이거, 지난번에 급하게 입원해서 여분 옷이 없어가지고 집갈 때는 환자복 입고 갔거든요. 아.. 그 때 아마 수가 다 설명드리고 끊었을 거예요. 아, 그래요? 그렇구나, 음. 이걸 뭐 기념품으로 가져가라고 할 것도 아니고. 그러면 어디다 버려야 할까요. 주시면 저희가 처리할게요.
굳이 뭐하러 세탁까지 했을까. 그 시설 간호사가 어쩌다 거기서 일하게 됐는지 궁금했고, 왜 그만두지 않는지 궁금했다. 어디서도 보호받지 못하는 애들, 버려진 애들, 불쌍한 애들. 그 불쌍한 애들이 받는 취급. 환멸나지 않나? 아니면 내가 너무 확대해서 생각하나? 그런데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바싹 마른 외국인 노인네조차 아무것도 무서워하지 않고 모르쇠하는 애들을 모아놓은 시설. 아무리 이렇게 저렇게 해 달라고 해도 귓등으로도 안 듣는 그 태도. 걔가 조금 다른 애였다면? 하는 생각을 어떻게 안 하냐고.
코엑스까지 영화를 보러 간 건 그 친구 생각을 좀 그만하고 싶어서였다. 그 옆자리 환자인 C의 엄마는 내가 그 간병인에게 싸가지 없이 말하는 걸 다 봤다. 어디 그 분 뿐이겠어. 하지만 그게 대수인가. 열받는 걸 어떡하라고. 안 그래도 없어 보이는 애 이렇게까지 방치할 건 없잖아.
환자복에 김치국물만 조금 묻어도 옷 갈아입히게 도와 달라고 눈에 보이는 간호사들은 다 붙들고 말 거는 보호자들이 가득한 여기서, 얼굴이 부어오르든, 이빨이 썩을 것처럼 입안이 더럽든, 눈이 붓도록 조용히 울어도 못 들은 척하는 그 꼴이 어떻게 화가 안 나는데. 그 행태가, 모양새가 시야에 걸릴 때마다 짜증이 났고 열이 받았다. 그래도 못 한다고, 몰랐다고. 그리고 집에 와서까지 그 얼굴과 이름을 떠올리고 있는 내가 짜증이 났다. 쟤가 뭔데. 병원이 뭔데. 내가 뭔데?
4오프. 바라지도 않았고 할 것도 없었다. 그냥 이틀 일하고 하루 쉬고 삼일 일하고 하루 쉬는 게 더 나았다. 퇴근해서 화장실 바닥과 변기에 분무기로 락스를 뿌렸다. 엄마가 어딜 갈때마다 분무기를 사 오길래 있는데 왜 자꾸 사 와, 하자 멀쩡한 거 찾기가 쉽지가 않아, 라고 했었다. 정말이었다. 두세 번 뿌리니 중간에 이음새가 뚝 부러졌다.
그냥 바닥에 남은 걸 다 쏟았다. 찬장을 열어서 배수관 크리너를 다 들이부었다. 그리고 달리기를 하러 나갔다. 한 곡만 틀어놓고 달렸다. 나쁘지 않았다.
같이 일했던 선임들은 휴양소 신청 이야기를 했다. 8월 나이트 근무 좀 바꿔줄 수 있냐고 물었다. 양양으로 템플스테이를 하러 간다고 했다. 거기서 템플스테이요? 디지털 디톡스 하고서 서핑하는 코스래, 존잼이겠지. 어, 양양에서 서핑이면 그냥 도파민 충전인데? 했더니, 아냐. 그것도 승복 입고 한댔어. 그거 그 삼십만원짜리 아니야? 이십육만원요.
와우. 야, 그리고 다음 로테 대상자가 너래. 저요? 원래도 니가 강 씨였으면 이번에 가는 게 너였어. 아, 그건 그렇죠. 근데 연차가.. 니 연차라 보낸대. 완전 윗년차는 정말 더 빠지면 병동 망해서 못 빼고 내 연차는 그 바로 밑이라서 그렇고. 이제 막 삼 년 다 채워서 넘긴 애들이 너네니까.
아, 원티드 제대로 써야겠네. 어디 썼는데? 야, 똑바로 써. 진짜 거기로 던질걸?
가면, 이제 이런 애들 근황은 안 봐도 된다. 못 보는 건지 안 보는 건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이름을 기억하니까 들리는 게 있고 보이는 것도 있겠지.
내가 왜 궁금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뭐.. 나와서 앉아 있어 보니, 그냥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파도처럼 많은 사람들이 밀려오고 나가는 와중에 여덟 시간, 열 시간씩 이름을 부르고, 이름에 붙은 걸 확인하고, 가서 만지고, 얼굴을 보고, 눈을 봤는데.. 어떻게 잊어. 그게 더 이상하잖아.
달리기 후 샤워를 하며 타일을 솔로 닦았다. 아무것도 안 뿌린 것보다야 훨씬 나았다. 나와서 욕실에는 향초를 켜 놓고 4오프 동안 뭘 할지 생각했다. 지글지글, 탁탁, 지글지글. 끓는 것 같기도 하고 타는 것 같기도 한 그 소리. 영광이를 글 속에 남겨두고 잊자고 생각했다. 그 첫 날이 오늘이다. 오늘이 절반 넘게 끝났다. 이제 한여름이다.
나는 그 애들이 있을 무연고 아동 시설과 간병인 같은 단어가 닿은 세상이 아닌 휴가지와 샌들과 청바지와 이어폰과 프랜차이즈 카페와 더 가까운 세상에서 살 것이다. 4일간은. 내일은 동기들과 사진을 찍는다. 그 다음날에는 집으로 간다. 이제 남은 시간은 또 뭘 하지 생각했다. 한 가지를 이제 했다.
그리고 걔는 잘 지낼 것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십 년을 살아왔으니까. 절대 괜찮은 상태는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십 년을 지낸 것처럼 앞으로도 돌봄받을 것이다.
그만 걱정하자고도 이만 생각하려고. 어떻게 그래. 정말로. 물리적으로도, 당연한 거잖아.
오래 봤고, 오래 겪은 사람이잖아. 걔도. 비록 말도 못 하고 나를 기억도 못 하지만. 그냥 하나의 박스다. 언젠간 그냥 귀찮아서 버리게 될 거고 또 그 언젠가는 불현듯 떠오를 수도 있는 것. 안 열면 그런대로 잊힐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