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울고 입원 받기

내일의 할 일

by 이븐도




공연장에 앉아서, 현실과 악몽은 도망칠 수 없다는 점에서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이라이트가 커튼 뒤에서 옷을 갈아 입는 동안 나오던 영상을 보면서 울었다. 나한테 현실은 병동의 이야기밖에 없었던 것 같던 게 거기서도 떠올라서. 그 돈 주고 앉아 있는 여기서도 그런 생각이 드는 거라면 나한테는 정말이었다는 거잖아. 그걸 뭘 어쩔 수는 없어서 그런가보다 했다. 퇴근한 후 집으로 돌아온 나의 이야기? 내 현실은 항상 숨을 죽인 채 지나가는 것 같던데. 이야기랄 게 없어서 그랬나. 그랬군. 그래서, 오늘은 현실인가?




비상구에서 울었고 1인실의 보호자 앞에서 울었고 또 다른 1인실의 보호자 앞에서 울었다. 지나가는 교수와 주치의 앞에서 울었다. 정확히는 노트북과 약들이 든 서랍으로 된 카트 위에서 울음을 계속 참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아니, 그 때는 성공했나? 그런데 어차피 계속 울던 얼굴이었다.

병원에서 그렇게 울었던 건 누가 죽어서 사후처리를 했어야 했을 때뿐이었다. 그 눈물과 오늘의 눈물이 같지는 않지. 사람은 어떨 때 울더라? 슬퍼서. 근데 기쁠 때도 울 수는 있다. 다른 거지.


다인실의 보호자 눈이 너무 차가웠다. 나와 연이 깊지도 않은 누군가의 눈빛이 아파서 운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그런 게 두려웠던 적이 있나. 제가 뭘 잘못했나요, 하고 계속해서 혼자 말하고 생각했다. 퇴근하는 버스에서 울었다. 좋아하는 노래를 들었는데 그게 슬퍼서 울었다. 슬픈 노래였나? 그렇다고 신나는 노래는 아니긴 해. 그 버스가 너무 흔들려서 울었다. 내 앞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비스듬한 자세로 휴대폰을 하고 있어서 울었다. 쪽팔려서. 원래 눈물은 창피한 거잖아.




비상구에서 울다니. 그런 일을 다 했다. 정말 드라마틱한 일이니까. 항상 영화나 드라마에 하나씩은 나오는 장면. 거기서, 누구랑 멱살을 잡든 키스를 하든 총구를 겨누든 아니면 그렇게 청승을 떨며 울든. 택시를 타면서 출근할 때는 비가 왔다. 두 시간이 채 지나지 않은 그 때는 하늘이 하늘색이었다. 햇빛이 났다. 오늘은 달리기를 할 수 있겠다고 그걸 보면서 생각했다. 그리고 아마 큰 소리로 울었다.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었는데. 그리고 달리기는 못 했다. 너무 울어서인지 인공눈물을 아무리 넣어도 눈이 뻣뻣했다. 눈을 감고 뛸 수는 없다. 그제 그래서 달리기에 실패했으니까. 오늘도 실패다. 샤워기를 틀어놓고 울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궁금해져서. 그 질문, 제가 뭘 잘못했나요.

반은 억하심정이고 반은 정말 의문일 그 문장. 나는 정말 궁금했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누구에게든 전화를 하고 싶었는데 듣고 싶은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말할 수 없었다. 살면서, 몇 번은 마주친 말. 까칠, 시니컬, 예민. 그 단어들이 그 사람들의 가슴에 떠올라 나를 향할까 봐. 속으로는 그 생각을 하면서 내 앞에서 나를 위로할까 봐. 제가 뭘 잘못했나요. 경련. 앰부배깅. 교수. 노티, 차팅. 너 데리고 나오라던데? 그 말. 정말 내가 들은 말인가.

내가 뭘 잘못했는데요. 보호자는 나와 다른 이야기를 했다. 사실 오늘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도 잘 나열할 수 없다. 정말 초현실적이네. 리얼 투 서리얼. 정말 그 앨범 제목 같은 하루였구나. 그러네. 그 보호자의 웃음은 정말 비현실적이었다. 다 잃고 나오는 허탈한, 밝은 웃음.


네 시에 울었을 때는, 햇빛 차는 비상구의 철문을 다시 사원증으로 찍으면서 몇 번이고 생각했다. 울지 마, 쪽팔리잖아. 할 일 많아. 그리고 정말 할 일이 많았다. 그 할 일이 쌓인 할 일이 아니라 정말로 달려서 쳐내야 하는 어떤 것이 된 아홉 시쯤에는 보호자 앞에서 울면서 필요한 것을 묻고 외래를 확인했다. 내가 뭐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나를 보지 않는 그 틀어앉은 몸짓이 아팠다. 어떤 것을 어떻게 묻고 챙겨도, 애 몸에 손대서 깨우는 것을 몹시 싫어하는 그 보호자가 이제 너무 싫었다. 하느님, 하느님. 그렇게 찬송가를 틀어 대서 그 신이 애를 지켜 줬나요? 샤워하면서 생각했다. 그리고 울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했던 게 티가 나서 나한테 그러나.




나한테만 그런 게 아니었다. 먹은 것도 없는데 부은 눈을, 발개진 코 같은 걸 보고 간호사들은 폭언으로 수선생님한테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했다. 본인들이 겪은 것들을 말하면서. 변하는 거? 없겠지. 의사한테는 못 하는 말, 나한테는 할 수 있는 말.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요. 나는 내가 정말 오랜 시간 그들을 나름 이해하려고 했다는 걸 알았다. 그게 닿았든 닿지 않았든 오늘은 그런 눈빛들이, 따져 묻는 말들이 다 아팠다. 사람 말이, 표정이 아플 수가 있구나. 나는 내가 그런 것에 상처받는 사람인지 몰랐다. 신기하잖아. 그건 아무 형태도 없는데 나는 눈물이 나는 거.


병원은 정말 울기에 쪽팔린 장소다. 어떤 울음은 존재가 있지만 어떤 눈물에는 전혀 없어서. 내가 백 번을 울어도, 그들에게는 없는 울음이다.

내가 이런 걸 쓰는 날도 오네. 이게 더 비현실 같다. 그저껜가의 아이돌 공연보다 이게 더 비현실이다. 그렇지. 그런 서사에서는 사람이 울면 누구든 말을 걸고 위로하잖아. 나는 대체 거기서, 몇 날 며칠, 아니. 몇 달쯤은 너끈히 서서 내 주제에 뭘 동정하고 연민을 느꼈던 걸까. 내게 돌아오는 건 단 한 가지도 없는데. 드라마틱한 하루다. 많이도 울었다.




내일도, 그 보호자와 그 의사와, 어쩌면 그 말들이 있는 곳으로 간다. 나는 내가 그렇게 울면서 일할 수 있는지 몰랐다. 일하는데 눈물이 나는지 몰랐다는 게 더 정확한 걸까.

근데 그럴 수 있다. 내 눈물은 없는 거니까. 그러니까 내일은 울지 말아야 한다.


울 이유가 있나? 그들은 나를 해하지 못한다. 거긴 그냥 직장일 뿐이고, 그들은 아픈 자식에 눈이 돌아버린 가엾고 성질 더러운 보통의 부모들이다.

인격이 부족한 보통의 사람들이 부모가 된 형태. 그러니까 그냥 평범한 거라고. 어느 정도로 성격이 더럽고 어느 정도로는 마음을 지나치게 쓴 것도 같은 내가 평범한 사람인 것처럼. 오늘도 보통의 날이다. 울 수도 있지. 슬펐던 거일 수도 있잖아. 사실 오늘 되게 많은 일이 있기도 했다고. 운 것만 기억나서 그렇지. 슬프면 우는 거다. 흔한 일이다.


그냥 눈물이 더 났으면 좋겠다. 내일은 절대 또 질질 짜는 일이 없게. 그러니까 오늘은 그래도 된다.



그리고 내일의 나는 절대 울지 않는다.

슬픔은, 눈물은 감정일 뿐 구조가 아니니까.

참으면 된다. 보지 않고 무시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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