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짝 문 닫을 때까지
왜 불안한지 되짚어 생각했다. 아무래도 이유는 다른 곳에 있는 것 같기도 했고. 그래서 필사까지는 아니더라도 다시 책을 읽기로 했다. 수영장에 대한 책. 육십 년 전의 책덕후 한 명과 서점 직원이 주고받은 편지글을 모은 책. 아니면.. 여름 휴가의 너와 나? 한국어로 되어 있었으면 안 읽었겠지만 영어로는 얼마든지 환영인 그런 알록달록하고 즐거운 소설은 어때.
바쁘지 않은 날이 있다. 국가적 공휴일과 진짜 휴일이 겹친 날들이 가끔 그렇다. 응급실을 빼면, 병원 역시 어제도 놀았고 내일도 논다. 갑자기 나빠진 애들도 없다. 내게 인계를 주는 사람도 여유롭고 조금의 짜증도 없으며, 받는 나 역시 조급한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다. 복도는 비어 있고 바로 앞에 보이는 병실은 침상이 빈 채 커튼이 걷혀 있다. 그래서 그 통창 바깥으로 주말 낮의 병원 전경이 보인다.
보호자는 애들을 유모차에 태우고서 휴게실이나 그 어딘가로 다른 가족이나 지인들을 만나러 간다. 조용하다. 데이번, 이브닝번이 인계를 끝낸 후 떠는 몇 마디 수다가 겹쳐 있는 걸 빼면. 그들은 사복을 입고 상큼하게 인사한 후 떠난다.
평화로웠다. 환자도 별로 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오늘 보게 될 병실들이 그랬다. 가끔 그렇게 다른 환자들을 보게 된다. 원래 내 담당이던 팀은 여전했다. 여전히 애들은 집에 못 갔고 그 누구도 퇴원 계획이 없었고 투약이며 처치를 위해 환자에게 많이도 찾아가야 했다. 그 팀 담당은 그래서 바빴다.
그 애들 하나하나의 부모들을 모른 척해도 되어서 편했다. 그게 그렇게 기분이 편안한 일인 줄 몰랐다. 어떤 표정으로 뭘 요구하든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해 준 후, 그게 안 될 것 같으면 담당에게 전달하겠다고 하면 됐다. 그게 아니더라도, 정말로 병실에 들어가 뭔가를 해 주게 되어도 마음이 가벼웠다. 신기했다.
오늘 내가 담당하는 애들이라고 다 상태가 좋은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랬다. 불행은 전염이 되는구나. 나한테? 난 그러기 쉬운 사람이었나? 그 정도로 해방감이 들었다. 그게 나쁜 건지 어쩐 건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내 일로도 충분히 심란했다. 소송. 어차피 월요일이 되고, 그보다 더 시간이 더 지나 경찰에게 연락이 오기 전까지는 진짜 진행이 될 수 있는 게 없었다.
출근 전에 카페에 앉아 다른 이야기를 잔뜩 썼다. 정작 정리해야 할 것은 형태가 명확치 않아 그 주변의 마음을 잔뜩 긁어다 정렬했다. 봉창만 두드려댄 거였는지 여전히 마음이 불편했다. 안 바쁜 채로 앉아서도. 아, 그래서였나?
와주세요.
-네?
뭐라고 말하는데 들리질 않았다. 보호자들이 그런 식으로 호출벨을 누를 때가 제일 싫었다. 무슨 일이 생겼을지 몰라 온갖 생각이 와닿는 채 뛰는 그 몇 초의 복도가 너무 길었다.
-어떤 것 때문에 그러세요.
티캔이 빠졌어요.
-네? 여기요?
기관절개관은 빠지지 않았다. 그냥 그 자리에, 살갗과 그 위의 드레싱과 넥밴드에 싸인 채 잘 꽂혀 있었다. 애는 그 위의 얼굴로 힘겹게 숨쉬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원래 그랬다.
아니, 빠진 건 아닌데..
-네.
석션하다가 밑엘 건드렸는데 살짝 튀어나온 것 같아요.
-지금 볼 땐 괜찮아요, 아버님.
여기, 이거. 지금은 들어간 것 같은데.. 괜찮아요?
맞는 걸 증명하는 거, 아닌 걸 증명하는 거. 둘다 힘들다. 그것도 얘 부모처럼 그 누구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면 더더욱.
-네. 산소포화도도 안 떨어졌고 여기도 안 헐거워요. 압력 좀 재 볼게요. 일단 괜찮아요.
괜찮은 거 맞죠. 그런데 압력은 왜 재요.
-잘 지지되고 있는지, 적당히 조이는지 보려고요.
저 석션 여기 밑에, 넣어서 하는데 그거 괜찮아요?
-어디로 하신다고요?
여기로 꾸덕한 가래가 많이 흘러나와요.
-안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여기 매번 소독하고 드레싱 교체하잖아요. 아무리 깨끗하게 하셔도 여기까지는 안 건드리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니, 그게 아니고, 여기 밑에까지 한다고요.
-그래도 굳이 안 하시는게..
이 속까지 넣는 게 아니라니까요. 여기까지 해요. 그럼 애 힘들어해도 하지 마요?다 흘러나와요.
-여기까지 안 하신다는 거죠. 그럼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하지 말라면서요.
-아버님 어차피 제가 뭐라고 말씀드려도 하시고 싶은 대로 하실 거 아니예요? 하세요. 안 닿는 선에서, 애 힘드니까.
하지 말라고요?
-저는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하고 싶으시잖아요.
힘든데 그럼, 안 해요?
이 병원 창립 때부터 있던 PA가, 이 보호자와 뭘 말하다 말려들까 봐 적당히 말하고 끊었다는 게 생각났다. 기분이 나빴다. 갑자기 지겨워졌다.
아픈 애, 심약한 부모. 종교. 용량대로 처방된 약을 진료과에 항의해서까지 그냥 한 앰플 다 받아가서 자기 마음대로 주는 방식, 차팅을 남기기 애매한 내용, 보호자 원하는 대로 하자고 함. 정말로 자주 쓰는 그 문장. 의사도 처방도 적정 약 용량도 다 이겨 버리는 무적의 부모들.
호출벨은 이래서 짜증이 난다. 내 환자가 아닌데도 가서 이런 말을 뒤집어쓰고 나와야 했다. 아닌 애들과 부모를 하루종일 보다가, 갑자기 그 영역에 들어서니 그간 나를 이 병실이 힘들게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였구나.
하도 얼굴을 많이 봐서 남이 아닌 것처럼 그들을 대하게 됐는데, 하루 떨어져 보니 결국 남이었다. 나 생각보다 되게 공감을 잘 해 주는 사람이었나? 이게 감정노동인가?
나는 내가 아버지에게 말을 싸가지 없게 했나 돌아봤다. 자꾸 곱씹게 되는 걸 보면 그게 맞는 것 같았는데 딱히 못할 말도 아니었다. 일부러 눈을 안 피하고 말했다. 네네 웃으며 좋은 말만 한다 해서 속아넘어갈 사람들이 아니었다.
지겨웠다. 소아과. 성인 환자들을 볼 때 진상이라고 인계가 내려오는 사람들은 막상 가서 보면 전혀 진상이 아니었다. 나는 예전에도 진상이라는 단어가 싫었다. 아픈데 그럼 어떡하라고, 궁금한데, 안 물어봐?그들이 나를 얼마나 재촉하고 상도 없이 굴어도 그냥 그럴 수밖에 없는 거였다. 아프니까, 애가. 또는 본인이. 4년을 돌고 돌아 이제야 알겠다. 이런 거구나. 피곤했다. 진상, 진상이라.
타병동에 파견을 갔을 때 느낀 건 간호사들이 대체로 노인이거나 중년인 그 사람들을 꽤 딱딱하고 무례하게 대한다는 거였다. 저러면 기분 나쁘다고 컴플레인 안 들어오나, 싶게. 귀가 어두운 사람들이라 짧고 또박또박 말해야 한다는 핑계가 먹힐 수가 없었던 게 그들은 그런 정도로 쇠약해 보이는 환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 환자들은, 기다리세요. 이따 드린다고요. 안 돼요. 왜요. 아까 드렸잖아요. 라는 그 둔탁한 말들에 어떤 불만도 표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거기서 칭찬글을 받았군, 정말.
나는 왜, 언제부터 그들을 그렇게 이해하려 했을까 생각했다. 날이 습해서 내일쯤 비가 올까 생각했는데 달리는 중에 비가 왔다. 나를 향해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죄다 눈알에 딱 들어갈 정도로 작아서 눈을 뜨기 힘들었다. 왜 그랬지. 어차피 남인데. 이리저리 봐도 남이었다. 오늘 알았다. 아, 남 일이구나. 그런데 정말 남 일이잖아.
내가 퇴근길 버스에서, 방구석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든, 어차피 그 보호자는 나를 한 달 넘게 개고생한 사람이 아니라, 말 한번 그렇게 한 사람으로 기억할지도 몰랐다. 그런데, 그게 그래서 뭐. 남인데?
소송. 영어책 필사. 방울토마토. 나처럼 우산이 없는 채로 나왔으나 비를 맞게 된 사람들. 또 소송. 브이로그. 필사. 생일이던 멤버가 브이로그를 올렸는데.. 너무 잘생겨서 아직 못 봤다. 그런데, 정신과 의사의 책과 영어 원서를 필사하는 루틴이 나왔다고? 이런. 내가 이기광 양요섭 따라 하던 달리기에서 영어책까지 읽어야겠어? 왜 자꾸 그런 숙제를 주는 거야. 물론 그 누구도 나에게 하라고 하지 않았다.
집에, 진짜 백 권이 넘는 원서를 생각했다. 이참에 좀 보자, 그럼. 할 일이 생겼다. 퇴근할 때 영어단어를 좀 봐야겠다. 출근길보다 퇴근길이 힘들었다. 무슨 생각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예전에 잔뜩 정리해 놓은 그 리스트를 한 장씩 달랑달랑 들고 다니면 되지. 뭐든 안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
그리고 이제 마침 여름 아닌가. 무겁고 칙칙한 한국 책 말고, 내 수준의 영어에 맞는 연애소설이나 에세이 원서가 나을지도 몰랐다. 필사는 귀찮고, 이거 나중에 관 속에 깔아도 되겠는데, 생각했던 그걸 하나씩 봐야겠어.
안 바쁜 날, 작년에 그런 말을 했다. 나였는지 동기였는지 기억이 안 난다. 야, 이렇게면 관짝 뚜껑 닫힐 때까지 일할 수 있어. 뭐라고? 맨날 안 바빴으면 좋겠다, 그럼 우리 잘릴걸.
그리고 그런 날은 정말 한 번씩이라 다행히도 우리는 잘리지 않았다. 그리고 잘라야 할 만큼 월급을 많이 주는 것도 아니잖아? 대체 이 병원 연봉 정보를 처음 올린 그 사람은 어디서 뭘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아무튼 죽기 직전까지도 일할 수 있어야 하는 날. 매일매일이 열 명 열한 명 열네 명에 에누리 없이 아픈 애들을 꽉꽉 보다가 겨우 조용해진 날.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한 날. 어차피 남이라고.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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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첫 주였는데 그 때도 불안하다고 썼군.
그렇구나. 인생은~~ 그런 건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