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함 맞다이
교육받는 꿈을 꿨다.
하다하다 별 꿈을 다 꿔. 너무 열심히 일했나.
환자가 다시 오고 싶어 하는 병원을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아빠한테 물었다. 아빠. 내가 해야 돼, 그걸? 돈을 더 쓰면 되잖아. 그렇지, 근데 아무리 깨끗하고 맛있는 식당이라도 직원이 불친절하면 안 가고 싶어. 그래서 그래.
근데 여긴 식당이 아닌데. 병원이잖아.
왕유치하지? 근데 내가 그 정도야. 그러니까 나 열받게 하지 말라고. 이딴 유치한 생각밖에 못 한다고.
노는 날에도 들으라는 교육. 한 시간 짜리다. 그래도 좀 그렇다. 왜 이런 잔소리를 들어야 하지. 한 시간이든 두 시간이든 듣는 건 듣는 건데. 지하철에서 누가 나 1초간 밀치고 가기만 해도 기분이 확 잡치는 와중에. 강사님. 일해 보셨어요? 근데 강사님 잘못은 아닐 거예요. 환자경험어쩌고 점수가 어떤 게 제 잘못이 아닌 것처럼.
말은 쉽죠. 친절, 공감. 환자의 입장. 그럼 내 입장은 누가 생각해 주는데요? 내내 사춘기 중학생 같은 생각이나 하다가 끝났다. 백 프로 그러기만 한 건 아닌데 그게 그거다.
공감이라.. 의료진의 따뜻한 말, 감정을 헤아려 주는 말 또는 그런 질문에 환자의 컴플레인이 몇 프로쯤 감소한다고 한다. 이십 몇 프로던가. 그리고 그런 말을 주고받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1분 30초. 아. 꼴랑 1분 30초 걸리니까 하라 이거지.
그럼 나도 칭찬 카드 한 장 받을 때마다 만 원씩 줘. 당신들 예산에서 몇 만원 더 떼는 거 어려운 일 아니잖아? 내 1분 30초가 그런 것처럼. 아님 뭐 오천 원씩?
나 스물여덟인데. 교육도 유치하고 나도 유치했다. 장난하냐고. 강사 섭외해서 이딴 거 할 돈으로 수당이나 더 줄 것이지. 아니면 병실에 핸드타올이나 비치하세요, 어처구니없는 짓거리 그만 좀 하시고.
평가 시즌이라고 한다. 뭔지 자세히 모른다. 어차피 병원이 알아서 할 일이다. 난 일개 직원인데? 물론 달달하지, 병원에서 제공받는 복지 혜택들. 근데 그거 다 내 연봉에 들어가 있는 거라고. 내가 내 노동력과 시간을 내주고 응당 돌려받아야 하는 것이다. 누굴 바보로 알아? 바보 맞지. 근데 짜증난다고. 왜 이런 먹히지도 않을 교육을 하는 건지 그 게으름에 열이 받는다고.
컴퓨터를 켜 접속하면 뜨는 배너, 선 공감 후 해결. 병원이 무슨 쏘맥 말아놓고 친구 고민 상담하는 곳인가. 바쁘다고. 아프다는 건 징징거림이 아니고 진짜 통증이고 염증이고 부종 때문이라고. 괜찮으세요, 한 마디 한다고 그게 가라앉는 게 아니잖아. 입으로는 뭔들 못하는데. 위로로 마음을 누그려뜨려 줄 수 있는 건 상담사나 예술가들이지 내가 아니다. 나한테는 진통제 처방이 필요하고 검사를 더 빨리 보낼 이송인력이 필요하고 이브닝 때 죽도록 막히는 엘리베이터를 뚫을 뭔가가 필요한 거라고. 아마 환자들한테도 그럴걸요?
그걸 알 놈들이 이런 걸 교육이랍시고 떠드니까 짜증이 나, 안 나. 뭔 평가든 다른 곳 점수만 가져올 게 아니라 거기 시설과 체계를 조금이라도 베껴오면 될 일이다. 말단 직원들한테 이딴 정신교육이나 시킬 게 아니라.
환자들이 제일 많이 하는 질문이 뭔지 알아요? 와이파이 알려달라는 거예요. 캐비닛 옆에 붙어 있는 안내문 참고하시라는 말 골백번 반복하는 것도 지칩니다. 좀 입원 안내할 때 어디에 적어 놓으시면 안 되는 걸까요? 그리고 좀 쉬운 걸로, 괜찮은 걸로 바꿔 주세요. 원래 좀 끊겨요, 저희도 쓸 수 있는 게 따로 없어요, 라고 맨날 말하기도 창피해요.
그리고 그 중 절반은 우리가 구라치는 줄 알걸요? 요새 와이파이 안 되는 데가 어딨어. 하핫, 산이라 잘 안 터진대요? 언제까지 그렇게 말해요. 비행기에서도 와이파이 되는 세상에.
사람들이 병실에서 뭘 하는데요. 약 주는 거 기다리고 검사 가는 거 기다려요. 그거 말곤 누워서 휴대폰 보고 태블릿 보고 간식이나 먹다가 양치하고 세수하고 자요. 코로나 핑계로 병실에서 다 사라진 핸드타올, 1인실에는 있던데 왜 다인실에는 없어요, 라는 질문에 거짓말로 대답하는 것도 지겹습니다. 진짜 짜쳐요. 어디어디 병원이 이거밖에 안 돼요? 라고 하던데. 사람들이 뭐 대단한 걸 보고 이 병원 평가해요?
간호사는 어차피 계속 바뀌어요. 싸가지가 있든 없든 그냥 다 때 되면 집에 가잖아. 똑같은 건 교수랑 그 바로 밑 의사랑 병실 시설이라고요. 그 존재감이 압도적으로 더 크다고.
환자가 나를 하루종일 봐도 주인공은 그 사람들이라고. 맞잖아. 비꼬는 게 아니고. 병원이니까, 병실이랑 의사가 제일 중요하잖아. 치료하는 사람. 치료받는 곳. 근데 왜 나한테 더 친절하라고 그래. 얼탱이 없게.
최소한의 시설이나 보수하고 몇몇 싹퉁머리 없는 사람들이나 정신교육 좀 시키지 그러세요. 아, 다 한 패인가? 왜? 난 어차피 존재감도 없다니까?
알바 빼곤 딴 데서 일해본 적도 없지만, 그래도 어디든 비슷하겠지. 매번 돈 없다는 병원. 친절하게 공감하는 우리는 어디어디 병원 히어로. 없다고? 너네 별관 또 짓는 거 누가 몰라? 없기는, 나한테 줄 돈이 없겠지.
히어로? 내가 뭔 히어로야. 어떤 히어로가 이렇게 설설 기는데요. 환자가 다시 오고 싶어하는 병원이라.. 그들이 나를 뭐 사랑이라도 합니까. 나 보려고 다시 온대요? 내가 뭔 연예인이야, 뭐야. 물론 알지. 무슨 말인지. 그냥 아, 수액 들어가서 아파요, 그럴 수 있어요. 이러지 말라는 거잖아. 근데 그건 그냥 그 사람들 성향이야. 당신들도 알잖아요. 그 말버릇을 어떻게 고쳐. 이 나이 먹고도 저렇게밖에 일 못하는 건 그냥 지능 문제야. 어떡할 건데요.
그래도, 그렇게까지 친절을 짜내고 싶으면 좀 구슬리던가. 그 대상 입장도 헤아리는 척이라도 해 주시라구요. 아니면, 자르세요. 그냥. 무례하고 싸가지 없는 것들 잘라요. 그게 당신들이 우리한테 요구하는 서비스 아냐? 이건 의사 간호사 임상병리사 할 거 없어. 그렇게나 친절이 좋으면 점수로 매겨서 플러스 주고 마이너스 때려서 그냥 해고하고 강등시켜요. 그럼 되잖아. 그럼 열심히 할게. 그게 내 덕목이니까.
교육 중간에 퇴원 보냈던 애 그 때 그건 괜찮을까 생각이 다시 나서 또 열이 받았다.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데? 애들 생각하느라 질질 짜고 울적하기까지 했던 오프를 니들이 알아? 웃겨? 웃기지. 난 안 웃겨요. 시키지도 않은 것 때문에 그러고 있었던 내가 한심해서. 그럼 명세서에 장난으로라도 써 주지 그래. 마음챙김수당, 뭐 이런 거.
내가 이런저런 구차한 일들, 이건 우리 일 아니라는 사원들, 의사들, 교수들, 검사실 말들 다 격파해 내면서 다 해결하는 와중에 그런 것까지 해야 한다면, 나한테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날 조금이라도 생각해 주는 그런 처사. 있어, 니네? 어디서 같잖은 가스라이팅이야.
점수가 아쉽고 순위가 아쉬우면, 더 노력하시라는 말이나 하고 싶다. 그런데 알까 모르겠네. 죽어도 안 되겠지. 부장도 부서장도 다 뭐.. 그 밥에 그 나물이니까. 사실 발전하고 싶은 마음 없죠?타병원이나 여기나. 아니면, 알고도 이러세요?
공감. 좋지. 고맙지. 그래도 한 시간밖에 안 했잖아. 근데 그게 중요하냐고. 한 시간? 그 단어들이 내 머리를 맴돌아 나는 어떻게 했던가, 얼마나 공감을 했던가, 난 어떤 '간호사'였으며 '의료진'이었나 생각하게 만들잖아. 열받게.
내 잘못 아니다. 물론, 잘 돼도 내 덕 아냐. 그러니까 알아서들 하시라고. 나같은 애새끼한테 그런 거 바라지 말고.
병원? 오고 싶은 병원이 어딨는데. 장난하나, 진짜. 동네 의원도 아니고 무슨..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꿈은 끝났다.
리얼리티가 지나칠 정도로 살아 있더라고.
별 꿈을 다 꾼다, 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