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뻐여.

콜미바이허네임

by 이븐도





그는 참 점잖은 청년이다. 만약 애를 낳았는데 아들이라면 그렇게 키우고 싶다. 그런데 안 될 듯. 나는 내시경도 못 하겠거든. 대뜸 이기광나랑결혼해!!!라고 소리라도 칠까봐.


결혼하자면 다행이게? 온갖 상스러운 욕에 저급한 저주가 아니라 그거면 양반이다. 하지만 그 점잖은 뿌뿌는 절대 그러지 않지. 어머니, 어떻게 아들을 그렇게 키우셨어요. 하핫.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는 허구다. 거짓부렁이라고.

모든, 이라고 말하면 사실을 대놓고 시인하는 꼴이니 말을 바꾼다. 극히 일부가 사실이고 대부분은 뻥이다.






"임예나."

뭐?

"임예나."

내 이름은 임예나가 아니다.

"아휴. 얘가 좀 이쁘장한 사람 보면 다.."

예쁘장? 압도적 감사입니다.

"아, 여자친구예요?"

"무슨, 그. 중환자실에서부터 그래서 다 잊으라고 했어요. 거기 선생님들이."

아. 그냥 내 나이대의 여자들한테 다 그랬군.

"임예나가 누군데?"

"그건 대답 안 해요."

"..임예나."

"주사 맞아야 되는데, 이거 아픈데."

"시러여엉. 아픈 거 시러어."

"어제도 했던 거야, 할 수 있어."

"학생회였나봐요."

"아, 첫사랑?

"짝사랑요. 크크."

"그게 그거죠. 아, 이뻤구나. 예나 좋아했어?"

사랑했나보군.

그리고 또 멍하니 뱉는 단어.

"임예나.."


임예나씨, 잘 지내세요?

한 청년의 의식 저편에 칵 하고 묻히셨군요?






임예나 세 글자는 잘도 말하면서 욕은 안 했다. 내가 다섯 번은 이름을 들었으나 도무지 입에 안 붙어 기억이 안 나는 외국 래퍼의 노래가 좋다고 했다. 이어폰을 꽂은 채 아이폰을 잡고 베개에 기댄 그는 정말로.. chill-해 보였다.


그냥 이목구비가 주는 인상이 그래서였을지도. 박살난 의식과 신체, 반 년 간의 회복. 골고루 많은 것이 망가져 있는 당장, 지금까지 쌓아온 성장의 단계에서 몇 가지는 확실히 남았다. 그 중 하나가 임예나였고 아마 그 힙합 아티스트였고 인스타 디엠이었고 지드래곤의 인스타였고.. 아마 부자지간일 물고기 인형이었다.


그런 궁금증은 별로 참고 싶지 않다. 중환자실 인계장에서부터 별칭이 함께 넘어오던 그 물고기 인형들. 이름이.. 뿌삐와 뽀삐였나. 하여간 입술을 잔뜩 뽀뽀하듯 붙여야 발음할 수 있는 이름. 대체 누가 지어준 거야? 칠십 몇 키로짜리 커다란 청소년인 얘? 녁의 병원, 창가에 누런 소변통이 놓인 게 너무 웃긴데 색감은 또 이쁘지 않냐며 호들갑을 떨던 엄마? 진짜 병원 너무 오래 있었어, 이런 게 다 웃겨요. 증말, 하던 그 분이라면 그럴지도.






"그럼 얘는 이름이 뭐예요? 없어요?"

"있어요, 왜 없어용."

"뿌뿌가 이 이름도 지어줬어요?"

"사실 이건 제 거예요. 리트리버를 너무 좋아하는데 키우는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글쎄, 자기 생활이 없어. 개가 걱정돼서 어딜 나가질 못하고 가더라도 같이 갈 수 있는 곳만 가야 된단 거 있죠?"

"아, 어머니가 리트리버를 좋아하셨다구요."

"그쵸. 그래서 대체용으로, 이렇게. 원랜 하나 더 있었어요."

"아, 작은 걸로요? 이게 제일 큰 사이즈일 텐데."




그 작은 애와 큰 애의 이름과 사연은 더 못 들었고 아무튼 침대에 늘 놓여 있는 걸 본다. 솜이 다 죽은 탓에 도무지 아주머니의 취미용 수집 같은 걸로는 안 보이고 다 큰 그의 애착인형으로만 보이는 그 강아지 인형. 창가의 흰동가리 세트.


뿌뿌가 직접 붙여줬어요, 얘는 이런 거에 이름을 맨날 붙이거든. 초등학생 땐가 놀러가서 이걸 사줬는데 그렇게 이름을 만들어 준 거지, 그걸 껴안으면 안 아프다고 말해 줬거든요. 참나, 귀엽네.

그래, 귀여울 때지. 거진 십 년 전 아냐. 그리고 임예나? 여친 생기면 엄청 좋아 죽었을 타입이구만, 생각했다. 딱히 상관관계는 없지. 그냥 내 망상이다. 맨날 하는 짓.



그 애칭은 뭐라도 또 오글거리는 걸로 붙여 줬을래나, 하고 어떻게 생각 안 하냐고. 하트는 있는 대로 붙여서 번호 저장하고 그러지 않았을까?






"이제 도라에몽을 좋아해요."

"아, 요즘 새로요?"

"아니, 예전에 되게 좋아했는데. 집에 전 권 다 있거든요. 나는 이게 왜 그렇게 재밌는지 모르겠어. 근데 이 1권은 계속 읽어요."


읽는 건지 쳐다보는건지는 모르는 건데 그것까지 내가 알아낼 필요는 없었다. 근데 어머니 그거 나름 수요층이 확고하던데. 윤두준이라고 연예인 계세요. 그 분 그거 전자책으로 다 읽으려고 휴대폰도 사셨어요. 양옆으로 열리는 걸로.

아무튼 애나 어른이나 좋아한다는 말입니다. 난 아니지만. 사실 더 덧붙일 말이 안 떠올랐다.



"이거 좋아하는구나. 재밌죠, 좋아하는 사람들 많을걸요?"

"선생님도 좋아하세요? 아. 근데, 이제 안 속아 넘어가."

"네? 어디에요."

"그 때는 내가 이걸 마법의 책이라고 하면서 뒤에 숨켰다가, 이렇게, 딱, 내놓으면 막 놀랬거든."

"아. 어머니가 만들어 내신 줄 알고?"

"그런 거죠. 근데 며칠 있다가 보니 안 속더라고. 그냥, 엄마. 주세요. 하던데?"'

"그럼 그 때도 그냥 속아 드린 척한 거 아닐까요. 하하."

"아니예요. 어우, 선생님. 아무튼 1권 이후로는 달는 소리를 안 하네."



뿌뿌야, 저거 내용 외워서 아는 거야 아니면 진짜 읽어? 라고는 못 묻는다. 어쨌든 기억에 남았다는 거지? 그렇구나. 뿌뿌는 잤다. 잔다. 자고 재활치료를 가고 나한테 근육주사를 매일매일 아프게 맞는다. 아파, 이거 진짜 아픈 주사야. 너 잘 때 찌르면 싫잖아. 얼른일어나자아아아 어? 했더니 눈을 뜨고 임예나, 한 거다.

근데, 나한테는 임예나만 부르더니 내 동기한테는.




"예뻐여. 하던데?"

"너보고? 임예나 얘기하면서?"

"어. 그 얘기 하지?"

"응. 근데 이쁘다고는 안 함."

"짝사랑이래."

"첫사랑이지."

"혼자 사랑했던 거라는데?"

"좀 봐줘, 그렇게나 기억한다잖아."

근데 왜 나한테는 이쁘다고는 안 하냐, 이 자식. 아무튼 나는 그 무의식에서 건진 기억을 엮어 보는 세상에서도 예쁘지는 않았나보다. 어쩌면 다행이지. 멀쩡히 인식할 줄 아는 힘이 남아 있다는 의미일 수도? 흥.






뿌뿌야, 손. 했다. 나는 진짜 그런 뜻이 아니었다. 주사 좀 놔야 하니까 손에 힘 주라는 뜻이었다.


"개 아닌데요."

"뭐?"

"개 아닌데. 멍!"

"아니, 아니. 야. 니가 그러면 어머니가 나 혼내, 어?"

엄마는 상황을 이해하고서 잔뜩 웃었다. 너 그러면 안 돼. 어? 강아지, 아니지. 맞아, 아니지. 개 아니야.

"..멍멍멍멍!"

그 혀를 빨갛게 내민 리트리버 인형을 얼굴 옆에 갖다대고 다시 내는 흉내. 너 왜 그러니. 누가 보면 내가 시킨 줄 알잖아.

"아니야, 이쪽 손 펴자는 뜻이었어. 응? 야, 너 왜 그래?"

"알아요, 장난."

"장난? 재밌어?"

"네."

그리고 다시 멍멍, 한 번 더.

"어머니, 어떻게 이렇게 키우셨어요?"

"그러면 돼, 안 돼. 아유, 이런 장난을 쳐. 아히히히. 얘 좀 봐."

난 진짜 진심이었다. 왜 커튼을 쳐 놓으면 뿌뿌 시선이 닿는 곳에 '귀염둥이'라고 또박또박 쓴 글자를 붙여 두었는지도 알 것 같았다. 진짜 귀염둥이였잖아.






트위터에는 참 많은 것이 올라온다. 주로는.. 하이라이트의 공식 및 비공식 일정, 그 일정에서 나온 사진들, 또 사진들, 영상들, 사진들. 그리고 그 사진을 보면서 난리를 쳐대는 사람들, 그 난리치는 사람들을 보면서 똑같이 난리를 쳐대는 사람들, 그리고 또 사진들, 영상들. 보이는 대로 다 누르다가는 정말 밑도 끝도 없을 그 SNS에서 나는 그 아이돌과 관련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팔로우하지 않는다.


작년 '입덕'후 신세계를 영접한 기분일 때는 그냥 생각없이 다 눌러놓았으나.. 너무 광대하고 쏠려 있고 또 알 수 없는 곳이더라고. 그런데도 내 세상에 들어오는 글들이 있다. 파급력이 큰 것들이었다는 의미겠지. 거기서 그랬다. 응급실 의사, 이혼 전문 변호사, 방 청소 서비스. 고객 사연으로 에세이 쓰기 금지시켜야 한다, 고.




에라이, 씨. 미안하다. 아니, 그 트윗을 올린 사람이 누구든 간에 내가 그 사람을 향해 미안해야 할 일은 없는데 아무튼 너무나 크게 찔려서 할 말이 없었다.


늘 생각했다. 내가 남의 불행을 가지고 놀고 싶은가.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노동이든 퇴사든 이름은 정상적으로 붙인 그 평범한 듯 안 평범한 글의 대다수는 일터에서 마주친 남의 이야기에서 기인한 거였으니. 대부분은, 동정받고 화제되기 쉬운.. 불행들. 비극적인 이야기들. 비극적인가? 그치. 굳이 분류하자면 슬픈 쪽이다. 흔해빠졌지만 그래도 자극적이라 관심을 받기 좋은 것들.




근데 나는 타고나길 좀 찐따였다. 비호하려는 게 아니라, 남의 이야기를, 그것도 결코 그쪽에서는 장난도 사연도 아니고 현실인 그걸 옮겨 와서 관심을 구걸할 종지가 못 됐다. 슬픈 대로 써 놓은 건 건 정말.. 그냥. 활자로 내보내기 위해서였고, 아닌 척 쓴 것들은 그냥 그 장면에서의 어떤 점만은 좀 쌔벼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 어떻게 써도 구라 같네. 이걸 어떻게 더 설명하지. 근데 이게 진짠데.






아휴. 그래서 나는 이 뿌뿌의 이야기에서 그가 갑자기 그렇게 된 후 그의 엄마가 어떻게 정신을 붙들고 밝고 사랑스러운 아줌마가 되어 자식의 간호에 힘쓰고 있는지는 관심을 두지 않으려 한다. 근데 실제로 그랬다. 그건 별로 감명 깊지 않았다. 빛이 좀 있어야 어둠이 부각되고 반대도 마찬가지잖아. 하지만 그 병상에서는 아니었다.


대충 봤을 땐 안쓰러워 보일 정도로 밝았는데 딱히 그 엄마 수다 떠는 걸 보면 그래 보이지도 않았다. 왜, 늘상 슬픈 표정의 여주인공이 한 번 눈물 고인 눈으로 미소를 지으면 그 웃음이 너무 쓰고 아리게 예쁘고 뭐 그렇잖아. 그러니까 그런 아픔의 클리셰조차도 없었다는 말이다. 뒷면을 생각하기 힘들게 밝았다. 강한 거구나. 저게 진짜구나.




뭐, 몇 겹을 거쳐 내린 논리적인 척한 결론이 아니라, 한참 일을 하고 돌아서 나오면 딱 박히는 생각이었다. 대단하시네, 도 아니고. 뭐라 해야 하나, 그냥 집에 와서야 떠올리는 거.

그 밝은 말들과 사랑과 어린 시절의 조각들을 길어낼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줬음직한.. 사람이구나. 그 엄마는, 하고서.


강하지. 간단하다. 근데 그렇게 간단히 말해 버리긴 좀 그랬다. 그렇다고 슬프지도 않게 느껴지는 거지. 왜인지는 나도 모른다. 알 필요도 딱히 없고. 남의 사연 갖다가 글 쓰지 말라잖아. 내가 그 자리에서 훔쳐 오고 싶었던 건 그냥 그런 대화와 엄마의 모습 그 자체였다. 아무 해석과 의미부여 없이.






"어머니, 근데요. 진짜 어떻게 이렇게 키우셨어요."

"아우, 뭐. 뿌뿌가 좀 귀여워야죠, 타고나기를."

"욕 한 번을 안 해요, 어떻게?"

진짜로, 아씁. 아파여어.. 씁..쓰으읍. 이게 다였다. 늘.

그리고 지금도.

"..해드려여?"

"뭐를."

아.

"이제 농담도 제법 하네. 너 디게 젠틀하다."

"오호호호. 이제 집에만 가면 되겠는데, 그치?"

"욕, 해드려여?"

"사양할게, 고마워. 하란 뜻 아니었어. 미안해."






근데 진짜 대단한 거잖아. 기억에는 몇 개의 것들만 산발적으로 남아 버린 와중에, 쌍욕을 안 한다? 난 그게 정말 매번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왜 또래 애들 같은 느낌이 안 드나 했더니 그런 게 없어서였다.


그래서 생각했다. 어떻게 키우셨지. 이어 답을 바로 떠올렸다. 엄마를 많이 닮았을 수도 있겠군. 역시 아들과 엄마의 성격은 많이 닮는 건가? 엄마랑 동생도 그렇잖아. 난 아빠 닮았는데. 생긴 것도 성격도. 근데 얘 생긴 건 아버지랑 똑같아.




아무튼. 난 그럼 이런 아들을 만들어낼 수 없을 수도 있겠어. 무의식에서 어떤 말이 튀어나올지 몰라서 수면 검사가 정말 두렵다니까?정말. 그걸 듣고 있을 검사실의 생판 남들이 무서운 게 아니라 내 그런 면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게 벌써 무섭다. 맨정신으로도 온갖 비속어며 욕을 달고 사는데.

그런데 뿌뿌는 아니지. 그런 엄마가 그렇게 키우셔서 그래. 그녀 말마따나, 사랑으로.






물론 그렇다고 내 엄마아빠가 욕쟁이라거나 사랑이 없는 사람이었다는 건 아니다. 그리고, 애는.. 안 낳을 거긴 한데, 그냥 그래서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면 그런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추억이 많아진다는 건 좋은 일이잖아? 그래도. 아들이 없어도 아무튼 그렇게 살 수는 있지. 맞아.


그럼 이기광 말고, 그 때 좀 오래 좋아했던 이름이 뭐더라. 아, 근데 별로 이런 식으로 샤우팅하고 싶지는 않아. 제발.

차라리 아이돌이 낫다. 이기광 결혼하자가 낫겠어.






..


결혼하실래요?

주어는 말 안 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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