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화된 장작
지지배들, 못돼 처먹었구만.
못된 거라고, 그게?
그럼 못된 게 아니냐?
음.
매일의 신규와 사람들, 시시각각 사람 돌게 하는 이벤트들, 그리고 지겹도록 하게 되는 질문. 물어봤어야 했는데 못 물어봤다. 엄마, 그럼 어떤 게 안 못된 건데?
이건 진짜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신규와 태움에 대한 반복된 고민에 대한 의미 없는 마침표. 모든 이야기가 기승전결 확실한 서사일 필요는 없잖아?꼭 주인공이 고난과 역경에도 희망차게 성장해야 하냐고.
보통 영웅 스토리가 그렇지. 그치만 나는 그냥 월급쟁이야. 쓰잘데없는 거 치우고 수당이나 주세요, 열받으니까.
여기서 더 나아갈 필요도, 여력도 없다. 왜 참아야 하는데? 상부에선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데 왜 나만 이렇게 참고 걸러내고 힘줘야 되는데. 그래. 병원이니까.
안다고 뭐가 달라지나, 싶고. 결국은 본성이 튀어나오게 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해서. 그게 내 잘못이야? 체계는 이 따위로 깔아 놓고 모른 척하는 병원은? 그 본성조차도 어차피 이 돈벌이가 아니면, 이렇게까지 까발려질 일 없을걸?
하지만 떠나더라도, 그렇게 성질을 참지 못하고 말을 골라내지 못했던 나는 내 인생에 어떤 형태로든 남겠지. 언젠가는 간호사도 그만하고 병원도 관두겠지만.
신규 선생님과 나이트를 자주 한다. 나는 예전에 생각했다. 나는 쎄쎄쎄 당할 것 같으니까 프셉 하기 전에 퇴사해야겠다고. 왜 그 때 그런 생각을 했지? 글쎄. 스스로에 대해서 상당히 잘 알았던 모양이다.
쎄쎄쎄는 이 병원의 상담 및 직장 내 괴롭힘 관리 부서다. 그게 부서인지는 그 활동의 명칭인지는 모르겠으나, 하도 태움이란 게 사회적 이슈가 되기 좋은 주제다 보니 그렇게 대처를 하고는 있나 봐. 정작 거기에 누군가를 신고하면 삼자대면한 채로 식사자리를 갖는다는 카더라가 있지만..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왜 모르지? 그 정도로 태워진 사람들은 그런 귀엽기만 한 부서에 신고를 하기보단 그냥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났거나, 어쩌다 그 쎄쎄쎄의 문을 두드렸을 경우에도 특정 일화에서 기인한 부당함이나 감정적 호소가 안 받아들여졌다는 뜻 아닐까. 그러니까 진짜 조치가 취해지는 단계까지는 이러나 저러나 아무도 못 가봤다는 거지. 내 뇌피셜로는 그렇다.
나이트 때는 할 일이 많다. 그런데 그 할 일이라는 게 아픈 사람들도 안 아픈 사람들도 깨어 있을 때 해야 하는 일들이 아니라서, 마음만 먹으면 두어 시간 안에 끝날 수도 있다. 그래서 나이트는 둘 중 하나다. 책상에 머리를 붙이고 자고 싶을 정도로 지겹게 평화롭거나, 먹고 죽을래도 없는 게 시간인 것처럼 미치게 바쁘거나.
검사와 시술과 외래 입원이 없는 관계로 병원은 늘 나이트 때 간호사 한 명이 담당하는 환자 수를 늘린다. 데이나 이브 때 간호사 4명 정도가 근무한다면 나이트 때는 세 명인 식으로. 괜찮다. 검사와 시술과 외래 입원이 없잖아. 하지만 그렇다면 바쁠 일이 없는데? 있지. 왜 없어.
병상이 완전히 차 있는 게 아니면 응급실에서는 꾸역꾸역 입원을 올려보내고, 밤이라고 중환자실에 가야 할 정도로 아픈 애들이 갑자기 괜찮아져서 꿀잠을 자는 게 아니며, 한밤중에 전동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여하간, 병원이 꽤 똑똑하다는 걸 느낀다. 어떻게 이렇게 딱 죽어버리고 싶을 만큼의 업무량을 기적적으로 분배해 내는지 그 경제성과 미친 효율에 환멸이 난다. 딱 한 명만 더 있었어도 이 정도는 아닐 걸 정말 그 한 명이 없어서 돌아버릴 것 같다. 그 상태로 일을 하고 아침 버스에 오른다. 죽고 싶다, 오늘도 또 나와야 한다니, 생각하면서.
그리고 신규는 그 한 명에 포함이 안 된다. 할 줄 아는 게 없으니까. 진짜 없어서 그렇다. 내가 못된 게 아니라, 아니. 못된 게 맞나? 쓸모가 없는 걸 없다고 하지 뭐라고 해. 여긴 학교가 아니잖아? 걔가 인턴 월급을 얼마를 받든 들어온지 얼마가 되었든 다 떠나서, 진짜 있으나 마나한 인력이라 그렇다.
선생님, 오더 보시라구요. 이걸 왜 몰라요? 아니. 지금 두 시인데 약도 못 챙기고 처치도 못 넣었으면 어떡해요. 이거 십 분 안에 다 하세요. 오더 이거 아까 전에 났는데 스케줄링은 언제 할 거예요? 퇴원간호기록지는 언제 쓰실 거예요? 네네, 하실 게 아니고. 못 하시겠으면..
나는 안다. 그 신규가 몇 시에 왔는지. 역시 그걸 아는 그녀의 프리셉터는 그 뒷 말은 안 했다. 일찍 오세요, 라고 안 한 거지. 나였으면 그 말을 참을 수 있었을까? 그녀는 다음 달에 독립이다. 2인 1조로 프리셉터와 함께 일하던 구성에서 벗어나 완전히 혼자 일하기 시작하는 거지.
이제 슬슬 의문이 든다. 엄마, 못하는 걸 못 한다 그러지 뭐라 그래. 병원이 신규를 인력이라고 배치해 놓는 게 진짜 열받는다니까? 사고나 안 치면 다행이야. 입원 받는 데 멀뚱히 서서 걸리적거리는 게 짜증 난다고. 물론 걔도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건 아니겠지. 근데 어떡해, 바빠 죽겠다고. 이래도 그게 나쁜 거야? 라고.. 말은 안 했다.
그냥, 엄마의 못된 지지배들, 하는 말을 듣자 어. 그게 못된 건가, 하는 생각에 머리가 멈췄기 때문이다. 나도 꽤나 물이 들어 버린 건가, 싶어서.
늘 딱딱대며 말하던 프셉이 가끔 무섭고 미웠던 신규 때도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태움이고 태움이 아닌 걸까. 언젠가는 나도 연차가 찰 텐데 나 같은 애를 보면 뭐라고 해야 하나. 너무 바쁜 건 사실이잖아.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말이 예쁘게 나와. 그리고, 좋게 할 필요도 없잖아. 누가 알아주는데. 여기가 어린이집이고 학교야? 아, 난 나중에 못 하겠다, 이거. 까딱하다간 신고당할 수도 있겠는데?
프리셉터가 앉아서 노는 것처럼 보여도 그렇지도 않았다. 나를 가르쳤던 그녀는 항상 그랬다. 제가 하면 훨씬 편해요. 그런데 선생님은 아니잖아. 이제 다음 달부터 이거 다 혼자 해야 돼. 거기다 나이트 때 입원 받고 검사 보내야 하면 어떡할 건데요? 할 수 있는 건 미리 다 해 놔야 집에 가죠. 그 때처럼 집에 MD 돼서 갈 거야? MD? 그 엠디 맞다. 정오.
그러면서도 그 땐 생각했다. 새하얗게 바랜 것 같은 머릿속과 눈알에 최대한 의식을 집중한 채 오전 열한 시의 컴퓨터 화면을 쳐다보면서, 이래도 나보고 집에 가라고 안 한다고, 아무도?라고. 지금 생각하면 정말 유치원도 아니고 누가 나한테 그렇게 말해 줄 이유가 하등 없는데 그 땐 그랬다. 월급 받는 직장인이 덜 됐던 거지.
그리고 이제 나는 신규가 몇 시에 집에 가든 상관도 없고 구태여 신경 쓸 필요도 없는 입장이 되었다. 그게 나쁜 건가? 써놓고 보니 나쁜 것 같은데 나쁜 게 아니다.
내가 덜 바쁘다면야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지. 선생님, 뭐 못 했어요. 이거 하면 돼요? 주세요. 그런데 그건 내 의무가 아냐. 자기가 일을 못한 거니까. 근데 나도 바빠. 무서운 흐름이다. 이래서 엄마가 못된 지지배들이라 한 건가?
일 존나 못해, 라고 했었다. 나이트 때는 사람이 없고 있는 사람들은 다 자고 있어서 더 잘 들린다. 딴엔 조용히 떠든 거였겠지. 아무튼 다 들렸다. 다른 데서 반 년 있다 왔다는데? 근데 개못한다니까. 내 프셉은 원래 말이 좀 쎈 사람이었다. 대신 앞뒤가 똑같아 아예 상명하복하듯 대할 수 있어서 편했다.
그게 남들한테도 보였는지 그들은 나중에 너네 그래도 잘 맞았어, 라고 했다. 그녀가 한 말에 운 애들이 좀 많긴 했다. 나는 두 달을 내내 붙어 있으면서도 운 적이 없었다. 그녀는 집에 가면서 나한테 그랬었다. 나 때문에 울지 마, 눈물 아까워, 알겠지? 난 그 말이 정말 지당하다고 생각했다. 사실이기도 했다. 그 때의 내가 '일을 존나 못한'것도.
그 때의 나이트는 밤 열 시가 근무 시작이었다. 나는 다섯 시 반에 병원 지하 컴퓨터에 앉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 와서 뭘 했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 시간에 나왔다. 환자 수가 더 많으니까. 찾아내고 알아보고 기억할 게 더 많으니까.
아마 그 때 프리셉터가 다섯 시든 여섯 시든 와서 그냥 할 수 있는 건 다 해 놓으세요, 했던 것 같다. 열 시까지, 저 출근하기 전까지 이거 이거 이거는 다 해 놓으세요. 알겠죠?
그녀를 탓하는 게 아니다. 정말 그게 최선이었다. 지금처럼 의료파업의 여파가 있긴 커녕 그런 건 상상도 못한 때라서 인턴이 새벽 내내 있었다. 한밤중에도 진정제를 써서 가는 검사들을 보내야 했다. 자는 약을 맞은 환자가 산소포화도나 맥박이 늘어질 것을 대비해 누군가는 검사실까지 만일을 위해 따라가야 하는데, 지금은 인력이 없어 그런 검사를 밤에 안 한다. 그 땐 했다. 말이 검사지 한 명이라도 나이트 때 예정되어 있으면 일이 미치게 밀렸다.
애를 처치실로 빼고, 약 하나 주고 자는지 안 자는지 수시로 들여다보고, 인턴 부르고, 안 깨게 검사실로 이송하고, 만약 가서 깨 버리면 깼다는 걸 노티하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 그럼 원래 내가 해야 하는 환자 열세 명 앞의 일들은?어디 가지도 않고 날 기다리고. 그렇게 점심 때가 다 되어서 퇴근.
입사한 지 일 년 반이 되었을 때, 추석 연휴였나. 늘 불안한 마음을 참지 못했지만 그 때는 큰 맘 먹고 병원에 일곱 시까지 갔었다. 그리고 작년이 되어 여덟 시 반. 지금은 아홉 시가 조금 넘어서 도착한다. 사실 지금도, 연차를 불문하고 여덟 시 반 정도에 오는 사람들이 있다.
불안해서? 그 정도 짬에 업무량이 두려울 리가. 환자를 더 꼼꼼히 보고 인계를 정확히 받기 위해서, 사고 안 치고 퇴근하기 위해서. 허둥대다 빠뜨리면 진짜 망하니까.
지금은 그런 식의 강요 아닌 강요는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신규가, 병원이 불행히도 너무나 정상적으로 돌아가 한밤중에도 아무리 약을 써 대도 도무지 안 자는 20개월 애를 MRI실에 내려보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면, 그래도 여덟 시 반이나 되어 병동에 등장할 수 있을까?그래서 묻고 싶은 거지. 몇 시에 왔냐고. 하지만 정말 그렇게 말할 순 없잖아. 그건 진짜 태움일걸? 비록 내 프셉은 그랬지만.
그 신규의 프리셉터도 나와 연차가 비슷했다. 근무 내내 뒤쪽 자리에 앉아 복장이 터지려 하는 것 같았다. 왜 내 선임이 그렇게나 한숨을 쉬고 답답해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나라면, 어떻게 할까나. 일을 신규가 한다고 하지만 그녀는 아직 정직원이 아닌 탓에 책임은 프리셉터에게 있었다. 그냥 착한 척하면서 내가 다 해버리는 게 차라리 나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진짜로. 나를 가르쳤던 그녀의 말처럼.
화 안 내도 되고, 둘다 정상적으로 퇴근할 수 있고, 뒷턴한테 죄송하다는 말 안 해도 되고. 거기다 어차피 쟤랑은 이번 달 하고 쫑이라고? 그래, 끝이긴 해. 그 상태로 이제 그녀가 진짜 일을 하게 된다는 걸 빼면. 그렇게 엉망으로 일하는 버릇을 고칠 의지가 없는 신규가 내 앞뒷턴으로 왔을 때 엄청난 일들이 밀려온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있다면 말이야.
신규는 당연히.. 바보다. 직종 불문 만고불변일 진리. 그리고 그 뉴비를 일꾼으로 만드는 건 교사가 아니라 실제로 환자를 시술 보내고, 내일 집에 보낼 준비를 하고, 검사실에 전화를 해서 닦달 아닌 닦달을 하고, 접수 안 된 검체를 추적해 어떻게든 결과를 띄우고, 잘못 난 처방을 거르는 진짜 인력.
나는 이제 못됐다는 말의 경계가 궁금한 사람이 되었다. 태움? 태움은 태움이지. 어떤 변명이나 해석의 여지도 없다. 그리고 나는 알거든. 한 번 삐딱선 타면 내가 그 누구든 엄청 갈궈댈 수 있을 거라는 걸. 그럼 그렇게 태우는 거랑 응당 해야 할 말을 하는 거랑은 또 어떻게 감별해야 하는 건가.
이거 자주 해요. 오더 나면 사원님께 이거 말씀드리고 여기 이거 까서 저거 넣고 이거 무균적으로 넣고 토탈 필요한 검체량 써 놓으시면 돼요. 아침에는, 이렇게. 사진 찍어 둘래요?
골수검사 준비하는 거 프리셉터가 나 따라가서 보랬더니 신규는 받아 적지도 질문을 하지도 않았다. 뭐야. 진짜 나중에 어떡하려고 그러지. 다들 바빠서 못 도와주면 어떡하려고. 이래놓고 모른다고 하려고, 그 때처럼?
태움 태움 그 강한 단어가 박혀서 혼란스럽다. 내가 정말 누군가를 가르치게 되면 나는 어떤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하는가. 이럴 줄 알아서, 프셉 할 연차 되기 전에 병원을 관둬야겠다고 생각했나 봐.
왜냐면, 나는 이제 뭘 어떻게 말해도 태움 정당화로 보일 입장이니까. 나조차도 몰래 그런 연차가 되어버린 탓에 어쩔 수 없다. 바쁜데, 이거 당장 네 시 전에 해야 하는데, 이 항암제 몇 시까지 다 달아야 폐기 안 하는데, 이거 부작용 난 거 노티부터 하고 저걸 하고 있어야 하는데 엉뚱한 데서 어슬렁거리다가 몰랐다고 하면, 나는 과연 어떻게 반응할까.
모든 상대방을 마동석이라 생각하자고 했었다. 하이라이트 멤버나. 근데 그 이상이면. 그게 이기광이든 손동운이든 누구든, 정말 그 말을 해야 할 상황이면 나는 할 것 같은데. 그래도 그게 태움일까? 대체 할 말을 어떤 식으로 꺼내야 하는 걸까. 신규는 항상 피해자인가? 항상 타기만 하는 존재?
탄다는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누군가 태워서 탄다는 말, 엄청나게 바쁜 걸 뜻하는 탄다는 말. 나는 안 타는 장작이었다. 선생님,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해요, 이렇게. 라던 프셉의 말을 듣고도 안 울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게 뭐였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남들이 기억해줘서 알았다. 너 그 말 듣고 안 울었어? 뭔 말? 머리 안 좋으면 그거. 어? 기억 안 나? 근데, 맞는 말 아니냐. 기분 안 나빴어? 너 엄청 태우던데. 겁나 일찍 오라고 하고. 태운 거야, 그게? 그럼 아냐? 음.
그녀 옆에서 눈물 한 번을 안 흘렸던 당시의 내가 어땠다는 게 아니라, 진짜 나는 안 탔다. 그 안 타던 장작은 이제 정말 열화가 되어서 태우는 게 뭔지에 대해서 고민한다. 이 불길 비슷한 것에 너무 오래 있어서 정말 분간을 못 하는 것일 수도, 아니면 정말 시간이 지나서 할 수 있는 정당한 질문일 수도. 나는 어떨까. 진짜 지금의 나는 어떨까.
저 때는, 다섯 시 반에 오고 그랬어요. 알아요? 근데 선생님 몇 시에 왔어요. 아홉 시 다 돼서 왔죠? 일을 하겠다는 거예요, 말겠다는 거예요. 환파 하나도 안 해놓고 퇴간만 써 놓으면 뭐 해요. 얘 이거 타겟 몇인지는 알아요? 모르죠? 새츄 떨어지면 뭐 해 줄건데요? 환자 안 볼 거예요?
라고 안 할 수 있을까? 그 때의 나는 꽤 똑똑했나 보다. 아. 이런 거 대가리 아픈데. 난 그 때랑 지금이랑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데. 그런데 아닌가 봐, 이런 말을 누굴 흉내내느라 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품는 거 보면. 그 때의 내가 상상한 것처럼, 지들이 잘나서가 아니고 그냥 그렇게밖에 말이 안 나오는 거였다. 화 내는 게 쉬워? 그것도 귀찮은 일이야. 상당히. 급한 성질에 끓어오르는 분노와 쏟아내고 싶은 말을 참으며 일까지 해야 한다니.
나같이 사회성 박살난 느림보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까 차라리 그 군인 같은 프셉이 나았다고 회상하잖아. 대충 웃고 농담하다가 확 얼어서 혼날 준비 하느니,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잔뜩 긴장해서 칼날 걷듯 배우는 게 낫다니까?
이 판에서 무결한 피해자와 가해자를 나눌 수 있을까. 안타깝고 짠한 건 맞지. 하지만.. 일은 장난이 아닌걸. 라떼 어쩌고 하는 꼰대라고 해도 할 말 없다. 그 꼰대에 못된 지지배 같은 멸칭보다도 더 확실한 사실이니까. 내 몸은 하나고, 여기는 바쁘고, 시간은 항상 없으며, 환자는 가만히 누워 똑같은 상태를 유지하지 않으며, 인력은 늘 부족하다는 거. 그리고 이 체계는 안 바뀐다는 것까지.
그래. 안 바뀌니까, 이 안 바뀌는 곳에 계속 있을 신규를 쓸데없이 흑화시킬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게 어떻게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 같이 시궁창에서 난투극을 벌이고 있다는 것만은 잊지 말자고. 아직은 삐약삐약 유니폼만 입은 학생들이나 다름없지만 그 언젠간 그들도 똑같이 짬이 쌓일 테니.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알아도 열이 받는 건 어쩔 수 없다. 내가 무슨 나이팅게일이나 테레사 수녀라서가 아니라, 그냥 이건 제 때 제대로 해야 하는 일들의 총합이잖아. 큰일 나. 그래서 어떤 의미부여를 해도 나는 꾸준히 화가 날 것이다. 타고나기를 성질이 더러워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간호사가 전부가 아니니까.
유니폼을 벗으면 내가 거기서 안 타는 장작이었든 장작에 기름을 붓는 사람이었든 그런 건 아무 상관이 없게 된다. 그래서 그러지 않기로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간호사 얘기였지만, 그 하루 열 시간 여덟 시간이 나와 그들의 전부는 아니니까. 이건 그냥 직업이고, 일이니까. 내일이라도, 그녀들은 캐비닛 속의 짐을 모두 싸들고 이 병원에서 종적을 감춰버릴 수도 있고, 나도. 뭐. 그러지 말란 법 없잖아?
쎄쎄쎄 따위 찾아가지 않은 채 태움이고 인계고 나이트도 아무 상관도 없는 세계로 되돌아갈 수 있는 거니까. 그래버리면 끝이잖아. 어차피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각자의 가슴 속에만 쓸데없이 남을 일, 병원이 부채질하는 이 불길에 굳이 가담하지 말자고. 이 판을 짠 당사자는 애초에 관심이 없다니까?
이래놓고, 환자 안전과 사고? 부주의? 말은 쉽지.
항상 쥐어짜듯 간신히 배치해놓은 인력, 실수가 전혀 이상하지 않은 업무 강도. 다 내 탓으로 내쳐놓은 건 그쪽인데 왜 내가 뺑이치며 내적 갈등까지 해야 해.
맞잖아? 내 말 틀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