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2. 왜 남의 집처럼 서 있어요

뉴비로 살아남는 것 말입니까?

by 이븐도





자, 행동강령입니다.


1. 불쌍하고 안쓰러운 분위기를 연출해라.

2. 어설픈 거짓보다 확실한 진실을 말해라.

3. 최소한의 SNS만 최소한으로 운용하라.

4. 안 해도 되니까 하려는 척을 열심히 해라.

5. 모든 사람들을 과할 정도로 웃어른 대접해라.

6. '그래서 어쩌라고'라고 되물을 수 없게 대답해라.

7. 배운 것을 머리에 넣고 익히는 척을 성심성의껏 해라.

8. 곳에서는, 직장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되어라.

9. 퇴근 후에는 가능한 멀리멀리 떠나라. 거할 게 아니면.

10. 아프지 말자. 몸도 마음도.






토요일 세 시였고 나는 집에 가고 싶었다. 신규는 집에 갔다. 그녀는 아직 수습 신세라 오버타임을 할 수 없다.

"오늘도 걔가 데리러 오나?"

"그렇겠죠."

텀블러 좀 헹구고 옷도 갈아입고 싶은데 아무도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지 않는다. 집으로 가야 할 데이번도, 병실로 가야 할 이브닝번도 그냥 앉아 있다.

"공부 진짜 안 해. 그치 않아요? 너무 안 해. "

"저 진짜 걔 때문에 빠진 살이 다시 돌아오질 않아요."

"아까도 그냥 싱글벙글해서 가던데? 응사했으면 좋겠어."

"주말이지. 데이트하러 가는 거네."

(진짜 집에 가고 싶었다)


"연애 할 수 있지, 근데 저렇게 공부 안 하면서 그러고 싶나. "

"그러니까요."

"이해가 안 돼. 나는."

"연애요?"

참나, 연애하는 것까지 뭐라고 하나. 너무하네 싶어서 끼어들었는데.. 물론 나는 이제야 막 신규를 벗어난 쪼렙이라 뭐 의미 있는 대거리를 할 수는 없다. 딱히 할 필요도 없고.

던져 놓고 머쓱해졌다. 딱히 이 대화에 끼어들어서 할 만한 말이 없거든. 아, 남자친구 있구나.

"너 몰랐어? 카톡 프사 배사 다 걔잖아. 어떻게 모르냐."

아무리 인원이 없기로서니 그래도 20명에 육박하는 병동 단톡 사람들 프로필을 일일이 눌러보지는 않는데. 흠.

"책임감도 없고, 아직 자기 환자라는 의식도 없고. 그냥 사람들이랑 친해지고 싶대요, 어떠냐고 물어보니까. "

"친해진다고? 여기가 무슨.. 이제 독립할 때 아니야? 어쩌려고 그래, 걔는?"

"그때도 이브닝 끝나고 가니까 벤치에서 누가 기다리던데. "

"누구, 남친?"

아이고, 신규야. 제발.

"걔 맞겠지, 뭐. 오늘도 놀러 간 거 아니야?"

"모르죠. 아. 데이트를 하든 뭘 하든.. 일이나 똑바로 했으면 좋겠어. 홧병나겠다구요. 수쌤은 내가 걔 태우는 줄 알아요."



뭘 어떻게 얼마나 모르고, 얼마나 응대를 개떡같이 하고 (안 하고), 못 알아듣고, 안 듣고, 또 모르고, 느리고, 안 듣고, 공부 안 하고, 정말 공부 안 하고, 또 공부를 안 하고.. 뭐 그런 이야기를 그들은 40분은 했다. 나는 정말 집에 가고 싶었다. 정말로. 일부러 이 대화에서 내가 말한 부분을 빼낸 게 아니라 나는 정말 할 말이 없었고 그냥 빨리 내려가서 버스를 타고 이 사람들과 이곳과 작별하고 싶었다. 진심으로.

그러나 나는 이제야 쌩신규를 겨우 벗어났으니까. 하핫. 어떤 권력도 없다. 별로 그 뒷담화에 끼고 싶지도 않았고 굳이 그 신규에 대해 뭘 더 알고 싶지도 않았다.



하하. 그래도 응급사직이라니.

그래도 병원 앞 남자친구라니. 그것도 같이 퇴근하는데.

야. 나 모른 척하라고 하거나 어디 숨어 있다가 나오라고 했어야지. 아휴.. 멍청하긴. 그걸 들키니. 멀었다, 멀었어.






"잘 지내요?"

"넵.. 하하."

"신규 선생님 또 들어왔죠? 온 것 같던데?"

"네, 오셨어요."

"좀 할만하겠네. 그쵸?"

그리고 그녀는 내 표정을 보고, 아니야?라고 덧붙였다. 신규가 새로 들어온 것과 내가 일이 익숙해지는 것은 사실 아무 상관관계가 없는 일인데, 나는 그 의미를 바로 알아들은 스스로가 좀 싫었다. 신규간호사들의 교육을 위해 주기적으로 병동을 방문하는 그녀는 또 봐용, 하고서 배식을 받아 저쪽으로 갔다. 나는 뻣뻣한 그 모습 그대로 인사했다.

이게 맞나. 그게 맞겠지.


나는 실제로 그 신규 선생님이 들어온 후부터, 그러니까 내가 병동의 '막내'를 탈출한 시기쯤부터 나에게 '옵세'하게 구는 인간들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확연히 느꼈다. 부정하고 싶었다. 내가 오면 다른 이야기를 하다 입을 닫던 그녀들이 주제를 막론하고 그냥 하던 대화를 이어갔고 이따금씩 나를 그 대화에 참여시켰다. 딱히 어느 부분으로 봐도 영양가 있는 대화들은 아니었으나 그것이 한 가지는 시사하고 있었다.



아, 나를 조금 받아들여 주는 중이구나. 그리고 그걸 느꼈을 때 나는 한 번 더 스스로가 싫어졌다. 재작년 6월쯤이다.






어떤 가설이 있다. 내가 세운 것들.

나는 유효기간 지난 수액 그 자체이며, 함께 일하기 싫은 군식구이며, 할 줄 아는 게 없어 가여운 동시에 몹시 쓸모없는 존재라고. 모두의 짜증을 언제든 촉발할 수 있으며 이곳은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성질을 다채롭게 돋우기 좋은 환경이라는 사실을 항상 인지했다. 서술한 것들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렇게 설정해 놓은 게 나한테 큰 마이너스가 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지금 돌아보면 그렇다.



나는 화장을 하지 않고 출근했다. 렌즈 대신 안경을 쓰는 날이 더 많았다. 내가 뭔가를 몰랐을 때, 그거 바를 시간은 있고 저번에 가르쳐준 이걸 다시 볼 시간은 없었나, 같은 생각을 할 여지조차 그들에게 주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악마도 천사도 아니다. 보통의 직장인들이며 중간연차들이고 고연차들이고 막 적응을 끝낸 신규들이었다. 프로필 사진을 바꾸지 않았고, '오, 잘 어울리네' 싶은 느낌이 드는 옷들은 입지 않았다. 약속이 있으면 기숙사에 들러 갈아입고 화장을 했다. 고등학생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출근 버스를 타는 순간 입꼬리를 축 내렸다. 인생에 대한 의지도 같이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내가 잘 모르지만 모르면 안 되는 환경에서 또 하루종일 위축된 상태로 일할 생각을 하니 모든 의욕이 가라앉았다. 애초에 그런 게 있기나 했던가, 싶게. 일? 내가 일을 할 줄 아나, 지금?




쭈뼛거리며 탈의실 문을 열고 가능한 한 빨리 옷을 갈아입었다. 병동 조무사 선생님은 그런 나를 보고 '왜 그리 남의 집처럼 서 있어?' 했다. 봄이었다. 나는 4월 입사였고, 그때 까만 반팔티를 입고 있었다. 지금은 그런 말을 들으면 막 출근해 놓고서 '남의 집 맞는데요, 집 가고 싶어요. 보내 주세요.' 같은 헛소리나 실실 웃으면서 하겠지만, 그땐 아니었다. 정말로 남의 집이었고 나는 그 말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열심히 생각했다. 하하, 아니에요. 이러고 웃었으려나.






당시에 만났던 남자친구는 '내가 창피해? 아무도 신경 안 써.'라고 했다. 그런 게 아니었다. 충분히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었지만 절대 그런 게 아니었다. 나는 병원 앞에 차를 끌고 온 그가 절대 거기서 내리지 않도록 신신당부를 했다. 그는 가끔 응급실 앞의 기둥 같은 데서 숨었다가 튀어나올 때가 있었는데, 나는 기겁하며 주위부터 살폈다. 그래, 맞아. 아무도 신경 안 쓰지만 그래도 아무런 건덕지도 안 주고 싶단 말이야. 제발. 그런 뜻이 아니고.. 그러나 그는 진심으로 서운해하는 눈치였어서 나는 꽤 난처했다.



나와 같은 시기에 입사한 동기는 나처럼 우중충하게 살지 않았다. 인스타그램도 올렸고 시시때때로 프로필사진도 바꿨다. 1년을 꽉 채우고도 반년이 좀 더 지난 시점에 나는 내가 그때 너무 모두를 악마로 만들고 혼자 오버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지각색의 신규들이 들어오고, 그들에 대해 병동 사람들이 떠드는 양상을 지켜보며 나는 그때의 내 행동이 그렇게 틀린 노력은 아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때는 못 했던 이야기들을 들었고, 나는 이제 막 들어오기 시작한 신규보다는 이 병동에 있었던 사람들의 편에 속해 가고 있었다.


나를 가르쳤던 프리셉터는 내 동기를 두고 '걘 너무 꽃밭이라니까? 그런 걸 거기 왜 올려. 생각이 짧아, 어려.'라고 했다. 나 역시 다른 곳에서 이런 말을 들었겠지. 하지만 나는 할 수 있는 한 숨을 죽여 살았다. 수험생도 아니고, 스무 살 한참 넘긴 성인이 그리 살 수 있는 한계치였다고 느낀다.

인정하기 싫지만, 좋기도 했고 싫기도 했다. 이게 뭐라고, 참나. 뭐라고? 뭐, 긴 하다. 이 친분이, 이들이 나를 고깝지 않게 생각하는 그 감정 한 가닥이 나를 미치게 바쁜 환경에 혈혈단신으로 던져놓지 않는다. 그러게, 이건 일종의 생존 전략이나 다름없었다.




저기, 잘 지내니. 당연히 잘 지내겠지. 니가 서운하게 생각했던 거, 유난이라고 말한 것들. 다 여기서 현실이 됐다니까? 너랑 만날 때도 똑같이 여기 있던 사람들이야. 그 친구는 아주 전방위로 욕먹고 있다고. 나 역시 뒤에서 그렇게 욕은 먹었겠지만 이렇게나 따로 어그로가 끌릴 주제로 먹진 않았어.






신규 선생님과 함께 퇴근했다. 사실 나는 어떻게든 따로 가려고 했는데 그녀는 그 사인을 못 알아먹은 건지 아니면 그녀가 나만큼 꼬인 성정은 아니라 같이 버스를 타는 게 아무렇지도 않은 건지 알 수 없었다.


어디 살아요, 뭐 해 먹어요, 본가가 어디랬죠, 아하. 오프 때 뭐 해요. 2년 전 인터뷰당하듯 듣던 질문을 내가 그대로 하고 있었다. 그들도 이런 심정이었을까. 그녀는 카페에 간다고 했다. 공부하러. 이쪽으로? 네에. 왜 여기로 가요. 더 멀리 가요. 멀리요? 간호사들 너무 많지 않아요? 하하. 그건 그래요. 많아요. 진짜. 그치. 진짜 많지. 나는 너무도 조용하고 귀여운 카페의 테이블 위에 듬성듬성 '프셉마음' (간호사들의 실무에 적용되는 임상지식을 정리해 놓은 책이다. 안 산 사람 없을걸?)과 빽빽하게 필기된 공책이나 패드가 놓여 있는 것을 보고 몇 번이고 음료를 원샷한 뒤 나온 전적이 많았다.


그런 일이 반복되고부터는 이 동네에 희망을 버렸다. 동기와 커피를 마실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산책을 할 때도 이곳의 식당이나 카페는 피해야 했다. 혼자 놀 때? 당연히 멀리 가야 했다. 멀수록 좋았다.






선생님, 프사에서 생네컷 내려요, 제발. 아니, 환장하겠네. 거기, 워치 화면에서도 빼. 차라리 너네 집 강아지나 고양이 사진은 어때요, 니 프셉이 니 욕을 얼마나 하는지 아니. 걔 싸가지가 보통 없는 게 아니라서 성질 더럽게 구는 건 놀라울 일도 아니긴 하다만 돌아다니면서 입 터는 걸 생각해야지. 아휴. 여론이 얼마나 안 좋은지 알아?


신규라서 그런 게 아니야. 그냥 건덕지를 주지 마요. 제발 멀리멀리 떠나. 가능하면 전철 노선이 다른 곳으로 가.

데이트? 딴 데서 해. 지난번처럼 올리브영 앞에서 시시덕거리다가 또 걸리지 말고. 응? 화장할 거면 맨날 하고 아니면 맨날 하지 마. 하는 날은 너 놀러 가는 줄 안단 말이야. 뭐가 어떠냐고? 넌 지금 그런 걸 가릴 처지가 아니야.


그래. 인스타 스토리 올리지 마. 동기들이랑 밥 먹은 거 스토리 올리지 마. 술자리 인증샷은 더더욱 안 돼. 병원 유니폼 입은 이미지 사진 포스팅 올리지 마. 일도 못하는 것들끼리 꼴값이라고 한단 말이에요. 알아요? 아니면 다 비공개로 돌려, 제발. 그래도 공부하러 간다고는 하네. 실수한 걸 복기하든 강가로 소풍을 가든 네 일이지만 항상 대답만은 그렇게 계속해야 해요, 알겠어요?라고는 안 했다.




나는 버스를 함께 타는 7분여를 그렇게 참았다. 그냥, 병원 사람들 많아서 스트레스 받으니까 다른 동네 가시라는 얘기만 했다. 얼굴 보이고 아는 단어 들리면 짜증 나잖아요, 퇴근했는데. 안 그래요? 그녀는 헤헤, 아니에요. 했다. 아니기는. 왜 아니니. 처신 좀 잘 해요, 너를 위해서. 최대한 불쌍하게 다니란 말이야. 더 이상 숨을 죽일 수가 없을 정도로 안쓰러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란 말이야.


같잖다고? 나도 내가 같잖다. 당시에 되도 않는 유난을 떨었다는 생각도 분명 든다. 하지만, 어떻게든 여기서 버텨서 경력이든 잔고든 만들어낼 생각이라면 어떻게든 짜치는 요인들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게 낫지 않겠는가.






당신이, 내가 잘못했다는 게 아니다. 어떤 행동이 직접적인 교정 대상이라는 뜻도 절대 아니다. 그냥, 먹이를 주지 말란 말이야. 세상에는 꼰대가 너무 많다고. 앞뒤 없는 무논리를 연배로 덮은 감정적이고 미성숙한 인격체가 발에 채인단 말이야. 대학 졸업하고 자기 힘으로 자소서 쓰고 면접 봐서 직장에까지 들어온 사람이 애인을 사귀든 매일매일 사교의 장을 열든 대체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연애를 하는 것과 직장에서의 실수의 빈도가 어떤 연관이 있단 말인가.



4,5년 차가 되어서 이제 들어온 지 두 달 된 사람을 나무라고 비난하는 건 초등학교 5학년 짜리가 2학년 친구의 수학익힘책을 보고서 '이렇게 쉬운 걸 왜 못 풀어?' 하는 것과 비슷하다. 상당히 고깝고 부끄러운 짓이지만 그들은 그걸 모른다. 그런 유치한 짓을 그만두어야 하지만 그들은 영원히 모른다. 알고도 모른 척한다. 그들이 이 작은 사회의 왕초니까. 물론 직장은 학교가 아니다.

그러니 아직 '물이 덜 든' 당신은, 그래도 돈 받고 근무하는 중이니 아예 교실에 앉아 수업 듣는 학생처럼 모든 걸 손 떼고 보지만 않으면 된다. '우당당탕, 아이쿠야. 선생님. 히잉' 하는 모습이라도 열심히 보이면 중간은 간다고. 중간이라도 가는 게 어때. 그 정도만 해도 정말 어디냐 이 말입니다.






왜 이런 염병을 떨어야 하느냐고? 호락호락하지 않으니까. 일은 절대로 혼자 할 수 없으니까. 당신은 언제나 누군가의 액팅 한 번, 도움 한 번, 목소리 한 번, 전화 한 통이 간절해질 것이니까. 그건 이렇게 당신이 구르고 구르는 안쓰러운 꼴을 보며 성장 (이런 걸 성장이라는 아름다운 단어로 표현해도 될는지는 모르겠다) 하는 모습을 지켜본 거룩하며 유능하고 전지전능한.. 선배님들이 해 줘야 하는 일이니까.



물론, 당신이 어떻게 해도 욕을 먹는 총량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뉴비는 행동거지와 모양새 하나하나가 핫한 화젯거리가 된다. 상대적으로 딱 부러지는 모습을 보인다면 '뭣도 모르는게 싸가지가 없다'고 까일 것이고, 흐물텅해 멍청한 모습을 보인다면 '사람 속 터지게 하면서 공부는 도대체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라며 까일 것이다. 미소를 자주 보인다면 '상황 파악도 못 하고 웃는 걸로 해결하려 들어서 열받는다'고 할 것이고, 풀이 죽어 울상을 하고 있다면 '지가 뭘 하는 게 있다고 맨날 죽상인지 모르겠다' 고 할 것이다. 아. 그러네. 어떻게 해도 까인다.


하지만.. 그래도, 나중에라도, 아홉 번 잘했는데 한 번 못했을 때 '그래, 너 요새 공부 안 하지? 쟤 이틀 전에도 성수동 간 거 인스타 올렸던데. 들어온 지 두 달 / 세 달 / 반년 / 일 년 됐다고 일이 만만한가 봐. 선생님, 공부는 해요?' 같은 말은 안 들어도 되잖아. 음. 안 들을 수 있나? 글쎄.. 그렇다. 안 들을 수는 없는 것 같다.

아무튼. 그러니까, 제 말은요. 그래도 쓸데없는 뒤탈은 좀 줄이는 게 낫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제발. 안쓰러워서 그래.






병동을 나와 나란히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다른 신규 선생님이 말했다. 어떻게 선생님처럼 해요. 응, 뭐라고?라고 묻지는 않았다. 다만 그녀를 지그시 쳐다보게 됐다. 네?

저.. 독립하면 어떡해요. 아, 내가 이런 말을 그대로 들을 만큼 시간이 지났구나. 물론 나는 입사한 지 이제야 3년을 겨우 채워가는 중이다. 하지만 어쨌든 그 친구에게는 내게 그렇게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지. 내가 막 들어왔을 때 딱 그 연차의 사람들이 그래 보였듯이.


그리고 나는 들어왔던 것과 너무도 똑같은 대답을 했다. '그냥 하다 보면 돼요'라고. 와, 이렇게 토 나오는 대답이라니. 나는 곧바로 '어우, 아니에요. 그, 다 똑같아요. 저도 맨날 퇴근 늦잖아요.'라고 너스레를 떨며 덧붙였다. 아니야, 제발. 나는 그런 잘난 선배가 아니야. '맨날 성질내면서 일하는 거 보면 모르겠어요? 날 덜 봤구나? 아까도 진짜 개빡쳐서 소리 지르고 싶은 거 참았어요.' 하하.

그러나 그녀는 마스크 위의 눈을 조금만 휘며 웃는 척했다. 들어온 지 두 달. 나는 어땠더라. 그래. 저렇게 잔뜩 절여진 배추마냥 쳐져서 다닐 때였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다시 깨달았다. 아, 나도 꼰대 다 됐다. 알아서 하겠지. 쟤라고 정말 힘들어서 저러겠니. 속으로는 그냥 빨리 집 가서 엽떡이나 시켜 먹겠다는 생각일 텐데.






나는 그녀들의 속마음을 알 수 없다. 누구의 것인들 그렇겠어. 툭하면 '공부는 했어요?' 하며 시비를 걸듯 말하는 그들이나 '너무 힘들어요'라고 그렁그렁히 눈으로 말하는 그들의 것들 모두.


애매한 연차의 나는 그 둘을 언제나 오가는 중이다. 다 큰 성인의 사생활과 옷차림을 꼬투리 잡아 뒷담화하는 그들이 악마라는 것도 아니고 (그들은 이 병동, 나아가 병원의 환자와 보호자들과 기타 등등에 꼭 필요한 인력이다) 세상 큰 상처를 품었거나 '뇌가 맑아 보이는' 눈빛을 하고 잉크도 안 마른 깨끗한 사원증을 패용한 그들이 천사나 어린 양 (내가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되지, 하고서 숨을 참았다 내쉬는 날들이 늘어 간다. 나도 여기서, 나이가 들었다) 이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나는 누구보다 찌질하고 피해의식 가득한 '신규 시절'을 보냈다. 나같이 우스운 연극을 벌인 사람이 몇이나.. 아니, 꽤 많이 되려나?






어쩌겠는가. 돈 벌어야지. 취직했잖아. 입사했잖아. 쟤들도 다 별 것 아니었잖아. 나처럼, 당신처럼. 지금도 별 것 아니다. 그냥 하루하루 버티는 거다. 속으로 맘껏 비웃되 같은 실수를 하지 말고 열심히 '하는 척'을 하면 된다. 하는 척하다 보면 실제로 그렇게 된다는 말이 있잖아.




참나, 어이가 없다. 내가 뭐라고.

하지만 그곳이 어디든, 관둘 때 관두더라도, 어쨌든 그 돈마저 미워할 수는 없잖아. 눈물 젖은 월급을 쓰긴 좀 청승맞잖아. 최소한으로 울고 우울해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과거의 내가.

어쩌면 이걸 읽는 어떤 땅의 뉴비인 당신이.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