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구내식당의 점심 반찬이

잘 나온 사건

by 이븐도 Feb 13. 2025
아래로







;)




이건 기분이 좋아서 남기는 글이 맞다. 굉장히 걱정했으나 세 시간을 자고 데이 근무에 무사히 출근했기 때문이다. 역시 자리에 눕기 바로 전에 커피를 마시고 양치한 후 바로 눈을 감는 방법은 가끔 꽤 유용하다.

눈이 대충 녹았다 얼었다 하는 중이다. 공원에 가면 호수가 다 녹아 있을 것 같다. 어이, 우리 꽤 오래 못 봤지? 내가 좀 바빴어. 심신이 여의치 않았다구.











이른 새벽과 밤의 출근길, 보안요원과 정말 몇 명의 환자들 말고는 텅 빈 1층 로비로 들어가 지하의 세븐일레븐에서 칸타타를 한 병 사서 쥐고 엘리베이터에 올랐을 때의 기분. 그 뚱뚱한 원통형의 따끈한 물체가 마음을 가라앉혀 줄 때의 느낌. 비록 옷을 갈아입고 병동으로 들어간 직후 때에 따라 산산조각 나기도 하는 안정감이지만.


유니폼을 꺼내 막 갈아입었을 때 나는 냄새. 세탁소와 따끈한 다리미의 버석한 느낌이 난다. 오늘의 나와 다른 사람들의 더러움을 감당할 깨끗함 (사실 깨끗한지 안 깨끗한지는 알 수 없다. 어느 병동의 이름 모를 약봉투나 라벨 등이 주머니에서 나올 때도 있다. 그냥 그렇다고 믿다. 멀끔히 세탁되었을 거라고)을 입는 기분.


일하다 고개를 들어 마주친 병원 맞은편의 도로와 저쪽의 아파트 단지와 학교와 뒷산에 눈발이 잔뜩 흩날리고 있을 때. 아무 친분도 유대도 사실 없는 사람들이 눈이 온다는 이야기를 한 마디씩 나누는 순간. 그 새삼스러운 주제가 주는 작은 호들갑스러움. ER에도 애들 안 오겠, 하는 말을 누군가 꺼낸 후 '야, 빨리 퉤퉤 해!' 하는 야유 아닌 야유가 도는 매번 똑같은 왁자지껄함이 편안함을 주는 날.







밤에도 늘 차렷 자세를 한 채 뜬눈으로 누워 있고 가끔 눈에 눈물이 고여 있던 빡빡머리 소녀가, '퉁퉁퉁 하는 소리 계속 들리는 통에 혼자 들어가 있어야 돼, 할 수 있어? 안 무섭겠어?'라는 설명을 듣고도 자는 약을 쓰지 않고 용감히 MRI를 찍으러 가겠다고 말한 순간. 이어 커다란 오리 인형을 옆구리에 끼고 아빠와 손을 잡고 폴대를 끈 채 복도로 나왔을 때의 질문과 아빠가 대신한 대답. 그런데 오리는 왜 데려가, 얘랑 같이 가면 안 무섭대요. 그리고 그들의 뒤에서 '저 오리 눈알이 금속인지 아닌지도 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라고 귀에 속삭인 어떤 선임의 농담 아닌 농담.


나 직전에 정수기를 쓴 사람이 있음에도 얼음이 아낌없이 텀블러 속으로 떨어질 때의 상쾌함. 아싸, 하게 되는 그 기분. 재작년 성탄절에 함께 붙였으나 산타는 어디 가고 코만 남은 하얀 루돌프가 손을 흔들던 병동 입구, 세상 모든 일이 나한테만 닥치는 것 같은 근무가 지난 후 어제는 나, 오늘은 너 하며 일이 덜 끝난 동기를 기다리는 배고프고 피곤하고 홀가분한 시간, 해가 길어져 퇴근해 집에 왔는데도 해가 중천일 때의 기분, 본관의 회전문 바깥의 공기가 더위를 벗고 한층 가벼워졌음을 느꼈을 때의 해방감.


주사가 꽂힌 손이나 다리를 만지기만 해도 복도의 페인트가 다 쩍쩍 갈라질 것처럼 우는 아기가 '여기 곰돌이 봐, 곰돌이. 우와, 이 곰돌이 안녕 안녕 해주고 새로운 곰돌이 만나자, 와, 새로운 곰돌이는 무슨 색이야, 초록색이잖아? 자, 파란색 곰돌이 안녕 안녕' 하는 얕은 말주변에 속아 넘어가 울음을 그쳐 갈 때. 그 조마조마하게 커진 성취감.







낮 동안에는 잔뜩 보채고 난리를 치다 곤히 잠든 애들이 내가 커프를 감고 숨죽여 혈압을 잰 후에도 깨지 않았을 때의 안도감. 앞니가 하나도 없어 누가 이빨 다 훔쳐갔냐는 물음에 '티과선생님이요'라고 돌아온 대답, 누런 강아지 인형을 가리키며 얘는 이름이 뭐냐고 묻자 '시바견이요' 라던 보호자의 답, 그건 이름이 아니잖아요, 했더니 '얘는 그 이름을 자기가 만들어낸 줄 알고 있어요' 라던 조용한 진실.


아무리 짜증 나는 상황이 있어도 '네에-' 하며 일어나는 '쌉 T'인 동기를 보며 느끼는 어떤 경외감, 매일 기록지에 초코다이제가 적혀 있던 친구에게 새로운 세계를 경험시켜 주고자 '밀카 무'를 준 다음날, 나에게 휴지에 싼 초코다이제 대여섯 개 뭉치를 주었던 왕고집쟁이에 떼쟁이 환자. 무던하게 있다가 조용히 떠나는 몇몇 청소년 장기환자들, 여덟 시에 주고 간 아침약이 열 시 반에 퇴원 설명을 하러 들어가도 세상 모르고 자는 그들 옆에 그대로인 그 광경, 그 병실의 갓난아기가 그렇게나 울어대는데도 깨지도 않는 것을 볼 때의 신기함.

토요일이나 일요일 오전, 부스스한 얼굴로 사복을 입고 조용히 인사하는 그들을 보며 들던 이상하고 새삼스러운 감정.












입사 전의 병원 합격자 익명 단톡방에서의 내 닉네임은 '삼보일배'였다. 붙여만 주면 정말 세 걸음에 한 번 절을 하는 심정으로 다니겠다고 했다. 그땐 그랬지. 정말 그땐 그랬다. 일하며 만나는 광경의 그 어느 것도 그때는 예상하지 못했다. 사실은 다 별 것 아니기도 하지만. 그러나 지나고 나면 언젠가는 떠오를 듯한 것들이 있다. 나열한 것들이 그렇다.












뭐만 하면 인생이 어쩌고 하는 사람은 잔뜩 헛늙은 사람이라고 드라마에서 그랬는데 나는 늘 그러고 있다. 언제나 똑같은 것 같았지만 매일이 달가끔 신기할 때도 있고, 하루하루 빛나는 것 같았는데 사실 다 착각이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 인생이 뭘까, 하게 되는 것이다.


이국종 교수의 몇 년 전 인터뷰가 당시에도 인상 깊었고 지금도 그렇다. 점심 반찬이라, 점심 반찬. 맞지. 그만둘  아니라면, 당장 이 일상에서 하차해버릴 게 아니라면 어떻게든 많은 것들을 아름답게 기억하고 싶다. 그러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순간들이 많잖아. 머리끝까지 분노가 차오르고 짜증과 초조함이 느껴질 때, 왜 나는 여기서 이러고 있는지 하는 근원적 의문이 올라오려 할 때가 사실 더 잦다.

구태여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남는 것들이 많다. 하지만 그런 것들 말고, 어차피 다 흘려보낼 날들, 아까워서 골라내어 잡아채고 싶은 것들도 있다. 나열하고 보니 정말 더 별 것 아닌 몇몇 장면들이다. 그것들이 나를 정말 가끔, 진짜 가끔 혼자 웃게 만든다. 정말 정말 가끔이지만.












좋은 간호사 같은 게 되기는 틀렸다. 정장을 입고 구두를 신고 차례를 잔뜩 긴장한 채 기다렸던 그곳에서 다시 교육을 들었다. 그땐 나도 저렇게 연단에서 멋지게 이런저런 임상지식을 전해 주는 사람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무슨 논리로 그랬지?) 멋지게, 임상, 지식 세 조건 모두 다 틀려먹고 제발 제시간에 끝내 달라는 생각만 하며 듣고 싶은 것만 골라 듣는 불량하고 부끄러운 스스로를 보며 글다는 걸 깨달았다.

다음 생에는 저런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고 동기 단톡방에 물었더니, 누군가 다음 생의 간호사는 없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다음 생은 무슨 다음 생. 어떤 직종이든 구태여 그걸 다음 기회로 미룰 필요까지나 있나.







하루하루를 지탱하기도 때로 힘들다. 재미있어서 일을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하지만 나를 위해 이런 걸 찾아내 기억하는 정도의 페널티는 괜찮잖아. 내일도, 모레도, 다음 주에도 나는 아직 출근해야 하니까. 붙여만 주시면 '삼보일배'하겠다던 이곳으로. 너무나 싫은 곳에서 매일을 보내는 건 나에게도 이곳의 그들에게도 못할 짓이니까.


영원한 절망 같은 건 내 '현생'에 없다. 그렇게 믿고 지내야지. 또 다른 점심 메뉴들이 언제나 등장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야지. , 그렇게 생각한들 안 생각한들 달라질 건 없는데. 밑져야 본전 아니겠어.








+ 


                    





이전 13화 공주의 아버지들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