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편 어딘가가 고플 때
아무튼 궁금하다. 그걸 사십 개, 서른 개 삼킬 동안의 기분.
차라리 불행을 한껏 끌어당겨 종결시키겠다는 그 노력.
내 월급에서 관리비가 빠져나갈 따뜻한 방에서 키보드를 친다. 인간은 바라는 게 많아 슬프고 행복한 동물인가 봐.
간혹 있다. 약물 중독으로 진단명이 뜬 이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왔고 일단 내가 본 몇 안 되는 경우는 대개 여자아이였다. 개수가 의문이었는데, 37개. 40개, 38개. 뭐 여하튼 40개 선에서 정리되는 타이레놀을 삼킨 애들이었다. 아침에 채혈을 하려고 보면 손목에는 겹쳐 그은 흉이 있기도 했다. 재원기간이 길지는 않았다. 폐쇄병동으로 전동을 간 사람도 있었다. 보통 병원에서는 자, 타해 위험성이 크다고 판단이 되면 그쪽으로 전환해 입원을 유지한다.
그런 일을 한 이유들. 아마 한 가지로 설명할 수 없고 그 정도로 끝나지도 않을 그 사유들 말고, 그때의 기분이 한 번씩 궁금할 때가 있다.
달리다 멈춰 숨을 고를 때. 갑자기 오늘 몫의 불안 같은 것이 스치려 할 때, 박동이 많이 뛸 때, 시간이 제 속도로 간다는 걸 온전히 느낄 수 있을 때. 불이 켜져 반짝이기 시작하는 풍경에 닿는 하얀 내 입김이 보일 때. 그 차가운 숨 한 번이 깊게 새겨질 때, 과연 그 아이들은 그걸 몇 개씩 삼킨 것인지 궁금해진다. 세 개? 다섯 개? 목구멍의 한계가 있으니 열 개씩 먹기는 힘들었을 텐데. 하여간 십 초 안으로는 끝날 수 없을 그 행위를 할 때,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안 했을지 의문이 생긴다.
이 숨이 길고 진한 것처럼 그들이 삼키려 했던 약 개수도 가볍지 않았을 텐데. 그건 정말 짙은 절망과 의지였을까, 찰나의 후회도 접어 버릴 만큼의 객기였을까.
퇴근하면 냉장고를 연다. 늘 식사를 안 한 상태고, 뭐가 있는지 다 아는데도 일단 연다. 며칠 전에 아몬드 우유를 묶음으로 샀다. 몇 개는 냉장고에 넣어 두었고 몇 개는 그냥 부엌에 놓여 있다. 계란, 잔멸치볶음, 김치, 멸치볶음, 방울토마토, 다진 마늘, 자몽 주스, 알룰로스, 우유, 생수, 보드카, 알로에젤, 케첩, 마요네즈, 머스터드. 홀그레인 머스터드, 뜯지 않은 소시지, 통에 든 패드 두 종류, 귤 두 개, 잔뜩 잘라놓은 사과가 든 긴 밀폐용기. 내가 산 것과 엄마가 직접 썰고 손질하고 담아 준 것들이 혼재된 작은 공간.
손에 집히는 걸 먹는다. 귤일 때도 있고 요즘에는 아몬드 우유일 때도 있고, 아랫칸에 가득 찬 프로틴 스낵들이기도 하다. 에어프라이어 속의 고구마일 때도 있다. 옷을 갈아입지 않은 채 일단 의자에 앉는다. 집에 돌아와 기분이 좋을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안도감이 드는 동시에 멍할 때가 많다. 퇴근은 그런 거잖아. 일에서 온 온갖 스트레스들과 번뇌의 잔상들을 방을 쳐다보며 정당화한다. 이게 다 노동의 대가라고. 옷을 갈아입고 달리러 나가거나, 그대로 더 널브러져 있는다. 잠시간이지만 생의 즐거운 일들이 다 빛을 잃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런 것을 처음 받아봐서 나는 기분이 좋았다. 약을 먹고 난동을 부리고 식음을 거부하고 하여튼 거식증에서 비롯된 정신과적 문제를 다채롭게도 가지고 있던 소녀가 나한테 쪽지를 줬다. 결국은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입원한 곳, 그런 일을 하라고 있는 사람인 간호사. 그 친절과 말에 감동해서 쪽지를 쓸 정도의 성정을 가지고 있으면서 왜 몸을 긋고 구태여 약을 그렇게나 힘들게 삼켰을까 궁금했다.
의문을 가진 후 몇 초 안 되어서 이해가 됐다. 아. 그래서 그랬을 수도 있겠구나. 아무튼 영향을 받기 쉬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겠다. 잘 흔들리고, 빨아들이고, 받아들이고,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쉽게 떨쳐내지 못하고.
나는 표지가 마음에 들어 두 권을 샀던 다이어리 중 뜯지 않은 것을 작은 종이에 몇 자 적은 것과 함께 선물로 내밀었다. 즐거운 일들을 적고, 가끔 돌아보면 그래도 미소 짓게 되지 않겠느냐고. 그냥 그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만성질환이 아니니 다시 볼 가능성도 낮았고 그녀가 내게 그 노트에 적은 걸 숙제검사하듯 보여줄 일도 없었다. 그 애가 방구석이나 카페에 앉아서 그런 걸 열심히 적는 타입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으나, 마음이 쓰인 내 선에서의 최선이었다.
그녀는 아이라인을 길게 그리고, 마스카라도 하고, 굽도 조금 있는 것 같은 신발을 신고, 정말 가뿐해 보이는 모습으로 퇴원했다. 학교 행사와 시험과 학원 일정 등등을 모두 어떻게든 보전하며 열 개에 달하던 외래진료를 보길 원하던 고집 센 그 어머니와 골이 빠개지도록 일정을 조정했던 기억이 난다.
그녀는 여름인가 초가을인가에 다시 입원했다. 이번에는 중환자실을 먼저 거쳐 전동을 왔다. 그전 입원보다 더 큰 난리를 쳤다. 학교의 생활기록부처럼 의무 기록 같은 것을 회사나 대학에서 떼볼 수 있다면 조금 문제 삼을 법한 이벤트. 그리고 퇴원했고, 아마 겨울이 시작되려 할 때쯤에 한 번 마주친 것 같다. 니트를 입은 채 서 있던 더운 엘리베이터 안에서 사복을 입은 그녀를 봤다. 잘 살고 있구나, 싶었다.
마음을 얼려놓을 수 있다면 좋겠다, 는 망상을 해 본 적 있다. 꽤나 진심이었다.
스키캠프 첫날, 또래 여자아이들과 같은 곳에서 잠옷파티하듯이 시간을 보낸 밤, '마법의 설탕 두 조각'이 너무너무 재밌어서 그 자리에서 몇 번이나 읽었던 날, 엄마가 저녁준비를 하는 부엌 식탁에서, 콘푸레이크 잔뜩에 우유 조금을 퍼먹으며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읽던 기억, 비 오는 날 '클라리스 빈' 시리즈를 다 쌓아놓고 보던 오후.
타국의 거대한 미술관에서 찍은 사진,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그 하얗고 호화롭고 세련된 곳에서 엄마아빠를 따라다녔던 여름. 좋아하던 남자애가 나한테 말을 걸었던 겨울, 그 신기했던 기분, 상을 받거나 어떤 성적을 받아서 엄마한테 알려주기 위해 달려갔던 하굣길, 엄마가 사 오라고 한 식빵 두 봉지를 수학학원이 끝나고 집 앞에서 친구와 수다를 떨며 반 봉지는 다 먹어치운 기억.
그 친구와 십여 년이 지나 다시 실없는 소리를 하며 웃고 '퇴사할 거면 먼저 말해라'라고 나누는 대화, 기숙사 방에서 외출준비를 하던 친구를 재미있게 지켜본 주말들, 그 친구가 세탁기 앞에 서 있던 나를 지나치며 인사하고 지은 미소.
11월 노엘 갤러거 콘서트 다음날의 눈 오던 출근길, 교보문고의 따뜻하고 향긋하며 분주한 공기, 그곳에서의 하릴없는 방황과 소비, 하이라이트 콘서트 후의 9호선 귀갓길, 여러 날의 색이 혼재된 달릴 때의 풍경들과 온도, 모래에 몸을 묻은 채 튀어나온 발가락만 움직이며 바라본 바다의 색깔, 락앤락에 든 참치마요 유부초밥의 맛.
빨리 먹을 수 있는 것들을 냉장고에 넣는다. 그렇지 않은 것들은 냉동실. 냉동실이 더 중요하다. 얼린 밥과 닭가슴살과 다른 고기가 들어 있다. 나는 그것 없이 살 수 없다. 방울토마토와 귤과 계란만 먹고서는 못 산다. 아, 엄마가 지난번에 갖다 준 미역국도 있다. 닭곰탕을 다 먹었으니 슬슬 꺼내서 출근 전에 먹어야 한다.
타이레놀 네 박스와 냉장고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어떤 위로를 어떻게 받고 싶은지. 나를 지금과 내일, 모레에도 지탱할 그 식품과 기억들 사이에서 조용히 무릎을 끌어안은 채 앉아 있고 싶을 때 생각한다. 어떤 먹을 것과 어떤 것들을 어떻게 채워 넣어야 할지.
약국으로 걸어가 해열진통제 몇 상자를 사는 것과 아래층 슈퍼에서 1월의 딸기를 사서 냉장고에 넣어두는 것을 비교한다. 이 방, 내가 지나온 기억들, 나아갈 시간. 나는 비록 지치고 약하게 절망하고 있을지라도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불행은 내가 기다리지 않아도 찾아온다. 세상은 춥고, 더럽고, 냉정하고, 치사하며, 가끔 나를 지나쳐 달린다. 내가 나의 불행을 곱씹거나 처지를 가엾게 여기며 멈춰 있지 않더라도 나를 치고 넘어뜨려 놓고 지나간다.
산후조리원의 간호사가 15일 된 아이를 떨어뜨려 아이는 뇌손상을 입었다. 플라잉 요가를 위해 설치해 둔 장치에 아이가 목이 걸려 결국은 사망했다. 감염된 것을 모르고 있던 소년은 팔다리를 모두 절단했다. 주말의 사진전에는 많은 사람들의 불행의 순간이 전시되어 있었다.
알약 몇 십 개를 삼키는 것 정도로는 죽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었다. 죽고 싶다면 더 효과적인 방법을 실행했어야 했다. 운이 좋아 위세척이나 단기입원이지, 아니었다면 투석 관을 꽂고 많은 시간을 냄새나고 기운 빠지는 병원에나 누워 있어야 했을 수도 있었다. 그 모든 환자들을 한 명 한 명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다. 고작 그런 걸로는 끝낼 수 없다고. 쉽지 않았을 텐데 대체 어떻게 그렇게 꾸역꾸역 먹은 거냐고. 그럴 때 정말 그 어떤 빛도 기쁨도 떠오르지 않았냐고. 그 노력이 가상하다고 여겨지는 만큼 아팠다.
가끔 그들을 만났을 때를 떠올린다. 혼자 불행을 가중시켜 종결시키려 하지 않아도, 불행은 다가오게 마련이니까. 혼자 기운 빼지 말자고 스스로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약하고 대체로 세상살이는 쉽지 않다. 냉장실이 어렵다면 냉동실에라도 둘 수 있는 기억과 먹을 것을 채워 넣고 싶다. 사지와 정신이 멀쩡한 건 엄청난 축복이잖아.
비록 배고프고, 많은 것에 화가 나고 조금 지치지만, 아직은 좀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바라지 않아도 올 것들과 내가 원해도 올까 말까 할 것들을 생각한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쉽지 않다면 차라리 그 편이 좋다고.
살아가는 것도 쉽지만은 않다고 스스로에게 상기시키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