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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과 소녀

맞서고 버텨 쌓은 날들

by 이븐도









출근 전, 그 친구의 몸에 안 꽂힌 관이 뭐가 있는지 떠올렸다. 오늘은 뭘 삽입하게 될지 생각해 봤다.

영혼이 있는 한 소녀보다는 생물학적인 인간으로서만 존재한 이곳에서의 밤들을 지켜봤다.



나는 언제나 그들 생의 어떤 부분들을 관람 중이었다. 그들은 그때도 앞으로도 괜찮지 않다.

그런데 나도 그래. 그러니까 이건 나를 위한 기록이다.






아무튼 A는 심폐소생술 한 번을 거쳐 의식이 돌아왔으나 중환자실에서 꽤 긴 시간을 보냈다. 항암은 미뤄졌다. 흉관은 양쪽에 모두 꽂혔고 복부 아래로 늘어진 배액 주머니가 두 개 더 있었다. 당연히 소변줄도 가지고 있었고, 중심정맥관도 두 개는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비위관으로 유동식을 섭취했다. 한 번씩 그 친구를 보게 될 때 하나씩 배액관이 줄어들어 있으면 나는 호들갑을 떨었다. A는 뚱하니 아무 말도 안 했다. 콧줄을 빼고서 미음에 죽을 거쳐 피자를 시켜 먹던 날 나는 얼마나 맛있었어, 하고 물었던 것 같으나 아마 그때도 대답은 못 들었다. 엄마가 대신 대답했겠지.



소변줄을 제거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빼놓으면 못 보고, 기다리고, 또 못 보고, 다시 관을 꽂아서 일단 소변을 빼고 또 주머니가 달린 소변줄을 삽입했다. 그러기를 네다섯 번은 한 것 같다. 내가 어떤 '어그로'를 끌어 대도 나를 보거나 반응하지 않던 그는 밤에 '오줌이 안에 너무 많아서 줄 넣어서 빼야 돼. 아파. 지난번에 했던 것처럼, 미안해.'라는 내 말에는 엄마 손을 끌어다 잡고 울었다.

누운 채로 싫어요, 안 할래요, 했다. 그 말에도 힘이 없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없었다. 단순도뇨 중 무슨 작은 짐승이 낼 법한 소리로 울었다. 좀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왜 이런 곳에서 일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별 의미는 없지만.






나는 5월 내내 기분이 좋았다. 하이라이트의 팬이 되어 행복했고 대체로 날씨가 좋았기 때문이다.


그의 창가에는 화창한 하늘을 배경으로 멋있는 레고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건 전시가 맞았다. 병원 전경이 보이는 창가에 커다랗게 자리를 차지한 거대한 건담과 홍학과 사자와 (한 세트로 세 가지의 동물을 만들 수 있다고 한 것 같다) 진짜로 꼬리와 목이 돌아가는 기린, 각각 다른 자세를 하고 있는 다섯 마리의 커다란 판다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형상화한 그림을 레고로 재현한 것, 웅장한 범선도 있었다.


나는 그 배의 해적인지 선장인지를 이리저리로 옮기고 사자를 이런저런 각도에서 보며 감탄했다. 야, 멋있다. 이거 깃발도 움직여? 아니, 근데 이거 만드는 데는 얼마나 걸려? 어제는 없었잖아. 대단하다, 너. (그런데 정말 대단해서 한 말이긴 했다) 엄마가 대답했다. 이건 세 시간 걸렸나, 그치? 그러자 그는 비로소 고개를 한 번 끄덕, 했다. 드디어, 정말 드디어 내 관심에 답해준 것이다.






아직 걷지 못해서 항상 앉거나 누워 있어야 했다. 창가의 레고는 병상 끝에서 끝까지 채워졌다가 한 번씩 물갈이되곤 했다. '야, 너 이거 선생님 보여준다고 열심히 만들었잖아. 왜 아닌 척 해.'조금 긴 오프를 끝내고 온 나의 잘 있었냐는 인사에 그가 (언제나 그렇듯) 미동도 없자 그의 엄마가 말했다. 그는 여전히 나를 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기뻤다. '나 기다렸어, 진짜? 아, 뭐야 뭐야. 그러네, 이거 다 못 보던 거네. 얘들은 얼마나 걸렸어? 너무 멋있다야.' 뭐, 그리고 그는 절대 대답하지 않는다. 여느 때처럼. 레고는 여름으로 넘어갈 때까지 늘어나고 줄기를 반복했다.




아마도 가을이었다. 비니를 쓴 그가 워커에 몸을 기대어 걸었다. 스테이션까지 나왔다. 뒤뚱뒤뚱이라고 하기에도 참 힘들어 보이는 모양새로. 그래도 걷고 있었다. 거기 앉아 있던 모든 간호사가 환호했고 할 수 있는 한 최대치의 호들갑을 떨었다. 애는 안 끝까지 안 웃고 엄마는 환하게 웃었다. 병실에 레고는 없었다. 대신 그는 커다란 게이밍 노트북으로 뭔가를 열심히 하다가 한 번씩 내가 오면 팔을 내주었다. 창가와 캐비닛이 텅 비어 있었다. 기저귀와 패드는 없어진 지 오래였다.


12월, 그는 이제 멀쩡히 걸어 들어왔다. 레고도 커다란 노트북도 없었다. 요새 애들도 학습지를 한다는 것, 그리고 이제는 스테이플러로 찍히거나 동그란 링으로 묶인 종이뭉치가 아니라 작은 태블릿 형태로 문제가 제공된다는 걸 알았다. 시간도 측정되는 것 같았다. 내가 15년 전쯤에 했을 때도 저런 지문이 있었고, 저런 예시의 한자 단어가 있었던 것 같았다. 그는 해가 넘어가기 전에 퇴원했다.


나는 그 많은 레고들의 행방이 궁금했지만 굳이 묻지는 않았다. 그는 이제 숙제를 하느라 바빴다. 그리고 말을 붙이면 끄덕, 정도는 해 주었다. 약을 주면 싫은 티도 냈다.






사실 뭐라고 소리를 질렀는지는 못 들었다. 짜증스러운 절규였다. 정맥주사팀 선생님은 조금 이따 다시 불러달라고 했다. 나는 일단 놀란 상태로 복도에 서 있었다. 뭐라고 계속 말하는 것 같았으나 흐느껴 우는 소리에 섞여 잘 들리지 않았다. 나가고 싶다고 했나, 다 그만하고 싶다고 했나. 어쨌든 그 말이 그 말이었다. 소리쳐 봤자 달라질 게 없어 아득한 말들. 그녀의 엄마에게 빼빼로를 받았던 게 기억이 나는 걸 보면 11월이었다. 그것도 재작년. 그 친구는 오심이 심해서 먹지 못했고 어쨌든 잔뜩 사놓으신 그걸 내가 받았다.






항문 병변이 생겨 사진을 찍어 기록에 올려야 했다. 차도가 없어 꽤 자주 벌려서 봐야 했다. 성별이 같았지만 아무튼 쪽팔리고 싫고.. 유쾌한 경험일 리가 없었다. 아주 어린애도 아니고 딱 십 대였다. B는 예민한 소녀였다. 행동을 보면 예민한 소녀가 맞았다. 그런데 어떻게 안 예민할 수 있겠는가. 휴대폰 뒤쪽에는 친구들인 것 같은 애들의 증명사진과 귀여운 스티커들이 덕지하게 붙어 있었다. 머리는 듬성듬성 흉하게 빠져 있었다. 스치는 것도 아파해서 다 깎기도 애매하다고 했다. 꽤 자주 소리를 지르고 짜증을 내고 울었지만 그렇게나 크게 반항하듯이 말하는 걸 들은 건 처음이었다.






출근하는 길에 누군가 '선생님!' 하고 불렀다. 누군가를 앉힌 휠체어를 밀며 그녀의 엄마가 나를 보고 있었다. 사복을 입고 있었는데도 나를 알아보시는구나. 별로 놀랍지 않은 일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건 한 번씩 신선한 충격을 줬다. B였다.

스마일이 그려진 흰 볼캡을 썼다. 머리가 길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고 엄마만 계속 말하는 것 같았다. 병원 1층에 내려올 때도 가발을 쓰는구나. 9시가 다 되어 가는 로비에는 보안요원들 말고는 거의 아무도 없었고 어두웠다.



나는 섣부른 동정을 했다. 저런 애가 병상에서 자기 모습을 보면 얼마나 살기 싫을까. 병원에서의 일상 중 단 한 구석이라도 마음에 드는 게 있을까 궁금했다.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의 절규가 아팠다.






사춘기도 병세도 쉽게 끝나는 건 아니니까. 그녀는 올 때마다 모두의 주의 대상이었다. 뭐 특별한 거라기보다는 심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주의하고 신경을 써 주는 뭐 그런 차원이었다. 아프다고 울고, 피검사 싫다고 울고, 똑같이 짜증을 내고, 스마일 입 모양을 뒤집어 놓은 모양새로 허공을 바라보고.. 여전히 아픈 만큼 달라지는 건 없었다. 나는 다정하고 사려 깊은 그 엄마의 대답만을 들었다. 물론 B가 나와 대화하기 위해 입원한 게 아니니 그건 상관없었다. 아픈 티는 잘 내는 친구니까 그나마 다행이었다.






마찬가지로 12월이었다. 구멍이 숭숭 난 낙낙한 니트에 와이드핏 청바지를 입은 긴 머리의 여자가 저쪽 병실에서 커튼을 걷고 있었다. 입원 환자라고 하기에는 저 정도로 큰 애들은 할 수 있는 한 늦게 병원에 도착해 입원 수속을 마쳤다. 아직 세 시밖에 안 됐는데? 많이 젊은 보호자인가 보다 생각했다.



병실에서 할 일을 마치고 스테이션으로 나오니 그 여자가 앉아서 혈압을 재고 약을 언제 먹는지 대답하고 있었다. 휴대폰 뒤에는 네컷사진이 들어 있었다. 반이 잘린 두 컷. 방탄소년단 진. 얼굴이 하도 크게 인쇄되어 있어서 이번엔 저게 나왔구나, 했다. 참나, 내 전남편이잖아? (전에 그를 좀 많이 좋아했었다) 휴대폰 주인은 B였다.


어떤 반응이나 통증 또는 의사 표현의 정도를 알기 위한 호들갑이 아니라 순수한 난리부르스가 나왔다. 아가씨가 다 됐네!!! 하면서. 뭐야, 이거 나왔어? 잘생겼다 진짜. 너무 이쁘다, 했더니 고개를 끄덕, 했다. 그리고 그녀는 복도를 걸어갔다. 트렌디한 옷차림에 이상한 모양새의 걸음걸이로. 저렇게, 걸어서 포토이즘도 찍고 했구나. 휠체어가 이제는 늘상 필요치는 않았고 저런 외출이 가능했다. 예쁜 옷도 입고.






호전. 하루종일 앉아 있던 그 창가에 가득하던 레고가 사라지고, 무거운 노트북으로 돌려야 할 정도의 게임을 할 시간이 없어지고, 학교 진도와 별개인 숙제를 한다. 후줄근한 병원복 차림으로 앉아서 어두워진 병원을 조용히 도는 것이 아닌, 또래들이 입는 옷을 입고 좋아하는 연예인과 사진을 찍으러 나선다. 그들의 병마는 사실 현재진행 중이며 다행히도 큰일이 없는 정도일 것이다.


인생에 닥치는 고난 정도를 굳이 비교한다면 그들은 출발선 자체가 건강한 사람들과는 다르다. 그래도 그들은 승리하고 있는 중이다. 한 번도 일직선으로 쭉 시원시원하게 진행된 적 없고, 매 시간이 울음과 무력감이었을 수 있겠으나. 어쨌든 일상이 진행되고 있다. 후진도 있었고 옆길로 새기도 했지만 결국은 나아지는 과정이었다.






똑같은 일상이지만 앞뒤 없이 두려워질 때가 있다. 다 별 것 아닌 것들이긴 해도. 정말로. 그리고 맞부딪혀야만 나아갈 수 있다는 걸 그들을 지켜본 때를 떠올리며 상기한다.


기적? 돌아보니 기적이었다. 둘 모두를 보며 '저래서 어떻게 살지' 하고 생각했던 때가 있다. 그들이 앞으로 잔뜩 달리거나 유행하는 모든 옷이나 신발을 입고 똑바로 걸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많은 날들을 보낼 수 있길 바란다.




매일은 절망일 수 있겠으나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정말 이렇게 지나 보아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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