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과 함께 잊을 것
분명 감자만했던 머리가 배스킨라빈스 파인트만해져서 왔다. 그의 엄마도 베드를 따라 걸어왔다. 평범한 20대 초반 여자였다. 도무지 특이해 보이는 점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뭘 기대했나. 무지개색으로 옴브레를 넣은 머리? 두껍게 올라간 화장이나 네일 아트?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 아닌 것이 하나 없는 복장?
크지 않은 키, 까맣게 염색한 머리, 까만 상하의에 아디다스 슈퍼스타. 당장 길거리를 나가도 이런 사람을 하나 찾아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눈썰미가 좋은 편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아주 형편없지는 않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머리를 받쳐 침대에 그를 내려놓자마자 '많이 컸네?!'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 말을 뱉은 후 엄마가 내 뒤에 서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일부러 그런 게 절대 아니었다. 아무튼 그녀는 그가 자란 건지 아닌지 모를 테니까.
응급실을 통해 입원하고, 중환자실을 거쳐 이 병동으로 온 후 퇴원했으나, 한 달을 못 채우고 그는 똑같은 코스로 이곳으로 돌아왔다. 두 번째 입원이었고 엄마의 얼굴은 처음이었다. 보호자가 등장하지 않아 우리는 병동에 그의 자리를 준비해 놓고 인계를 기다리고 기다렸다. 사람 손 타니까 눈으로만 귀여워해 주고 접촉을 최소화해 달라는 내용이 인계장에 쓰여 있었다. 중환자실에서는 경찰을 동원해 엄마에게 연락을 취했으나 그녀는 연락이 되었다가도 끊겼고, 언제까지 오겠다고 했으나 절대 등장하지 않았다. 아무튼 애는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간 동안 착실히 살이 찌고 머리와 몸통이 컸다.
오프가 끝난 후 돌아간 병동에 그의 엄마는 없었다. 퇴원 준비를 했다. 친권이 박탈되었으니 시 공무원을 통해 외래 등을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그의 엄마는 그를 잊고 잘 살 수 있을까. 잊을 수 있을까.
우리는 가끔 'A는 요새 안 오네?'라고 근황을 궁금해한다. 기다리는 것은 절대 아니다. 입원하는 것은 그 어느 쪽에게도 좋은 일이 못 되니까. 출퇴근 길에 병원 건물에서 그들을 마주치면 반갑다. 아무튼 반가운 건 반가운 거다. 이곳에서 이런저런 기계를 달고 있거나 환자복을 입고 수액 폴대와 함께 있던 모습만 보다가,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아무것도 끌고 다니지 않는 그들을 보면 낯설면서 익숙하다.
칭찬 카드는 작성 시점으로부터 한두 달은 지나 당사자에게 전달된다. 환아의 이름과 보호자의 이름이 쓰여 있다. 내가 저런 애를 봤었다고? 하율, 지빈, 시원, 하늘, 이안, 이든, 윤우, 지후.. 이름들이야 다 비슷한데 아무튼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얘가 누구였지, 기억나세요?' 하면 '얼굴 보면 알겠지, 뭐.'라고 누군가 대답한다. 그렇게 나는 그들을 영영 떠올리지 못한다. 어찌 보면 떠올릴 이유도 없지만.
반대로, 병원 부근 지하철역에서 아는 얼굴을 마주칠 때가 있다. 그쪽도, 나도, 엇, 하다가 지나칠 때도 있고 나만 어, 하다가 마찬가지로 지나가거나, 그쪽에서 기척을 내기도 한다. 두 쪽 다 어, 어!! 하고는 있는데 이름은 절대 말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어쩌면 다행일 수도 있어, 멘탈이 없는 게,라고 했다. 왜요. 커가지고 엄마가 누군지 찾으러라도 가면 어떡해, 그냥 엄마는 없구나. 생각하는 게 낫지, 라고 선임이 말했다. 하지만 그 친구는 그런 생각도 못 하잖아요,라는 말은 삼켰다. 그래서 다행이구나. 둘 중 하나만 알고 있는 것도 고통이다. 이름만 안다면 온갖 단서를 동원해 몇백 명은 될 동명이인들을 다 거둬내야 하고, 얼굴만 안다면.. 상황은 그보다 더 나쁘다. 둘 다 안다면? 찾아서 뭘 하겠어. 모르는 게, 아무것도 모르는 게 확실히 나았다.
나이트 근무 중이었다. 멍해졌다. 나도 모르는 내 인생을 어떤 남들이 이렇게 기억하고 있을 수도 있겠구나. 내가 그 친구를 안아 옮기며 많이 컸다고 느낀 것처럼. 보통은 그 역할을 부모가 해 주는데 그러지 못했다. 참 많은 것들을 스쳐 보내고 쓸데없이도 기억하고 산다고 생각했다.
강렬한 인상을 남긴 친구가 자선 단체의 배너에 뜬 적이 있었다. 담당과 교수님은 '딱한 친구예요'라고 했다. 어디로 보나 딱한 사정이 가득한 사람들과 사연들을 마주치는 게 일인 그 사람이 그렇게 말했다.
얼굴이 예뻤다. 우리는 가만히 혈압을 재거나 웬일로 아빠와 손을 잡고 가만히 복도를 걷는 그 친구를 보고 '어우, 배우 같아. 이목구비 엄청 뚜렷하네.'라고 했다. 미화 여사님도 그렇게 말했고 배식 아주머니도 그렇게 말했다. 병실로 들어간 그녀는 소리를 지르고, 전화기 줄처럼 매달린 콜벨을 잡아 뜯어 뽑고, 벽에 머리를 부딪히며 악을 썼다. 예쁘다는 말에 애엄마 닮아 그렇죠, 했던 아빠는 그녀를 제압하려 애썼다. 어쨌든 그녀도 퇴원을 했다. 보호자와 환아가 합심해 관리를 해야 하는 사정이었으나 그 친구는 그게 절대 안 됐다.
아!이!스!크림! 하고 소리를 질러대는 딸을 그냥 두고 못 본 아빠는 누가바를 사들고 병동으로 들어왔다가 담당 간호사에게 압수당했다. 그녀는 세끼 식사 외에는 섭취할 수 없었다. 당신은 안 먹으니 그럼 선생님 드시라고 줬다고 했다. 냉동실의 아이스크림을 보고 '이름 없는데, 먹어도 돼요?' 했던 내가 들었던 사연이다.
동기는 광고를 카톡방에 공유하며 불쌍하다고 했다. 내가 이것으로 모금을 해 준다면 얼마가 그 친구네에게 돌아갈까 생각했다. 차라리 입원했을 때 그 베개 밑에 봉투를 놓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가능할 리가 없지. 주고 싶은 만큼의 도움을 주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냥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왜, 이렇게 기억하도록 만들어진 걸까, 하고.
누군가의 근황이 궁금하면 SNS를 뒤진다던가, 어떻게든 수소문해 볼 수 있다. 대개 살면서 그런 경우는 둘로 나뉜다. 지나간 애인처럼 딱히 찾아서 할 것도 없고 안 찾는 게 나은 경우. 사정이든 마음이든 엇갈린 친구처럼, 찾는다면 실질적인 행동을 취해 봐도 나쁘지 않은 경우. 내가 기억하는 수많은 얼굴들은 제3의 영역에 있다.
정말 가끔, 진짜 가끔. 누군가를 떠올리게 될 때 나는 그런 얼굴들을 기억하는 것이 잔인하다고 느낀다. 진짜 진짜 가끔 그렇다. 이름은 잊어도 얼굴은 잊히지 않는다.
머릿속에 각자의 이야기를 송글히 맺어 놓고 다시 그들은 떠난다. 잊고 싶은 것들이 많다. 정말 가끔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