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븐도 Dec 10. 2024

인어가 잠든 집

그 바다에는




그들은 달음박질쳐 물속으로 들어갔다. 부모들은 그들을 좇아 잠수했다. 다만 인어가 된 것은 그들뿐이다. 들은 아가미를 가지게 되었다.

부모들은 폐로 숨을 쉰다. 그러나 함께 유영하길 바란다. 어쩌면 언제까지나.





-





대체 워만 있는 애가 어떻게 코로나에 걸리게 되었는지가 의문이었다. '뱃줄로 밥을 주던' 그녀의 할머니가 답을 말해주었다.

"매-번 방 체온도 똑같이 맞챠 놓고, 문도 꼭꼭 닫아 놨는디, 어째서 걸렸으까잉. 아무래도, 그 외래를 왔다 갔다 해서 그려. 선상님이, 대진을 좀 해 주시믄 참 좋을 텐데, 그죠?"

열은 지겹게도 안 떨어졌다. 여드름이 곳곳에 난 얼굴이 절규하듯 자주 일그러졌고 사지는 불수의적인 움직을 멈추지 않는다. 이들이 말을 하지 못하거나 크게 소리 내어 울지 못하는 건 과연 내게 잘된 일인가, 아닌가, 생각할 때가 있다.

커다란 창의 바깥으로는 눈이 하얗게 쌓인 병원 전경이 보였다. 젖은 도로에 가로등 빛이 반사되어 빛난다. 길이 미끄럽고 공기가 차다. 험한 바깥과 달리, 이 친구가 있을 곳은 언제나 춥지도 덥지도 않을 것이다.











A는 처음에 왔을 때도 귀여웠다. 뽀얗고 오동통한 얼굴, 작은 입술, 감겨 있는 눈꺼풀에 드리운 짙고 긴 눈썹, 살집 있는 손가락과 발가락. B는 참 뚜렷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머리는 자연갈색이었고 숱이 많았다. 부드러운 테이프로 덮여 감긴 눈을 뜨지 않아도 잘생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피부는 가무잡잡하고 윤기가 흘렀다. 아마 반에 그를 좋아하는 여자애가 몇은 있었을 것 같았다. C는 '쇼킹'한 비주얼을 가지고 있었다. 병원에 막 출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C를 처음 보고서는 내가 마스크를 낀 신규라서 다행이라고 누차 생각했다. 프랑켄슈타인을 축소해 놓은 것 같은 생김새를 가진 친구였다. D의 피부는 언제나 하얗고 빛났다. 온몸이 그랬다. E는 항상 쁜 옷었다. 딸기 무늬 , 데님 원피스, 노란 잔꽃무늬 잠옷, 카라가 둥근 연보라색 상의. 그리고 그들은 늘 안전한 곳에 조용히 누워 있다. 온, 습도가 알맞게 설정된 그들 집의 방과 이 병실 같은 곳.

그들은 이 바다에서 자유롭다. 문제가 되는 건 물밖으로 나와야 하는 모든 경우였다. 그들은 언제부터인가 모두 아가미로 숨을 쉬었다.











막 출근해 전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누군가 이송용 베드에 요란히도 실려가고 있었다. 주말이었다. 내 앞턴 간호사는 바쁜지 보이지 않았다, 가 무언가를 들고 사람이 서넛은 붙은 그 침상을 뒤쫓아 뛰었다. 나는 오늘이 심상치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몇 시간 후 나는 중환자실 간호사에게 그 친구를 인계했다.


새벽부터 PEG에 꽂아놓은 배액관에서는 소화되지 않은 하얀 유동식 색깔의 드레인이 나왔다. 보호자는 콜벨에 대고 말하다 말고서, 복도로 뛰어나와 나를 소리질러 불렀다. 입가에서 아무튼 거기서는 나와서는 안 되는 색의 뭔가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당직 교수에게 연락했지만 그는 '당장은 해 줄 게 없다'라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상황을 설명했고, 불만과 짜증과 울분과 걱정을 넘겨 들었다.




-





이후 전동을 가기 위해 애를 전담 인력과 이송 침대로 옮기면서, 그의 엄마와 아빠는 언성을 높였다. 둘은 잔뜩 예민해져 있었다. 원래 여기 있어야 하는 물건을 저쪽에 놔둔 상대방을 나무라듯 서로를 향해 소리 지르며 기저귀며 로션이며 기계를 옮겨 무거운 그를 이사시킬 준비를 했다. 그가 병동에서 떠난 뒤 한참이 지나 그들은 남은 짐을 정리하기 위해 다시 병실로 들어왔다. 나는 못 넣은 차팅을 넣기 위해 중환자실 환자 목록으로 접속했다. 기저체온보다 4도나 체온이 높아져 있었다. 하얗게 나오던 드레인의 양상은 미역국에 만 밥을 토한 모양새가 되어 있었다. 그걸 본 옆의 선임은 '진작 갔어야 했네'라고 했다. 퇴근 시간을 훨씬 넘겨 나는 그 친구 앞으로 올라왔으나 당장 오늘은 쓸모가 전혀 없게 된 약들을 반납했다.




-




보호자는 십 분에 한 번은 벨을 눌러 평소보다 높은 심박수나 체온과 부풀어 오른 어딘가에 대해 나에게 말했다. 나는 그런 증상들을 모아 당직에게 연락했다. 그러면 당직은 다른 환아의 인슐린 양이나, 수액 증감량 같은 것에 대한 '급한' 답변을 주며 '옵저할게요'라고 내게 전했다. 나는 그 짧은 대답을 어떻게든 덜 무례하며 (사실 이게 무례할 일인지는 모르겠다) 그녀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전달하고 싶었으나, 반응으로 미루어 보아 한 번도 잘 된 적은 없었다. 며칠은 괜찮았고 또 며칠은 안 괜찮았다. 그는 말을 못 하니까, 그 친구가 티를 낼 수 있는 건 심장박동수나 늘어난 둘레나 뭐 그런 것들 뿐이니까. 수치의 등락에 따라 보호자는 크고 작은 정도로 '예민하게'  굴었다. 무섭다고 했다. 중환자실로 보내 달라고 했다. 주말임에도 연락을 받은 주치의는 '그래도 기본적인 치료 플랜은 변하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나는 그 말의 저의를 추측했다. 그녀는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궁금했다.

진이 빠졌다. 그들을 상대하는 건, 이 사이에 위치한 건, 언제나 노력해야 하는 일이었다. 이 환경이 그랬다. 그리고 그게 내가 하는 일이었다.  












몇 주 전, 그러니까, 며칠 후 퇴원할 수 있을 줄 알았을 때쯤, 그의 엄마는 내게 사진이며 영상들을 보여 주었다. 제 말 듣고 움직였어요, 하면서.

영상 속에서 그녀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살짝 주먹을 쥔 채 배꼽 높이에 늘어뜨려져 있던 손이, 천천히 귀 옆으로 올라갔다. 나는 그 장면을 보기 위해 사십 초를 기다렸다. 일 분짜리 영상에서 오십 초를 간신히 채운 후에야 온몸을 늘어뜨리듯 누운 그가 팔을 움직였다. 하지만 그녀는 지난번 입원 때 내게 '얜 아직도 자면 손을 머리 위로 올려요.'라고 말했었다. 글쎄, 그는 언제나 자는 상태는데.


그녀는 이 증상을 담당 과에 전해 달라고 했다. 나는 그것을 전달하지 않았다. 하지만 회진 때 말한 모양이었다. 의사는 내게 '엄마가 좀 듣고 싶은 것만 듣는 타입이시던데.'라고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안 그런 사람이 없었다. 대부분 그랬다. 옆 병실의 다른 보호자는 멍한 눈으로 '얼른 집에 가자. 연수가 기다려, 진아야. 이건 뭐지? 이거 기억나? 간호사 선생님이 가래 빼 주신대. 감사합니다. 해야지.'라고 높은 목소리로 끊임없이 말했다. 휴대폰으로 항상 글씨가 빽빽한 뭔가를 읽고, 타 병원의 재활 치료에 관심을 보였다. 그녀는 내 인사나 말에는 고개만 끄덕이거나 필요한 말만 했다. 그녀의 딸에게는 그러지 않았다. 딸은 초점이 없는 눈으로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양손을 되는 대로 빨고 있었다. 늘 그랬듯이.













이곳으로 발령받기 전에 '인어가 잠든 집'을 봤다. 좋아하는 배우가 나와서였다. 분량은 크지 않았다. 간간이 보이는 잘생긴 얼굴과 멋진 모습에 감탄했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이 영화와 마주쳤다. 이름 불렀더니 손을 들었어요, 이거 좋은 신호죠, 하던 엄마의 말에서 갑자기 그 영화가 떠올랐다. 딱히 논리적 관계는 없다. 영화의 딸아이와 병동의 친구들이 모두 같은 상황일 리가 없으니까.

나는 그 빛났던 눈에서 뭔지 모를 감정을 느꼈다. 공감? 안타까움? 희망? 하나로 단정 지을 수 없는 그 복합체가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엄마는 내가 커튼을 닫은 후에도 계속 그의 이름을 불렀다. 사실 놀라운 장면은 아닌데, 다시 '깨어날 수 없는' 상태라도, 엄마아빠 된 마음으로 내 새끼 내가 예뻐하는 게 뭐가 이상한가. 하지만 엄마의 그 말과 표정에는 너무 강한 망이 담긴 것 같았다.












다시 켠 영화에서, 주인공 엄마의 '이상한 행동'은 아무것도 없었다. 바깥에 눈보라가 치든 장대비가 내리든, 잘 가꿔진 꽃으로 장식된 정원아늑하고 커다란 집에서, 그녀는 신성한 보물을 지키는 어둠의 수호자 같은 모습으로 화면에 등장했다. 어쩌면 본인만 보는 작은 모니터를 핑크색 덮개로 꾸며 놓고, 방의 달력을 알록달록히 장식하고, 옷을 사다 입히고, 산책을 시키고 싶어 한다. 그녀가 이상하다고, 미쳐 가는 것 같다고 남편, 외할머니, 그녀의 동생 등 주변인이 언급한다. 하지만 그녀는 미친 여자도, 마녀도, 식칼을 들고 몸만 남은 친딸의 가슴을 겨누는 살인미수범도 아니었다. 그냥 엄마였다. 나는 모성의 위대함 같은 걸 느낀 게 아니었다. 다만 그저 그게 그들이 사는 모양새였다.



보호자들은, 그러니까 그 친구들의 엄마와 아빠는 두꺼운 노트를 펴들고 열몇 가지가 넘어가는 약의 용량과 종류를 일일이 적고 체크했다. 0.01mg이라도 달라져 있는 것을 곧바로 알아챘고, 염도계를 들고 다니며 직접 소변에 담갔다 뺀 후 특정 약물의 증감량을 요구하기도 했다. 내가 잰 활력징후 한 번을 놓치지 않고 모두 휴대폰 속 엑셀에 메모했다. 이럴 때는 심박이 높아지고, 저럴 때는 심박은 떨어지고 소변량이 줄어든다는 나름의 데이터베이스를 가지고 있었다. 혈압의 변화가 있거나 특정 검사 수치의 등락이 있을 경우 그게 몇 시가 되었든 당장 간호사나 의사를 불러 어떤 검사를 나가 달라고 요청했다. 각종 배액관이나 보조 기구를 꽂고 교체한 날짜를 절대 잊지 않았으며, 숙련되지 않은 간호사보다 흡인과 유동식 먹이기에 능했다. 이런저런 드레싱을 혼자 다 하거나 기관절개관을 바꿀 줄 아는 (본래 의사들 일로 분류된) 사람도 있었다.





-





그들의 병상은 작은 세계였다. 온, 습도가 같이 표시되는 시계, 흡인 카테터와 생리식염수, 거즈와 피딩백 그리고 물티슈들, 작은 가습기(원래 병실 내 사용은 금지어 있다), 자극을 줄여 주는 스프레이와 연고, 몇 팩의 기저귀와 패드가 그 좁은 공간에 질서정연하게 놓인 그 광경. 급실이나 외래를 거쳐 또다시 입원해 모든 것을 혼자 치우고 정돈해 작은 바다를 또다시 구축해낸 그 한 명의 보호자는 여왕이나 왕처럼 보였다. 그들은 그 세계의 수호자이고 최고주권자나 다름없었다. 가득 찼으나 완벽히 체계적인 그 병상 옆에 앉은 그녀나 그를 볼 때, 정말 가끔은 압도되는 기분을 느다.



'빨리 집 가서 그네공원 가자. 거기서 통통이 미끄럼틀 타야지.' 같은 말들. 누워있는 그들은 이미 폐를 잃고 물속에서만 숨을 쉬었다. 그 친구들이 나아져서, 집으로 돌아가서, 아무 일도 없었던, 제각기의 '그날'이전처럼 애교를 부리고, 자전거를 타고, 오빠와 누나의 이름을 말하고, 동생에게 먹을 것을 떼어 주는 그런 장면은 그들이 잠수한 수면 아래에서만 가능했다. 부모들은 꽤 자주 저런 말을 했다. 그 말들이 가슴에 박혔다.












아이들은 인어가 되었다. 온갖 코드들이 꽂힌 기계들을 움직여 함께 나가야 했기 때문에 초음파 하나를 찍는 것조차 힘겨웠다. 검사실로 보내기 위해 옮기는 것부터 일이었고, 되돌아왔을 때 다시 원래 자리에 다시 눕혀 놓는 것까지가 과제였다. 각자에게 완벽하게 맞도록 조정된 설정값을 벗어나는 순간 그들은 꺽꺽거리며 힘겨워했다.

폐를 가진 채, 아가미를 갖게 된 그들과 바다를 헤엄치는 부모는 늘 초조했고, 가끔은 이상할 만큼 밝았다. 심해 그 어디에서라도 함께하기 위해서 그들은 잠수하고 이따금씩 뭍으로 나와 동태를 확인한다. 물 바깥의 이들이 뭐라고 하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그들은 다만 그 안에서라도 함께하고 싶어 한다. 물속에서만큼은 잠시라도 그들은 함께 자유롭다.


이곳에는 사람과 인어들이 있다. 영화를 보고 추측했다. 부모들이 날을 세우는 이유를. 그들은 폐로 숨쉬며 육지와 수중을 오가느라 힘에 부쳤던 것일지 모른다. 혹, 아가미가 아니라도 그들에게는 다리가 아닌 꼬리만 있으니까. 어찌 되었든 그 장소에서만 유영할 수 있에.

나는 그 헤엄을 지켜본다. 가끔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그게 이곳의 내가 할 일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