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계를 끝내고 처치실 창가로 뒤돌아 서서 결심했다. 그래도, 사랑하자. 사랑하자. 나는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 사랑.. 아마도 있었을 그녀의 남자친구처럼. 그래도 몇 번의 데이트를 했을 소개팅 상대처럼. 사랑. 그녀의 부모처럼? 부모라.. 나는 저런 딸 낳은 적 없는데. 하. 사랑이라. 사랑은 얼어 죽을. 진짜.. 잘 지내세요? 왜 잘 지내세요? 아니. 분명 나는 A에게 인계를 주었는데 사탕목걸이처럼 줄줄이 딸려 올라오는 그들의 얼굴이란. 네, 잘 지내지 마시고요. 평생 그렇게 후진 인간으로 살길 바랍니다.
그리고 나는 '추가인계'를 주러 가며 구겼던 얼굴을 편다. 아, 에, 이, 오, 우. 사랑한다.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
이후 슬쩍, 아니. 꽤나 잔뜩 웃으며 말을 붙이는 것이다. 웃을 때 접히는 눈이 지금은 꽤 쓸모가 있을지 모른다고 느끼면서.
"선생님, 추가인계 드려도 될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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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질문은 이해로 가는 통로라고. 내가 만든 어구다. 멋있어 보이는가? 아니라면, 어쩔 수 없고.
자는 시간을 빼고는 집에 붙어 있는 시간 자체가 적었던 중고등학생 시절, 부지런히도 엄마에게 반항하고 대립각을 세워 싸우던 때에 내린 나름의 결론이다. 엄마도 그랬겠지만, 나 역시 엄마를 이해하려 노력했다. 질문을 하고 싶었으나 대답이 되돌아왔던 적이 없어 답답했다. 아마 나도 엄마에게 그랬을 것이다. 그 시기의 엄마와 나는 그랬다. 나는 왜 자꾸 엄마에게 질문을 하고 싶은 건지 스스로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면 엄마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근데 지금 생각하면.. 우리는 논리적이라서 무엇을 사랑하지는 않는데. 사랑하지만 설명할 수 없을 때도 있고, 모든 것을 다 이해할 수 있음에도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기는 꺼려질 때도 있다.
아무튼 나는 그녀, 그들에게 궁금한 것이 많다. 많았다. 어느 시점부터는 이해를 포기했지만. 아니야, 포기하지는 않았다, 않았나? 참나, 포기한 게 맞다. 아니야. 아닌 것 같다. 이게 무슨 염병인지 쓰면서도 어이가 없다. 그러니까.. 사랑까지는 아니고, '전 애인' 정도로 표현하면 될까?
그래. 이 감정은 차라리 그것에 비견한다. 알쏭달쏭, 안 될 걸 알지만 가끔 마음이 흔들리고, 같은 결론을 향해 나아갈 걸 알면서도 기대를 하게 되고, 돌아서면 '역시나 그렇지 뭐가 다르겠어' 하게 되는.
그래. 나는 이곳에서, 몇 명의 '전 애인'들을 만난다. 나쁜 소식이 있다. 나쁜 소식만 있다. 그들은 그만두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나는'구여친' 들과 끊임없이 부딪히며 일해야 한다. 더 나쁜 소식? 내가 그들보다 짬이 짧다.'을의 연애'를 했던 입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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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A에게 궁금한 게 있다. 있었다.
왜 자꾸 사람 말을 중간에 끊고 본인 말부터 하는지 -그것도 말을 시켜 놓고!- 차라리 질문이 아닌 명령을 할 수는 없는지, 하나마나한 질문을 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들은 대답에 대한 본인의 응답은 왜 자동으로 삭제시키고 바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는지. '그렇게 말하면 남들이 예의 없다고 그런다'같은 잔소리는 안 듣고 컸는지, 본인이 큰소리쳐 놓은 것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정되었을 때 왜 깔끔하게 인정하지 않는지, 그래. 우리는 싸우러 출근한 게 아니니까, 인정은 그렇다 쳐도 말을 그렇게 '싸가지 없게' 한 것에 대한 사과는 왜 하지 않는지, 이 손바닥만 한 병동에서 선배 노릇은 그래도 하고 싶으신 건지, 왜 나에게는 Z까지 해 놓으라고 하면서, 본인은 B까지만 하고 내게 일을 던지는 것인지.
왜, 왜, 왜.
일하면서울화통,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나의 경우는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욕설과 이브닝 퇴근 후의 미친 듯한 분노와 스트레스, 입사 동기인 C의 경우는 귀 끝까지 시뻘게지는 안색. E의 경우, 마스크 한참 위 미간까지 찡그려질 정도로 더 강해지는 눈웃음이다. 이브닝이 그래서 싫었던 적이 있었다. 오후 세 시에서 네 시 사이의 퇴근인 데이 근무의 경우에는 가게나 식당이라도 갈 수 있지, 까딱 잘못하면 자정을 넘겨 근무가 끝나는 이브닝의 경우 도무지 그 기분을 풀 구석이 없다. 그때 나는 그들에 대한 욕과 저주로 일기장을 한 권 가득 채웠다. 찌질하고 음침한가?그래도 그만하면 무해하고 경제적인 방법이다.나는 그렇게 받은 월급으로 살아남았다. 어쨌거나 버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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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술 또는 검사들에 필요한 것을 외우는 것만큼이나 그들 개개인의 행동에 익숙해지자, 이전보다는 충격을 덜 받기 시작했다. 빡쳐도 그 나물, 환장하겠어도 그 밥인 것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나는 매 인계마다 거대한 종에 작은 머리를 내려치는 까치가 된 심정이었다. 대체 나는 몇 번이나 머리를 깼는가. 농담이 아니라, 진짜 '대가리를 깨는'기분이었다. 나의? 그들의? 모른다. 둘 다일지도. 후자라면 '깨고 싶은'이라고 고쳐야 더 적당하겠지만.
나는 정말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유식한 말로 하면 '마인드셋' 정도가 될까? 나는 생각이 없는 로봇이다, 생각이 없다, 하라는 거 하자, 흘려듣자, 쟤는 원래 그렇다, 얘네 집에서는 똑 부러지는 딸내미일 것이다, 한두 번인가, 원래 그렇다, 쟤도 누군가의 애인이다, 주말에 어디로 데이트 갔었대잖아, 내 앞에서나 이렇지 이 사람도 누군가의 귀요미이자 죽고 못 사는 소녀이며여인이다, 라고. 잘 안 됐다. 됐으면 입사한 지 그래도 시간이 꽤 흐른 지금까지 그들의 한 마디와 행동거지 하나에 성질이 돋지 않겠지.
A는 특정 인물이 아니다. 내가 마주치는 모든 경우 없는 이곳 근로자들의 집합체이다. 뻔히 병원 돌아가는 패턴을 알면서도 한 번 더 손이 가게 만들고, 모를 것까지도 다 알면서 아닌 척하며 면박 아닌 면박을 준다. 그러나 내가 아닌 그들의 선임에게는 방긋거리며 웃으며 하지 않아도 될 일까지도 해 놓는 그들. 아. 실로 정글이 아니라 할 수 없다. 약육강식인가? 그들도 위계가 두렵고 서열이 무서운 것이다. 뒤돌아서는 이런 험담을 잔뜩 쓰지만 내일도, 모레도, 실실 웃으며 농담을 하고, 힘껏 아닌 척하며 '앗, 제가 할게용!' 하는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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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사랑인가? 그들을 이해하고 싶어서? 이제는 질문보다는 그들을 사랑하고 싶다. 왜 사랑인가. 갑자기 그렇게나 '점프' 해 버린 이유가 있나? 계기가 있나? 글쎄.
어느 아침 나는 머리끝까지 '빡이 쳤다'. 정말로, 이 화나는 감정을 잊지 않으면 업무에 집중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나를 그렇게 갈궈대 놓고 잘나신 너는 일을 이 따위로 해 놓았는지.내게 넘겨진 일은 많고 지지부진했다. 그전날 그녀라면 충분히 하고도 남았을 것들이었다.
어떻게 아냐고? 나에게 동일한 항목들을 왜 해놓지 않았냐고 을러 대던 때가 여럿 있었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는 하지 않아도 되지만 편의를 위해 해 주어야 하는 일들. 누구의 편의? '뒷턴'의 편의. 아, 이 지겨운 병동 근무의 생리.
분노가 오를 대로 오른 나는, 미생의 한석율을 떠올린다. 성대리를 죽이지 못해 안타까워하며 날뛰던 그의 코믹한 모습을 머릿속에 띄운다. 아, 효과 없고. 물품보관실에 들어가 괜히 허공을 쳐다본다. 펌프와 모니터가 가득한 그곳. 도움 안 된다. 그리고 오늘 다시 그녀에게 인계를 줘야 한다는 사실이 떠오른다.아. 죽고 싶다. 왜 죽이고 싶다, 가 아니고 죽고 싶다, 일까. 그녀를 죽이면 우리 엄마아빠는 무엇이 되나. 어쩔 수 없는 섭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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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그녀에게 모든 '쌍욕'을 쏟아내는 순간을 떠올린다. 동시에 스치는 생각. 그녀와 한판 대거리를 치러낸 후 캐비닛에서 내 이름표를 빼고 모든 짐을 치운 후 내가 가야할 길. 그러자 나는 이 도시에서 사라져 버리기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말이 안 된다고? 그럴 리가. 말이 왜 안 돼. 된다. 세상 좁다는 말은 그냥 과장인 줄 알았다.
나와 초등학교를 같이 나오고, 각자 한 번씩의 이사를 거쳐 옆동네 중학교 친구로 재회했으나 사이가 틀어졌던 친구를 한남동의 모 닭집에서 마주친 일과, 멀고 먼 공연장에서 말을 섞은 사람이 옆동네 병원 간호사이자 내 친구의 학과 선배인 일 등등이 있기 전까지는. 이승은 정말 미친 듯이 좁다. 호주로 여행을 떠나 투어 프로그램을 즐기던 중 유창하게 영어를 하던 옆자리 동양인과 더듬거리며 대화를 나눴는데, 알고 보니 비슷한 시기에 휴가를 떠난 같은 병원 간호사였다는 무시무시한 일화. 너무나 말이 된다.
바로 이 지점이었다. 분노가 가라앉은 지점.
아, 나는 깨달아 버린 것이다. 이 N명의 'A'에게 '넌 말을 그 따위로밖에 못 하냐? 이 X발 나이는 어디로 먹었길래..'로 운을 떼고 그 뒷감당을 하는 것보다 <내 집 마련>이 더 빠를 거라는 어떤 기정사실을. 다 정리하고, 정말 술병으로 머리를 깬 후 다른 신분으로 - 근데 그건 소설, 그것도 미국 땅이니까 가능했던 일이잖아? - 살아갈 게 아니면, 내가 그들에게 야자를 까는 일 따위는 없을 것 같았다. 나는 그런 뒷감당을 할 정도로 강하지 못 하니까.
세상이 넓지 않고, 안타깝게도 간호사의 머릿수는 압도적이고, 이 네트워크는 더 불행히도 참 촘촘하며, 내게는 그 모든 것에서 넘어올 비화들과 나에 대한 말들을 'X까' 하면서 살 수 있는 깡이 없다.
웃긴 점은, 나는 여기서 '근데 그건 걔들도 그래.'라고 한 번 쉬어 간다는 것이다. 그들을 완전히 증오할 수 없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납득시키기라도 하듯이.
그들도 운다. 환자의 아픔에 공감할 때도 있으며 귀여운 것을 보면 그냥 보통 사람 같은 탄성을 내지르고 맛있는 것들을 좋아한다. 아, 회식 때는 내 앞으로 고기를 밀어준 적도 있다. 그래. 우리는 하나같이 이렇게 애매하게 못되고 성질이 더러운 보통 사람들이라 요지경으로 살아가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마치 연애처럼. 까보면 다 한 구석은 엉망인 사람들이 만나 뒤엉키는 지긋지긋한 관계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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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 논리냐는 반론을 제기해도 할 말은 없다. 다만 내 생각이다. 그래서, 사실 그 <내집마련> 은 나 사후에 이 병원에 백골을 뿌려 그 가루들이 이역만리 부에노스아이레스 정도에 바람을 타고 도착할 때까지 영혼마저 일한다 해도 불가능한 일일지언정, 나는 차라리 그 편이 더 가능성 있다는 말도 안 되는 결론을 떠올린 것이다.
아무튼 나는 그래서 차라리 그들을, 사랑하기로 했다. 그들이 꼴도 보기 싫었던 장면들과 내일도 모레도 꾸준히 갱신될 '머리채 잡고 싶은' 순간을 되씹다가 내가 폭발해 버리거나, 엄한 곳에다가 그 잘못된 감정을 터뜨리기 전에, 그냥 사랑하거나.. 그녀들을 사랑했던 사람인 척하기로 했다. 방법은 잘 모르겠다. 괜찮다. 안 배워도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망할. 그냥 몸으로 부딪히며 익히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기회는 많지 않은가.
나는 내일도, 다음 주에도, 다음 달에도, 어쩌면 다음 계절에도 (아...) 그들보다 아랫연차인 채로 인계를 '드리고', 실실 웃을 것 같으니까. 제발, 붙여만 주면 어떤 것이든 다 감당하겠다는 그 우스웠지만 진심이었던 면접 때의 다짐은 다 무엇이었나. 그래, 다시 괜찮다. 원래 그렇게 맞으면서 크는 거다. 그땐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하하. 나는 또다시 출근하고 그들과 어쩌면 이 병원 바깥을 나가서까지 또다시 마주칠 수도 있으니까.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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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을 보며 '내 집 마련'이 세상 그 무엇보다 불가능한 일은 아님을 확인받을 수 있다. 아마 그들은 앞으로도 그렇게 무례하고, 기분이 죽 끓듯 하고, 가끔 종잡을 수 없지만 나는 그들에게 절대 저항할 수 없을 테니까. 이게 어찌 망한 연애에서 '더 좋아했던 쪽'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행동거지만 보면 한 대 치고 싶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전여친 전남친과, 그 모든 미친 감정과 사건들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놓지 못하는, 실로 '돌아버린' 완벽한 반쪽의 행태가 아닐 수 없다.
미친 게 맞지. 하지만 돌지 않고서는 그들과 제정신으로 일할 수 없다. 증오와 분노에 돌거나 미친 사랑에 눈을 감거나 둘 중 하나 뿐. 또 어차피.. 나는 그들에게아무런 해코지도 할 수 없잖아? 그러니, 그 못난 것들을 내가 끌어안는 수밖에.
그렇게나는더 이상의 '구 애인'들은 안 생기기를 바라며출퇴근 길에 신나는 사랑 노래들을 듣는다. 그 비트와 극적으로 치닫는 가사들에서 생뚱맞지만 또 어떻게든 들어맞는 'A'들을 떠올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