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rexia Nervosa. 거식증.
보통 진단명은 그렇게 붙어서 왔다. 142cm에 26kg이던 소녀는 '잘 회복되어서' 퇴원했다. 그녀가 정신과 협진에서 언급했던 '희망 체중'은 22kg. 입원 당시 구급차에서 잰 혈당은 15mg/dl이었다. 이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수치인지 나는 잘 설명할 자신이 없다. 아무튼 당장 내 피를 뽑아 침을 두어 번 뱉어 섞은 후 그걸로 혈당을 측정해도 그보다는 높게 나올 것이다. 피검사 결과와 심초음파 심전도 등등의 결과를 보고 주치의는 후에 '그냥 걸어가다가 쓰러져 죽어도 안 이상한 상태'라고 했다. 심장도 결국 근육인데 그 근육까지 다 빠져버린 거예요,라고 교수는 엄마에게 차근히 설명했다. 중환자실을 거쳐 병동으로 전동을 온 그녀의 몰골은 그런 설명이 전혀 과장이 아님을 드러냈다.
그녀는 물었다. 이거 몇 칼로리예요. 나는 그 질문에 '이건 칼로리로 들어가는 게 아니야'라고 짧게 대답했다. 그녀는 엄마에게 '핸드폰 줘'라고 했다. 글쎄, 검색해도 이것의 열량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다만 원하던 대답이 나오긴 하겠지. 알면 어쩔 것인가. 팔, 다리, 몸통 등 모든 꺾일 수 있는 부위에 쿠션과 베개를 몇 개나 덧대어 누운 그녀는 저항하기 쉬운 상태가 아니다. 이게 그녀가 정말 바라던 상태인지는 당연히 묻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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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cm에 50kg. 그녀는 온순해 보이는 고등학생이었다. 진단명을 보고 긴장했던 나는, 의외로 평범한 인상에 혼자 놀라고, 먼저 오해한 것에 미안함을 느꼈다. 중환자실에서 3일간 재원하며 투석 카테터를 꽂았다. 급성 신손상이 진단명이었지만, 의무기록에는 '2달간 20kg 감량'이라는 어구가 남아 있다. 이게 연관이 있겠죠? 하던 내게 차지간호사가 '당연하지. 살 급하게 빼서 신장이 걸러내지를 못한 거야. 물도 안 마시고 무리한 거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녀는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동네 병원에서 방과 후 일정 시간 투석을 받기로 했다. 이제 그전까지와는 조금 다른 삶이 펼쳐진 것이다. 궁금했다. 목에 관까지 꽂고, 그 나이대의 보통 또래들이라면 한 번도 갈 일이 없을 대학병원 응급실과 중환자실을 거쳐서도 체중에 대한 집착을 아직 가지고 있는지. 몸은 로컬의 투석실에서 가만히 앉아 있을지라도 머리로는 또 마른 몸과 그 비슷한 무엇을 갈망하는 중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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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해?"
"아니요."
체중이 늘어 TPN을 감량했다. 집에 가는 날이 가까워질 수도 있다는 뜻임을 그녀도 안다. 그리고 그녀는 웃었다. 오늘은 입술 색이 다르다.
"저 내려갔다 와도 돼요?"
나는 잠시 생각한다. 재원한 지 2주가 넘었고, 이제 그녀는 아빠와 소리를 지르며 싸우지도 않았고, 수액을 멍하니 쳐다보지도 않았으며, 이런저런 간식도 먹었다. '몇'으로 시작하는 질문은 안 한지 꽤 됐다. '현이가 나 인스타 물어보던데, 니꺼도 물어봤어?' 하던 간호사도 있었다. 또 생각한다. 모른다. 이렇게 높아진 순응도가 놀라운 만큼, 다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고. 너를 못 믿는 게 아니라, 네 마음에 바람이 들게 하는 많은 것들을 못 믿는다. 나는 그 온갖 변수들이 가져올 결과를 책임질 수 없다.
"안, 돼."
일부러 눈을 과장되게 뜨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아, 왜요.. 친구 온대요오.."
"안돼. 정 보고 싶으면 여기 휴게공간에서만 봐. 내려가지 말고. 너 약 줘야 해."
"진짜 안 돼요..?"
"응. 미안해. 정말이야."
"치."
"틴트 뭐 바른 거야."
"저 쿨톤이래서 이거 친구가 선물해 줬어요. 어때용.
"이쁘네."
"선생님은 왜 그렇게 말랐어요."
"뭐?"
"말랐잖아요.."
"이제는 밥 먹어도 속 안 아파?"
"좀 덜해요. 친구가 공차 사 온댔어요. 먹어도 돼요?"
"자리에 없으면 전화할 거니까 받아야 돼. 알겠지."
어차피 다 먹고 있었던 거 안다. 나는 알 수 없다. 저 웃는 얼굴 뒤의 마음도, 아래층에서 기다린다는 친구가 진짜인지 아닌지도.
허연 환자복에 커다란 수액 폴대까지 끌고 있는 그녀가 그렇게나 자유롭게 도망치지는 못할 것이라는 거 정도는 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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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마음을 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보다 '말라 보이는' 그 관점. 그들의 다리, 팔, 몸통, 발목, 손목.
어떤 날은 외출했으나 바깥의 풍경이 어땠는지 하나도 보지 못했다. 나는 쇼윈도, 건물의 화장실, 지하철 스크린도어, 카페의 유리창, 친구의 시선에 비쳤을 나, 옷가게 거울 안의 나, 내 눈에 보이지 않는 뒷모습, 다리 모양을 보느라 바빴다. 내가 지나치는 모든 것이 거울이었고 나는 항상 살을 빼야 했다. 끼는 옷을 입어도, 널널한 옷을 입어도, 주위에서 어떤 말을 어떻게 하든 상관없었다. 내가 정한 그 숫자가 아니면 의미가 없었고, 그렇게 일상에는 어디 존재하는지 영영 알 수 없을 그 숫자만 남았다. 학교로 향하는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오늘은 정말 아무것도 안 먹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점심때, 동기들이 '오늘은 어디 갈래.'라고 하는 대화에는 어떤 수를 써서라도 빠지려고 했다. 일부러 찾아간 다른 건물의 복도 통창 앞 테이블에서 고구마나 감자를 씹으면서 외롭지 않은 척했다.
점심을 먹고 온 동기들은 설탕이 잔뜩 든 음료를 들고 와 내게 장난을 치면서 수업에 집중하며 웃었다. 나는 손으로는 필기를 하면서 머리로는 내가 먹어버린 것과, 먹은 것과, 먹고 싶은 것을 생각했다. 살이 더 빠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부위를 생각하고 체중계 숫자를 생각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면, 편의점으로 향해 온갖 삼각김밥과 도시락과 상자에 든 파이 과자와 스낵류와 초콜릿을 사들고 왔다. 잔뜩 먹은 것을 치운 이후에는 나를 힘껏 싫어하면서 잠에 들었다. 그리고는 또 비슷한 하루의 반복이었다. 멀지 않은 때의 일이다. 실습 때, 연두부를 잔뜩 사놓고 갱의실에서 토할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그것만을 먹었다. 그 맛있다던 S 모 병원의 밥을 나는 그래서 먹어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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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 한다. 별로 특별한 이유는 없고, 치려면 아주 제대로 속여 넘겨야 하는데, 내 연기력이나 지능이 뛰어나지 못해서 그렇게 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계산에서 나온 결론이다. 그래서 그 아이들에게 몸이나, 살이 찌게 만드는 수액이나, 체중에 대한 말을 할 수가 없다. 나는 그 괜찮지 않은 기분을 알고 있으니까. 한심한 것일 수도, 미친 것일 수도 있는 그 관점. 실제로 그들은 과체중이었고, 체중 때문에 교우 관계와 자아상에 큰 문제를 겪었을 수도 있다. 한두 단어로 눙쳐내기 쉬운 그 우울감을 대충 안다. '옷태'가 원하는 대로 안 나올 때의 그 절망감을 이해한다. 모든 것이 내 종아리가, 허벅지가, 배가, 허리가, 팔에 더 살이 붙어서인 것 같은 그 기분을 온전히 안다. 그래서 괜찮다느니 충분하다느니 하는 말을 한 번도 그들 앞에서 한 적 없다. 내가 그 말을 하는 것 자체가 기만 같아서.
대학 4년을 다니는 동안 그 주변의 식당에서 행복하게 밥을 먹은 기억이 별로 없었다. 하루종일 먹을 것과 몸매 생각뿐이었던 내가 어떻게 그러겠는가. 다만, 나는 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을 환자로서 마주했을 때도, 어쩌면 지금도 나는 이 문제에 한해서는 아주 건강하거나 완전하지 못하다. 극복했다고도 할 수 없다. 이제는 그냥 다른 게 더 중요해진 것 같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언제든 그 생각이나 집착은 재발할 수 있다는 걸 나 스스로는 알고 있다.
글을 쓰면서, 털어내면서, 이렇게 시원치 못한 마지막도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 말을 얹거나 단정 지을 수 없다. 내가 그러지 못했으니까. 다만 이런 나와, 같이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고 연마해 가는 중이다. 그 정도로만 언급할 수 있겠다. 다른 글에는 잘도 누군가가 어땠으면 좋겠다고 떠들었던 것 같은데 이번엔 그러지 못하겠다.
그냥, 삶의 잦은 풍파들이, 체중보다 그들이 마음과 그 상처들이 더 깊게 번지는 일만은 없기를 아무런 힘도 없이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