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요. 하지만 그는 늘 제 마음속에..
대체 뭘 하는 곳인가 생각했다.
그러나 당황스러울 정도로 꾸며진 누군가의 얼굴로 도배된 그 공간으로 선뜻 들어갈 용기는 나지 않았다.
생일인 사람 찾아오라고 저렇게 꾸몄나? 저런 건 누가 돈 들여서 저렇게 하지, 가서 커피 마시고 그냥 나오는 건가?
참, 별 게 다 있다고 느끼며 지나쳤다.
생일의 주인공은 올 때도 있고 안 올 때도 있다. 물론 1967년생 영국인 노엘 갤러거가 수원의 한 카페까지 행차하는 일은 없었다. 괜찮았다. 가수를 만나려면 공연장으로 가면 된다. 하지만 당장 런던의 O2나 웸블리로 갈 수는 없었고 나는 그를 만나러 거길 간 것도 아니었다.
생일카페. 일종의 사당 같은 거 아닐까.
팬들은 한 공간에서 그 대상을 둘러싼 채 노래와 춤을 곁들인 행사에 참여한다. 그리고 그를 형상화한 뭔가를 갖다 놓고 그 대상의 혼.. 은 아니더라도 혼을 담은 작품과 작업물을 다시 심도 있게 감상하고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장소에 모여든다. 생일카페는 여기서 그 장소에 해당한다. 같은 취향과 대화 주제를 가진 사람들이 있고 좋아하는 대상이 있다.
신을 못나게 표현한 작품들이 신당에 비치된 경우가 있던가? 그곳의 사진이나 그림은 덕심이 깃들어 하나같이 '킬포'를 담고 있어 감탄을 자아내며 내가 꽂힌 모든 점들을 곳곳에 표현해 놓는다. 보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생긴다, 고 팬인 나는 느낀다.
이른바 머글, 그러니까 누군가의 그 정도의 열성팬은 아니던 시절 낯선 얼굴이 덕지덕지 붙은 그곳들을 지나며 생경한 느낌을 받고 거부감도 살짝 들었던 이유가 여기 있지 않을까.
이곳은 우상을 담은 공간이자 우상을 우상화한 사람들을 위한 장소이다. 불가침이며, 모여든 이들은 꽤나 행복해한다.
재작년 잠실 공연이 끝난 후에도 나는 노엘 갤러거 내한 단톡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오아시스가 재결합한 지금 그 톡방은 이름을 바꿨는지도 모르겠다) 최전성기가 약 삼십 년 전이었던 타국 뮤지션을 좋아하는 것이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몇 년도 어디 라이브가 쩐다느니 리마스터드 앨범의 어떤 곡은 정말 뭐가 어떻다느니 하는 언급들을 놓치기 아까웠다.
그리고 5월의 어느 날, 수원에서 '생일 카페'가 열릴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는 글이 올라왔다. 이브닝 근무인 날이었다. 애매했다. 갈 수는 있었지만 내가 그 정도로 이 사람을 좋아하나, 생각했다. 하지만 뭔가를 좋아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는 마음껏 좋아해야만 한다. 가만히 있는 나를 쫓아오는 건 청구서와 크고 작은 숙제들밖에 없잖아. 사원증을 챙겨 카페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콘서트장에 갔을 때 같은 느낌이었다. '이선좌'를 거쳐 예매한 후에도 믿을 수 없던 팬들의 그 머릿수를 목도하는 기분. 아니, 대체 다들 어디 그리 숨어 있었던 건지. 열한 시 십 분 전이었으나 2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카페 대문 앞에 줄을 서 있었다.
웨이팅까지 있다니. 잘못 찾아온 줄 알았다. 도착점에 위치한 카카오맵에서 고개를 드니 몇 미터 앞에 주황색 둥근 선글라스에 빨강, 노랑, 흰색의 가로줄무늬가 들어간 갈색 상의를 입은 사람이 서 있었다. 당연히 Don't look back in anger 뮤직비디오 속의 노엘도 리암도 아닌 그냥 한국의 젊은 청년이었다. 덕심은 저런 것이군, 하고 고개를 내렸다. 제대로 찾아온 게 맞았다. 웃음이 났다.
그 사람의 모습이 우스워서가 아니었다. 와, 나 제대로 찾아왔구나, 하는 이상한 안도감에서 나온 웃음이었다. 공연장 외에 이 사람들이 모일 일이 얼마나 있으려나. 신기했다. 이어폰을 뺐다. 줄을 선 사람들은 대체로 평범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혼자 음악을 듣거나 휴대폰을 보거나 자리를 이탈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카페의 사진을 찍고 있었다.
골목 저편을 지나던 일가족 중 아빠로 보이는 사람이 말했다.
"저기 그럼 생일인 사람이 와?"
엄마인지, 딸인지, 아무튼 그것까지는 기억나지 않는 상대가 대답했다, 아닐걸, 하고. 그들은 줄을 지나쳐 갈 길을 갔다.
그렇지, 안 오지. 카페 테마는 Definitely MAYbe였다. 아, 현생 속의 덕질은 이런 것이구나. 내 휴대폰 속에나 있던 우중충한 표정의 노엘 갤러거가 청록색의 생기 넘치는 포스터에 합성되어 있었다. 머글과 덕후가 공존하는 이 골목만큼이나 이질적으로. 잘 온 게 맞나 잠시 생각했다.
십 초도 되지 않아 나는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무도 내 얼굴을 기억할 곳이 아니라 너무나 다행이었다. 터져서 속이 다 튀어나오는 만두처럼 미소와 웃음을 자제할 수 없었다. 일단 나 혼자 방구석과 출퇴근길에 검색하고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야 들을 수 있던 노래가 공적인 장소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부터 감동이었다. 공연장 바깥에서 이 노래를 듣는 날이 오다니. 그래. 감동이었다. 그 사실 자체가 너무 기뻤다.
(아이돌 그룹 멤버의 생일 카페를 갔을 때는 사실 그 정도 기쁨은 없었다. 외롭게 좋아한다는 느낌이 그 기쁨을 배가시킨 게 틀림없다)
잘 온 게 맞냐고? 그런 질문을 왜 해, 눈 돌리기도 바쁜데. 아, 나 엄청나게 좋아했잖아? 왜 나는 내 마음도 몰랐을까.
까칠해 보이는 얼굴을 클로즈업한 노엘, 파란 항공점퍼를 입고 팔짱을 끼고 턱을 슬쩍 든 노엘, 시선을 돌리고 에피폰 기타를 맨 노엘, GOD이라는 단어와 함께하는 노엘, 얼굴을 찌그러뜨려 환하게 웃는 노엘, 연하늘색의 맨시티 유니폼을 입은 노엘, 뚱한 표정으로 기타를 메고 까만 반팔을 입은 살이 좀 빠진 노엘, 작년에 내가 봤던 가죽점퍼의 조금 살찐 노엘.. 2층까지 모든 벽면이 그였다. 팬들 보는 눈은 다 똑같구나. 아, 저 날 옷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저 사진 레전드라고 생각했는데. 그랬는데. 여기 나 혼자 '그랬던' 그의 멋진 모습들이 한가득 펼쳐져 있었다.
살아 있는 사람을 이렇게 잔뜩 전시해 놓다니 꽤 기괴하다는 생각도 들긴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잡념 대신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터지는 도파민을 선택했다. 보는 즉시 생기가 솟고 행복해져 미소를 참을 수 없었다.
노엘이 마신다는 방식대로 만든 밀크티는 내 취향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커피를 마시러 간 게 아니잖아? 나는 이 공간을 향유하기 위해 왔다. 잠실 공연에서 그가 한국 팬에게 전달받아 내내 하고 있던 스마일 배지와 우습고 유치하고 귀여운 찌라시를 표방한 스티커와 그의 파란 눈을 강조해 앞뒤로 얼굴을 프린팅한 키링이 '나눔존'에 있었다.
오아시스 1집 'Definitely maybe' 커버를 재현한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었다. 어차피 이런 곳에 오는 사람들 마음은 다 똑같으니 이해해 주시리라 생각하고 스탭 분께 사진을 부탁했다. 정말 아무렇게나 찍어 주셔도 된다고 말씀드렸으나 그분은 참 친절히, 열심히도 인증샷을 남겨 주셨다. 잔뜩 귀여운 캐릭터로 그려진 그가 찍힌 쪽지에 팬들이 써 놓은 메모들을 구경했다. 좋아하는 이유와 그 계기와 곳곳에 밝혀진 나이도 제각각이었으나 그 마음이 향한 곳은 똑같은 게 신기했다.
나는 이 사람을 왜 좋아하는가. 실제의 노엘 갤러거라는 사람은 내가 영원히 알 수 없는 존재일 것이고, 그들 제각각이 그를 좋아하는 이유를 빼면 그도 결국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나 이곳의 그는 참 멋진, 보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나는 대상이었다. 이게 과연 뭘까,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걸까, 형태는 다르지만 다 이런 걸 하나씩 가지고 사는 걸까 궁금했다.
사람들은 즐거워 보였다. 그들을 보는 나 역시도 행복했다.
어떤 사람들은 기타를 잡고서 오아시스나 노엘 갤러거 하이 플라잉 버즈의 곡들을 연주했다. 그걸 잘 쳤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이어폰을 끼고 테이블에 다이어리를 꺼내 뭔가를 적었고, 누군가는 정말 여기가 스타벅스인 것처럼 근엄한 표정으로 노트북을 두드렸다. 나는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그 모든 것들을 구경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데 상당히 흐뭇했다. 그냥 거기 살고 싶었다. 평가하거나 평가받지 않고 아무도 그 대상 말고는 신경 쓰지 않았으나 모두 행복했다. 조금 위험한 상태 같기도 했지만.. 뭐 어떤가, 매일을 이렇게 사는 것도 아닌데.
가서 뭘 해야 하나 생각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한 시간 반이 후딱 갔다. 혹시 필요해지면 쓰려고 노트를 가져갔으나 나눔받은 스티커를 넣는 용도 말고는 펴지도 않았다. 노엘 갤러거와 사람들을 구경하고 또 구경하며 노래를 들었다. 그 공간에 있었을 뿐인데 한 시간 반이 후딱 갔다. 더 있고 싶었지만 그래도 가야 했다. 나는 자꾸 뒤를 돌아보고 싶은 기분으로 카페를 나왔다.
그 뻘쭘한 표정에 깔린 감정을 대충 안다. 아마 내가 자주 지었을 표정인 탓에 그렇다.
많이 쳐줘 봐야 중1은 될까 싶은 수수한 차림의 여자애가 입구에 있었다. 카페 컵홀더에 든 밀크티 음료를 들고서. 팬이 아니라면 입구 근처에 서 있는 것도 좀 '남사스러워' 보일 수 있는 공간인데. 나이도 너무 어렸다. 대체 왜 온 거지. 정말 팬인가? 나는 저 안에서 행복했다. 굳이 구분 짓자면 카페의 고객은 거의 20-30대 남녀들이었다. 혹은 그 나이대로 보이는 10대들. 이 친구는 그 어느 쪽에도 들지 못했다.
뭐, 아니면 어떤가, 하는 심정으로 말을 걸었다. 사진 찍어 드릴까요, 하고. 그 친구의 용돈 사정이 어떨지는 모르겠으나 친구와 나들이를 나온 것도 아닌데 그렇게 싼 값도 아닌 음료까지 산 거면, 그냥 그렇게 서 있다가만 가기엔 돈이 너무 아깝잖아. 몇 초 대답을 안 하길래 잘못 짚었나, 생각했지만.
이내 그녀는 내 시선을 피하면서 휴대폰을 내밀었다.
내부의 앨범 포토존에서 찍어 주겠다고 했더니 그녀는 그냥 여기서 찍어 주셔도 돼요,라고 했다. 말소리가 잘 안 들려서 가까이 다가가야 했다.
내가 너무 오지랖을 부린다는 생각도 했지만, 어차피 오늘이 지나면 다 사라질 추억이잖아. 아무튼 그녀는 거기서 사진을 찍었다. 멀뚱한 표정의 생일카페 포스터 속 노엘 갤러거와. 나름 최선을 다 했다. 휴대폰을 돌려주고 버스 정류장으로 한참을 걷다가 뒤를 슬쩍 돌아보았다. 그 친구는 사진을 찍힌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휴대폰을 열심히도 보고 있었다.
출근길이 몹시 행복했다. 웃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참 신기한 일이라고 몇 번이나 생각했다. 내가 이 사람을 이렇게나 좋아했다고? 말도 안 돼. 덕심이란 과연 뭘까, 좋아하는 마음이란 과연 뭐란 말인가.
자기 돈을 들여 뭔가를 만들어 무상으로 가져가도록 나누고 낯선 이에게 악의 없는 관심을 베풀게 만드는 이 마음의 기저에는 무엇이 있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답을 알 수 없었으나 다시 결론을 내렸다. 아무튼, 좋아할 기회가 있을 때는 그걸 마음껏 누리자고.
이래서 무슨 코스프레 페스티벌 같은 것도 열리는구나 생각했다. 남들 보기에 좀 창피하고 과할 정도로 귀엽거나 촌스러우면 어떤가. 나 혼자 그렇게 완전히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이 살면서 얼마나 되겠어. 무슨 콘서트도 아닌데 벌써 기다리게 되고 결심하게 됐다. 아, 다음 '생일 카페'도 꼭 가겠다고.
사원증 뒤쪽에 그가 예쁘게 웃는 사진이 들어간 '부적'을 넣었다. 퇴사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만두고 싶어지면 오늘을 떠올리자고 생각한 날들에 '오늘'을 또 추가했다. 웃음이 났다. 자꾸자꾸. 참, 나.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좋은 걸 어떡하나. 정말 행복했던 걸 어떡해.
비록 그곳에는 생일인 사람은 없고 축하하는 사람들만 있지만, 정작 주인공은 지구 반대편 젊은이들이 모여 본인의 탄신일을 핑계로 잔뜩 사진을 붙여 놓은 채 어떤 호들갑을 떨고 있는지 추호도 모를 수 있지만..
Whatever, 뭐 좀 어떤가. 그저, 그와 그의 형제가, 뼈에 사무치는 아침의 한기와 고통에도 불구하고'Live Forever' 한 것에 감사하며 웃고 행복해했는데. 그들의 노래를 계속해서 듣고 공연을 볼 수만 있다면 평생을 'Sally'로 살며 기다릴 수도 있는데. 누가? 내가. 그리고 그 자리의 많은 이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