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주세요제가다잘못했어요
"그럼 저는 2주 동안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똑같이 사시면 돼용"
"아.. 네네. 정말요?"
"할 수 있어요, 우리. 스케일링도 잘하셨잖아요."
울고 싶다. 똑땅해 이모티콘처럼 울고 싶다.
두 눈을 가리고서.
31일에 나는 다시 태어날 것이다. 죽을 거니까.
나란히 붙은 뒤쪽 어금니 사이에 충치가 생겼다. 바깥에서는 안 보인다고 했다. 진짜 웃겼을 모양새로 사진을 몇 장이나 찍었다. 신경치료를 해야 할지, 뭐더라. 아무튼 치아를 본떠서 깎아낸 자리에 다시 씌우는 것으로 끝날지는 그날이 되어 봐야 알 수 있다.
열흘 전에 스타벅스 해리포터 케이크를 먹었다. 그 생경한 형광빛 도는 핑크색의 크림치즈 맛, 뻑뻑하고 달기만 한 갈색 시트의 답답한 조합을 딸기잼이 뚫었다. 몇십 회의 달리기를 기념하는 설빙도 와플대학도 때를 놓쳐 벼르고 있던 대신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행복했다. 60번째 뛰고 걷기를 기념할 것까지 당겨서 먹었다.
스케일링을 받고 온 날이었다. 한 시간 정도 커피도 귤도 방울토마토도 먹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있다가 그렇게 그냥 케이크를 시켜서 혼자 식사하듯이 퍼먹었다. 그런 알록달록 유치하고 불량식품 같은 케이크가 내 이상형이었다는 걸 알았다.
원래는 치과를 다녀와서 달리기를 하러 나가려 했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나갔다. 환기가 필요했다. 오전 일곱 십 분부터 한 시 사십 분 정도까지 줄곧 서 있었다. 애는 상태가 안 좋았고 오더는 돌아서면 몇십 개씩 났다. 내 담당 환자의 보호자들이 자꾸 바깥으로 나가 엉뚱한 사람들에게 퇴원을 재촉해서 도무지 스테이션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근무 강도에서 온 스트레스는 퇴근길 엘리베이터에서 들은 하이라이트 곡으로 녹였다. 이제는 일이 힘들어도 인생은 왜 이 모양이고 이 일을 계속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과연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하는 뭐 그런 심오한 생각까지는 안 한다. 나는 그 정도로 성장한 나 자신을 대견해하고 있었다. 그들의 사진 한 번으로 이 '현생'을 잊게 된 나를 조금 칭찬해 줬는지도 몰랐다. 다섯 시 반 치과로 가기 전까지는.
솔직히 말하면, 정말 그냥 여과 없이 굳이 말하자면, 나는 보호자들이 '멍청한' 질문을 하는 게 너무 싫었다.
검사 언제 가요, 집에 언제 가요, 얼마나 아파요,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절대 정확히 대답할 수 없는 것들. 말하기 싫은 게 아니고 나도 모르니 어쩔 수 없어서 몹시 싫었다.
5 정도로 아파요. 1300 정도로 아파요. 그래서 자는 약 써야 해요. 2시쯤에 불러준다고는 했는데 사실 누구누구는 그 정도로는 안 아픈 애라서 다른 중환자실이나 응급실 환자가 끼어들면 저녁 여섯 시나 가능할 수도 있어요, 원랜 내일 집 가는데 검사에서 뭐 나오면 무기한으로 늘어나요, 근데 안 좋을 것 같다고 아까 주치의가 떠들고 다녔어요. 여차하면 교수님이 설명하러 직접 불러내실 거예요..라고 말할 수는 없다.
분명 아침에도 점심때도 언제쯤 콜을 주시겠지만 그건 추산이라고 미리 다 말했는데 그들은 했던 말을 또 하면서 자꾸 나를 쪼았다. 그런 말 한마디 한 마디를 나는 잔뜩 친절한 척하며 응대해야 했다. 치과의 그분은 참 친절하고 섬세하고 따뜻했다. 내가 일곱 살짜리 애인 것처럼 대해 주셨다. 치과에 오면 다 애 같아져서 그런가.
(그녀를 떠올리니 걱정이 쪼끔 주는 것 같기도 하고. 마치 따뜻한 친구를 보러 가는 것처럼.. 하지만 정말 아주 조금이다)
내가 말을 붙이는 것 자체가 그 사람에게 일을 추가로 주는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질문을 끝까지 참았다. 내 못된 성격에 멍청한 질문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보호자들의 그 물음이 아니고 정말로 멍청한 질문이었다.
입으로는, 비비탄 총알 피하듯 나의 교대근무와 치과의 설 휴무 일정과 기타 등등을 비껴서 치료 날짜를 잡고 있었지만 내가 계속해서 했던 생각은 단 하나였다.
그냥, 모른 척하고 살면 안 되나요, 안 하면 어떻게 돼요. 안 하면 어떻게 돼요. 진짜, 안 하면 어떻게 돼요?
나 스물여덟 살인데. 요새 여덟 살도 이런 질문은 안 할 것 같은데. 그런데 진짜로 지금도 궁금하다. 절망적으로 궁금하다. 안 하면 어떻게 돼요.. 정말로?
신경치료요? 네. 하실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요. 너무 긴장하지 않으셔도 돼요, 벌써부터. 그날 자세히 봐야 알 수 있는 거라. 신경치료를 하시게 되면 비용이.. 아니. 비용 같은 건 이제 아무 상관이 없었다. 안 아프게 할 수만 있다면 나는 그녀가 말한 비용의 다섯 배쯤을 낼 용의도 있다.
(이 대목에서 갑자기 상당히 부끄러워진다. 얘들아. 안 아프다고 을러 대듯이 말한 거 정말 미안해. 다른 뜻은 없었어, 너네가 너무 울고불고 가만히 있질 않아서 그 말에라도 좀 쫄기를 바랐어. 그리고 그건 진짜로 안 아픈 것들이었단 말이야. 나는 너네한테 거짓말은 안 했어. 정말이잖아)
동기들은 근무표와 퇴사하는 누군가와 병동의 이런저런 일들에 대해 카톡으로 떠들고 있었다. 워치를 안 차고 나온 걸 알았다. 집에 다시 들어갔다. 좀 죽고 싶었다. 사실 아까 그 분과 무슨 치료는 어떻게 진행되고 내 경우는 사진을 보니 저떻고 하던 시점부터 많이 그랬다.
나는 끼어들어 나의 충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날 내게 명복을 빌어 달라고 했다. 동기는 신규 뒤턴을 받느라 '개빡친'날 집에 와서 위장부터 데워 줬다고 하며 불닭볶음면과 만두 사진을 보냈다. 그래. 불닭볶음면. 씹어야 하지. 정제 탄수 덩어리. 가능할 때 많이 먹어라. 나는 그 사진을 보고 마치 지금부터는 일신상의 이유로 식음을 전폐해야 하는 사람인 것처럼 생각했다. 나 죽고 싶음. 아무것도 안 먹고 싶다. 어떡하냐.
그리고 그 동기는 아... 하더니 나도 죽고 싶다고 했다. 나이트 출근 중이라서. 하하. 그녀는 교정기를 끼고 있었다. 나보다는 치과를 덜 무서워하려나? 아니야. 나는 나름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다. 병원이 무서운 게 아니었다. 신경치료가 무서웠다. 그 불확실성이 무서웠다. 아니. 나는 이런 애매하고 추상적인 단어를 쓰고 싶지 않다. 내 충치가 어디까지 퍼져 있을지 정말 정말 너무 무섭다.
치석을 떼낸 자리에 열흘 새 다시 프라그가 차오르려 한다고 했다. 또 스케일링을 했다. 살은 빼면 되고, 당류는 줄이면 되고, 체력은 키우면 된다. 피곤하면 자면 되고, 기분이 안 좋으면 돈을 쓰고 달리기를 하고 뭐 기타 등등을 하면 된다. 못 하겠는 건 포기하면 되고, 안 될 것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빨은, 이는 어떻게 해야 하나. 안 먹고 살 수는 없잖아. 나는 건강한 치아 같은 걸 욕망한 적 없는데 왜 이런 벌을 받는 거지. 내가 많은 걸 바라지 않았던 것 같은데. 나는 내 치아에게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내 통수를 때려.
나 뭐 잘못했니? 우리 아는 사이였나? 난 네게 어떤 억하심정도 바라는 것도 교류도 없었는데.. 넌 그냥 내 치아였잖아. 우리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내 관심이 좀 더 필요했던 거니? 나를 좀 많이 좋아했니? 그럼 티를 좀 진작에 내지 그랬어. 아. 작년에 치과를 좀 가지 그랬냐고. 그러니까.. 왜 이제서야 이러냐고. 왜 이래. 나한테 왜 이래. 병원에서 하라는 세상 쓰잘데없는 검진도 근무 전후로 꼬박꼬박 분노를 참아 가면서 했단 말이야. 차라리 그 때라도 티를 내주지 그랬니. 왜 이렇게 치졸한 방식으로 복수하는 거야.. 응? 내가 쫄쫄 굶고 물만 마시기를 바라는 거니? 그렇게 꼭꼭 숨어 있는 널 내가 대체 어떻게 찾고 관리해 주길 바라는 건데. 바라는 게 왜 이리 많아? 너 나한테 이러면 안 돼. 정말. 제발. 내가 다 잘못했어. 정말로. 미안해. 다 잘못했어. 제발..
사랑해. 나는 널 항상 사랑했나 봐.
어떡하지.
정말 너무 무섭다. 이게 다 꿈이었으면 좋겠다. 과장이 아니다. 이런 밑도 끝도 없는 생각이나 하게 될 정도로 무섭다.
+
.. 아니면 정신을 좀 차리시고 오늘 받고 가셔도 되구요.
(진짜 그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싫다고 했다.
나한테 징징댈 자격이 있나?
2주 동안의 괴로움을 자초한 거나 다름없다.
정말 너무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