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테를 접어두고
직업이 생겼다. 2021년.
이런 식으로 모든 푸념과 두꺼운 포부를 내놓는 마음의 뭉치는 이번이 유일할 것이다. 감정을 줄이고, 주관성을 더 내려놓고, 가능한 짧은 글을 쓰고 싶었지만 언제나 실패했다.
오늘도 한 번만 더 아예 반대로 가자고 나 자신에게 말한다. 항상 안 됐는데 하루쯤 더 안 된들 뭐가 다를까.
나는 병원이라는 환경의 특수성을 인정하기로 했다.
전시회에 갔다. 미국의 작품들을 다룬 현장이니 당연한 거지만 미국 중심의 사진들이 참 많았다. 국가를 떼어놓고 보면 별 것도 아닌 몇 장의 사진들을 보며 저 사진들이 찍힐 때 한국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올렸다. 사진 한 컷과 설명을 보려면 멋을 잔뜩 부렸으나 배려심은 부족한 사람들을 두세 겹 피해 몸을 비틀어야 했다. 인류애와 세계 시민으로서 가져야 할 자세 같은 걸 느껴야 할 전시에서 나는 지겨움을 먼저 느꼈다. 그러지 않으려고 걸음을 뗄 때마다 참아야 했다. 도시잖아. 대도시. 그래서 이런 전시도 열리는 거잖아. 주말이잖아. 다들 바쁘잖아.
아이들과 어른이 함께 프레임에 잡힌 컷들은 언제나 더 강렬했다. 문제는 나였다. 시신이 되었거나 될 예정인 아이와 어른이 찍힌 사진들 앞에 섰다.
봄이, 현이, 린이, 빈이, 후, 연이. 그리고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잊을 수 없는 얼굴들을 생각했다. 그러지 않으려 했는데 역시 잘 되지 않았다. 부모들은 시체를 끌어안고 울었다. 내 동기들은 그 몸들을 닦고 관을 빼고 드레싱들을 떼고 여기저기 묻은 머리털이 숭숭 떨어지는 팔다리를 잡고 옷을 갈아입혔다. 고등학교 친구들 같다고 생각했던 입사 동기들이 잔뜩 어른으로 보였다.
밤을 아예 새우고, 술을 조금 마시고 양치한 후 장례식장을 수소문해 찾았다. 어머니는 병원 내에서 착용해야 하는 핑크색 보호자 팔찌를 아직 하고 있었다. 빈소를 나오기 위해 인사를 하다 그녀 손목의 그것을 보고 나는 내가 유니폼을 입고 있는 것처럼 오른쪽 주머니 쪽으로 손을 뻗었다. 끊어 드리려 했으나 나는 까만 재킷을 입고 있었다. 제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게 없어서 못 끊어드리겠어요, 했다. 엄마는, 연이 보호자라고 쓰여 있는 게 좋아서 일부러 안 뺐다고 했다. 드라마 대사 같았다. 원래도 모르는 사이나 다름없었고 앞으로도 볼 일 없을 인연이다. 십 년을 다닌 것도 아닌데, 나는 내 생각보다 그런 극적인 것들을 너무 많이 본 것 같았다.
전시장에는 시대를 관통한 희비의 장면들이 가득했다. 나는, 내가 너무 쓸모없이 많은 것에 익숙해졌다고 느꼈다. 이상하게 오만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찝찝했다. 불행. 내가 보고 느끼고 만졌던 그것들이 더 불행했다. 가장 슬픈 점은 그것들은 모두 사진 한 장으로 끝나지 않고 앞으로도 반복될 거라는 점이었다. 그 사진들도 그걸 말하고 싶었을까?
성인들을 볼 때는, 나 역시 이곳에 누워 병든 채로 생을 마감하겠다고 예감했다. 다들 그렇게 가지각색으로 고통받으며 누워 있는데 안 그러기도 쉽지 않다. 아이들을 볼 때는 양가감정이 들었다. 상태가 안 좋은 애들일수록 그랬다. 그들이 죽었을 때 나는 있는 눈물 없는 눈물을 다 흘리며 그들을 환송해 주었지만, 그 직전까지 그들은 그렇게 아름다운 마음만으로 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해열제나 진통제나 추가되는 검사와 약제를 가장 먼저 신경써야 했고, 보호자들은 곤두서 있었으며, 의사에게 확인받아야 할 것들은 자꾸 늘었고, 무엇을 어떻게 할지 제때 캐치하지 못하면 진료과에서도 뒷턴 간호사에게도 핀잔을 먹었다. 내가 담당하는 환자는 그들을 빼고도 열 명에 달했다.
투약을 재촉하는 그들의 부모가 야속했고, 다른 중환 때문에 본인 아들딸의 처치가 늦어지는 것을 나무라는 다른 부모들이 몹시 미웠다. 왜 지금까지 되어 있는 게 없냐고 스테이션으로 전화를 걸어 윽박지르던 의사에게는 내가 네 환자만 보는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내가 월급을 받는 대가가 이렇게 독해야 하는지 울분이 들었다. 사선에 누운 애들이 있을 때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것도 문제였다.
병원은 내게 힘든 곳이 맞았다. 맞다. 원래 밥벌이는 힘들다. 제일 의미 없고 공감하기 귀찮은 주제가 본인의 일에 대한 푸념이다. 안 힘든 일은 없다. 제각기 고충이 있고 견디기 힘든 점들이 있다. 돈을 주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느끼는 힘듦을 확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인정하기로 했다. 21, 22, 23, 24, 25. 별로 의미 있는 카운팅은 아니지만, 병원이라는 곳에서 봉급을 받기 시작하고서 숫자가 다섯 번 바뀌었다. 중간에 빈 시간들이 있지만 이제는 아예 이곳의 생리에 대해 무지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직장생활에 익숙해지고 있는 중이었다.
일반 회사 등에서 근무해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른다. 원래 남의 입을 통해 들려오는 일화는 그 일의 아주 작은 부분만 말해 주니까. 아무튼 나는 이런저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근무환경에 대해 신기해했다. 그들 제각기의 현장도 치열하고 짜치고 진지하고 건조한 모양이었다. 대체로.
각자의 자리에서 할 일을 하고 월급을 받았고 나름의 자아실현도 해 나가는 중이었다. 그걸 지켜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경우도 둘러보고, 내 자리에서 시간이 지나며 느낀 게 하나 있다. 나는 병원이라는 환경을 아주 싫어하지는 않는다는 점.
이곳에서의 일에는 단 한 가지의 기만도 비효율도 없었다. 무가치한 일도 없었다. 물론 멀리서 보면 그냥 사회의 어느 구석이 굴러가는 양상처럼 뒤가 구리고 앞뒤가 안 맞는 일이 가득했으나, 나 같은 말단 직원이 부산을 떨며 해야 하는 무수한 일처리들에는 딱히 토를 달 사유가 없었다.
수치가 떨어졌으니까, 이 검체가 굳으니까, 금식 시간이니까, 열이 나니까, 발견되었으니까.. 처방과 검사들은 다 진실이었다. 마음에 드는 것은 그것 하나였다. 어쨌든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그 알량한 느낌.
출근해 모든 행위를 할 때 진심이다. 퇴근해서 찝찝하지 않도록, 남의 몸으로 들어가서 되돌릴 수 없는 무언가가 잘못되지 않도록, 어쨌건 뒤탈이 없게 최선을 다한다. 그래도 잘 안 될 때가 있다. 근무자가 결원이라 다섯 명이 해내야 할 일을 셋이 간신히 해 낼 때. 그런데 그 일이 내가 컴퓨터 앞에 앉아 밤을 새운다고 해결될 그런 일이 아닐 때.
검사실에서는 애를 지금 재워 달라고 하고, 응급실에서는 지금 인계를 받으라는 연락이 오고, 산소포화도가 떨어져 오르지 않는 애의 보호자가 나를 호출할 때. 그 일들이 이삼 분 간격으로 일어날 때. 이 환경이 말이 안 되는 게 맞다는 걸 집에 와서 느낀다. 내 몸은 하나니까. 아무튼 나름의 우선순위를 세우고 없는 도움이나마 받아 일을 처리한다. 그리고 생각했다. 의료사고 한 번 크게 나야 되겠다고. 나는 퇴근해서도 그 생각을 했고 그다음 날에도 그 생각을 했다. 보통 생각과 감정은 휘발되는데, 나는 그 생각을 했던 나 자신을 쪽팔려하지도 않았고 생각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실제로 있었던 사고들을 떠올린다. 그런 일들이 있었지만 어쨌든 병원은 변하지 않는다. 최소한의 인력으로 기관을 가동시킨다. 오류가 생긴다. A형 환자에게 O형 혈액을 준다거나 하는 사고, 왼쪽 눈에 했어야 했을 시술을 오른쪽 눈에 했다던가.. 뭐 그런 일들. 이미 벌어진 실수나 잘못들은 잔뜩 있었지만 그때에도 지금도 변한 것은 없다. 지겨워해 봐야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나는 샤워를 하면서도, 달리면서도, 회복이 되지 않는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는 내게 의료인이라고 한다. 아. 그렇구나. 병원이 그러는 게 아니고, 나라에서 그렇게 정해 주었다. 나는 이미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뭐 어떤 책무를 더 하라는 건지 알 수 없다. 의료인, 맞지. 간호사니까.
의료인, 그 거창해 보이는 단어. 실상 의사만이 병원의 신이며 존재나 다름없는 이 나라에서, 나도 그런 명칭으로 불리는구나. 꼬우면 공부 더 해서 의사 하던가, 하는 말이 통하는 곳에서, 나조차도 그런 생각을 하는 이곳에서 나는 나를 싫어하고 어쩌면 나 스스로도 반기지 않는 이 직업에 꽤나 매 순간 진심이었던 것 같다. 그냥 내가 그렇게 느낀다.
힘들다. 나는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안다. 얀테의 법칙, 이라는 말을 처음 접했을 때 신기했다. 이 당연한 게 어디서는 법칙으로 분류되어서 오르내린단 말이야? 당연히 다들 이렇게 생각하고 사는 거 아니었나. 그렇구나. 아니기도 한가 보다. 여타 직종과 구분을 짓는 것 같아서 간호사라는 단어도 의료인이라는 단어도 싫었다.
비교하자면 차라리 간호사가 나았다. 이 후진 모양새와 꾸역꾸역 사람이 없으면 없는 대로 일해야 하는 근무형태와 병원의 행정 처리 양상이 나의 보잘것없는 자의식에 잘 맞았다. 그런데, 의료인이라.. 거창하구나.
나에게 간호사는 매체에서 비치는 것처럼 멀끔하고 친절한 조력자가 아닌, 능력치는 어정쩡하고 실로 만만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만능 심부름꾼이다. 아니라고? 그건 내가 그런 식으로만 일하기 때문이라고? 그러면 그게 맞겠지. 간호사라는 직업을 선택하려 했을 때도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내 관념이 강한 게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숫자가 다섯 번이나 바뀔 동안 그것만은 들어맞아 변하지 않았다.
다른 일을 목전에 두면서 등 뒤와 옆의 일까지 정확하게 해야 하는 게 만능 심부름꾼이 아니면 뭘까. 이에 반해 의료인이라 하면 좀 똑똑하고 뭐 정제된 환경에서 일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그런데, 그래도 되는 거 아닌가. 말마따나, 생명을 다루는 중한 직종이잖아. 나는 내가 의료인이라고 느껴본 적 없다. 그런 감투와 의무를 주려면, 그렇게 일할 환경을 조금은 더 만들어 줘야 하는 거 아닐까.
별 것 없는 자아에 의료인과 병원이라는 책무를 씌우자고 생각한다. 단지 행위 하나하나를 조심하는 게 아니라, 뭐. 그래. 이런 특수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특수한 직종인 만큼, 그리고 이게 나한테 사실은 힘든 만큼, 받아들이자고. 이제야 인정한다. 나한테 이 일은 가끔 꽤나 버겁고 나는 이 환경에 불만이 많다. 한국에 안 그런 곳이 있나. 어디든 일이 터지기 전까지는 극한으로 사람을 굴린다. 안다. 하지만 힘들다. 병원은 흉터가 많은 곳이고 나는 그것들을 모두 목도하면서도 아무것도 못 본 기계인 것처럼 일해야 한다. 나에게도 그들에게도 가끔 슬픈 곳이다. 정말 가끔은, 이 선택밖에는 정말 할 수 없었을지도 잠시 생각한다.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 이것 역시 다 내가 질 몫이다. 일할 거니까. 올해도, 내년 어느 시점까지도.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일할 거니까. 여기서.
힘들어도 어쩔 수 없다.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하면 된다. 이곳은 특수한 곳이고 그런 차별성을 가지고 일해도 되는 곳이다. 나는 똑똑하지도 폼 나지도 멋있는 존재도 아니지만 어쨌든 이 일은 중요한 일이니까.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자. 가져도 된다. 목에 깁스한 듯 고개를 빳빳이 쳐들려는 게 아니다. 그냥.. 힘든 이유가 있고, 그럼에도 그만두지 않을 거니까 힘든 마음을 한 번 접어두자는 생각이다.
싫어도, 아직도 어색한 것 같아도, 간호사라는 단어 자체도 거북스러울 때가 있어도 어쨌든 지금껏 일했고 이게 나의 직업이니까. 언젠가는 정말, 다 그리워질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