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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의 진행형

당신과 모든 고락을 함께하겠습니다

by 이븐도





한 번은 해 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엄마아빠가 너무 늙기 전이어야 할 것 같았다.

이 행사는 새 부부의 탄생 기념식이기도 하지만, 그들을 이렇게 키워낸 양쪽의 부모들이 당신들의 자녀를 마지막으로 보는 페어웰 같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결혼도 엄마아빠의 눈치를 보며 그들의 기준에 맞춰 하게 되는 거 아닐까 했던 언젠가의 이상한 두려움이 현실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건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때 고려할 일이고, 아무튼 그들이 내게 준 사랑을 배반할 수 없겠다고 그 자리에서 느꼈다.






본가 서랍에는 연애편지가 한 무더기 있다. 내용을 다 확인하지는 못했으나 아무튼 결혼 전 오간 편지들이니 연애편지가 맞다. 무료한 휴일, 초등학생 때였나, 중학생 때였나. 가족들은 낮잠을 잤던 것 같다. 긴 속눈썹을 달고 파란 땡땡이 원피스를 입은 곰인형이 입술을 내밀고 선 일러스트의 카드에는 하얀 구멍이 나 있었다. 거기에는 누군가의 립스틱이 발린 입술 자국이 나 있었다.


나는 항상 그 자리 가득 채워져 있던 서랍칸에서 그것을 꺼내 들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아.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둘이 서로 사랑하긴 했던 거야? 정말? 사랑해 줘, 잉? 그건 분명 냉장고나 도시락에 붙어 있던 엄마의 글씨체였다.






아빠는 엄마랑 왜 결혼했어,라고 때때로 물었다. 나는 아빠와 성향이 비슷했고 동생은 엄마와 성향이 비슷했다. 우리는 가끔 이 지붕 아래서 서로의 아군이었다. 질문의 속뜻은, 긴 한숨 뒤 차로 피신해 조수석에 앉은 채로 묻는 대체 어떻게 저런 사람이랑 결혼했어, 일 때도 있었고,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그렇게 예뻤던 엄마는 왜) 아빠랑 결혼했어, 일 때도 있었다.



몇 가지 기억에 남는 대답들이 있다.

1. 귀엽잖아

(차마 미쳤어?라고는 할 수는 없었으니 다른 말을 했을 텐데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2. 나도 모르겠다

(아빠가 나한테 되물었다. 너희 엄마는 도대체 왜 그러냐. 내가 어떻게 알아, 저런 줄 모르고 결혼했어? 그리고 아빠는 싸가지 없는 딸의 말버릇과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본인의 상황에 아마 끊으려 노력했을 담배 생각을 했을 것이다)

3. 시골 사람이잖아. 무던하고. 아빠는 도시 사람이고.

(뭐라고? 그게 무슨 뜻이야? 이동도 많이 해야 되고, 시골에서 살아야 할 수도 있는데, 도시 사람이면 그런 걸 견디겠냐 -글쎄. 내 입장에선 다 시골이었다. 음.)



1의 경우는 꽤 어이가 없었고, 2의 경우는.. 이제 자식들이 대충 장성했으니 이제 그 계약의 효력을 대충 끝내도 될 수도 있기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3의 경우가 충격이었다. 내가 아는 아빠는 굳이 따지자면 로맨틱한 척을 조금 했을 것 같은 사람이라서 저런 대답을 예상치 못 했기 때문이다.

(서랍장 가득한 편지도 2/3 정도는 아빠가 엄마에게 보낸 것이었다. 내용은 안 읽었으나 발신자와 수신자는 모두 확인했던 이유는, 나는 그 당시에도 엄마가 아빠를 좋아하기는 했었던 건지 진지하게 궁금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당장의 그 두 사람은 잘 지낸다. 별 것도 아닌 것도 하루종일 타박을 하고 그러면서도 장을 같이 보러 가고 또 타박을 하고 별로 안 웃긴 얘기를 계속해서 하고.. 그렇게 살고 있다. 나의 부모님은.






십 년 전 수학 과외 선생님의 식장 앞까지 가본 것 빼면 아마 최초로 가보는 남의 결혼식이었다. 주변인들의 결혼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굳이 그 멀리까지 찾아갈 열정이 없거나, 스케줄 핑계를 대며 충분히 빠질 수 있을 정도의 사람들의 사건들이었다. 병동 선임의 혼식이었다.

나이트 출근을 해야 했지만, 그래서 그 시간에는 응당 자야 했지만, 결혼식이 생각보다 늦은 시간대였고 같은 노선의 지하철역 근처였다. 그전날 나이트 근무를 했던 사람도 참석하는 모양이었다. 많은 여건들이 참석을 종용했다. 앞으로는 정말 결혼식에 갈 일이 많을 것 같기도 했다. 가는 것도 연습이려니 하며 옷을 챙겨 입고 지하철을 탔다.



병동에서 맨얼굴에 유니폼을 입고 짜증을 내고 한숨을 쉬고 웃고 뭔가를 먹고 또 웃고 친절한 응대를 하고 무척이나 피곤하고 지친 표정으로 퇴근하던 사람이, 예식장 안에서 공주님이 되어 있었다. 메이크업과 드레스가 상당히 잘 어울렸고 참 아름다웠다. 원래 예쁜 사람이었다. 청첩장과 인스타 게시물로만 보던 남편을 보니 연예인을 보는 기분이었다.

각각 핑크색과 파란색 한복 치마를 입은 양가 어머니들이 먼저 로드를 걸어 캔들에 불을 밝혔다. 아버지가 선임의 손을 잡고 남편에게 그녀를 데려다주었다. 이런 과정은 누가 만든 걸까. 눈물이 났다. 어떻게 이렇게 감성을 터뜨리는 포인트를 잘 짚어냈지.


돈을 냈고, 음악이 나왔고, 정해진 순서가 있으며, 꾸민 사람들을 관람하며 환호하고 감정을 쏟아내고 감동을 받기도 했다. 상당 부분이 콘서트와 비슷했다. 공연과 다른 점은, 가능한 적게 하는 점이 좋다는 거지만.. 아무튼 재미있었다.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랑의 아버지께서 축사를 하셨다. 나는 정말 진지하게 경청할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도무지 들리지 않았다. 아, 여기서 콘서트와의 공통점이 하나 더 나온다. 음향이 괜찮은지 아닌지도 꽤나 중요한 요소일 수 있다.

(나는 이 웨딩홀을 한 시간 빌리는 데 들었을 비용을 듣고, 야. 그냥 병원 거기서 하면 빵원이라는데, 넌 어때. 라고 물었다. 그런 것에 무신경할 것 같던 동기는 의외로 인상을 찌푸리며 나는 내 직장에서 결혼하고 싶지 않아,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한 문장은 들었다. 앞으로, 평생의 고락을 함께하게 되는.. 어쩌고.. 평생의 고락이라. 앞으로 가능한 죽을 때까지 같이 사는 것. 아빠가 연금 때문에라도 먼저 안 죽을 테니까 당신이나 건강관리 잘해,라고 하는 것처럼. 생판 남이었던 사람과 숨이 끊어질 때까지 보고 대화하며 근황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걸 매 순간 지켜보는 것.


아니, 이건 로맨틱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드레스 입고 턱시도 입고 꽃장식 가득한 곳에서 예쁘게 웃고 낭만적인 말들에 기댈 수 있는 현장이 아니었다. 나는 그때 다시, 아.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는 일단 대기실에 앉아 있던 선임 모습을 보고 강렬한 감동을 받았을 때였고, 두 번째가

Waltz for Debby, 가 식장에 깔렸을 때, 세 번째가 둘의 연애 영상이 나왔을 때, 그리고 그 시점이었다.

아. 결혼은 저런 거구나. 정말로. 평생의 좋고 나쁜 일? 이런.






여름날 주말의 이케아에는 가족 단위의 사람이 너무 많아서 다니기 힘들었다. 엄마와 나와 아빠는 대충 살 것을 고르고 실내 카페에 앉아 있었다. 애를 데리고 온 사람들만큼이나, 사람 것보다 좋아 보이는 유모차에 강아지를 태우고 온 사람들도 많았다. 아빠는 도처에 깔린 남의 자식들을 보고서 여전히 미소를 멈추지 못했다. 아마 귀여운 것에 환장하는 그런 쓸모없는 성정은 아빠한테서 온 거 아닐까 가끔 생각한다.


난 애 안 낳을 거야. 누가 뭐라고 했냐, 가시나야. 일해보니까 더 못 낳겠어. 건강한 건 랜덤이고 축복이야. 결혼도 잘 모르겠어. 엄마, 나는 그냥 나 혼자 살 작은 집이나 있고 내 건강이나 있으면 돼, 걱정 마.

너 혼자 일해서 집을 어느 세월에 사냐, 꿈도 야무지네, 지지배. 그리고 엄마는 덧붙였다. 야, 너 엄마아빠 결정사 얘기 했던 거 알고 있냐? 뭐라고?






내가 분당에서 교대근무를 하며 아이돌 덕질이나 하는 동안 엄마아빠는 이런 깜찍한 계획을 짜고 있었다니. 엄마, 돈 많아? 왜 그런 데다 쓰려 해. 아니 그보다, 아빠. 진짜야?

얘기는 했지. 했었지, 지난주에? 뭐? 아니. 대체 왜? 갈 수 있을 때 제일 안전한 선택을 하는 게 좋지 않겠니. 아니.. 그건 맞지, 맞는데. 정말 가입했어, 벌써? 안 했지, 가시나야. 알고나 있으라고 하는 소리야.


진짜 웃겨서 깍깍깍깍 웃음이 나왔다. 초록색에 바나나 무늬의 귀여운 상의를 입은 귀여운 애에게 뭔갈 먹이던 젊은 엄마가 나를 힐끔힐끔 봤다. 아니. 엄마아빠 돈 많냐구, 그럴 돈 있으면 여행이나 가. 아니, 무슨.. 그래. 우리가 미쳤나 보다. 지 혼자 잘 사는 가시나 냅두고 우리끼리 놀러나 가지. 그리고 아빠는 웃기만 했다.




조립 가구들과 스웨덴 감성을 얹은 다이소 물품 같은 것들을 카트에 싣고 거대한 엘리베이터를 탔다. 결정사. 결혼정보회사. 너무 어이가 없는 단어라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아니. 근데 벌써 그렇게까지 하려는 이유가 뭐야, 아빠. 뉴스에 나오잖아. 학벌이랑 직업 좋다고 그 사람이 괜찮을 거란 보장이 어딨어. 그건 그렇지, 그런데 확률을 높일 수 있잖아.

(엄마가 그리고 끼어들어 벌써 아니야, 가시나야. 했다)


하, 그러고 다시 드는 생각은.. 고맙다. 엄마아빠는 정말 내 평생을 책임져 주는구나. 다 키워서 등록금 대 주고 또 몇백 들여서 결혼도 시켜 주려고 하고.. 근데 진짜 한 거 아니지?

아직 안 했어. 그리고, 평생 못 책임져 주니까 그런 델 가보려고 하는 거지. 아니냐?

그래, 가시나야. 평생 못 데리고 있으니까 알아본 거지. 이런 부모가 어딨냐. 어떡하려고 그래!






야, 나 엄마아빠가 결정사 알아봤댄다, 하는 말에 병원 동기들과 친구는 다 같은 반응을 보였다. 각자 목젖이 넘어가게 웃었고, 이후에 관련 대화 주제가 나오면 나의 그 화젯거리를 끊임없이 언급했다. 언니 집 재벌이야? 하는 말도 했고, (그러면 내가 그 좁아터진 기숙사에서 2년을 다 채워 살았을 리가 없지) 개중에는 아, 내 주변에도 가입한 사람 있어,라는 진지한 후기 아닌 후기를 들려주려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주제를 던져 놓긴 했으나 그와 관련된 것 들 중 그 어느 것에도 관심이 없었다. 너무 웃기고 짠한 일이라 언급한 것뿐이었다. 나를 평생 책임질 수 없어 대리인을 구해 주려 하신다라.. 하, 참. 뭐. 눈치 좀 덜 보고 살려고 일찍 집에서 나올 수 있는 직종을 선택했건만, 이 사랑은 너무 찐하고 버겁게 따뜻했다. 어떡하지. 진짜 어떡하지.

뭘 어떡해. 그런다고 결혼할 사람이 피켓 들고 신분당선 게이트에 떡하니 등장할 것도 아니고. 달라진 건 없다. 아쉽게도.






결혼을 말했던 상대를 생각했다. 이제는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고 알아도 모른 척해야 하는 이상하고 웃긴 관계가 된 지난 사람. 고락? 그것도 평생? 절대 불가능. 일 초도 고민하지 않았다. 그는 아마 내가 본인 앞에서만 즐거워하기를 바랐던 사람 같았다. 함께 있으면 즐겁기는 했으나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편안한 만큼 숨이 막혔고 이상하게 불편했다.



싸워서, 연락을 반나절간 하지 않았을 때 나는 스스로도 의아할 정도의 해방감을 느꼈다. 그는 바쁘게 일할 시간이었고 우리는 당장 냉전 중이었다. 정당한 사유가 생겼으니 완전히 오프라인이 될 수 있었다. 휴대폰을 비행기모드로 바꾸고 음악이나 들으며 카페 바깥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봤다. 그와의 연애에서 떠오르는 기억 중 꽤나, 너무 행복했던 두 시간이었다. 나는 그를 분명 좋아했고, 그가 하자는 대로 했고, 시간을 자주 같이 보냈고, 시시콜콜한 연락들을 했고, 기분을 맞춰 주었다. 그 역시 내게 그렇게 했다.


종종 그는 본인을 외롭게 하지 말라는 말을 했다. 외롭기까지 하다면 이건 대체 뭐 하는 관계일까.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그 밑도 끝도 없는 질문에 대한 답을 혼자 고민해야 했다. 평생의 고락이라. 어려웠다. 남의 결혼식 현장에서라도 그런 표현을 듣고 생각해 볼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누군가와 정말로 평생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인가. 지난 애인이 아니더라도, 그 어떤 다른 존재와 공존하며 인생을 지나쳐 보내는 걸 할 수 있는 사람인가 궁금해졌다.






뷔페 음식들이 맛있었다. 옷을 갈아입으러 집에 들를 시간이 됐다. 커피를 진하게 마시고 출근했다. 그래도 너무 졸렸다. 모든 사람들이 아까의 그 결혼식 같은 과정을 거쳐 축복 속에서 아름다운 과정을 남기고 부부가 되었겠구나.


애는 엄마의 길고 하얀 얼굴을 닮았다. 계속 신음소리를 내며 가래를 그르렁거렸고 엄마는 잔뜩 떡진 머리로 안타까워하고 피곤해했다. 아마 그전날에도 잠을 못 잤을 것이다. 모든 고락이라. 엄마는 내게 짜증을 내기도 했고, 나는 일부러 반응하지 않았다. 그냥 나를 부르거나 산소포화도가 떨어지는 게 보이면 똑같이 가서 가래를 빨아들이고 필요한 물품을 채워 넣었다. 결혼식은 너무 아름답고 성대한 이벤트였다. 어떤 고락. 이런 모든 쓴맛? 하필 그 예쁜 행사를 다녀온 날 출근이라니. 화려하고 아름다운 결혼식이 다 부질없는 것 같다가도, 어차피 생은 이런 일들의 연속이니 그거라도 아름답게 치장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양가감정이 들었다.






모든 고락. 상대가 바람을 피우는 등 기본적인 신의를 저버려 사실상 이미 그 계약은 의미가 없는 상태가 된 경우를 빼면.. 이런 일들을 함께 헤쳐나가야 한다. 나는 갑자기 너무 나이가 들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맛있는 밥 먹고 행복하고 예쁜 거 보고 와서 굳이 이런 생각이 드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글쎄, 그러니까 바로 출근한 게 문제였다.


나는 과연 나 외의 다른 사람의 감정까지 헤아려 주면서까지 이런 많은 일들을 상대할 역량이 되는 사람인가. 결혼도 결국 작은 사회생활이겠구나. 드라마, 영화, 인스타그램 게시물과 연애프로그램의 최종 정착지는 이렇게 아픈 아이를 교대로 보는 현실이 아니더라도, 결국은 김칫국물 묻은 티셔츠를 세탁해 입는 것 같은 일상이다.


굳이 누군가와 같이 할 필요가 있는가, 나는 그걸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인가. 연애와 로맨스의 쓸모에 대해서, 그것의 효용성과 방향이 쓸데없이 궁금해졌다.




엄마는 아빠랑 왜 결혼했어,라는 질문에 그녀는 늘 '미쳤었나 보지'라고 일관성 있게 대답했다. 두 사람은 딱 지금의 내 나이때쯤 결혼했고, 호주와 서울 모처의 어딘가에서 찍은 사진들의 엄청나게 마르고 하얀 엄마와 여전히 까무잡잡하지만 (어릴 때 가족사진을 그린 그림에서 나는 아빠를 갈색 크레파스로 그렸다. 아빠는 두고두고 상처받는 것 같았다) 지금보다 부드러운 인상의 아빠는 참 젊고 빛났다. 그들은 사랑해서 결혼했고 나와 동생을 키웠다. 그들의 로맨스는 그들 인생에도 플러스였을 것 같긴 하다. 나에게도 그렇고.


하지만 나는 두려운데.

난 너 같은 사람 또 못 만나,라는 판에 박히지만 당시만은 믿을 수 없게도 진심이었을 그 말을 들으면, 정말 진지하게, 열심히 찾으면 있지 왜 없냐고 생각했다. 세상에 널리고 널린 게 사람인데. 로맨스는 흔하고 감정은 판을 흔 후 사라진다. 모든 고락? 난 아직은, 상황에 흔들려 너무 큰 베팅을 해야 하는 그 변수를 건드리고 싶지 않다. 아, 물론 그럴 상대도 없긴 하지만.. 그게 이 잡념의 가장 웃긴 점이기도 해.






엄마아빠의 우는 내게 내려와 인생을 지어올린 양분이 되었다. 너를 평생 못 책임지니 구하려 한다는 말. 글쎄, 그만큼 나를 생각해 줄 타인 같은 건 사실 없을 듯한데.

하지만 그리 바라신다면.. 노력은 해야겠지. 하지만, 어떻게? 본인들은 죽고 못 사는 연애를 해 놓고 나한텐 결혼부터 바라면 어떡해. 난국이다, 참나.


나에게는 함께할 사람도, 그 제도를 향한 용기도.. 뭐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다. 로맨스가 관통해 지나간 후의 일상은 따따블로 어떻게 들이닥칠지 모르는 사건들의 연속 아닌가?

그래서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우습지만 일하면서도 그들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비록 지났지만 어떻게든 살고 있는 엄마와 아빠의 지난 그것도. 부디 행복하게, 가능한 평화롭게 사셨으면 좋겠다. 모두가.




또한 결혼식은 상당히 흥미로우니 앞으로는 열심히 참석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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