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미소에서 별들이 팡파팡팡
그의 웃음은 슈팅스타를 닮았다.
가만, 그게 몇 년도에 출시된 맛이더라.
아니다. 그 맛과 색. 당신이 미소 짓는 모습을 형상화한 거야. 달달한 파랑, 환상적인 핑크, 강렬히 슬쩍 비치는 빨강, 부드러운 흰색, 톡 쏘는 달큼한 알갱이. 당신이 웃을 때마다 모든 이목구비가 빛을 터뜨려. 그 어떤 것도 단편적으로 그 눈과 입꼬리와 시선을 담아낼 수 없어. 그 아이스크림은 분명 당신의 미소를 본뜬 게 분명해.
각각의 요소들이 모두 반짝이며 어우러질 때, 그 공간은 우주가 돼. 그렇다고 당신이 내 우주는 아닌데.. 우주인가?
그 웃음을 보는 순간 나는 다 잊을 수 있다.
언제부터 그렇게 아름다우셨어요? 태어났을 때부터? 연습생이기 전부터? 데뷔 때부터? 어제부터? 오늘부터?
모르겠고, 사랑한다구요.
그 친구는 오늘 할 일이 딱히 없었다. 두 시 반부터만 병상에 얌전히 누워 있으면 됐다. 나는 아침에 어딜 가시더라도 그 시각 전에는 돌아와 달라고 당부했다. 아는 얼굴이었다. 신경과. 당시에는 꽤 증상이 심했었다. 지금은, 괜찮네? 다행이었다. 두 시 십 분, 그는 내가 앉아 있던 스테이션 앞을 엄마와 지나치려 했다.
어어, 어디 가세요. 아, 저 요 앞에.. 얘, 여자친구 와서요. 여자친구요? 여자친구? 그는 인상을 쓰며 엄마를 째려보았다. 나는 그 친구의 표정을 구경하느라 말을 가로채 그 단어를 꺼내든 엄마의 표정은 보지 못했다. 왜 그리 안절부절못하니. 뭐 그리 별일이라고. 없던 기대도 생기잖아, 친구야.
아하, 여자친구가 왔어요? 그렇구나. 어디서 기다리는데? 저기 휴게실요. 두 시 반까지 들어올게요. 아니야, 저기 계실 거죠? 제가 나갈게요. 하하. 남자애는 눈알만 굴렸다. 애인을 보러 가는 건 본인이 아니고 엄마인 것만 같은 모양새였다. 하하. 여자친구? 여자친구라.. 그런 걸 어떻게 놓칠 수 있겠어. 간만에, 거의 한 달 만에 안 바쁜 데이 근무였다. 인계는 25분 남았다. 비록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지만 딱히 급한 일이 생길 것 같지 않았다. 여자친구라.. 여자친구래.
이히히히히히히. 여자친구래, 여자친구.
휴게실에는 햇빛이 예쁘게 비치고 있었다. 애들이 읽는 동화책이 잔뜩 꽂혀 있고 옆 병동의 성인 환자들이 앉아 있고 이 병동의 갓난아이 몇이 유모차에서 아빠와 엄마와 함께 모여 있는 곳. 둥근 안경을 쓰고 쌍꺼풀진 큰 눈을 가진 그 소년. 저기 있다. 얘야, 네 약을 주러 왔단다. 어딨니, 네 여자친구는.
옅은 분홍색과 녹색과 흰색이 섞인 목도리에 검은 패딩, 목도리의 핑크색과 어울리는 옅은 아이섀도 색. 앞머리를 내리고 머리를 푼 쌍꺼풀이 없는 눈의 또래 소녀. 아하, 여자친구야? 둘 중 누구도 대답하지 않고 웃기만 했다. 웃겨, 니네 진짜 웃긴다, 라고는 말 안 했고.
어디서 만났어, 학교요. 학교? 공학이야? 네에. 그들은 내가 한 마디를 할 때마다 눈을 내리깔았다. 미안, 내 무례함을 용서하렴. 어차피 내일 퇴원이잖아. 다 잊을 거잖아. 나는 플라스터를 끊어 이음새에 둘러 붙이고 속도를 조절했다. 돌아서기 전에 마지막 질문, 누가 먼저 고백했어.
둘은 또 눈을 깔고 웃었다. 저요, 남자애가 대답했다. 여자애는 엉거주춤하게 손가락을 들어 그 친구를 가리켰다. 아, 정말. 어떡하지. 사실 십 분이면 후딱 줄 수 있는 약이지만, 일부러 30분 정도는 들어가게 클램프를 만졌다. 어차피 약 다 들어가도 안 들어오려고 하겠지.
세 시에는 들어오세요. 그리고 둘은 처음으로 같이 대답했다. 네. 어떡해. 정말. 동기의 표현을 빌리자면 '왕귀여웠다'.
겨우 30분을 보기 위해 여기까지 오다니.
그는 다음 약을 맞기 위해 네 시간은 병상에 붙어 있어야 했다. 알고나 왔으려나. 역에서도 꽤 떨어져 있는 병원, 딱히 할 만한 것도 없는 이 동네까지.
그 친구는 57분이 되어서야 복도로 걸어 들어왔다. 멋쩍은 표정으로 나를 봤다. 사실 50분에 나는 그 휴게실로 나갔었다. 아무튼 즐거워 보이는 뒷모습들을 보고 그냥 다시 병동으로 들어왔지만. 다음 약 투약을 뒷턴에게 미룰 수 없어 퇴근도 미루고 기다렸다. 뒷턴? 그래, 그건 핑계고. 나는 물어볼 게 더 남았거든.
"얼마나 됐어?"
"그래, 얼마나 됐니. 나도 좀 듣자."
남자애는 엄마를 또 흘겨봤다. 그러면서도 대답은 꼬박꼬박.
"200일 좀 넘었어요."
"200일? 오래됐네? 그럼 저번 입원 때도 사귀고 있었어?"
마지막으로 본 게 반년을 훌쩍 넘었던 것 같지는 않다. 아이고, 이제 보니 약지에는 반지도 끼고 있었다. 제법인걸.
"근데 그때는 안 오지 않았어? 어디서 온 거야, 여자친구."
"맞아요. 이천이요."
"경강선 타고? 야, 멀리서도 왔다?"
"제가 오지 말라고 했어요, 그때는."
그럴 만도 하지. 그땐 근무 당 서너 번은 토했었다. 엄마가 그래서 나를 기억하는 것 같았다. 하도 토 많이 할 때 봤던 사람이라서. 그래. 만신창이가 된 모습을 보여주기는 좀 그렇지.
"맛있는 거 사줘야겠네. 대단하다, 그 친구. "
코드를 꽂고, 심전도 리드를 붙이고, 언제까지 어떻게 투약될 거라고 대강 설명하고..
"어떻게 만났어."
".. 밴드부요."
"밴드부? 야, 짱멋지다. 진짜. 니가 해? 너 뭔데."
"멋있어요, 진짜 잘 쳐요. 기타 해요, 기타. 이천에서 제일 잘해요"
"기타? 베이스?"
".. 일렉이요."
"일렉? 이햐.. 야. 진짜 멋지다. 어? 그럼 그 친구는? 보컬?"
"피아노."
"건반? 아, 뭐야. 좋겠다.완전 멋지다, 니네."
소년은 웃었다. 엄마도 웃었다. 귀엽다. 커튼을 닫고 돌아서자 아빠랑 누나한테는 차마 여친 만나러 어쩌고.. 말 못 하니까 니가.. 하는 엄마의 말이 들렸다.
나는 내일도 그 친구를 본다. 질문 그만해야 하는데.. 근데, 중요한 걸 안 물어봤잖아.
어디가 좋은지. 왜 좋은지.
절친한 친구는 사랑에 빠졌다.
나는 그렇게 표현하기로 했다. 작년 여름부터 누군가가 그녀의 각종 일화에 자꾸 난데없게 등장하고, 그다지 감정을 터뜨릴 일이 아닌데 작은 일화에도 말이 많아지고 설명이 자세해졌다. 이러저러해서 짜증 난다, 가 대부분이었지만 입꼬리와 눈이 너무 행복하게 웃고 있어서 앞뒤가 안 맞았다. 말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행동거지로 짐작했을 때 좋아하는 게 맞았다. 나는 그 정도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좋아하는군.
이런 점도 저런 점도 싫고 짜증 나고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지만.. 아무튼 좋아하는구나. 많이.
그녀는 지겹게도 인정하지 않았다. 대체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그렇게나 감정과 시간을 쓰는 이유를 알 수 없었고, 그건 곧 마음이 잔뜩 간다는 반증이었지만. 뭐. 본인이 아니라는데. 나는 힘들어하는 그녀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어떻게든 그 상태를 인정하게 하려고, 그리고 그녀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갖은 수를 쓰며 노력했다. 정말 노력이었다. 내가 다 힘이 부쳤다. 설명되지 않는 그 현상에 이입하려 하는 순간, 대체 왜? 하는 내 자아가 튀어나와서 쉽지 않았다.
야, 그런 말을 하는데 안 답답하다고? 뭐 하자는 거야? 그러면 그녀는 그러게, 짜증 나지,라고 했다. 니 일인데 내가 왜 짜증이 나니, 그냥.. 아니. 짜증 나. 얘 뭐야? 너네 뭐 하니? 그러면 그녀는 시선을 내려 웃었다. 참나.
남이 보기엔 별 내용도 없고 재미는 더욱 없는, 전형적인 썸이나 연애 초반 그것의 양상을 띠는 대화를 몇 시간 동안이나 이어간 카톡을 훅훅 내리면서, 나는 내 친구에게 이런 면이 있는지 몇 년 만에 처음 알았다. 아, 우리 참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다르긴 하구나. 취향은 더더욱.
아냐, 이건 취향의 영역도 아니야. 어떻게.. 아니다. 그래. 이건 진짜 사생활이니까.. 하다가도. 야, 얘는 이런 말을 대체 왜 하는 거냐? 뭐 어쩌라고? (나는 그와 관련된 주제가 나오면 특정 어구를 자꾸 반복해서 쓰게 됐다. 어쩌라고, 어쩌자는, 은 그중 가장 잦게 쓰인 것들이었다. 나중에는 그 말을 하는 내가 다 질렸다) 라며 자아의 부정과 긍정을 오갔다.
그를 싫어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너무 좋아하고 있는 그녀의 입장에 서야 하는지, 아예 외부인인 제삼자의 시선에서 그런 저런 일화들을 관망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예 남이면 영화 보듯 관전이라도 하지, 나는 나름 친구 아닌가.
그렇게 일면식도 없는 그 청년을 마구 싫어하고 제발 세상에서 사라지기를.. 사라지는 건 좀 아닌가, 그럼 친구가 많이 슬퍼할 텐데. 아무튼 덩달아 나까지 혼란스러워지는 시기를 그렇게 함께 보냈다.
몇 개월이 지났다. 드라마처럼 시간이 지났다. 계절이 두 번 바뀌었고, 각자의 인생이 바퀴를 돌아 맞물리는 순간이 왔다. 그녀는 그를 잊었다고 했고, 나는 과연 그게 잊은 것일지 의심스러웠지만 역시 본인이 그렇다고 하니 내가 어쩔 도리는 없었다. 잊었을 리가. 뭐만 하면 끄나풀처럼 끌려 오는 그 친구의 어떤 특성이나 있었던 일들. 잊은 것일 리가. 그리고 그녀는 정말로 잊은 게 아니었다.
시간, 눈물, 웃음, 눈물, 또 눈물. 나는 내 친구를 이렇게까지 울게 하는 그놈이 너무 싫었지만 내가 뭘 할 수 없었다. 연초의 만남에서 그녀는 몇 번을 울고 웃다가 말했다.
하루가 끝나면,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또 듣고 싶었다고.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아. 그거구나. 잘생겨서, 키가 커서, 음악 취향이 같아서, 어깨가 어때서, 어떤 버릇이 귀여워서, 어떤 모습이 멋있어서, 예뻐서.. 뭐 그렇게 딱 떨어지는 대답들만을 이 긴 난제를 푸는 열쇠처럼 생각했던 나는, 문제 자체가 녹아서 없어져 버린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런 거였구나, 너한테 그 사람은 그런 존재였구나. 어때서 좋아, 어때서 싫어. 이런 걸 넘어서서 너에게 어땠으면 좋겠는 사람 자체였구나. 생각하고 말하고 상호작용하는 진짜 현실 속 인간.. 아하.
대체 어디가 좋냐는 질문을 못 해도 서너 번은 했을 것이다. 왜 거듭해서 했겠어. 뚜렷한 대답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자꾸 반복하게 된 것이다. 야, 걔가 대체 왜 좋은 거냐, 넌. 일 수도 있었고, 넌 그 친구 어디가 좋니. 정말, 인 때도 있었다.
하나는 기억난다. 수많은 '나도 모르겠어' 속에서 건져낸 (대체 네 마음인데 네가 왜 모르니? 나는 그래서 다시 또 배웠다. 개개인의 사고방식과 표현 방법은 정말 제각기 다르다는 걸) '좋아하는 데 이유가 있나'는 말.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뭐라고? 다시 말해봐. 그녀는 웃거나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그 대답을 다시 들려주었다. 나는 마구 웃을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그럴 맥락이 아님을 알았다. 아. 그렇구나. 와. 그렇구나. 어, 그래. 대체 어떤 방식으로 이걸 이해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부품이 빠졌는데 아예 존재조차 모르는 부자재가 필요한 기분이었다. 별 수 있나. 그래, 그렇구나, 와아.. 만 반복할 뿐.
성수동의 거대한 카페에서 한 멤버의 생일을 며칠간 축하했다. 상당히 크고 유명한 곳이라 팬들의 저력에 놀랐다.
2025년, 5일, 35번째. 그래서 테마는 5 였다. 디저트며 커피를 시켜 이런저런 것을 돌아보고 잔뜩 모인 같은 처지의 팬들 속에서 아, 1월의 생일 카페는 이런 것이구나, 하며 눈 오는 바깥을 쳐다봤다. 따뜻했다.
눈 온 날의 실내라 따뜻했고 커피가 따뜻했고 애정의 대상을 남사스러울 정도로 잔뜩 전시한 그 공간이 더웠다.
보통 그런 곳에 가면 메모지나 엽서가 준비되어 있다. 모아서 그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한 글자 한 글자 적힌 본인에 대한 마음을 이렇게 두껍게 모아 받는 기분이란 대체 어떤 걸까.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볼펜을 놓고 고민하는 나 자신도.
그를 사랑하는 다섯 가지 이유를 적어달라는 멘트가 찍혀 있었다. 몇 자 적다가 나는 의구심을 느꼈다. 이건 이 사람의 특성일 뿐이지 그를 사랑하는 이유가 아니었다. 이게 이유라면, 그 이유가 없어졌을 때는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이 될 수도 있잖아. 그런 거 아닌데, 없는데. 그런 건?
그래서 그냥 썼다. 그러니까 그 문제에 대한 답은 쓸 수 없으나 아예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었으니까. 다섯 가지나 쓰기 힘들다고. 당신이라서 사랑하는 건데 어떻게 다섯 가지나 쓸 수 있지, 개수 채우기 힘들다고. 당신이라 좋은 것인데 어떻게 이유를 몇 개씩이나 댈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 엽서를 내려놓고 바깥을 다시 쳐다보다가 알았다.
아. 이런 거였구나. 그 말이었다니. 이런.
이전에 남자친구였던 사람이 좋았던 이유를 아마 서른 개는 쓸 수 있었다. 아냐, 오십 개가 될 수도 있었다. 사귀는 중에 했던 수많은 쓸데없는 짓 중에는 그런 것도 있었다.
나는 그걸 줄줄 말해주면 그 사람이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다. 본인을 좋아하는 포인트를 계속 읊어 주는데 어떻게 싫을 수가 있어. 하지만 그는 좋아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질문하며 씁쓸해했다. A를 말하면, 그럼 나한테서 A가 없어지면 넌 날 안 좋아할 거야? 같은 식. 나는 정말 질려 버릴 뻔할 걸 참았다. 이게 대체 무슨 대화야. 같은 문자와 언어로 이야기하는데 참 피곤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니가 어떠어떠해도 계속 좋은데, 넌 아니구나. 아닌가 보네.
분명 그러려던 게 아닌데 나는 사과를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대체 왜 없는 상처를 후벼 파서 스스로 만드나 짜증이 났다. 많이 이해해서, 단지 양쪽의 화법이 달라서 생기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이걸 시간이 이렇게나 흘러 생뚱맞은 아이돌 덕질 현장에서 이해하게 되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좋아하는 데 이유가 있나요, 라는 말을 이해하기까지는 무진장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더불어 남의 사랑 이야기와 나의 망한 연애 에피소드와 아이돌을 향한 외사랑의 현장을 누빈 추억까지도. 이유가 있지, 왜 없어, 라고 너무 쉽게 반문해 왔다는 걸 알았다.
수만 개의 각기 다른 색과 모양의 조각들이 모여 아예 다른 빛깔을 투과시키는 스테인드글라스처럼, 사람 역시 어떤 조각들로만 표현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존재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 1+1은 2 인 것과 달리, 어떤 머리 모양에 어떤 방식으로 웃는 사람이면 다 내가 사랑하게 되는 건 아닌 것처럼.
친구는 사랑을 한 게 맞았다. 나 역시 이 아이돌을 사랑하고 있었으나 양상은 확연히 달랐다. 그녀의 사랑은 그 사람 역시 건드릴 수 있어 색깔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형태였다. 나의 것은 내 마음만이 가득해 항상 같은 빛을 띤 모양이었다. 이보다 안정적일 수는 없었다.
어느 것이 더 나을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그들 때문에 울지는 않았다. 그렇게까지 마음이 아플 일이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어차피 이런 타인이나 대상을 향한 욕망 섞인 감정이 삶의 필수 요소는 아닌 것을 감안하면, 차라리 나의 선택이 더 실효성 있는 것 같기는 하고. 내 입장에서 '나만 놓으면 끝나는 관계' 임을 말하는 것과, 그녀의 입장에서 '나만 놓으면 끝나면 관계'를 말하는 것은 확연히 달랐다. 아. 연애감정이 섞인 인간관계는 그런 것이구나.
나는 내가 항상 이유를 들어 누군가를,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원래 다 그런 건 줄 알았다. 내가 그렇게 사니까. 그런데 아니었다.
어느 선을 넘으면.. 그리 시작했더라도, 빛나는 파편만을 마음에 담는 것을 넘어서 사실 혼란 덩어리나 다름없는 그 완전체를 마음에 두게 될 때도 있구나, 라고 짐작한다.
사랑하려면 강해져야 한다고 했다. 노엘 갤러거가 그랬다. 냉정하고 냉소적이 되는 건 쉽지만 모든 걸 사랑하는 건 어렵다고, 강해야 한다고 했다. 몇 년 전 나는 그 말에 깊이 공감했다. 그렇지. 맞아. 그래. 정말 멋있다,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 인간관계에서는 적용할 줄 몰랐다. 신기했다.
아무튼 나는 그 멤버의 미소를 사랑한다. 이건 좋아한다는 의미가 천 배쯤 강화되어 다른 차원으로 넘어간 그런 강도의 호감 표현에서의 사랑이다. 말하자면 내가 그에게 반한 순간. 그가 그렇게 웃지 않더라도 뭐 어쩌고 저게 어떻고.. 등등등이 있기에 나는 그를 사랑할 것이다. 좋아했던 순간들을 모두 행복하게 기억할 것이다. 이제 알겠다. 반하는 건 사랑과는 또 다르다. 사랑의 시작이 되는 게 반하는 거구나. 생각보다 사랑의 양상 자체는 별 게 없을지도 몰라.
내가 사랑이라 착각했던 것은 찰나의 반짝임, 늘 빛나고 번쩍거린 장면이었다. 그건 단지 시작일 뿐인데. 아, 다들 대체 어떤 삶들을 살고 있는 것인지 새삼 놀라워졌다. 다 지난 일이지만 이제야 신기해진다. 그는 나에게 반했고 나를 꽤 사랑하긴 했구나. 뭐, 아닐 수도 있지만.
그래서.. 출근하면 그들이 사랑하는지보다는 -아니, 이건 원래도 물을 생각이 없었다-, 언제 어떻게 반했냐고 물어봐야겠다. 그 반짝인 순간이 나는 너무 궁금하고 흥미로우니까.
그 소년은 나와 친하지도 깊은 관계도 아니기에 그게 그나마 덜 무례한 선택일 거라고 멋대로 생각한다.
그래. '어디가 좋아' 보다는 아무래도, 그게 더 적합한 대답을 주기 좋은 질문 아닐까. 부디 제가 내일 그 정도 질문은 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는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친구야, 이제는 그래도 너를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이해력이 딸리는 내게 사연들을 토로하느라 고생 많았다. 사랑해, 알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