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랐을 때도 잘만 살았고 앞으로도 차라리 모르는 게 나았을 것들이 있다. 누군가의 과거가 그렇고 케이크에 든 당류와 음료에 든 설탕의 양이 그렇다.
전자는 뭐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차치해도.. 인체는 다 비슷하니까, 후자는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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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알아서 슬프고 가끔 부아가 치민다.
그리고는 초코맛 프로틴을 '이게 어른의 제티야' 하면서 마신다. 알아 버렸으니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밥과 단 것을 사랑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단어가 있다. '곤약밥' 이다. 대체 어떻게 쌀도 아닌 그 말랑말랑 씹히지도 않는 요상한 것을 넣고 밥이라는 호칭을 붙인다는 말인가. 차라리 양을 적게 먹었으면 먹었지 그런 걸 먹고는 밥을 먹었다고 표현하고 싶지 않을 것 같다. 같다, 고 쓰는 이유는 안 먹어 봐서 모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먹을 일이 없을 것이다.
나는 항상 '보기보다 엄청 잘 먹네'라는 말을 들으면서 컸다.
중학생 때는 타이밍을 잘 맞춰서 급식실로 출발했다. 나는 학교의 김밥볶음밥과 그날 같이 나오는 피칸파이를 엄청나게 좋아했다. 나름의 계산 끝에 늦게 급식실로 달려가 잔뜩 남은 피칸파이를 양손에 세 개씩 더 들고 온 적이 있다. 이미 서너 개를 먹은 다음이었겠지. 기분이 좋아서 실룩실룩거리며 친구와 교실로 돌아가는데, 내가 좋아하던 남자애가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쪽팔렸다. 잘못 만들어진 젤리마냥 몸을 흔들고 있던 게? 빵을 양손에 들고 너무나 좋아하고 있던 게? 둘 다였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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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때, 공부가 너무 하기 싫어서 (사실 늘) '어른'이 되면 해내고 싶은 버킷리스트 같은 걸 끝도 없이 줄줄 적었다.
어떤 해의 스터디플래너 페이지에는 온갖 과자의 이름이 다 적혀 있었다. 쿠크다스, 오레오, 칸쵸, 초코송이, 씨리얼, 사브레, 초코 다이제, 초코파이, 몽쉘 카카오, 후렌치파이, 트윅스, 초코하임, 화이트하임, 카스타드. 당장 내 옆에 그 노트가 없지만 안 보고도 적을 수 있다. 지금도 맛있는 것들이니까. 아무튼 그걸 다 사 와서 아무 걱정 없이 방구석에서 쌓아 놓고먹으며 지금은 못 보는 드라마를 보리라 다짐했었다.
엄마가 독서실에서 배고프면 딱 한 개씩만 먹으라고 일일이 봉지를 까서 락앤락에 담아준 몽쉘 한 박스를 나는 이틀이 안 되어 끝장냈고-사실 하루였을까?-, 초코파이 일곱 개를 앉은자리에서 다 먹은 적도 있다. 엄마는 가시나 미쳤나, 면서 화를 내긴 했지만 아무튼 나는 그러고도 저녁을 잘 먹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더 뭐라고 하지 않았었다. 대신, 과일을 안 먹고 찬밥을 좋아하고 (복 없단 소리 들어!) 반찬은 요만큼 먹으면서 밥은 잔뜩 먹던 당시의 내 식성에 대해서는 엄청난 잔소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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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에서는 바질페스토와 밤잼이 버려질 날을 기다리고 있다. 냉동베이글을 사놨었는데 그걸 아무것도 바르지도 않은 채로 내가 너무 빨리 먹어치운 탓이었다. 사놓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배가 너무너무 고프고 진이 빠졌던 데이 근무가 끝나고 집 아래 슈퍼에서 식빵 한 봉지를 샀다. 바로 옆에 빵집이 있었지만 그런 식빵은 필요 없었다. 다 맛있으니까. 그리고 그날 집으로 올라와 식빵 2/3 봉지를 끝장냈다. 행복 별 거 없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삶이 너무 우울해지면 하루 정도 굶고 식빵이나 한 봉지 사야겠다고 느꼈다.
하여간 발라 먹을 만한 것들은 그렇게 다 없애버리는 탓에 그 불쌍한 소스는 그냥 죽어가는 중이다.
(밥을 이용해서 야매 리소토를 만드는 방법이 나오는 쇼츠를 찾았다. 그걸로 페스토는 소진시켜야 할 것 같다.)
친구가 '넌 확실히 탄수파구나'라고 했다. 같이 무슨 덮밥을 먹으러 간 동기는 소스를 비비지 않은 밥을 한 술 뜨고 내가 지은 표정을 보고 재밌어했다. 아니, 근데. 그 밥의 맛이 정말 감동적이긴 했다. 저런 경향이 심할 때는 김치볶음밥과 맨밥을 함께 먹은 적도 있었다. 사회적 체면 비슷한 걸 고려해 그런 짓은 집에서만 했지만.
어쨌든 그렇다. 나는 그 흰 것들이 주는 포만감과 행복감이 너무 좋았다. 좋다.
'이거봐 당류 40에 탄수 40이야 도랏어 그냥'
스타벅스 모 케이크의 영양성분표 캡처사진이었다. 대한민국에 지금처럼의 저당이나 제로 열풍이 불기 직전이었다.
친구 중 하나는 다이어트에 굉장히 진심이었다. 온갖 유튜버를 구독하며 그곳에서 나온 정보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모 사의 프로틴바에는 사실 당류가 더 많고 이건 '찐탄수'가 적은 것 같긴 한데 결국은 이 성분이 저런 거라서 사실은 타사의 이 맛이 더 낫다.. 고 했다.
그녀는 쿠팡에서 적지 않은 돈을 주고 포장지의 색깔과 사진만은 휘황찬란하나 꺼내놓으면 다 똑같이 생긴 프로틴바들을 사서 내 앞에서 먹었다. 나는 그게 뭔지도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게 얼마라고? 열두 개에 3만 3천 원? 야, 비싸다, 하는 내 말에, 그녀는 '그래서 내가 계산을 해 봤는데 어차피 2500원 좀 넘잖아. 카페 가서 케익 시키면 저거보다 비싸고 다 당 덩어리란 말이야. 배고플 때 먹으면 저게 더 싸게 치는 거야. 그리고 엄청 달아, 이것도.'라고 했다. 꽤 논리적이었다.
사십 그램이 얼마지, 하고 찾아봤다. 각설탕 열 개. 열 개?아. 그냥 각설탕을 열 개 집어먹어도 행복하긴 할 것 같았다. 참, 나. 역시나 괜히 찾아본 게 맞았다. 근데, 뭐. 죽을 때까지 안 먹을 거 아니잖아, 생각했다.
하지만 한 번 들어온 정보는 없어지지 않는다. 머릿속 구석에 박혀있다가도 자꾸만 고개를 내민다. 찝찝하고 기분이 나빴다. 꼴에 간호학과를 나와 당뇨의 무서움에 대해서 자세히도 배운 내 과거와 친구가 조금 원망스러워지려 했다. 척 봐도 도무지 삶의 의지가 생기지 않게 구성된 당뇨식을 받고, 감 한쪽과 요구르트 한 병도 벌벌 떨며 먹던 실습 병동의 할머니들도 생각났다. 망할. 진짜 망할이었다.
그때였을 것이다. 내 인생 전반의 즐거움을 책임져 온 온갖 달고 부드러운 것들에 대한 인상이 바뀐 시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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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시에 그 친구를 매일 만나 카페에서 각자 할 일을 했다. 나는 별의별 샌드위치나 7 레이어 케이크나 치즈베이글이나 뭐 그런 걸 시켰다. (지금은 9 레이어로 바뀐 모양이다. 더 맛있어졌나 보다) 친구는 프로틴바를 까서 한 입씩 먹었다. 먹어보니 한 번에몇 개씩 먹을 수 있는 맛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나를 부럽게 쳐다보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다만 쇼케이스를 지나며 한 번 선망의 표정을 짓고는 어플로 들어가 성분표를 확인한 후 오만 정이 다 떨어진 얼굴을 했다.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나 역시 그러고 있게 되었다. 이래서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 당연하지만, 그 친구에게 어떤 악감정도 없다.
모 사의 프로틴바 거의 모든 맛을 먹어 봤다. 쿠키, 트릿, 스낵.. 나름 카테고리가 나뉜 그 안에서 또 더 맛있는 것과 덜 맛있는 게 있었다. 대개 지방 함량이 더 높았다. 성분은 거짓말을 안 했다. 설탕을 때려 넣어 맛이 없을 수 없는 내가 사랑하는, 했던, 아니. 하는.. 그, 아름다운 것들처럼.
세상에 먹어서 살이 빠지는 건 없다. 그러므로 살이 빠지지는 않았다. 애초에 살이 빠지길 바라면서 먹지는 않았다. 죄책감에 기분이 나빠서 먹기 시작한 거였다. 어차피 배고프면 다 똑같았고 그것도 달긴 매한가지로 달았다.
더 기분 나쁜 게 하나 더 있었다. 초콜릿이나 그냥 쿠키를 먹었을 때보다 좀 평온해진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그 전이 아주 몹쓸 인성이었던 건 아니지만 (아닐 수도), 분명 단 걸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는데, 뭔 호르몬이 나와서 행복해진다고 했는데.. 그런데. 그런 주전부리를 이걸로 대체하니 감정의 등락이 덜해진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찾아보니 그게 맞기도 했다. 하긴, 롤러코스터를 타듯 올라간 후에 뚝 떨어지는 것보단 잔잔히 회전목마나 슬슬 타는 게 내 몸한테도 머리한테도 덜 힘들지 않겠는가.
나는 어떤 긍정적인 효과도 체감하지 않길 바랐다. 그래서 그 변화의 자각이 마뜩찮았다. 그럼 내가 케이크와 쿠키와 초코가 든 것을 멀리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기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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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동 냉장고에는 내가 갖다 놓은 비싼 프로틴 바와 쿠키와 작은 케익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퀘스트 및 앳킨스 본사의 화장실 한 칸에 들어갈 3일 치 휴지값 정도는 내가 대지 않았을까. 사물함에는 초코(를빙자한) 맛프로틴이 든 쉐이커 바틀이 있다. 그냥 안 먹으면 되는 거 아니야?라고 결제내역을 본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반성해야 할 일인데, 나와 산 이후로 끼니를 규칙적으로 챙긴 적이 없다. 그리고 병동에는 나를 '빡치게' 하는 일들이 너무 많았다. 출근해서 EMR을 쭉 보기만 해도 뭐라도 당장 씹어야 하는 기분이 들었다. 냉장고와 사물함에 '안전구역'을 비치한 시도가 항상 효과적으로 먹히는 건 아니었으나 그래도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달고 몸에 나쁜 것들을 좋아하는 식성이 어디 간 것은 아니라서 어쩌다 (사실 그래도 꽤 자주) 쿠키나 뭐 그런 걸 먹게 되는 때에는 상당히 기분이 나빴다.
누가 억지로 내 입에 그걸 쑤셔 넣고 씹어 삼키라 한 것도 아니고 왜 내가 먹어 놓고 기분까지 나쁜 건지 참 스스로가 원망스러웠으나.. 어쩌겠는가. 노력하면서 살아야 한다. 이런 나로 태어나 저런 것을 알아 버린 이상.
밥. 밥만은 제발 그런 속박으로 나를 밀어 넣지 않기를 바랐는데, '저속노화 아저씨'께서 등장했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미웠다. 어쩌다 한 번 생로병사, 당뇨 뭐 그런 걸보기라도 하면 자꾸 그분 영상을 띄워 줬다. 별로 알고 싶지 않았는데, 정말로. 그리고 그분께서는 상당히 진지하게 긴 잔소리를 하는 영상을 만드셨다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말이에요). 그리고 최근에는 '저속노화 밥'까지 기획해 출시하는 일을 벌이셨다. 이제 나는 과자코너가 아니라 햇반과 오뚜기밥이 진열된 코너를 지나면서도 고민하고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보실 일 없겠지만 정말 감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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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온 세상이 내 하루의, 아니, 현재까지 축적된 식습관과 취향과 행복에 무게를 달고 잔소리를 해대는 기분이란. 지나가는 버스에 '커피로도 챙기는 프로틴' 광고가 붙어 있어서 정말 내가 잘못 읽은 게 아닌가 의심했다. 흑당버블티와 탕후루와 크림이 미친 듯이 들어간 도넛의 시대가 저무는 것 같긴 한데, 이건 또 무슨 세계관이람. (아, 그 커피 제조사를 비난할 생각도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죄책감 제로의 선택을 위한 타협을 한다.
프로틴파우더를 전자레인지에 돌려 야매 케이크를 만들고, 스테비아와 알룰로스를 때려 넣고, 아메리카노에 '화이트초콜릿라즈베리'맛 프로틴 바와 피넛버터 초콜릿칩 맛 프로틴 쿠키를 먹으면서 (근데 이 쿠키는 그래도 먹을 만하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 혹시 프로틴 뭔가를 사실 거라면 피넛버터 맛이 그나마 그 대체당과 단백질 맛이 덜 납니다) 프로틴이니 제로니 하는 단어를 보며 짜증을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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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죽을 때까지 안 먹을 것도 아닌데, 진짜 몰랐으면 어땠을까 싶다. 알기 전으로 도대체 돌아갈 수가 없어서 더 슬프다.
그렇게 슬퍼하며 몇 만 원짜리 간식들을 시킨다. 그래. 밥은 포기 못 하겠으니 이거에서라도 줄이자, 고 속으로이 모든 흐름이 아니꼬워 날뛰는 나를 다독여 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