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구에 서는 직후 내 얼굴을 덮는 그 온갖 향수들과 크림의 냄새. 비싼 향기. 바깥과 분리된 대기. 미드나잇, 핑크, 마드모아젤, 프린세스, 레이디, 수트, 노르딕, 드레스, 데저트, 포레스트, 바이올렛, 커튼, 레인. 절대 현실에 존재할 것 같지 않은 그 환상의 이름과 냄새들, 공기.
에스컬레이터에서는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이 더 잘생기고 예쁘게 단장을 한 차림으로 시향지를 나누어 준다. 알파벳 로고들이 찍힌 그 빳빳한 종이들. 주머니에 넣었다가 빼면 하루종일 옷과 내 손이 닿았던 모든 곳에서 그 냄새가 난다. 이게 어디서 나는 거지, 아. 나 아까 백화점 갔다 왔지. 그리고 마력은 다 떨어진 그 환상의 조각을 들고 잠시 망설인다. 버릴까, 말까. 살까, 말까. 좋은데.
이미 다 쓰지 못한 것들을 떠올린다. 사실 필요치 않고 없어도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는 그런 것들을 더 생각해 보다가 종이를 구겨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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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잊고 산다. 분명 가게에서 볼 땐 내 일상에 '잃어버린 나무', '흐린 보랏빛 오로라', 같은 환상의 이미지를 얹어 줄 것 같았지만 이제는 그냥 일용품이 된 그것들을 뿌린 채 똑같이 외출하고 출근한다. 사람들이 가득한 지하철과 버스로, 병원으로. 환상은 지속력이 짧다.
판타지 속에 악취란 없다. 호와 불호는 특별한 것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코에서 바로 반응한다.
냄새와 관련된 가장 강렬한 기억은 대학교 1학년, 홍대 부근의 한 클럽이다. 기말고사가 끝난 날 대학 동기들과 갔었다. 나는 그곳에 20분도 채 서 있지 않았지만 그날의 외투와 상하의 모두를 베란다에 일주일은 걸어 놓았다. 거기서 그렇게나 담배 냄새가 많이 날 줄 전혀 몰랐다. 할 수만 있다면 그곳을 나온 직후에 다 벗어서 어디든 갖다 버리고 오고 싶었다. 다른 빨래들에 도로 냄새가 밸까 봐 그 추운 겨울에 그날 입은 모든 옷가지를 며칠간 바깥에 방치했다. 그러고도 그 무스탕과 모직 치마와 니트에 한참 코를 대 보고 한동안은 입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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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 지 일 년이나 좀 넘었을 신분증을 들이밀어야만 입장할 수 있는 그 모든 곳. 클럽, 술집. 어떤 경험? 내가 얻으려는 것이 무엇이었든 간에 이런 냄새를 잔뜩 묻히면서까지 갖고 싶은 경험 따위는 없었다. 그곳을 다시는 가지 않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냄새의 출처는 저 유흥가, 커다란 대학가 골목들이었다. 술, 담배, 연기, 또 술, 담배. 내가 얻을 것 없이 고통스럽기만 해 기분 나쁜 냄새들. 나는 저 중 어느 것에서도 적당한 쾌락을 얻지 못하는 인간이었으므로 그것들 하나하나를 속으로 비난한다.
그리고 똑같이 강하지만, 어쩌면 더 하지만, 덮어놓고 싫어할 수 없는 냄새들이 더 있다. 병원과 지하철의 그것들. 1층의 로비와 엘리베이터를 거쳐 병동 문이 열리면 나는 냄새. 1호선의 축축하고 꾸깃한, 응축된 냄새. 인간들의 냄새. 나와 같은 사람들의 냄새. 꼴에 나 역시 공유하는 것이기에 악취라 표현하지 못하는 그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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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병동에서 일하는 다른 친구는 그것을 '욕창 냄새'라고 표현했다. 자세를 움직이지 못해 피부와 그 체액이 순환하지 못하고 고여 결국은 썩어가는 냄새. 글쎄, 단지 욕창의 문제만은 아니다. 다 큰 어른들의 기저귀에서 나는 냄새. 소변통과 거무죽죽한 것이나 노르스름한 것들로 찬 배액관들의 냄새. 과연 그게 다 늙은 어른들만의 냄새들일까?
종종 외국인 아기들이 입원할 때가 있다. 그때 느낀다, 피부와 눈 색이 어떻고 얼마나 귀여운 생김새를 가졌든 인간은 다 같은 냄새를 풍기며 울부짖고 더러운 것들을 내보낸다고. 내 피부 아래와 내장에도 존재하는 그것들.
아냐, 그냥 사람이면 다 똑같아. 그리고 밥 냄새. 밥때 냄새만 아니라도 좀 덜할 것 같아. 내가 말하자 그녀도 동의했다. 아, 맞아. 개싫어. 진짜. 밥차 냄새가 진짜 역해. 병원의 냄새는 소독제 냄새도, 회진을 도는 의사의 흰 재킷에서 날 것 같은 빳빳하고 깨끗한 냄새도 아니다. 브이 자로 목이 파인 널널한 그 유니폼들의 냄새도 더더욱 아니다. 인간에게 들어갈 것과 내보낸 것들의 지독한 냄새들이다.
나는 사실 그래서 몇몇 병원 배경 드라마들을 덮어놓고 좋아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드라마나 영화나 다 환상을 다룬 것들이기에 이런 것을 따지는 건 아무 의미도 없지만.
아무튼 대체로 그것들에는 인간적임을 빙자한 에피소드에서 나오는 부드러운 향기만 존재하는 것 같아서 꼬인 마음에 기분이 나쁘기 때문이다. 거기엔 냄새가 없다.
탈의실의 버려진 컵라면 국물 냄새와 둘둘 말려 무게가 달리는 저울 위 기저귀에서 나는 냄새와 뭔가 습기 찬 것 같은 누런 베타딘 냄새와 배식차의 찝찝한 냄새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완전히 순환되지 못하고 합쳐져 동동 떠다니는 그런 냄새가 그 화면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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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긴 시간 아르바이트를 하던 친구도 냄새를 말했다. 다녀오면 온몸에서 '쩐내'가 나는데 그게 너무 싫다고. 아마 그녀가 서브웨이 알바를 했으면 그곳의 달고 짜고 감칠맛 돋는 소스들 냄새가 다 밴 것을 언급했을 것이다.
'카페 가자' 할 때 사람들은 사람들은 커피 찌꺼기의 냄새가 몸에 밸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밝은 표정으로 신선하고 건강한 선택임을 강조하는 그 샌드위치 광고에서는 그 냄새가 입가나 손끝에 남았을 때의 냄새를 다루지 않는다.
사람들이 밥을 먹고 오면 양치를 해도 그날의 메뉴 냄새가 난다. 제육볶음, 찌개, 짜장밥.아침 8시의 지하철과 금요일이나 목요일 밤 9시 반쯤의 지하철에서 나는 냄새는 판이하게 다르다. 삼겹살집이나 갈빗집 냄새에 소주 냄새가 두꺼운 겨울옷에 배 있는 것이 느껴질 때가 있다. 결국 다 똑같은 사람들이 모여 오르고 내렸을 텐데. 저녁 시간 공원에서 달릴 때, 가끔 정말 '샤워'의 냄새가 나는 사람들을 지나칠 때가 있다. 그리고 내 패딩이나 바람막이에 뱄을 땀내를 떠올린다. 병원과 대중교통과 내 집 등등을 거쳐 생각한다. 아. 계속해서 더럽고 불쾌하구나. 모두가.
거대한 불가사리처럼 누워 있던 친구가 있다. 혈압을 한 시간마다 재야 했다. 재는 거야 커프를 팔에 감아 두고 설정해 두면 될 일이었지만 단지 그렇게만 해도 되는 상황이었다면 굳이 혈압을 자주 볼 필요가 없었겠지.
전산에 연동된 값을 보고 계속해서 그 자리로 가서 반복해서 측정해야 했다. 별생각 없었다. 몸무게를 재기 위해 친구 침상의 온갖 기계들과 걸리적거리는 것들을 그 주변으로 옮겨 놓기 전까지. 그 친구의 팔에 감겨 있다가 다른 곳에 대충 놓였던 그 커프를 옆의 보호자 침상에 잠시 올려두었을 때 알았다. 희부연 각질 조각들이 그 어두운 갈색 가죽 위에 잔뜩 흩뿌려져 있었다.
아. 나도 이렇겠구나. 아픈 사람은 정말로 씻지 못하는구나. 물론 그 친구는 씻는다기보단 누군가 씻겨 줘야만 하는 입장이었지만. 사람의 피부는 수없이 생성과 탈락을 반복한다는 것. 뭐 몰랐던 사실도 아니건만 그렇게 와닿았다. 씻지 못하는 인간은 이렇게 된다고, 사실은 다 똑같다고.
본가에 갔다. 폐렴과 몸살을 거쳤고 건조한 겨울이 되었다. 게걸스럽게 밥을 먹는 내게 엄마가 놀라 말했다. 가시나, 밥 안 먹고 댕기나. 먹지, 왜. 아휴,진짜 가지가지한다, 가지가지해. 왜에 또. 내 양쪽 귓바퀴 안쪽의 습진들을 보고 말하는 거였다. 연고 같은 것 좀 발라, 저거. 어, 그거 가져와 봐, 면봉이랑. 엄마는 아빠에게 거실 장식장 위를 굴러다니던 연고를 가리키며 말했다.
알고는 있었으나 신경 쓰지 못했다. 항상 손으로 뭔갈 해야 하는 입장이라 핸드크림을 출퇴근 때 바르는 것도 내게는 일이었다. 그리고 엄마는 잠옷 바지 아래의 내 다리를 갑자기 붙들고 말했다. 로션도 좀 바르고! 이게 뭐냐! 없어 보이게. 어? 잘 좀 챙겨 먹고. 어휴, 진짜. 내가 못 산다. 그리고 엄마는 언제나처럼, 하나로마트가 바로 같은 건물에 있고 24시간 과일 가게가 있는 거처에 사는 내게 온갖 과일과 반찬과 냉동할 밥을 한가득 챙겨 주었다. 제때먹어,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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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연고를 못 발랐다. 아무튼 못 발랐다. 나이트 퇴근하고, 집 가서 씻고서, 자기 전에 내일 아침에는 반드시 발라야지. 향수는 뿌렸다. 냄새는 역체감이 심하다. 지금은 내 몸에서 이런 냄새가 나는지 알지 못한다. 일이 끝나고, 내 옷이 걸린 캐비닛 문을 열었을 때 그 냄새가 비로소 난다. 향수를 휴대하지는 않는다. 나는 병원 직원에서 특정 이미지를 빙자한 향기 또는, 악취가 나는 것을 사람들이 좋게 평가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다. 출근길에 한 번 다 날아가고, 유니폼을 갈아입은 후에는 거의 남아있지 않을 그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그러길 바란다.
아무튼, 다분히 그 인간적인 환경들을 거쳐 덜 인간적으로 되기 위해 매일 발버둥 치는 중이다. 그리고 모두가 그렇겠지. 출근길의 덜 마른 머리와 막 뿌려 뒤섞인 향수 냄새와 저녁의 식당 냄새와 피곤의 냄새들을 풍기는 사람들은 모두 다 일족 아니던가.
어쩌면 백화점에 잔뜩 진열된 꼬부랑 글자들의 그 향수들이 선사하는 건 그렇게까지의 환상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조금의 여지일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은 일상 속으로 묻혀 버리겠지만, 약간의 비인간적인 품위를 유지하기 위한 강한 가능성들 말이다. 아무리 독한 향수라 해도 그 인간성을 다 덮어 버리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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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러니까 결론은, 오늘도 잘 씻고, 박박 닦아야겠다는 이야기다. 달큼한 냄새 가득한 백화점이나 음식물과 배액 냄새의 병동 사람들이나 나나 다 똑같은 존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