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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븐도 Jan 07. 2025

프로틴과 저당

이 피곤하고 거스를 수 없는 흐름





몰랐을 때도 잘만 살았고 앞으로도 차라리 모르는 게 나았을 것들이 있다. 누군가의 과거가 그렇고 케이크에 든 당류와 음료에 든 설탕의 양이 그렇다.

전자는 뭐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차치해도.. 인체는 다 비슷하니까, 후자는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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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알아서 슬프고 가끔 부아가 치민다.

그리고는 초코맛 프로틴을 '이게 어른의 제티야' 하면서 마신다. 알아 버렸으니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밥과 단 것을 사랑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단어가 있다. '곤약밥' 이다. 대체 어떻게 쌀도 아닌 그 말랑말랑 씹히지도 않는 요상한 것을 넣고 밥이라는 호칭을 붙인다는 말인가. 차라리 양을 적게 먹었으면 먹었지 그런 걸 먹고는 밥을 먹었다고 표현하고 싶지 않을 것 같다. 같다, 고 쓰는 이유는 안 먹어 봐서 모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먹을 일이 없을 것이다.










나는 항상 '보기보다 엄청 잘 먹네'라는 말을 들으면서 컸다.

중학생 때는 타이밍을 잘 맞춰서 급식실로 출발했다. 나는 학교의 김밥볶음밥 그날 같이 나오는 피칸파이를 엄청나게 좋아했다. 나름의 계산 끝에 늦게 급식실로 달려가 잔뜩 남은 피칸파이를 양손에 세 개씩 더 들고 온 적이 있다. 이미 서너 개를 먹은 다음이었겠지. 기분이 좋아서 실룩실룩거리며 친구와 교실로 돌아가는데, 내가 좋아하던 남자애가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쪽팔렸다. 잘못 만들어진 젤리마냥 몸을 흔들고 있던 게? 빵을 양손에 들고 너무나 좋아하고 있던 게? 둘 다였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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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때, 공부가 너무 하기 싫어서 (사실 늘) '어른'이 되면 해내고 싶은 버킷리스트 같은 걸 끝도 없이 줄줄 다.

어떤 해의 스터디플래너 페이지에는 온갖 과자의 이름이 다 적혀 있었다. 쿠크다스, 오레오, 칸쵸, 초코송이, 씨리얼, 사브레, 초코 다이제, 초코파이, 몽쉘 카카오, 후렌치파이, 트윅스, 초코하임, 화이트하임, 카스타드. 당장 내 옆에 그 노트가 없지만 안 보고도 적을 수 있다. 지금도 맛있는 것들이니까. 아무튼 그걸 다 사 와서 아무 걱정 없이 방구석에서 쌓아 놓고 먹으며 지금은 못 보는 드라마를 보리라 다짐했었다.


엄마가 독서실에서 배고프면 딱 한 개씩만 먹으라고 일일이 봉지를 까서 락앤락에 담아준 몽쉘 한 박스를 나는 이틀이 안 되어 끝장냈고-사실 하루였을까?-, 초코파이 일곱 개를 앉은자리에서 다 먹은 적도 있다. 엄마는 가시나 미쳤나, 면서 화를 내긴 했지만 아무튼 나는 그러고도 저녁을 잘 먹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더 뭐라고 하지 않았었다. 대신, 과일을 안 먹고 찬밥을 좋아하고 (복 없단 소리 들어!) 반찬은 요만큼 먹으면서 밥은 잔뜩 먹던 당시의 내 식성에 대해서는 엄청난 잔소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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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에서는 바질페스토와 밤잼이 버려질 날을 기다리고 있다. 냉동베이글을 사놨었는데 그걸 아무것도 바르지도 않은 채로 내가 너무 빨리 먹어치운 탓이었다. 사놓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배가 너무너무 고프고 진이 빠졌던 데이 근무가 끝나고 집 아래 슈퍼에서 식빵 한 봉지를 샀다. 바로 옆에 빵집이 있었지만 그런 식빵은 필요 없었다. 다 맛있으니까. 그리고 그날 집으로 올라와 식빵 2/3 봉지를 끝장냈다. 행복 별 거 없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삶이 너무 우울해지면 하루 정도 굶고 식빵이나 한 봉지 사야겠다고 느꼈다.

하여간 발라 먹을 만한 것들은 그렇게 다 없애버리는 탓에 그 불쌍한 소스는 그냥 죽어가는 중이다.

(밥을 이용해서 야매 리소토를 만드는 방법이 나오는 쇼츠를 찾았다. 그걸로 페스토는 소진시켜야 할 것 같다.)



친구가 '넌 확실히 탄수파구나'라고 했다. 같이 무슨 덮밥을 먹으러 간 동기는 소스를 비비지 않은 밥을 한 술 뜨고 내가 지은 표정을 보고 재밌어했다. 아니, 근데. 그 밥의 맛이 정말 감동적이긴 했다. 저런 경향이 심할 때는 김치볶음밥과 맨밥을 함께 먹은 적도 있었다. 사회적 체면 비슷한 걸 고려해 그런 짓은 집에서만 했지만.

어쨌든 그렇다. 나는 그 것들이 주는 포만감과 행복이 너무 좋다. 다.












'이거봐 당류 40에 탄수 40이야 도랏어 그냥'

스타벅스 모 케이크의 영양성분표 캡처사진이었다. 대한민국에 지금처럼의 저당이나 제로 열풍이 불기 직전이었다.

친구 중 하나는 다이어트에 굉장히 진심이었다. 온갖 유튜버를 구독하며 그곳에서 나온 정보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모 사의 프로틴바에는 사실 당류가 더 많고 이건 '찐탄수'가 적은 것 같긴 한데 결국은 이 성분이 저런 거라서 사실은 타사의 이 맛이 더 낫다.. 고 했다.

그녀는 쿠팡에서 적지 않은 돈을 주고 포장지의 색깔과 사진만은 휘황찬란하나 꺼내놓으면 다 똑같이 생긴 프로틴바들을 내 앞에서 먹었다. 나는 그게 뭔지도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게 얼마라고? 열두 개에 3만 3천 원? 야, 비싸다, 하는 내 말에, 그녀는 '그래서 내가 계산을 해 봤는데 어차피 2500원 좀 넘잖아. 카페 가서 케익 시키면 저거보다 비싸고 다 당 덩어리란 말이야. 배고플 때 먹으면 저게 더 싸게 치는 거야. 그리고 엄청 달아, 이것도.'라고 했다. 꽤 논리적이었다.




사십 그램이 얼마지, 하고 찾아봤다. 각설탕 열 개. 열 개? 아. 그냥 각설탕을 열 개 집어먹어도 행복하긴 할 것 같았다. 참, 나. 역시나 괜히 찾아본 게 맞았다. 근데, 뭐. 죽을 때까지 안 먹을 거 아니잖아, 생각했다.

하지만 한 번 들어온 정보는 없어지지 않는다. 머릿속 구석에 박혀있다가도 자꾸만 고개를 내민다. 찝찝하고 기분이 나빴다. 꼴에 간호학과를 나와 당뇨의 무서움에 대해서 자세히도 배운 내 과거와 친구가 조금 원망스러워지려 했다. 척 봐도 도무지 삶의 의지가 생기지 않게 구성된 당뇨식을 받고, 한쪽과 요구르트 한 병도 벌벌 떨며 먹던 실습 병동의 할머니들도 생각났다. 망할. 진짜 망할이었다.


그때였을 것이다. 내 인생 전반의 즐거움을 책임져 온 온갖 달고 부드러운 것들에 대한 인상이 바뀐 시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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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시에 그 친구를 매일 만나 카페에서 각자 할 일을 했다. 나는 별의별 샌드위치나 7 레이어 케이크나 치즈베이글이나 뭐 그런 걸 시켰다. (지금은 9 레이어로 바뀐 모양이다. 더 맛있어졌나 보다) 친구는 프로틴바를 까서 한 입씩 먹었다. 먹어보니 한 번에 몇 개씩 먹을 수 있는 맛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나를 부럽게 쳐다보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다만 쇼케이스를 지나며 한 번 선망의 표정을 짓고는 어플로 들어가 성분표를 확인한 후 오만 정이 다 떨어진 얼굴을 했다.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나 역시 그러고 있게 되었다. 이래서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 당연하지만, 그 친구에게 어떤 악감정도 없다.



모 사의 프로틴바 거의 모든 맛을 먹어 봤다. 쿠키, 트릿, 스낵.. 나름 카테고리가 나뉜 그 안에서 또 더 맛있는 것과 덜 맛있는 게 있었다. 대개 지방 함량이 더 높았다. 성분은 거짓말을 안 했다. 설탕을 때려 넣어 맛이 없을 수 없는 내가 사랑하는, 했던, 아니. 하는.. 그, 아름다운 것들처럼.












세상에 먹어서 살이 빠지는 건 없다. 그러므로 살이 빠지지는 않았다. 애초에 살이 빠지길 바라면서 먹지는 않았다. 죄책감에 기분이 나빠서 먹기 시작한 거였다. 어차피 배고프면 다 똑같았고 그것도 달긴 매한가지로 달았다.


더 기분 나쁜 게 하나 더 있었다. 초콜릿이나 그냥 쿠키를 먹었을 때보다 좀 평온해진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그 전이 아주 몹쓸 인성이었던 건 아니지만 (아닐 수도), 분명 단 걸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는데, 뭔 호르몬이 나와서 행복해진다고 했는데.. 그런데. 그런 주전부리를 이걸로 대체하니 감정의 등락이 덜해진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찾아보니 그게 맞기도 했다. 하긴, 롤러코스터를 타듯 올라간 후에 뚝 떨어지는 것보단 잔잔히 회전목마나 슬슬 타는 게 내 몸한테도 머리한테도 덜 힘들지 않겠는가.

나는 어떤 긍정적인 효과 체감하지 않 바랐다. 그래서 그 변화의 자각이 마찮았다. 그럼 내가 케이크와 쿠키와 초코가 든 것을 멀리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기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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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동 냉장고에는 내가 갖다 놓은 비싼 프로틴 바와 쿠키와 작은 케익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퀘스트 및 앳킨스 사의 화장실 한 칸에 들어갈 3일 치 휴지값 정도는 내가 대지 않았을까. 사물함에는 초코(를 빙자한) 맛 프로틴이 든 쉐이커 바틀이 있다. 그냥 안 먹으면 되는 거 아니야?라고 결제내역을 본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반성해야 할 일인데, 나와 산 이후로 끼니를 규칙적으로 챙긴 적이 없다. 그리고 병동에는 나를 '빡치게' 하는 일들이 너무 많았다. 출근해서 EMR을 쭉 보기만 해도 뭐라도 당장 씹어야 하는 기분이 들었다. 냉장고와 사물함에 '안전구역'을 비치한 시도가 항상 효과적으로 먹히는 건 아니었으나 그래도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달고 몸에 나쁜 것들을 좋아하는 식성이 어디 간 것은 아니라서 어쩌다 (사실 그래도 꽤 자주) 쿠키나 뭐 그런 걸 먹게 되는 때에는 상당히 기분이 나빴다.



누가 억지로 내 입에 그걸 쑤셔 넣고 씹어 삼키라 한 것도 아니고 왜 내가 먹어 놓고 기분까지 나쁜 건지 참 스스로가 원망스러웠으나.. 어쩌겠는가. 노력하면서 살아야 한다. 이런 나로 태어나 저런 것을 알아 버린 이상.










. 밥만은 제발 그런 속박으로 나를 밀어 넣지 않기를 바랐는데, '저속노화 아저씨'께서 등장했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미웠다. 어쩌다 한 번 생로병사, 당뇨 뭐 그런 걸 보기라도 하면 자꾸 그분 영상을 띄워 줬다. 별로 알고 싶지 않았는데, 정말로. 그리고 그분께서는 상당히 진지하게 긴 잔소리를 하는 영상을 만드셨다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말이에요). 그리고 최근에는 '저속노화 밥'까지 기획해 출시하는 일을 벌이셨다. 이제 나는 과자코너가 아니라 햇반과 오뚜기밥이 진열된 코너를 지나면서도 고민하고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보실 일 없겠지만 정말 감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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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온 세상이 내 하루의, 아니, 현재까지 축적된 식습관과 취향과 행복에 무게를 달고 잔소리를 해대는 기분이란. 지나가는 버스에 '커피로도 챙기는 프로틴' 광고가 붙어 있어서 정말 내가 잘못 읽은 게 아닌가 의심했다. 흑당버블티와 탕후루와 크림이 미친 듯이 들어간 도넛의 시대가 저무는 것 같긴 한데, 이건  무슨 세계관이람. (아, 그 커피 제조사를 비난할 생각도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죄책감 제로의 선택을 위한 타협을 한다.

프로틴파우더를 전자레인지에 돌려 야매 케이크를 만들고, 스테비아와 알룰로스를 때려 넣고, 아메리카노에 '화이트초콜릿라즈베리'맛 프로틴 바와 피넛버터 초콜릿칩 맛 프로틴 쿠키를 먹으면서 (근데 이 쿠키는 그래도 먹을 만하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 혹시 프로틴 뭔가를 사실 거라면 피넛버터 맛이 그나마 그 대체당과 단백질 맛이 덜 납니다) 프로틴이니 제로니 하는 단어를 보며 짜증을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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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죽을 때까지 안 먹을 것도 아닌데, 진짜 몰랐으면 어땠을까 싶다. 알기 전으로 도대체 돌아갈 수없어서 더 슬프다.

그렇게 슬퍼하며 몇 만 원짜리 간식들을 시킨다. 그래. 밥은 포기 못 하겠으니 이거에서라도 줄이자, 고  속으로 이 모든 흐름이 아니꼬워 날뛰는 나를 다독여 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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