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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Snap May 25. 2018

포르멘테라 섬 : 환상의 섬

이비자에서 배를 타고 에메랄드 빛을 내는 바다를 가르며 40분 정도 가면 도착하는 섬, '환상의 섬' 또는 '휴식의 섬'으로 불리는 '포르멘테라 섬'이 있다. 죽기 전에 꼭 가야 할 세계휴양지 1001개에 포함될 정도로 매력이 넘치는 아름다운 섬인데, 이비자에서 파티를 즐기고 휴식을 위해서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혹은, 나처럼 클럽 문화를 좋아하지 않는 이들은 투명하게 푸른 바다를 즐기기 위해서도 많은 방문을 하기도 한다. 나 역시 이 섬에서 사진을 찍으며 나만의 휴식을 가지기 위해 이비자를 여행 일정에 넣게 되었다. 


이비자의 '플라야 덴 보사'에 숙소를 잡은 나는 배를 타기 위해 선착장에 일찍 도착했으나, 괜히 돌아다니며 여유를 부리다가 결국 제일 늦게 배에 탑승하는 바람에 제대로 앉지 못하고 난간에 기대어 뜨거운 햇빛과 사투를 벌이면서 가야 했다. 그래도 그 덕분에 지중해의 에메랄드 빛의 바다를 바로 옆에서 한없이 바라보는 사치를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빨리 탈 수 있으면 빨리 타는 것을 추천한다. 40분이란 시간은 생각보다 많이 길다. 



포르멘테라 섬을 투어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추천하는 방식은 자유도가 높은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는 것이지만, 정말 버티기 힘들 정도로 숨이 막히는 더위와 강렬한 햇빛 때문에 나는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편안하게 이동하는 버스를 선택했다. 단점이 있다면, 버스 정류장에서만 내릴 수 있기 때문에, 원하는 장소를 선택적으로 다니기엔 한정적인 것이다.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생각하면, 자전거를 빌려서 사진 투어를 제대로 하고 싶지만, 피부가 벗겨질 정도의 따가운 햇빛을 다시 마주한다면 여전히 버스를 탈 것 같다. 


버스 티켓을 사면 안내 책자를 주는데, 버스 정류장과 시간표가 안내되어있다. 원하는 목적지에 내려서 구경을 하고 다음 버스 시간에 맞춰서 타는 방식으로 여행할 수 있으며, 전망대와 등대 등 마지막 코스에서는 처음과 다르게 타고 왔던 버스로 계속 이동한다. 그렇기 때문에 버스 기사가 내릴 때 말해주는 정해진 약속 시간도 잘 지켜야 하는 은근히 수고로움이 따르기도 한다.


이 섬에서 내가 할 것은 딱 하나였다. '무조건 잘 쉬는 것'. 다른 계획이 없었다. 그냥 발길 닿는 데로 시선이 이끄는 데로 무작정 다닐 생각으로 왔다. 가장 아쉬운 것이 있다면, 그라나다에서 이비자로 오기 위해 바르셀로나에서 환승을 해야 했는데, 연착과 지연의 합작품으로 인해 이비자행 비행기를 놓치고, 겨우 다음 비행기로 몸을 실었으나, 나의 캐리어는 아직 바르셀로나 수화물 투어를 하는 중이어서 결국 작은 보조가방 하나만 가지고 이비자에 오게 되었던 것이다. 바다에 와도 들어가지 못하는 반쪽짜리 투어를 즐겨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버스가 멈추는 정류장마다 내려서 다음 버스가 오기 전까지 열심히 사진 포인트를 찾아 여기저기 찾아 헤매었다. 회사에서 점심시간마다 커피를 마시며 해외 작가들이 촬영한 사진들을 보곤 하는데, 내리는 곳마다 그때 보며 감동받았던 사진들과 비슷한 장소들이 눈 앞에 펼쳐져서, 나의 피부가 빨갛게 달아오는 것조차 모를 정도로 열심히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녔다. 



건조한 기후와 해변가에 펼쳐진 하얀 모래 때문에 사막 같은 느낌의 해변이었지만, 이런 독특한 느낌 때문에 카메라를 든 나에게는 한없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누군가의 모습을 예쁘게 담아주고 싶었지만, 그럴 사람이 없었고 다른 누군가가 사진을 부탁하면 찍어주려고 기웃거렸지만, 아쉽게도 이 곳에는 나밖에 없었다. 셀카를 찍어도 이 아름다운 장면을 담아낼 수 없어서 포기해야만 했다.(슬프게도 삼각대마저 캐리어 안에 있었다) 사막같이 모래바람을 휘날리는 길을 따라 걷다 보니, 마른나무를 누군가 인위적으로 세운 듯한 게이트가 나왔다. 어설펐지만 그래도 통과를 해서 지나가자 눈앞에 탄성이 절로 나오는 아름다운 해변이 펼쳐졌다. 이 섬에서 가장 예쁜 해변으로 불리는 'Playa Des Illettes'였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침을 한번 꿀꺽 삼킬 수밖에 없었다. 알고 보니 'Topless Beach' 였던 것이다. 다들 익숙한 듯한 표정으로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해변가에 자리 잡고 뜨거운 햇빛을 즐기고 있었는데, 민망한 나는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서 계속 바다를 보고 걸으며 사진을 찍었다. 이것도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이런 곳에서 사진을 찍는 것 자체가 아주 위험한 짓이었다. 다만 다들 폰카메라로 셀카도 찍고, 노는 모습을 담는 이들이 많았기에 눈치를 보며 바다 사진을 담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도 내가 이 곳에 왔다는 것을 기록하기 위한 사진을 몇 장 남기고 바다에 발도 담가보면서 천천히 이 해변을 걸었다. 괜히 왕복을 한 것은 비밀이다.


이렇게 예쁜 해변가에 발만 담근다는 것은 다이어트할 때 눈 앞에 놓여있는 치킨을 참는 것만큼 정말 힘들었다. 뒷일은 생각하지 말고 일단 들어가서 즐겨볼까란 생각도 했지만, 차마 소금 범벅으로 다닐 순 없어서 애꿎은 바다만 바라보다가 버스를 타고 점심을 먹기 위해 시내로 이동했다. 적당히 번화가로 보이는 곳에 내려서 사람들따라 무작정 걸었다. 정말 이 섬은 휴식을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어디를 걸어도 곧 눈앞에 환상적인 해변이 펼쳐졌다. 



예쁜 풍경과 다르게 외부보다 물가가 비싼 것이 단점이었지만, 못 사 먹을 정도는 아니었기에 적당히 뷰가 좋아 보이는 곳에 들어가서 피자와 맥주를 주문했다. 그늘에서 뜨거운 햇빛에 노출된 피부들을 진정시켜주면서, 시원한 맥주와 함께 피자로 허기를 달랬는데, 좋은 경치와 함께 즐겨서인지 평소보다 훨씬 더 맛있게 느껴졌다.



식사를 마치고 주변을 거닐면서 만난 풍경들은 정말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장면들을 나에게 선사했다. 한걸음 가다가 멈추고 사진 찍고, 또 걷다가 멈춰서 사진 찍고. 이러길 수차례 반복했다. 그 정도로 모든 장면이 너무 매력적으로 다가와서 대단한 사진작가가 된 것 마냥 신나게 사진을 찍었다. 괜히 앉았다가 벽에 기대었다가 사진 찍는 모습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신기한 듯 나를 쳐다봤지만, 눈 앞의 장면을 더 예쁘게 담기 위한 생각뿐이었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여기를 방문한 이들은,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최대한 자신의 매력을 뽐내며 포즈를 잡고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삼아 사진으로 남기고 있었다.



그렇게 사진을 찍으며 이 곳의 모습을 카메라뿐만 아니라 가슴 깊이 새긴 나는, 마지막으로 남은 섬의 가장 끝에 있는 등대와 제일 높은 전망대 투어를 위해 버스를 타러 갔다. 이제 탔던 버스로 계속 이동해야 했기에 약속 시간을 무조건 지켜야 했고, 실제로 여유를 가지던 몇몇 사람들은 버스를 놓치고 섬의 끝에 버려지기도 했다. 그 덕에 사람들은 더욱더 긴장을 하며 시계를 계속 바라보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평소 고소 공포증이 있던 나에게 등대는 정말 무서운 곳이었다. 높은 절벽 바로 위에 등대가 있었는데 위험을 방지하는 난간 같은 것 하나 없이 그대로 공개되어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절벽에 걸터앉아 바다를 바라보기도 했지만, 도저히 그럴 용기가 나지 않은 나는 최대한 근처까지 가서 밑을 바라보고 바로 뒤로 돌아와야 했다. 



마지막 코스였던 전망대에서 포르멘테라 섬을 내려다보니 신기하게도 중간에 허리처럼 잘록한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양쪽에 서로 다른 색으로 펼쳐진 푸른 바다를 보며 이 섬을 정말 오기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떠나버린 나의 카메라 가방과 어디엔가 있을 나의 캐리어 생각을 잠시 했다. 무겁게 도착한 스페인이었지만, 지금은 나의 의자와 상관없이 강제로 보조가방 하나만 달랑 있는 점점 더 가벼워지는 신기한 여행을 하고 있었다. 


휴식의 섬을 떠나 파티의 섬으로 돌아가기 위해 선착장으로 왔다. 돌아가는 발걸음이 썩 내키지가 않았다. 시끄럽고 정신없는 곳을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는 이 곳이 훨씬 더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떠나는 발걸음이 무거웠지만, 다음에 수영복을 챙기고 꼭 다시 오겠다고 다짐을 하며 제대로 즐기지 못한 이 섬을 아쉬움 속에서 이만 보내기로 했다. 다시 배를 타고 돌아가는 40분이란 시간은 올 때와 다르게 더 길게 느껴졌고, 이런 아쉬운 마음을 느낀 탓인지 눈 앞에 펼쳐진 지중해의 일몰이 나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캐리어를 찾기 위해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탑승했고, 혹시나 싶어서 숙소에 전화를 하니 캐리어가 도착했다고 했다. 기쁜 마음에 아무 곳에서 내린 나는 30분가량을 걸어서 숙소로 돌아왔다. 도착하니 나보다 먼 여행을 하고 온 캐리어와 어젯밤과 오늘 아침 나에게 자신의 샴푸를 빌려줬던 직원이 나를 반겨주었다. 스페인 여행을 하면서, 그동안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다양한 일들을 경험하는 중이다. 한국에 돌아가서 할 이야깃거리만 이렇게 조금씩 늘어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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