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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Snap May 11. 2018

바르셀로나 : 뇌섹남 가우디의 도시

여러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남긴 수많은 추억거리들은 여행한 나라 전체에서 임팩트가 강한 몇몇 기억들만 남게 된다. 환상적인 장면을 봤을 때나, 정말 가보고 싶어 했던 곳에 왔을 때, 혹은 나처럼 내가 좋아하는 전부를 잃어버린 사건 같은 것처럼 말이다. 이 모든 것을 경험했던 바르셀로나는 나에게 평생 잊지 못할 도시이다. 여행을 떠날 때, 내 가방을 보면 사람들은 미련하다고 한다. 여행을 하는 건지, 사진을 찍는 건지 물어본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했을 때, 내 가방에는 카메라 4개 (풀프레임 1개, 똑딱이 1개, 방수 카메라, 360도 카메라)와 렌즈들 그리고 각종 악세사리들이 들어있었다. 덕분에 어깨는 끊어질 것 같았다. 밤 12시를 향해가는 늦은 시간에, 난 호텔에 도착했고 체크인을 하기 위해 여행을 늘 같이 다니던 일행에게 카메라 가방을 부탁했다. 하지만, 나의 믿음이 5분도 안되어서 실망으로 바뀜과 동시에 내가 소중하게 아끼던 것들이 눈 앞에서 사라졌다. 굳이 가격으로 따지자면, 몇 달치 월급 정도. '한국으로 다시 돌아갈까.' 먼저 든 생각이었다. 15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30분간 공항버스 타고, 20분간 걸어서 도착한 호텔에서 5분 만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이 여행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다. 여기서 돌아가면 앞으로 나는 스페인에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나에게 남겨진 것은 캐리어와 보조 가방에 들어있던 여권, 현금 그리고 걸으면서도 여행을 기록하기 위해 잠시 옮겨놨던 똑딱이 카메라만 있었다. 그래도 여행을 이어 나갈 수는 있는 구성이었다. 아마 이 카메라마저 없었다면 난 한국에 돌아왔고 여행과 사진을 그만두었을지도 모른다. 난 여행과 사진을 확실히 좋아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시작부터 기분 좋지 않은 일로 시작한 바르셀로나였지만, 나를 여행의 길로 다시 이끈 것은 가우디란 인물이 남긴 예술작품들 때문이었다. 보통 멋진 그림이나 조각상들을 생각하겠지만, 이 곳에서는 그의 손길이 지나간 건축물들이 전부 작품들이었다. 구엘공원, 까사밀라, 까사바트요와 같은 작품들도 있지만, 나는 '성가족 성당'으로 불리는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직접 두 눈으로 보기 위해서 이 곳에 온 것이었다. 아직 미완성 건축물이며, 가우디 사망 100주년이 되는 2026년 완공을 목표로 아직까지 건축 중에 있지만, 실제 보고 온 입장에서 '과연 가능할까?'란 생각이 들었다. 가우디가 직접 건축하는 게 아닌 그의 설계도를 보고 '가우디라면 이렇게 했을 거야'란 해석을 통해 짓고 있으며, 건축비용은 관광객들이 지불하는 입장료로 충당하고 있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높이가 달라지는 현대의 건물 짓는 속도와는 확연히 차이 나게 느리게 진행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로 들어가기 위해 지불하는 입장료가 단순히 입장비가 아닌 완공에 보탬이 되는 투자라고 생각을 한다면 나중에 완공이 된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모습을 다시 볼 때면 나의 지분이 조금이라도 있기에 더 뿌듯해지리라 생각한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만나러 가는 길은 정말 설레었다. 이미 구엘 공원에서 저 멀리 보이는 모습을 잠깐 보기는 했었지만, 이제 곧 코너만 돌면 그 모습을 마주하기 때문에 잠시 심호흡을 크게 했다. 왜 이렇게 긴장이 섞인 흥분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난 독실한 크리스찬도 아니고, 종교적인 의미로 찾아온 것도 아닌데 이유 없이 온몸에 긴장이 역력했다. 주변에 수많은 인파들 속에 숨어있는 소매치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하나의 상징이라고 해야 할까.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그 나라의 시그니처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있는데, 스페인은 여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코너를 돌면서 보았던 그 첫 모습에 온 몸에 전율이 흐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여태 어느 나라를 여행하더라도 받지 못했던 기분이었다. 외관 모습은 흙을 빚어서 만들었다는 느낌도 들었고, 마치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에서나 볼법한 모습에 정말 저 디자인을 사람이 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영감은 바르셀로나 근교에 있는 몬세라트의 뾰족한 산을 보고 얻었다고 한다. 아직 나의 여행 경험이 부족한 탓인지, 아니면 건물들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바로 앞에서 본모습은 정말 상상 이상이었다. 성당 외관에는 성경 문구와, 십자가에 못 박혀있는 예수의 모습 등 성경책에 나오는 내용을 조각해서 표현했다. 성경의 내용을 아는 이들은 누군가의 설명이 없이도 바로 이해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 곳에는 3개의 파사드(출입구가 있는 정면부, 탄생, 수난, 영광 3개가 있다.)가 있는데, 각 파사드마다 4개의 첨탑을 세워 예수의 12 제자를 상징한다고 한다. 그리고 관광객들은 탄생과 수난의 파사드 중에서 예약 후에 올라가 볼 수 있는데, 가우디가 사망하기 전에 직접 감독하여 완성한 '탄생의 파사드'는 이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좋다. 그래서 가우디를 느끼러 온 사람들은 전부 탄생의 파사드로 예약을 한다. (영광의 파사드는 가장 늦게 착공이 되어서, 현재 계속 공사 중이다.) 파사드 내부는 아주 좁은 통로로 되어있기에, 누가 내려가다가 잠시 사진을 찍기 위해 멈춘다면 뒤에 줄지어 오던 사람들도 멈춰야 한다. 파사드 내부에서 바라보는 바르셀로나의 시내 모습도 장관이다. 비록 좁은 공간에서 앞사람의 발걸음 속도에 맞춰야 하지만, 시간이 늦어지는 만큼 구경하는 시간도 늘어나기 때문에 딱히 불만 불편함 없이 구경할 수 있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내부에 들어서자마자, 어마한 크기와 내부의 화려한 모습에 감탄을 했다. 햇빛을 받은 스테인드 글라스가 벽면 전체에 둘러져있는데, 이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생각이 안 나서 '대박..'이라는 말만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그리고 높은 천장을 지지하고 있는 기둥의 모습도 눈에 상당히 띄었는데, 알고 보니 가우디가 자연의 모습을 사그라다 파밀리아에도 반영해서 나무가 천장을 받치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가우디에게 누군가 스승이 누구냐고 했을 때, 나무를 가리킬 정도로 모든 영감에 대한 모티브는 자연에서 얻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여행 다니면서 봤던 그 어떤 양식의 건축물보다 위대하고 아름다웠으며, 가우디 덕분에 웬만한 성당 건물이 시시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만큼 첫 느낌이 주는 충격은 가히 상상 이상이었다.



성당 내부에는 기도를 드릴 수 있는 벤치들이 있는데, 잠시 쉴 겸 앉아서 주위를 둘러보며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과 함께 잠시 어릴 때의 생각이 떠올랐다. 나도 어릴 때 교회를 잠깐 다닌 적이 있었다. 주된 목적은 종교적인 것보다 친구들과 노는 것이 즐거웠고, 달란트 잔치에서 그동안 모은 달란트들로 학용품이나 분식을 사 먹는 재미를 위해서였다.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종교에 대한 감각이 무덤덤해지면서, 종교를 적는 란이 나오면 어릴 때의 기억 때문에 기독교라고 쓸 뿐, 교회 근처는 안 가본 지 벌써 한참 지난 것 같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둘러보며 감탄을 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은 불편했었다. 도착하자마자 잃어버린 카메라 가방 때문이었는데, 이 곳에 앉아서 이 또한 내가 성장하기 위해 지나가는 하나의 시련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은 진정되었다. 용서와 진정이란 다른 것이지만, 이미 떠나간 것에 대한 미련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다. 천천히 둘러보면서 내부를 몇 바퀴 돌았다.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이 곳이 주는 느낌은 상당했다.



하루의 절반을 이 곳을 둘러보는데 쓰고 나서, 외부 공기도 마실 겸 그리고 람블라스 거리에 있는 고딕 지구 산책도 할 겸 밖으로 나왔다. 실내에 있느라 잠시 잊었던 뜨거운 햇살이 나를 반겨주었지만, 기분 전환이 되었던 터라 상쾌한 발걸음으로 걸어나갔다. 시간이 어두워지고 거리에 조명이 들어오기 시작할 때 걷는 고딕 지구는 정말 낭만적이었다. 조용한 음악을 들으면서 천천히 걷는데, 마치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거리를 즐기며 주변을 감상하다가 우연히 뒤 돌아본 곳에서 가우디란 이름을 발견했다. 그가 남긴 흔적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다시 한번 눈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바르셀로나라는 도시에 도착해서,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잃어버렸지만 가우디란 천재 건축가가 남긴 작품들 덕분에, 마음이 조금이나마 풀리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이 날의 기억을 떠올리면 가슴은 아프지만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하나의 추억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2026년 가우디의 마지막 작품, 최고의 걸작이라 불리는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완공된다면 난 주저 없이 바르셀로나행 비행기 티켓을 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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