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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Snap Jun 01. 2018

파리 : 회색 빛 예술 도시

여행을 좋아하거나, 혹은 나처럼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파리라는 도시는 모든 것을 충족시켜주는 완벽한 도시이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 따뜻한 햇살이 나를 반겨줄 것이라 생각하고 방문한 파리는 나의 기대와 반대로 회색빛 하늘과 함께 겨울비가 나를 반겨주었다. 겨울에 파리 여행을 한다고 하니 친구가 우울한 도시라고 그랬다. 여행 운이 좋은 나에게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당당하게 왔지만, 슬프게도 여행을 마무리하는 날까지 파란 하늘은 거의 만나지 못했다. '비포 선셋'에서 제시와 셀린이 재회를 하면서 하루 종일 대화를 하며 거닐었던 아름다운 파리 거리를 보며, 언젠가는 나도 저렇게 자유롭게 거닐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결국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지만, 그래도 내가 연말을 보낸 파리는 아름답고 낭만이 넘치는 곳이었다.



덩치와 안 어울리게 아기자기한 팔찌를 강제로 판매하고 있는 흑인들을 인터넷과 유튜브를 보며 마스터한 회피 스킬을 실전에서 써먹으며 몽마르뜨 언덕으로 올라갔다. 자욱한 안개와 간간히 내리는 비 때문에 파리 시내를 멀리 바라볼 수 없었지만, 가끔씩 연해지는 안개들이 잠시나마 저 멀리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비가 와서 그런지 진득하게 뿜어져 나오는 파리의 모습은 마치 오래 사용하여 자연스럽게 낡은 가죽 가방처럼 고풍스러운 맛이 강했다.


나는 파리 여행을 하면서 루브르 박물관에 들러서 수업시간에 봤던 조각상과 미술 작품들을 보는 것이나, 평소에 관심이 없던 미술의 세계들에 급 관심이 생겨서 미술관을 방문하면서 마치 원래 이런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것 마냥 교양을 뽐낼 정도로 흥미가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것들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었다. 오로지 사진. 정말 파리의 다양한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만이 목표였다. 사진을 찍기 위해 대상 찾아다니거나, 찰나의 순간을 발견하고 셔터를 누르는 순간이 너무나 즐겁기 때문이다.



비가 그치고 하늘이 잠시 조용해졌을 때 난 개선문 위에 올라와있었다. 샹젤리제 거리부터 저 멀리 에펠탑과 파리 시내를 바라봤었던 몽마르뜨 언덕까지 한눈에 보일 정도로 공기 질이 정말 좋았다. 특히 구름 사이로 빛 갈림이 연출되는 에펠탑의 모습은 환상적이었다. 사진으로만 봤었던 에펠탑이 눈 앞에 우뚝 서있는데, 한 번씩 국내에서 송전탑을 보며 에펠탑을 닮았다고 생각했던 내가 한심스러운 순간이었다. 에펠탑을 바로 앞에서 보기 위해 트로카데로로 자리를 옮겼다.



에펠탑을 눈앞에서 바라보니 철골 구조물 중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것은 에펠탑 말고는 없을 것이라 생각될 정도로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항상 사진과 영화를 통해서만 바라봤던 아름다운 이 탑을 직접 마주하니 감격스러워서 잠시 바라봤다. 하지만 그런 여유도 잠시, 기념품을 파는 흑인 아저씨들의 끈질긴 구애 활동 때문에 집중할 수 없었다. 한 명이 가면 또 다른 한 명이 와서 거절을 수차례 반복해야 했는데, 착한 눈빛을 가진 가나에서 왔다고 하던 한 아저씨의 유창한 한국말에 결국  홀려 어느덧 흥정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파리에서 한국어로 외국인과 흥정을 하고 있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었지만, 다른 기념품 가게보다 훨씬 싸다는 말에 의심을 하자 자기를 한번 믿어보라는 자신감이 넘치는 말에 속는 셈 치고 어차피 사기로 했었던 기념품들을 구매했다. 혹시나 싶어서 나중에 기념품 샵을 가봤지만, 내가 훨씬 더 싸게 샀다는 것을 확인하자 이렇게 구매하는 것도 의외로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나처럼 사진과 여행을 같이 즐기는 사람들은 공감할지 모르겠지만, 시간에 대해 정말 예민하다. 약속 시간이 아닌 사진이 예쁘게 나오는 시간 때문이다. 난 조용한 파리 시내를 찍고 싶어서 이른 아침부터 산책을 했다. 전날 비가 오고 흐린 날이었지만, 호텔 근처의 공원으로 가던 중 몽파르나스가 보이는 길이 나타났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멋있고 아름답던지, 열심히 이 모습을 셔터를 누르며 담았다. 파리에 머물면서 숙소를 옮기기 전까지 몇 번이나 지나갈 정도로 마음에 들 정도였다.



파리의 야경을 즐기는 방법


파리가 회색빛 도시의 모습을 나에게 항상 보여줬지만 예외적인 순간이 있었다. 바로 밤이었다. 해가 지는 순간부터 파리의 시내는 화려한 조명들이 들어오면서 낮과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줬다. 화려해진 파리의 밤을 즐기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나처럼 무작정 걷거나, 혹은 센 강을 따라 올라가면서 도시를 감상하는 바토무슈를 타는 것이다. 각각의 매력이 있는데, 개선문부터 노트르담 대성당까지 천천히 걸으면서 마주하는 야경들의 모습은 또 다른 하나의 예술 작품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느끼기엔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만났던 피카소나 모네의 작품들이나, 루브르 박물관에서 만났던 수많은 작품들보다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낮에 햇빛을 만나기 힘들 정도로 파리의 겨울은 나의 통장 잔고를 바라볼 때마다 느끼는 삭막한 기운이 강했지만, 밤이 되는 순간 마치 월급날처럼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 그리고 파리 야경의 꽃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당연히 상징인 에펠탑이다. 정시마다 반짝이는 조명 덕분에 어느 곳에서 바라봐도 화려하고 아름다워서 매 정시마다 에펠탑을 바라보며 그 모습을 감상했다.



바토무슈를 타게 되면 센 강의 분위기에 빠져들어 상당히 감성이 폭발하게 된다. 특히, 조용한 발라드 음악이나 평소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시원하게 불어오는 강바람을 즐기는 것은 내가 파리에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즐길 수 있는 최고의 방법 중 하나이다. 노트르담 대성당을 지나 다리 위에서 나에게 손을 흔들어 주는 사람들, 강가의 벤치에서 서로 대화를 하는 연인들 등 모든 것이 파노라마처럼 눈 앞을 지나가는데, 가장 최고의 장면은 바로 마지막에 U턴을 하는 에펠탑 구간이다.


에펠탑 바로 밑을 지나가면서 바라보는 모습은, 파리에서 만났던 장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기도 하면서, 바로 밑을 지날 때 시작된 반짝이는 조명쇼에 사람들 입에서 동시에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파리의 겨울은 나에게 회색빛을 선사했지만, 도시 전체가 아름답고 낭만이 가득했던 예술 도시 파리. 사진을 좋아하는 내가 여행을 하기에 정말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던 곳.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사진을 좋아하는 나에게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던 도시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깨달았던 나의 실수 한 가지. '비포 선셋'에서 제시와 셀린이 9년 만에 재회 한 곳은, 파리의 '셰익스피어 앤 컴패니' 서점인데 이 곳을 그냥 지나가버린 것이 생각났다. 이 곳을 향해 가다가 화장실에 가기 위해 근처 카페에 잠시 들린 것이 화근이었다. 긴박했던 순간에서 평온한 마음이 되자, 가던 길도 잊어버린 채 그냥 지나쳐버린 것이었다.


파리에 대한 기대와 환상을 가지게 했던 영화를 보며,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곳을 허무하게 날려버린 나는 이 또한 파리를 한번 더 방문해야 되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하며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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