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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텔 Nov 11. 2022

우정과 애정은 어떻게 구분하는가

여전히 모르겠다


제법 오래된 내 의문이다. 친구를 대하는 마음과 애인을 대하는 마음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한테 하면서 답을 찾아보려고 기를 쓴지 꽤나 오래됐다.

사랑한다는 말은 지나가는 길고양이에게도 할 수 있다. 이 사랑이 친구를 향한 사랑 또는 애인을 향한 사랑과 어떻게 다를까. 몇몇은 상대방과 섹스하고 싶은 생각이 들면 그게 사랑 아니냐, 키스 하고 싶으면 사랑이다 등등 내게 자신들이 생각하는 사랑의 이유에 대해 말해줬지만 나는 그 무엇에도 동의할 수 없었다. 나는 상대방이 불쾌해하거나 기분나빠하거나 혐오하지 않는다면 키스 정도는 누구와도 할 수 있다. 같은 성별이라면 더더욱 어려울 것이 없다. 섹스 역시 둘만 통한다면 처음 만난 그날에도 할 수 있지 않은가. 아닌 사람도 있겠으나 적어도 나는 그렇다. 당장 그날 하룻밤을 보내고 싶어질만한 이상형이 그렇게 쉽게 눈에 띄는 생물은 아니란 것이 다행이랄까. 


결국 나는 성욕이나 스킨십 욕구만으로는 납득하지 못하는 것이다. 맛있는 걸 함께 먹고 싶거나 좋은 곳을 함께 가고 싶거나 재밌는 이야기를 서둘러 들려주고 싶은 등의 마음은 가족, 친구에게도 생겨나는 마음이 아닌가.


20대에는 이 사랑이 끝나면 나도 끝나버릴 것 같은 불안감이 마음 한구석에 늘 있었다.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상투적인 말을 그대로 믿었고 그게 가능할 거라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내가 보내는 사랑의 크기만큼 상대방이 돌려주지 않는다고 여겨지면 세상이 망할 것처럼 슬퍼하고 분노했다. 상대방이 싫어하는 기색이나 내켜하지 않는 기색이 느껴지면 내 스타일을 바꿔보려고 애썼다. 그러면서 나 역시 상대방이 내가 바라는 모습으로 있어주길 소망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어쩜 이렇게 순수하고 또 순진할 수 있었나. 지금의 나는 상상도 못하겠다. 20대의 나와 30대의 나는 현저히 다른 사람인양 이질감이 들 때가 있는데 바로 이럴 때다. 뭐든 어릴 때 많이 해보라는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나도 상대도 안타깝기 짝이 없던 연애에 종지부를 찍고 연애 안 한지 8년 정도가 지난 지금은 되려 사랑과 우정을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지, 도대체 휴머니즘과 에로시즘의 차이가 무엇인지 모르겠는 지경에 이르렀다. 인간적인 좋음과 로맨스적인 관계를 만들고 싶은 좋음의 차이는 무엇을 기준으로 가르는지 모르겠다.


다만, 어렴풋이 기억나기 시작했다. 열렬하게 사랑하던 그 때, 어떻게 그렇게 모든 걸 내던지듯이 사랑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짝사랑에 빠져 약도 없는 가슴 앓이를 하던 나의 어느 한 시절도.

운동하고 나면 씻을 건데 굳이 머리를 감는 모습이라던가. 그 옷이 그 옷인데 괜히 이게 낫나 저게 낫나 고르게 되는 모습이라던가... 평소 대기업의 상술이라고 실컷 비웃어놓고 이제는 선물할 구실이 생겼다며 빼빼로 데이와 각종 디데이를 반기는 모습... 뭔가 주고 싶은데 핑계거리가 없어 손톱만한 건덕지라도 있으면 잘됐다 하면서 선물을 고르게 되는 모습... 그러면서도 이건 부담스럽겠지 이건 별로인데 하면서 세상에서 나만큼 진지하고 심각한 사람은 없는 것마냥 구는 모습 같은 것들...


그러니까 나에게 있어 우정과 인류애, 사랑을 구분하는 방법은 하나 뿐인 것 같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지기 시작하면, 주고 싶은 게 자꾸 생겨나면 그게 사랑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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