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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붉은 돼지 Aug 01. 2017

덩케르크(Dunkirk, 2017)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닌 '인간 생존의 문제'를 말하다

"생존은 공포이자 탐욕이고 본능을 농락하는 운명의 장난이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2017년도 작품 덩케르크(Dunkirk)는 1940년 2차 대전 당시 프랑스 덩케르크 해안 지역에서 독일군에게 완전히 포위된 34만 명의 영국/프랑스 연합군을 탈출 시킨 '다이모 작전'을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따라서 놀란 감독의 첫 번째 전쟁 영화이자 첫 번째 실화 기반의 작품이라고 소개되고 있으나 정작 놀란 감독은 이 영화를 전쟁영화가 아닌 '인간의 생존 문제'를 다룬 재난 영화로 봐주길 원한다고 인터뷰를 통해 밝히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플롯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승리한' 전쟁 영웅 이야기가 아니라 '후퇴한' 생존자들이 겪은 경험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하늘에서의 한 시간, 바다에서의 하루, 그리고 해변에서의 일 주일 동안 생존의 본능만을 움켜쥐고 끝끝내 죽음으로 부터 벗어나는 인간 군상의 이야기를 그려낸 재난 서사입니다.

"하늘에서의 한 시간, 바다에서의 하루, 그리고 해변에서의 일 주일"

이 영화는 오락성에서도 뒤지지 않으면서 주제의식도 뚜렷했던 여러 대작을 만들어낸 놀란 감독의 명성과 여름 바캉스라는 개봉 시기가 맞물려 많은 한국 관객들이 화끈한 볼거리, 즐길거리를 기대하게 만든 작품인데, 실제로 영화는 그간 봐왔던 액션 중심의 2차 대전 배경 영화와는 가장 거리가 먼 방식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초반 영화를 본 관객들 사이의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리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무엇을 보고자 기대했느냐에 따라 찬사와 실망이 극명하게 나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영화를 추천해드리고 싶은 분들은 한바탕 시원한 액션을 통해 더위를 날려버리길 기대하시는 분 보다는 전쟁 속으로 시공을 이동하여 생존만이 유일한 목표인 역사적 사건 속으로 뛰어드는 체험을 해볼 분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놀란 감독은 관객들에게 전쟁의 참상과 생존의 냄새만이 자욱한 공포감을 극대화 하기 위해 불필요한 것을 최대한 걷어냈습니다. 가급적 나레이션을 통한 자세한 설명이나 캐릭터간 대화를 통한 주제 전달 대신 당시의 공간과 시간을 그대로 재현하고, 물리적인 시공을 교차 편집을 통해 재배치를 함으로서 생생한 긴박감을 전달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특히 영화의 70%가 넘는 장면을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함으로써 덩케르크 해변, 하늘, 바다에서 벌어졌던 사실을 관객에게 시각적으로 생생하게 전달해주고 있으며, 스핏파이어 전투기가 공중에서 벌이는 전투씬에서의 귀를 찢는듯한 엔진소리와 기총 소리, 그리고 영화의 흐름에 따라 속도가 조절되는 시계 초침 소리를 활용한 스코어 등으로 청각적인 긴장감을 극대화 시켜 IMAX 극장에서 봤을 경우에만 느낄 수 있는 압도적인 영상/음향을 활용하여 관객의 전장 체험을 극대화 시키고 있습니다. 만약 IMAX 상영관에서 이 영화를 보지 못하고 후에 작은 화면이나 IPTV 등을 통해 감상할 생각이라면 영화의 절반은 포기하고 보겠다는 이야기와 똑같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IMAX에서 이 영화를 보지 않는다면 영화의 절반을 못 보는 것과 같습니다"

놀란 감독은 이 영화가 몇몇 전쟁 영웅들이 주도하는 액션 영화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겪여낸 재난 영화로 만들고 싶어서 기술적인 부분 외 작품의 구성 측면에서도 여러 가지 의도적인 조각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Mark Rylance, Kenneth Branagh 같은 몇 몇 유명 배우들을 플롯의 중심으로 배치하기 보다는 잘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배우들을 이야기의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진행함으로써, 관객들이 극 속의 인물들이 특별한 사람이 아니고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이라고 느끼게 만드는 동질성을 확보하려 시도하고 있습니다. 또한 영화속 몇 장면에서 스쳐가는 실루엣, 그리고 전투기와 폭격기 기체를 제외하고는 독일군이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2차 대전 당시 영화가 연합군=선, 독일군=악의 이분법적 구도를 기본 이야기의 소재로 삼고서 반전 영화를 가장한 액션 영화로 관객을 속이는 것을 생각하면 놀란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선과 악의 구도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님을 확실하게 알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실제 역사와 마찬가지로 군인들을 구하기 위한 평범한 시민들의 여정을 그리면서도 그 과정에서의 고난과 죽음에 대한 신파극, 그리고 각 캐릭터들의 잡다한 일상사들에 개인적인 감정 이입 시키기 등을 전혀 양화에 포함하지 않음으로서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의식 '전쟁=재난상황'임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광활한 아이맥스 화면은 역설적으로 광활한 여백을 보여주기 위해 사용되는데 이 여백은 당시 군인들이 느꼈을 고독감과 공포를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또한 영화 마지막 결국 본토로 돌아간 군인들은 목숨을 건졌다는 안도와 함께 패잔병으로 취급받을까봐 두려워하는 모습도 보이게 되는데 이 때 앞을 못보는 한 노인과 군인들과의 대화는 이 영화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장면처럼 느껴집니다:

"그냥 살아서 돌아온 것 뿐인데요"
"그거면 충분해..."

1940년 당시 덩케르크 해안에는 40만명 가까운 연합군이 구조를 기다리며 서있었다고 합니다. 놀란 감독은 그 장면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1500명의 액스트라를 동원했고 이를 최대한 사실감있게 전달하고자, 아이맥스 카메라를 통해 익스트림 롱샷으로 항공 촬영하여 당시 전장 상황의 웅장함을 관객에게 보여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아이맥스의 광활한 화면은 때로 그 수많은 인물들과 함선과 포화가 아니라, 아이러니 하게도 광활한 여백을 비우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는 경우도 많을 알 수 있는데 감독은 이런 여백을 통해 당시 병사들이 해변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느꼈을 고독감과 공포를 전달해주려고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2017년이 아직 절반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올해 아카데미 상에서 덩케르크는 촬영상 내지는 시각효과상 그리고 음향효과상 부분에서는 최소 노미네이트가 가능하지 않을까하는 예상을 해봅니다.  


전쟁에는 결국 승자도 패자도 없고 희생자만 있을 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놀란 감독은 자신의 첫 번째 전쟁 영화를 평범하지 않은 플롯과 시공의 병치라는 영화적 마술을 통해 전쟁은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닌 '생존의 문제'임을 관객에게 체험시켜 줬습니다. 작품을 낼 때 마다 전세계 관객들을 '놀라게 만드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별점: ★★★★

한줄평: 1. 전쟁은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닌 '생존의 문제'임을 체험 시켜 준다. 영화 내내 움켜쥔 주먹을 펴기가 어려웠다는.

2. 이 영화를 IMAX로 보는 기회를 놓치면 작품의 절반을 못보게 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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