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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호 Mar 10. 2019

호주 울룰루, 평소와는 다른 선택

3박 4일 캠핑 투어 

평소에 나는 도시를 여행지로 고른다. 

거의 평생을 도시에 살았고 현재도 도시에 살면서, 왜 굳이 도시 여행을 하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나는 도시가 익숙하기 때문에 도시에서 내가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는지 안다.  최고로 맛있을 것 같은 레스토랑에서 와인과 함께 식사를 하고 그 동네의 신기한 샵들을 돌아다닌다. 식자재도 보고 식기도 본다.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또다시 멋진 레스토랑을 찾아서 식사를 한다. 도쿄에 가도, 멜버른에 가도, 바르셀로나에 가도 나는 비슷한 패턴으로 논다. 이게 내가 행복해지는 방법이다.


이번 여행은 조금 다른 일정을 넣었다. 울룰루 3박 4일 캠핑 투어, 아웃백이라고 불리는 호주 내륙을 여행했다. 리프레시를 하기 위해 좋은 선택이었다. 시간이 지나서 그 기억이 희미해지기 전에 이야기를 기록해놓고자 한다. 참고로 내 울룰루 일정은 1월 말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라 기대했는가

주변에서 많이들 걱정해주셨는데(님이 과연 잘 있겠느냐), 오히려 나는 별로 걱정 하진 않았다. 울룰루 캠핑 투어에 대한 글은 많이 찾아봤고 그 글을 보고 아래와 같이 기대했다.


야외 취침에 대한 걱정
사실 난 평생 텐트에서도 잠을 자본 적이 없다. 그래도 다 큰 성인인데 잘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덥다고 하지만, 그래도 밖에서 자는데 춥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약간 도톰한 옷도 챙기고 핫팩도 챙겼다. 완벽하게 준비!


더위에 대한 걱정 
1월 초에 호주가 기록적인 폭염이라는 이야기를 사람들이 할 때, 뭐 그래도 사람 사는데인데 그렇게 덥겠냐 싶었다. 게다가 투어 내내 걸어 다니는 것도 아니고 관광지와 관광지 사이에는 차를 타고 이동하니까 문제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투어에 대한 걱정 
일단 체력이 걱정이었다. 평소에 운동을 잘하지 않던 내가 과연 3일 동안 잘 다닐 수 있을까. 물 2L 또는 4L는 꼬박꼬박 잘 들고 다닐 수 있을까. 운동화를 신고 갔을 땐 괜찮을까. 등등.  평소에 보통 자유여행만 다니는지라 단체 여행에 캠핑이라니. 과연 외국인들과 트러블이 있진 않을까 라는 고민도 했다. 3박 4일의 영어 듣기 및 조금 말하기 시간도 피곤하기도 하고.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야외 취침과 자연 

캠핑장은 기대보다 굉장히 깨끗했다. 화장실과 샤워실에 관리가 잘 되어 있어서 놀랄 정도. 저녁에 캠핑장에 가서 씻는 데는 전혀 무리가 없었다. 아침에도 마찬가지. 근데 밤에 잠을 자는 건 다른 문제였다. 여행 기간 동안 매일 최고 기온 40도가 넘는 날씨였는데, 해가 져도 별로 바닥이 식지 않았다. 재미있는 건 샤워실에 아무리 찬물을 틀어도 더운물이 나온다는 것 (미지근한 물이 아니다. 더운물). 

여행 기간 동안의 날씨 

야외에서 자는데 더운 건 조금 힘들었다. swag라는 침낭 안에 들어가서 누에고치처럼 자야 하는데 더우니까 침낭 안에 폭 들어갈 수 없었다. 사람들 중 일부는 그냥 swag를 깔고 아예 밖에서 자더라. 자다 보면 새벽에 따듯한 모래 바람이 불어서 swag에 들어가야 했다. 그리고 다시 더워서 밖으로 나오는 걸 반복.  앞에 핫팩을 챙겼다는 멘트를 기억하신 분은 지금 비웃으시면 된다. 더워서 잘 때도 한 손으로 안내 책자로 부채질을 했다. 물론 휴대용 선풍기도 가져갔지만, 부채를 가져가는 게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



더위, 더위, 더위 
나는 therocktour라는 곳에서 예약을 했고, 투어에 참가한 다른 외국인들에게 이걸 왜 선택했냐고 물어보니까 "이게 가장 싸서"라는 대답을 들었다 (^^). 나 역시도 비슷한 이유였는데 저렴한 만큼 투어 차량의 퀄리티가 좋지 않았다. 더운 날씨인데 에어컨 상태가 좋지 않았고, 여행 이틀째날 그마저도 고장 났다. 밖에서 걸어 다니면서 더운 건 산에 오르거나, 트래킹을 하면서 더운 거니까 그런가 보다 했는데, 차 안에서도 더워서 좀 힘들었다. 그 당시엔 머릿속에 "덥다"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 오히려 리프레시는 잘 되었던 것 같다 (네?). 

첫날 에어즈락 공항에 도착해서 낮 12시 반쯤 투어 차량에 올랐다. 투어 차량에 오르면 못생긴 서브웨이를 하나 준다. 그걸 먹고 지역 원주민인 에버리진의 문화 센터에 간다. 그렇게 크진 않지만 원주민들이 이 땅을 호주에서 어떻게 돌려받았는지, 울룰루와 관련한 전설이 적혀 있고 영상도 있어서 흥미롭게 볼 수 있다. 물을 준비하지 않았다면 물도 여기서 살 수 있다 (절대 저렴하진 않음). 여기까지가 덥지만 그늘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이다. 실내라고 절대 시원할 것이라 생각하면 안 된다. 덥다.

사진에서 태양이 느껴지면 성공

문화 센터에서 나오면 3-4시 정도 되는데 이때부터 울룰루 투어를 했다. 둘레 9.4km, 높이 335m의 단 하나의 바위로 되어 있는 울룰루를 올라가는 것은 아니고, 옆을 따라 걷는 것이다. 10km 가까이 되는 둘레를 다 걷는 것은 아니고 한 1/4 정도 걸었다 (Uluru Base Walk). 그렇게 오래 걷는 것도 아니고 완전 평지일 뿐인데 40도가 넘고, 햇볕을 피하기 힘든 길을 걸으니 거의 10-20분 만에 힘이 빠졌다. 이 날의 더위는 정말 강렬했다. 그다음 날부터는 조금씩 적응해서 다녔다.


투어에 대한 걱정 

걱정했던 것보다 더위를 제외하고 그렇게 힘들진 않았다. 하루 평균 18km 정도 돌아다녔고, 층계로 따지면 19층 정도 올라간 날도 있었다. 중간중간 설명을 하기 위해서 쉬기도 하고, 가이드가 물을 먹으라고 하는 시간들이 있다. 물을 먹기 위해서 계속 쉬다 보니 그렇게 힘들진 않았다. 물론 4일 동안 매번 새벽 4시에 일어났다. 정신없이 일어나서 힘든지도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왜 힘들지 않았는지 이상한 일이다.

캠핑장에서 밥을 이렇게 같이 준비한다

공통으로 주어지는 일들이 있었는데 하는 사람들은 열심히 하고, 하지 않는 사람들은 계속 농땡이었다. 주로 나이 많으신 분들이 오히려 훨씬 열심히 하더라. 힘쓰는 것도.. 영국에서 오셔서 길게 여행을 하고 계신 부부가 가장 열심이셨다. 캠핑 때 사용할 땔깜을 가져오라 그랬는데, 백인들이 반 이상 움직이지 않아서 굉장 실망스러웠다. 가이드도 이번 투어 진행하는 게 어려웠을 듯. 

사막에서 땔감 나무 잘라오기


물론 사람들이 괜히 비협조적인 건 아니었다. 앞에 말한 것처럼 둘째 날 에어컨이 고장 났다. 더운 차에서 몇 시간씩 이동하니 사람들의 불만이 쌓여서 가이드에게 화를 냈다. 가이드가 뭐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들 알고 있었지만... 더위는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 창문을 열고 달리면 마치 헤어드라이기 바람을 맞는 기분이었다. 

에어컨이 고장 나서 위성 전화로 전화 걸고 있는 가이드



기대 이상의 경험 

핑크레이디 사과, 걷고 나서 먹으면 진짜 꿀맛. 나중에 시드니에서 다시 사 먹었다

Uluru Base Walk를 끝내고 가이드가 사과를 주는데, 그 사과가 진짜 맛있었다. 나중에 시드니에 가서 사 먹었는데 땡볕에 먹는 사과의 과즙과는 비교할 수 없더라. 내가 무엇을 하는지도 중요하지만, 어느 공간에서 어떤 상황에서 하는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음.

시드니 마트에서 사 먹은 핑크 레이디 애플 

더워서 여길 다시 오진 않겠다 싶었는데, 마지막 날에는 다시 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더위 이야기만 적었지만, 신기한 돌덩어리(?)를 볼 수 있었고, 확실히 이국적인 자연을 즐길 수 있었고, 정말 리프레시되었다. 전 회사에서 히말라야를 다녀온 친구가 말했었다. 히말라야에 가서 생각을 비우고 오려했으나, 막상 히말라야에서는 생존하느라 다른 생각을 할 겨를 조차 없었다고. 히말라야보다 울룰루는 훨씬 편한 여행이었겠지만 나는 아마 그 친구와 비슷한 경험을 했던 것 같다.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라면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 

신기하게 생긴 울룰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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