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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샘선 Jul 12. 2019

편의점

무적의 편의점

    도시에서 변두리로 넘어오면서 체감한 가장 큰 차이는 식당이었다. 빵 냄새, 고기냄새, 꼬치냄새. 사방이 굽고 타는 냄새로 찬 도시의 거리에서는 밥 때가 되어도 식사가 급하지 않았다. 냄새로 이미 맛을 본 음식들은 손만 뻗으면 먹을 수 있었다. 오히려 선택이 고민이었다. 선택지가 많으면 기회비용도 늘어나는 법이었다. 돈부리를 택하면 라멘이, 라멘을 택하면 스시가 아쉬워졌다. 즐비한 식당들을 눈앞에 두고도 어느 하나 선뜻 택하기 어려운 이유였다. 



    시골 변두리에 오니 선택지가 간결해졌다. 굶주릴 때까지 열린 식당을 찾기가 어려웠다. 일단 열려있는 식당이라면 모두 환영이었다. 한참 걸어 겨우 찾으면 폐점이거나 공휴일. 드물게 열린 식당은 어느 양평 저수지의 양식집처럼 과하게 근사했다. 지쳐 돌아가려할 때쯤, 언제나 편의점이 있었다. 이쯤 되면 냉동식품이어도 괜찮지, 컵라면의 훈훈함이 그립지, 말을 거는 이정표였다. 도시에서나 변두리에서나 편의점을 찾게 되는 ‘이쯤 되면’의 거리를 귀신같이 잰 그곳에 편의점 간판이 번뜩였다. 한결같은 편의점에 실망은 없었다. 만국공통 편의점 문법은 예상하는 그 맛이었다. 눅눅과 바삭 사이 유리관 속 치킨꼬치, 일본판 보름달 빵일 크림과 팥 빵, 비닐만 벗겨내면 예의 그 익숙한 조미료 맛으로 반겨줄 컵라면, 김으로 둘둘 매 뭉친 반찬과 밥. 편의점에 들어서면 나는 신선하고 묵은 냉동고 내음은 체념한 배에 제격이었다. 




    일본에는 인적 드문 시골에도 편의점이 빠지지 않았다. 뒤에는 논 앞에는 주유소. 문 닫은 식당과 사람 없는 집이 즐비한 도로에 세븐일레븐과 로손이 덜렁, 혼자 밝았다. 기계만 남은 세기말을 연상시켰다. 손님이 없거나 그날따라 힘에 부쳐 일찍 불을 끈 다른 집들에 비하면 근무시간, 진열, 청소, 계산, 모든 업무를 짜임새 있게 나눈 편의점은 무적이었다. 굶주린 나는 편의점을 보자마자 그려왔던 음식 선택지를 급히 편의점화 했다. 편의점 문법을 반평생 익힌 나에게는 몸에 밴 일이었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편의점의 맑은 종소리는 보지 않고도 편의점 먹거리를 떠오르게 한다. 맛보지 않아도 입안에 매운, 짠, 신, 단 조미료가 감돌았다. 


로손이 덜렁, 밝았다.


    일본 도쿄의 밤에 나는 퇴근길, 맛집처럼 편의점에 줄 서있는 일본인 회사원 무리들 뒤에 섰었다. 시골 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그 많은 먹거리를 두고 사람들은 편의점을 택한다. 너무 많은 선택지 대신 예상할 수 있는 간결한 선택지를 택한 것일까. 굶주려도 배불러도 찾게 되는 편의점은 사람들의 ‘이쯤되면’의 거리를 미리 다 측정해놓은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편의점은 정말이지, 무적 중에 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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