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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샘선 Jul 12. 2019

킥보드 타는 돈까스

샘의 글 [일본5일]

    일본에 디딘 첫 발은 도쿄역이었다. 흡사 한국의 삼성역 같은 곳이었다. 배가 고파 일단 먹고 시작하자 했는데 회사만 빽빽한 빌딩숲에서 가볍게 먹을 한 끼는 쉽지 않았다. 낮엔 불 꺼진 이자카야 거리에서 그나마 가벼워 보이는 식당을 하나 찾았다. 만만하다 느낀 건 식당 앞에 킥보드 타는 돼지 형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분홍 노랑 색동옷을 입은 돼지가 아주 발랄했다. 이렇게 해맑은 돼지를 걸어놓은 식당이라면 가격도 분위기도 부담이 없을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그 식당은 이후 5일간 간 식당 중 가장 비쌌다. 메뉴인 돈까스에 추가된 나머지 값은 서비스 값이었던 것 같다. 활짝 웃는 얼굴로 포크, 나이프, 물, 물수건 서비스를 해줄 때마다 스미마셍을 연발하던 점원은 이내 내 배낭에도 친절해지기에 이르렀다. 큰 냅킨을 펴들고 와 당연 우리에게 주겠거니 기다리는데 그녀는 내 배낭을 향했다. 도도도도 걸어와 옆에 둔 때 탄 배낭에 사뿐히 냅킨을 덮어주었다. 흠칫 놀랐다. 나에게도 스미마셍, 내 배낭에도 스미마셍. 돼지의 군내가 날까 배낭의 코를 막아주는 것인가. 먹지 못하는 배낭의 막힌 입에 대한 배려인가. 원래 과하게 친절한데는 값이 이상하게 비싼 법. 보고 있던 병선이는 말했다. 


    그러나 저러나 배가 무척 고팠다. 주문한 양배추 롤과 카레 돈까스가 나오자마자 정신없이 먹었다. 한 반쯤 비웠을까. 배가 찰 무렵 고개를 들었는데 그제야 표정 있는 돼지 액자와 눈이 마주쳤다. 고운 분홍빛 돼지 셋이 각각 액자 속에서 기쁘거나, 찡그리거나, 비웃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돼지 파는 식당에 표정 있는 돼지를 걸어두는 건 한국만이 아니었구나. 양배추롤과 카레롤. 양배추와 돼지, 카레와 돼지를 번갈아 먹던 우리의 머리 위에 표정 많은 돼지 셋이 얹어있었다. 


    우리는 배도 어느 정도 찼기에 그제야 생각을 해보기 시작했다. 삼겹살집에 기쁜 돼지 얼굴을 크게 걸어두고 돈까스 집에 킥보드 타는 돼지를 놓아두는 것에 대하여. 돼지는 어찌하여 죽어서도 자신의 고기화를 긍정하는 존재가 되는가. 긍정뿐인가. 자신을 맛보라고 유혹을 한다. 우리는 킥보드 타는 돼지를 보고 이 식당에 발을 디뎠다. 무생물 배낭은 대접의 대상이, 생물 돼지는 자신의 죽음을 맛보라고 유혹하는 대상이 되는 기준은 무엇이지.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카레와 돼지, 양배추와 돼지를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표정 많은 돼지를 머리 위에 두고서도 돼지를 잘도 씹는 우리는 입을 다무는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생각을 하거나 생각을 외면하는 것도 


    다 우리 마음이었다. 우리가 배낭을 가진 인간일 때, 애완돼지를 가진 인간일 때 따라 돼지도 배낭도 대접이 달라질 것이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그 기준은 오직 인간이었다. 인간이라는 무한 특권은 대접받는 배낭, 표정많은 돈까스를 만든다. 


계산을 하고 나가는 길, 배가 불러서야 눈에 들어왔다. 킥보드 탄 돈까스. 




덧.

나는 이 식당을 타도하고자 하는 의도가 전혀 없다. 오모테나시(일본 점원의 매우 친절하게 대하는, 특유의 접객 방식)란 이런 것이구나, 친절의 끝판왕을 보여준 그 점원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다만 지극히 개인적으로 킥보드 타는 돈까스가 하필이면 눈에 밟혔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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