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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도스로 Oct 27. 2020

역사: 역사는 함부로 고칠 수 없다

- 민수사옥과 금성출판사 근현대교과서 사건

○ 기록 고치기

 태종은 고려 말기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다음 해에 문과 병과 7등으로 급제할 정도로 머리가 뛰어난 편이었지만, 태종 하면 아무래도 ‘머리 쓰는 모습’보다는 ‘몸 쓰는 모습’이 더 먼저 연상됩니다. 정적(政敵)이던 정몽주를 죽이고 두 차례의 왕자의 난을 거친 뒤에 결국 왕위에 오르는 장면에서 ‘행동파’적인 면이 부각되기 때문일 겁니다. 

 몸을 잘 쓰는 태종은 사냥도 좋아했습니다. 즉위한 지 4년이 지난 1404년 2월, 태종은 직접 활과 화살을 가지고 사냥을 나갔습니다. 말을 타고 노루를 쫓고 있었는데 말이 넘어지는 바람에 말에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몸을 상하지는 않았지만 태종의 입장에서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다는 생각이 들 법도 합니다. 주변을 둘러 본 태종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일을 사관이 알게 하지 마라.”

 하지만 후대 사람들은 이 일을 잘 알고 있습니다. 태종의 바람과 달리 사관이 이 일을 태종실록에 기록하였기 때문입니다. 사관은 태종이 말에서 떨어진 일뿐만 아니라, 그 뒤에 태종의 지시까지 꼼꼼하게 적었습니다. 이 사례는 『조선왕조실록』이 얼마나 역사를 충실히 기록하였는지를 보여줄 때 종종 인용되는데, 설령 왕이라고 해도 역사에 대한 기록까지 맘대로 할 수 없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조선시대의 실록 편찬은 왕이 승하하고 다음 왕이 그를 계승하여 즉위한 후에 시작됩니다. 조정에서 실록 편찬의 결정이 이루어지면 임시로 실록청(實錄廳)이 설치되고 총재관(總裁官) 이하 도청(都廳)과 각 방(房)의 관원들이 임명됩니다. 실록을 편찬할 때 기초자료가 되는 건 사관들이 작성한 사초(史草)이므로, 사초를 작성하여 보관하고 있던 관원들이나 그 가족들은 모두 정해진 기한 내에 실록청에 그것을 제출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무거운 처벌을 받았습니다. 

 사초는 왕과 왕실, 조정과 대신 등 힘 있는 곳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에 뜨거운 감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초 때문에 생긴 난리를 사옥(史獄)이라고 하는데, 대표적인 사건으로 민수사옥(閔粹史獄)이 있습니다.

 세조가 승하한 뒤 조선의 8대 왕으로 예종이 즉위한 해의 일입니다. 신숙주·한명회 등이 『세조실록』을 편찬하기 위하여 사관의 사초를 거두어들였습니다. 그 무렵 사관 중 한 명이었던 민수(閔粹)는 큰 걱정에 빠졌습니다. 자신이 작성한 사초에 대신들을 향한 쓴 소리가 적혀 있었는데, 이걸 보면 대신들이 보복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더군다나 당시에는 사초에 사관의 이름을 기재하는 실명제를 실시하고 있었습니다.

 사초를 고쳐야겠다는 생각한 민수는 기사관(記事官) 강치성(康致誠)에게 간청해 사초를 빼내어 고치는데 성공하지만, 바쁘게 고치는 바람에 흔적을 남긴 채 되돌려주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검열 과정에서 사초를 고친 게 들통이 나고 말았습니다. 이 사실은 예종에게까지 보고되었습니다.

 사실 사초를 고쳐 쓴 건 민수가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민수의 사초를 계기로 원숙강(元叔康)도 사초를 여러 차례 고쳐 쓴 사실이 밝혀져 모두 의금부에 투옥되었습니다.  국문 과정에서 원숙강이 사초를 고쳐 쓴 이유에 대해 대신을 거스르면 그 화(禍)가 빠르기 때문이라고 말하자, 예종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너는 대신에게는 아부하면서, 임금은 두려워하지 않는구나!”     

 기록의 힘은 보존성에 있습니다. 한 번 기록된 사실은 동시대에 쉽게 전파될 뿐만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 남아 있어 후대에 전승됩니다. 치적에 관한 기록이라면 널리 퍼트릴 필요가 있지만, 치부에 관한 기록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잘못은 가급적 숨기고 싶은 게 인지상정입니다. 그래서 곧잘 역사를 둘러싼 갈등이 생깁니다.     


○ 논란의 중심이 된 금성출판사 근현대사 교과서

 역사는 과거에 일어난 사실을 다룬다는 점에서는 기본적으로는 객관적인 성격을 가집니다. 하지만 역사에도 주관적면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데, 그건 역사가 과거의 단편적 사실을 단순히 나열하는 게 아니라 사건에 대한 해석이 가미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사건이 일어난 지 오래 지나지 않은 근대와 현대의 역사에 대해서는 논쟁이 더욱 치열합니다.

 지금은 고등학교에서 “근현대사”라는 과목을 따로 배우지는 않지만, 제7차 교육과정 당시에는 “근현대사”가 고등학교 2, 3학년의 심화선택 과목 중의 하나였습니다. 근현대사 교과서 중에서 특히 문제가 된 건 금성출판사에서 출판한 교과서였습니다.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건 2004년, 2008년 국회 국정감사였습니다. 일부 국회의원들이 금성출판사의 근대현대사 교과서가 좌편향 되어 있다며 문제를 제기한 겁니다. 특히 한 국회의원은 "금성출판사의 역사교과서는 북한 전체주의 체제의 역사서를 베껴 쓴 것에 불과하다"라며 당장 다음 해부터 수정된 역사교과서를 일선 학교에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처음 문제를 제기한 건 정치권이었지만 다른 분야의 사람들까지 그 주장에 동조하면서 파장은 커졌습니다. 일부 학자 중심으로 결성된 ‘교과서 포럼’이라는 단체를 중심으로 교과서를 수정하라는 요구가 나왔고, 통일부, 국방부와 같은 국가기관까지 나서서 같은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러자 당시 교육부도 대응책을 마련합니다.

 교육부는 2008년 ‘역사교과전문가협의회’를 구성하여 ‘교과서 포럼’ 등에서 수정을 요구하는 사항에 대한 검토를 의뢰하였고, 역사교과전문가협의회는 2박 3일간의 세미나를 통해 수정권고안을 마련하였습니다.

 교육부가 역사교과전문가협의회의 수정권고안에 따라 금성출판사에 수정을 권고하자, 금성출판사에서 발행한 근현대사 교과서의 저자들(한국교원대학교 김한종 교수 등)이 수정권고에 따를 수 없다며 반발하였습니다. 하지만 교육부는 저자들의 반발과 상관없이 금성출판사에 대해 수정하라는 행정처분을 하였는데, 금성출판사는 교육부의 행정처분에 따라 교과서의 내용을 수정하였습니다. 그러자 교과서의 저자들이 교육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한 겁니다. 그들의 주요 주장은 크게 세 가지 정도입니다.     


 첫째, 교육부는 교과서의 수정을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둘째, 교과서 수정을 하기 위한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셋째, 교과서 내용에 문제가 없어 수정할 필요가 없는데, 교육부가 부당하게 수정을 명령하였다.     

 이러한 저자들의 주장에 대해 법원이 어떻게 판단을 내렸는지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 교육부는 교과서의 수정을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는가?

 정부기관이라고 해서 아무렇게나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법치주의를 근간으로 하고 있으므로 행정부도 법에 따라야 함은 당연합니다. 법에 따른 행정이라는 건 행정작용을 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행정작용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법에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즉 교육부가 금성출판사에게 교과서 수정명령을 내리려면 “수정명령을 할 수 있다”는 법이 있어야 합니다. 

 저자들은 이 부분을 지적하며, 교육부가 수정명령을 할 근거가 법에 없다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교육부는 즉각 반박하였습니다.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이라는 법에 ‘교과용도서의 내용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될 때에는 검정도서의 저작자 또는 발행자에게 수정을 명할 수 있다’라고 명시되어 있다”라는 겁니다. 저자들은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이 있긴 하지만, 그건 엄밀한 의미에서는 법이 아니므로 그런 규정이 있다고 달라지는 건 아니다.”라고 다시 반박하였습니다.

 저자들과 교육부가 무엇을 쟁점으로 각기 다른 주장을 하고 있는지, 그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어떠한지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법의 체계에 대해 간략히 살펴봐야 합니다.

 ‘법’이라고 하면 종류가 하나일 것 같지만, 사실 법에도 여러 종류가 있고 각 법은 단계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법은 헌법이 있습니다. 헌법 아래에는 국회가 제정하는 법률이 있고, 법률 아래에 행정부가 만드는 행정입법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헌법과 법률은 비교적 많이 접할 수 있지만 행정입법은 다소 낯설 수 있는데, 행정입법은 법률의 내용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서술해 놓은 법이라고 보면 됩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식품위생법이라는 법률에는 “식품접객영업자는 청소년에게 술을 판매해서는 안 된다”라고 규정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법만 봐서는 청소년에게 술을 판매해서는 안 되는 ‘식품접객영업자’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식품접객영업자가 휴게음식점, 일반음식점, 단란주점, 유흥주점, 제과점 등의 영업을 하는 사람이라는 건 ‘식품위생법 시행령’이라는 행정입법에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국회가 ‘법률’에 총론적인 사항을 정해놓으면 행정부가 ‘행정입법(시행령, 시행규칙)’에 각론에 해당하는 내용을 상세하게 규율하는 겁니다.

 행정작용을 하려면 그 근거가 법에 있어야 한다고 하였는데, 이때의 ‘법’은 원칙적으로 법률을 말하고, 법률이 아닌 행정입법에 근거해서 행정작용을 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항상 법률에 근거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모든 사항을 법률로 규정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근거 규정이 행정입법이라고 하더라도 그 행정입법이 법률의 위임을 받아서 제정된 것이라면 괜찮습니다.

 즉 행정입법으로 세부사항을 정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지켜야 할 원칙이 있습니다. 행정입법은 법률보다 낮은 단계의 법이기 때문에 법률이 “이런 이런 내용은 행정입법으로 정할 수 있다”라고 재량권을 준 범위 내의 사항에 대해서만 규정할 수 있고, 재량권을 준 범위 밖에 사항에 대해 규율을 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비유컨대, 사장이 팀장에게 “이번 창립기념일에 여행을 가려고 하는데, 어디로 가면 좋을지 알아서 정해 보세요.”라고 말을 했다면, 팀장은 여행 장소에 대해서는 정할 수 있지만, “여행을 가지 말고 그냥 출근해서 근무하기로 했습니다.”와 같은 결론을 내릴 수는 없는 겁니다.

 다시 금성출판사 사건으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교육부는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에 따라 수정명령을 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는데,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은 법률이 아니고 행정입법의 일종입니다. 저자들은 행정입법에 근거해서 내린 수정명령을 위법하다는 주장을 펼친 것인데, 법원은 다르게 판단하였습니다.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은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초∙중등 교육법』이라는 법률에서 위임을 한 범위 내에서 제정된 것이니 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 교육부는 적법한 절차를 지켰는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결과 못지않게 어떠한 과정을 거쳤는지도 중요합니다. 마라톤 경기를 하는데 누군가 마라톤 코스 중의 일부 구간을 자동차를 이용해서 이동했다면, 전 구간을 발로 뛴 사람과 동일한 대우를 받을 수는 없는 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 행정작용을 할 때도 마찬가지라서 법에서 정해 놓은 절차는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국가는 공교육의 주체이므로 교과서의 발행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데, 국가가 개입하는 형태는 크게 보면 두 가지입니다. 먼저 국정제는 국가가 교과서를 직접 만드는 것이고, 검정제(인정제)는 개인이나 민간 출판사에서 만든 교과서가 교과서로 적합한 지를 심사한 뒤 문제가 없으면 교과서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입니다. 당시 근현대사 교과서는 검정제를 채택하고 있었습니다.

 교과서 검정의 핵심은 교과서로서 적합한지에 대한 심사입니다. 『초∙중등 교육법』은 심사를 하기 위해 “교과용도서심의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교과용도서심의회”는 교원이나 학부모를 비롯한 이해관계자, 각 교과서 분야의 전문가 등으로 구성됩니다. 이렇게 “교과용도서심의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한 취지는,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실현하기 위해서입니다.

 교과서에 대한 최초 검정을 할 때 “교과용도서심의회”를 거쳐야 한다는 건 명백합니다. 그런데 금성출판사의 근현대사 교과서는 이미 검정을 마친 교과서라는 점이 문제였습니다. 교육부는 이미 2002년에 금성출판사의 근현대사 교과서에 대해 검정 합격 처분을 하였는데, 그로부터 약 6년이 지난 2008년에 수정명령을 내린 겁니다. 교육부는 새롭게 검정을 하는 게 아니라, 이미 검정이 끝난 교과서의 일부 내용을 수정하는 것이니, 새로운 검정 과정과는 다르고 “교과용도서심의회”의 심의를 거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교육부와 다른 결론을 내렸습니다. 오타를 수정하거나 객관적인 오류를 바로잡는 수준의 사소한 사항을 수정하도록 명령을 내리는 경우라면 굳이 검정의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되지만, 교과서의 내용을 실질적으로 변경할 때에는 검정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그럼 금성출판사의 교과서에 대한 수정명령은 사소한 사항에 대한 것일까요, 아니면 내용을 실질적으로 변경하는 중요한 것일까요? 법원은 후자라는 입장인데, 그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교육부가 수정명령을 내리게 된 계기를 보겠습니다. 중요한 역사적 유물이나 사료가 발견되어 기존의 학설을 바꾸어야 하는 일이 종종 있는데 이 사건은 그런 경우가 아니었습니다. 정치적으로 이른바 ‘좌편향 교과서’ 논란이 계기가 되어 수정명령을 하게 된 것입니다. 즉 내용을 바꿀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데도 정치권에서 주로 제기된 비판에 따라 내용을 변경하도록 수정명령을 내린 겁니다.

 검정 기준도 문제가 되었습니다. 수정명령을 할 때 교육부가 내세운 이유는 ‘학습자가 오해할 소지가 있다’ 혹은 ‘학생들이 선입견을 가질 우려가 있다’였는데, 이건 ‘편향적인 시각이나 표현을 담고 있지 않은지’라는 새로운 검정기준을 잣대로 사용하였으므로 실질적으로 새로운 판단을 한 것으로 본 겁니다.

 내용을 실질적으로 변경하는 것이라면 사실상 새로운 검정이라고 볼 수 있으므로 검정 절차에 따라 “교과용도서심의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지만, 교육부는 심의를 거치지 않았습니다. 교육부가 “역사교과전문가협의회”를 구성하여 검토를 요청한 적은 있지만 인적 구성이나 운영방식 등 여러 가지 면에서 “교과용도서심의회”의 심의와 “역사교과전문가협의회”의 검토는 다르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습니다.     

○ 교과서 내용을 수정할 필요가 있는가?

 앞서 저자들이 주장한 내용이 크게 세 가지인데, 그 중 첫 번째 주장(“교육부는 수정명령을 내릴 권한이 없다.”)은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았고, 두 번째 주장(“교육부가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은 법원이 받아들였습니다. 이에 따라 법원은 교육부가 한 수정명령이 법에 어긋나서 위법하니 취소한다는 판결을 선고하였습니다. 

 아마 저자들은 세 번째 주장(“교과서 내용에 문제가 없어 수정할 필요가 없다.”)을 가장 하고 싶었을 지도 모릅니다. 이에 대한 법원의 입장은 뭘까요? 사실 법원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예 판단을 하지 않았습니다(제2심 재판부는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판결을 선고한 적은 있으나 해당 판결이 대법원에서 파기되어 사법부의 최종적 결론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법원이 이 부분에 대해 판단을 하지 않은 건 두 번째 주장인 절차 부분에서 문제가 있으니 내용 부분까지 더 살펴볼 것도 없이 위법하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행정부의 처분이 적법하려면 절차와 내용 모두 적법해야 하는데, 그 중의 한 축인 절차 부분이 무너져서 처분이 전체적으로 위법하게 된 겁니다.      



<사족>

 한 번 역사로 기록되면 많은 사람들이 그걸 사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래서 권력을 가진 쪽이라면 역사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기록되기를 바라고, 부정적인 면은 최대한 축소시키려 노력하려는 속성이 있고 권력자에 입맛에 맞게 역사가 윤색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항상 역사가 권력자의 뜻대로만 기술되는 것은 아닙니다. 권력에 맞서 진실에 가까운 서술을 하려는 노력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기억하고 기록할 것인가를 힘 겨루기가 심심찮게 벌어지기에 역사를 두고 ‘기억을 둘러싼 투쟁’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권력은 역사마저 제 영향력 아래에 두고자 하나, 역사는 함부로 고칠 수는 없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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