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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도스로 Oct 27. 2020

욕심: 재물욕이 공직자를 망친다

- 탐관오리, 분경금지법과 벤츠 여검사 사건

○ 분경금지법

 분추경리(奔趨競利)라는 말이 있습니다. ‘분주히 쫓아다니며 이익을 추구한다'라는 뜻으로, 벼슬을 얻기 위해 권력자의 집에 분주하게 드나들며 관직을 얻으려는 행위를 말합니다. 분추경리를 줄여서 분경이라고 하는데 분경의 문제는 어느 시대에나 있었고 조선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분경을 해결하려는 첫 번째 시도는 조선의 2대 왕인 정종 시기에 행해졌습니다. 정종은 집권 첫 해인 1399년에 교지를 내려 사알(私謁)을 금지하였습니다. 사알은 일족 중 3·4촌내의 근친이나 각 절제사(節制使)의 대소군관(大小軍官)을 제외한 일체의 대소 관리가 사적으로 상사를 만나는 행위로, 윗사람을 만나 부정하게 부탁하는 일을 하지 말라는 의미였습니다. 하지만 이 제도는 정종 시대에는 실제로 시행되지 않다가 정종의 다음의 임금인 태종이 즉위하면서 실시되었습니다.

 분경이 법(경국대전)을 통해 공식적으로 금지된 건 성종 때의 일입니다. 이에 의하면 이조·병조의 제장(諸將)과 당상관, 이방·병방의 승지, 사헌부·사간원의 관원의 집에는 가까운 친척{동성 8촌 이내, 이성(異姓) 6촌 이내, 혼인한 가문}이나 이웃 사람 등만 출입할 수 있었고 그 외에 나머지 사람이 출입하면 분경자로 간주되어 100대의 곤장을 맞고 3,000리 밖으로 유배당하게 규정되어 있다. 단순히 고위 관료의 집에 갔다고 해서 곤장을 치는 것이니 매우 엄격한 법입니다. 하지만 법이 있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원래 청탁이나 부정부패는 다른 사람들이 잘 보지 않는 곳에서 은밀하게 이뤄지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죠.

 조선시대에 재물과 권력을 탐한 관리들이 많이 있는데, 사관에게 다음과 같은 최악의 혹평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전대의 권간으로 그 죄악이 하늘까지 닿기로는 이 같은 자가 드물 것이다. 흉악한 죄들은 머리털을 뽑아 헤아린다 해도 다 셀 수가 없다.”

 이런 평가를 받은 사람은 바로 윤원형입니다. 윤원형은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정난정의 남편으로도 널리 알려진 인물입니다. 임금과 성(姓)이 다르지만 임금과 친척 관계에 있는 신하를 척신(戚臣)이라 부르는데, 명종의 외삼촌인 윤원형은 척신의 대표 주자였습니다. 인종이 8개월 만에 죽고, 11세의 어린 나이로 명종이 즉위하면서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이 시작되자 윤원형 세력이 활개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위력과 권세가 높아지자 뇌물이 폭주해, 성안에 집이 열여섯 채요, 남의 노예와 전장을 빼앗은 것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권력을 등에 업고 사리사욕을 채우는 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춘향전>에서 이몽룡은 “금준미주 천인혈(金樽美酒千人血, 금동이의 아름답게 빚은 술은 일천 백성의 피)”이라고 말하며 관료들의 그릇된 욕심을 꼬집은 바 있는데, 안타깝게도 이몽룡의 일갈은 요즘에도 유효한 듯합니다. 관료의 욕심이 보편적이라고 하더라도 이걸 가만히 둘 수는 없습니다. 욕심대로만 행동하는 걸 막는 게 바로 법의 주요 기능이니까요.       


○ 현대판 분경금지법김영란법

 흔히 ‘김영란법’이라 불리는 법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법의 공식적인 명칭은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고, 줄여서 ‘청탁금지법’이라고 합니다. 청탁금지법에 김영란법이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는 이 법을 주도적으로 만든 사람이 바로 김영란이기 때문입니다. 김영란은 우리나라에서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대법관이 된 법조인인데, 그녀는 대법관 퇴임 후 국민권익위원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이 법의 입법을 이끌었습니다.

 청탁금지법 시행 초기에 주요 음식점에는 1인당 29,900원짜리 식사메뉴가 ‘김영란 세트’라는 이름으로 제공되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청탁금지법을 ‘공무원과 밥을 먹을 때 3만원 이하의 밥을 먹도록 규제하는 법’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청탁금지법은 그 보다 더 많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라는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청탁금지법은 크게 두 가지의 일, 즉 부정청탁을 하는 일과 금품을 주고받는 일을 규제하고 있습니다.

 부정한 청탁이란 뭘까요? 각종 이권이 개입되는 일(사업의 허가, 공직자의 인사, 공공기관이 주관하는 각종 수상, 보조금 및 지원금 관련 업무, 학교 성적 관련 업무 등)에 관한 업무를 처리하는 공직자에게 부정하게 부탁(청탁)을 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고등학생 부모가 선생님에게 “우리 애의 수행평가 점수를 좋게 해 줬으면 좋겠다”라고 말을 한다면, 그게 바로 부정청탁이 되는 겁니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은 청탁을 받은 사람이 그 청탁을 받은 대로 행동하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겁니다. 앞의 사례에서 설령 그 선생님이 학부모의 청탁을 거절했더라도 청탁하는 일 자체가 법에 어긋나는 행동이므로 그에 따른 제재(과태료)를 받게 됩니다.

 청탁금지법은 공직자에게 금품을 주거나 공직자가 금품을 받는 일도 금지하고 있습니다. 금품은 금전(돈)보다 더 넓은 개념입니다. 공직자에게 돈을 주는 것뿐만 아니라 선물을 사주는 일, 공직자가 먹은 밥값을 대신 내주는 일 모두 금품 제공인 겁니다. 

 청탁금지법이 금지하고 있는 건 ‘직무와 관련해서’ 공무원에게 금품을 주는 일인데, 여기에서 눈여겨 볼 부분은 ‘직무과 관련해서’라는 표현입니다. 직무와 무관하다면 공무원에게 금품을 줘도 크게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직무와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는 게 쉽지는 않죠. 일반적인 예를 들어보면 이렇습니다.     

 제약회사에 다니는 회사원 A는 오랜 기간 친구로 지낸 B를 만나 같이 밥을 먹고 B의 밥값까지 같이 계산하였는데, B는 한국도로공사의 직원이었습니다. 한국도로공사는 도로 건설 및 관리를 주로 하는 곳으로 의약품과 관련이 있는 일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B가 하는 일과 A가 사준 밥 사이에는 특별한 연관성이 없어 ‘직무 관련성’이 있다고 보기 어려워 청탁금지법 위반이 아닙니다.

 그런데 제약회사에 다니는 A가 식품의약안전처에서 의약품 안전성 검사 업무를 하고 있는 친구 C의 밥값을 대신 내줬다면 어떨까요? C가 일을 할 때 A가 다니는 회사를 잘 봐 달라는 뜻으로 밥을 사줬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C가 하는 일과 A가 사준 밥 사이에 ‘직무 관련성’이 있으므로 청탁금지법 위반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청탁금지법이 공직자에게 금품을 제공하는 금지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혹시 이런 생각이 들지는 않나요?

 ‘아니, 청탁금지법이 생기기 전에는 공무원에게 돈을 줘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건가? 이제야 이런 법을 만들어서 그걸 금지한다고?’

 물론 그렇지는 않습니다. 공무원에게 돈을 주는 행위는 예전부터 형법에서 금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청탁금지법을 만든 이유는 규제 범위를 넓히기 위해서입니다.

 형법에서는 ‘공무원’에게 직무에 관한 돈을 주는 걸 금지하고 있는데, 청탁금지법은 ‘공직자’에게 돈을 주는 걸 금지하고 있습니다. 공직자와 공무원은 비슷한 개념이지만, 공직자가 공무원보다 더 넓은 개념입니다. 언론사의 기자는 공무원은 아니지만 공직자에 포함되는데, 기자에게 돈을 주면 형법 위반은 아니지만 청탁금지법 위반일 수 있습니다.

 법이 적용되는 대상(사람)뿐만 아니라, 적용되는 행위도 확장되었습니다. 뇌물죄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직무관련성 뿐만 아니라 ‘대가성’까지 있어야 했습니다. 즉 어떤 공무원에게 돈을 주었을 때 특정한 대가를 바라고 돈을 주면 뇌물죄이지만 대가 없이 돈이 주면 뇌물죄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얼핏 보면 뇌물로 보이는 돈을 받았지만, 뇌물죄로 처벌되지 않는 사례가 종종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이른바 ‘벤츠 여검사’ 사건입니다.              



○ 내연관계의 두 법조인

 벤츠 여검사 사건의 주요 등장인물은 이 모 검사(여성)와 최 모 변호사(남성)입니다. 이 모 검사는 2007년에 검사 생활을 시작하였는데, 검사가 될 무렵 최 모 변호사를 알게 되었고 두 사람은 내연관계로 발전하였습니다. 

 한편 최 모 변호사는 건축 사업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개발 관련 일을 하는 주식회사를 설립하여 김 모 씨(가명)와 동업으로 중국에 주상복합아파트 시행사업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사업은 생각만큼 잘 풀리지 않았고, 최 모 변호사와 김 모 씨는 갈등을 빚게 됩니다. 중국 사업은 계속 지연되고 회사의 손해는 점점 커졌습니다. 결국 최 모 변호사는 김 모 씨가 회사 돈을 빼돌리는 횡령(배임)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2010년 5월 김 모 씨를 고소했습니다. 

 최 모 변호사는 김 모 씨가 유죄 판결을 받고 회사에서 떠나야 정상적으로 사업을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최 모 변호사의 기대와 달리 김 모 씨에 대한 고소 사건은 지지부지하게 전개되었습니다. 최 모 변호사는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을 하던 중 현직 검사로 활동하던 이 모 검사를 활용하기로 하였습니다. 최 모 변호사는 “김 모 씨를 고소했다. 김 모 씨 사건의 주임검사에게 이야기를 잘 해서, 사건을 빨리 처리하도록 말해 달라.”라고 이 모 검사에게 부탁을 한 겁니다. 이 모 검사는 최 모 변호사의 부탁에 따라 김 모 씨 사건 주임검사에게 연락을 했죠.

 이 대목에서 검찰은 최 모 변호사가 이 모 검사에게 지급한 금품에 주목했습니다. 이 모 검사는 최 모 변호사가 근무하던 법무법인의 신용카드를 받아서 사용했습니다. 2010년 6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총 65회에 걸쳐 2,300만원 가량을 결제하였습니다. 법인카드로 샤넬 핸드백을 사고, 항공권도 사고, 옷도 샀습니다. 마치 자신의 카드처럼 쓴 겁니다. 이 모 검사는 벤츠를 제공받기도 했습니다. 최 모 변호사는 벤츠 승용차를 리스한 뒤 이 모 검사가 사용하게 했습니다. 법적인 관점에서 이 모 검사가 벤츠 승용차의 소유권을 가지지는 않았지만 이사 갈 때마다 차량을 가져가는 등 자신의 차처럼 이용하였습니다(이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이 사건에는 ‘벤츠 여검사 사건’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 이 모 검사가 무죄를 받은 이유는?

 사건이 알려지면서 이 모 검사는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검찰이 이 모 검사에게 적용한 죄명은 공무원이 직무에 속한 사항을 알선하면서 금품을 받는 걸 처벌하는 알선수재죄(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였습니다. 최 모 변호사가 김 모 씨를 고소한 사건이 잘 처리될 수 있도록 동료 검사에게 부탁을 한 뒤, 그에 대한 대가로 돈을 받았다는 겁니다. 엄밀히 말하면 뇌물죄와 알선수재는 차이가 있지만, 공무원이 직무와 연관해서 돈을 받는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모 검사는 두 가지 주장을 펼쳤습니다. 첫 번째는 동료 검사에게 김 모 씨 고소사건에 대해 부탁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설령 그런 부탁을 한 적이 있더라도 그건 내연관계에 있던 최 모 변호사를 위해 호의로 한 행동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법원은 첫 번째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 모 검사가 최 모 변호사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보면 주임검사에게 부탁을 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주임검사는 “이 모 검사가 저에게 김 모씨 사건을 신속하게 처리해줬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라고 진술한 걸로 보아, 이 모 검사의 부탁 자체는 있었던 것으로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이 모 검사의 두 번째 주장은 받아들였습니다. 이 모 검사가 최 모 변호사의 요청에 따라 동료검사에게 부탁을 한 것도 맞고, 최 모 변호사로부터 돈을 받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 돈이 김 모씨 고소사건의 대가로 받은 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죠. 그럼 이 모 검사는 그 돈을 왜 받은 걸까요? 법원은 최 모 변호사가 이 모 검사를 사랑해서 준 돈으로 봤습니다. 법원은 왜 그렇게 판단을 한 걸까요?

 법원은 최 모 변호사가 부탁을 한 시기와 이 모 검사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한 시기에 주목했습니다. 최 모 변호사가 부탁을 한 시기는 2010년 9월 초순인데, 이 모 검사가 신용카드를 받은 것은 그로부터 4개월 전인 2010년 4월 말이었습니다. 벤츠 승용차를 받은 건 그보다 더 오래 되었는데, 청탁 시점보다 2년 7개월 전인 2008년 2월부터 이 모 검사는 벤츠 승용차를 사용하였습니다. 

 최 모 변호사는 2007년 경에 이 모 검사를 알게 되었는데, 그 뒤부터 쭉 이 모 검사에게 각종 경제적 지원을 하였습니다. 2,600만원 상당의 명품 까르띠에 시계를 사주는가 하면, 600만원 상당의 골프채를 사주었고, 전세 아파트를 구해 이 모 검사가 살 수 있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이건 모두 최 모 변호사가 김 모씨 사건을 부탁하기 전의 일입니다. 

 즉 최 모 변호사는 지금까지 쭉 해 왔던 대로 이 모 검사에게 돈을 줘 온 것이지, 특별히 김 모 씨 사건을 잘 처리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돈을 준 것은 아니라는 게 법원의 판단입니다. 뇌물죄와 마찬가지로 알선수재죄 역시 공무원이 하는 일의 대가로 돈을 받아야 하는데 그것과 무관하게 돈을 받았다면 알선수재죄가 아닌 겁니다.

 상식적으로 보면 쉽게 납득하기 어려울 수 있으나 법리적인 관점에서는 법원의 판단에 수긍이 되는 면도 있습니다. 비록 내연관계이기는 하지만 서로 좋아하는 연인끼리 준 돈을 ‘부탁에 대한 대가로 준 돈’이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모 검사의 행동이 바람직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연인으로부터 단순히 돈을 받았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연인의 부탁을 받고 부당하게 다른 검사의 사건에 개입하려고 했다는 점이 더 문제입니다. 비록 이 사건에서는 '대가관계'에 의해 받은 돈이 아니라는 이유로 알선수재죄에 대해 무죄가 나왔지만 현행 청탁금지법에 따르면 처벌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청탁금지법은 대가관계에 의해 받은 돈이 아니더라도 그 돈이 직무와 연관이 있으면 위법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사족>

 공직자도 평범한 사람인 이상 재물에 대한 욕심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크고 넓은 집에서 생활하며, 값비싼 옷을 입고, 명품 가방을 들고 호화롭게 사는 삶을 꿈꿀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에게 공직(公職)을 맡긴 이유는 제 욕심을 채우라는 게 아니라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 노력하라는 뜻입니다. 다들 알겠지만 공직의 공(公)은 공평하다, 함께 하다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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