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식의 상소와 임은정 검사 징계 사건
○ 남명 조식
남명 조식(曺植)은 퇴계 이황과 더불어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학자입니다. 조선의 많은 선비들이 그러하였듯, 그도 기본적으로는 성리학을 학문의 토대로 삼은 성리학자입니다. 하지만 그는 정통적인 성리학자와는 다른 면모를 보였습니다. 그가 유교 경전이 아닌 <장자>의 ‘소요유’편에서 인용한 남명(南冥)을 호로 사용하는 것만 봐도, 조식의 학문적 스펙트럼이 매우 넓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식은 학문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실질적인 이로움을 주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였습니다. 유학에서 측은지심(惻隱之心)·수오지심(羞惡之心)·사양지심(辭讓之心)·시비지심(是非之心)의 네 가지 마음을 사단(四端)이라 하고, 희(喜)·노(怒)·애(哀)·구(懼)·애(愛)·오(惡)·욕(欲)의 일곱 가지 감정을 칠정(七情)이라 하는데, 이들의 관계를 설명하는 다양한 논쟁을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이라 부릅니다. 익히 알려진 대로 이황과 기대승은 편지를 교환하며 사단칠정론에 관한 치열한 논쟁을 벌였습니다. 학문적으로 보면 두 사람의 토론은 큰 의미가 있겠지만 조식은 생각이 좀 달랐습니다. 백성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논쟁은 소모적인 말싸움에 불과하다고 봤습니다.
조식은 부유한 처가의 도움으로 경제적인 궁핍함을 느끼지 않고 평생 학문에 정진할 수 있었지만, 경전과 이론에만 매몰된 백면서생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항상 칼을 차고 다녔는데, 그 칼에는 내명자경 외단자의(內明者敬 外斷者義, “안으로 자신을 밝히는 것은 경이요, 밖으로 과감히 결단하는 것은 의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처럼 행동파적인 면모는 그의 후대에도 이어져서 임진왜란과 같은 국가적인 재난이 일어났을 때 의병을 조직하여 의병장으로 활동한 사람 중에는 조식의 후학들이 많았습니다.
조식도 다른 선비들처럼 과거에 응시하여 관직에 나가려고 시도를 했던 적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과감히 포기하고 초야의 학자로 남았습니다. 물론 그에게 관직 진출의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닙니다.
명종은 1555년 조식에게 단성현(경남 산청)의 현감 벼슬을 내립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임금의 덕을 칭송하며 관직을 수용했을 겁니다. 설령 거절을 하더라도 완곡하게 사정을 설명하며 양해를 구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조식은 전혀 달랐습니다. 감사를 전하기는커녕 오히려 조정과 임금을 강하게 비판하는 상소문을 올렸습니다. 이 상소를 을묘년(1555년)에 올린 상소라 하여 ‘을묘사직소(乙卯辭職疏)’라 부르는데, 내용이 아주 직설적입니다.
“(전략) 나라의 근본은 없어졌고 하늘의 뜻도 민심도 이미 떠나버렸습니다. 큰 고목이 백 년 동안 벌레에 먹혀서 그 진이 다 말라버렸으니 언제 폭풍우를 만나 쓰러질지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중략) 대비(문정왕후)께서는 신실하고 뜻이 깊다 하나 구중궁궐의 한 과부에 불과하고 전하는 아직 어리시니 다만 돌아가신 임금님의 한 고아에 불과합니다. 백 가지 천 가지로 내리는 하늘의 재앙을 어떻게 감당하며 억만 갈래로 흩어진 민심을 어떻게 수습하시렵니까.”
아무리 현재 관직에 있지 않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왕(명종)을 ‘고아’로, 왕의 어머니(문정왕후)를 ‘과부’로 칭하는 것은 보통의 용기로는 힘든 일입니다. 목숨을 내어 놓을 각오를 하지 않은 한 할 수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조식의 상소로 인해 조정은 발칵 뒤집혔고 그를 가만히 두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그러나 상당수의 대신이나 사관은 “조식은 초야에 묻힌 선비여서 표현이 적절하지 못한 것이고, 그의 우국충정은 높이 살 만하다”라는 논리로 조식을 변호하였고, 그는 다행히 화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 예일대 심리학과 교수인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은 전기 충격장치 실험을 통해 보통의 사람들이 권위에 얼마나 잘 복종하는지를 효과적으로 보여줬습니다. 권위에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건 보편적인 현상이지만 특히 조직에 속해 있을 때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밥줄을 쥐고 있는 조직(혹은 상사)에게 반기를 드는 건 굉장한 용기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많지는 않지만 그런 용기를 내는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 검사가 출입문까지 잠근 사연
"우병우의 공범인 우리가 우리의 치부를 가린 채 우병우만을 도려낼 수 있을까. 부실 수사를 초래한 검찰의 직무유기,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의혹 수사 대상은 전·현직 법무부 장차관, 검찰총장 등 검사장급 이상의 고위직. 이런 수사 대상이 현직에 있는 한 관련 의혹을 제대로 수사할 수도 없고, 그러한 수사 결과에 국민들은 납득할 수 없다"
국정농단의 진상이 점점 밝혀지던 2017년 4월경,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 한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글입니다. 당시 우병우는 ‘법꾸라지’로 불리며 많은 국민들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던 상황이라, 평범한 글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은 현직검사가 까마득한 검찰 선배인 우병우와 검찰 조직을, 그것도 검찰 내부 게시판에 썼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집니다. 그 글을 쓴 주인공이 바로 임은정 검사입니다.
사실 임은정 검사가 검찰 내부를 비판한 건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진경준 전 검사장이 특혜성 주식투자 사건에 연루되었을 때도, 대로변에서 음란행위를 한 김수창 제주지검장이 사표를 내자 법무부가 신속히 수리하였을 때도, 임은정 검사는 날카로운 비판을 하였습니다. 이 정도면 ‘바른 말’ 검사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녀는 검찰에서 정직 4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2012년 당시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공판부에 근무하고 있던 임은정 검사는 윤 모씨의 재심사건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재심사건이란 이미 유죄로 확정 판결을 받은 사안에 대해 다시 재판을 하는 것인데, 이전 판결에 중대한 문제가 있을 경우에만 청구할 수 있는 아주 예외적인 절차입니다. 법원에서 재심청구를 받아들여 재심개시결정을 하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로 재심개시결정이 이뤄졌다는 건 유죄를 받았던 사람이 사실은 무죄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걸 보여줍니다.
홍 모씨 사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미 공범들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 의하면 무죄 판결이 선고될 확률이 아주 높았습니다. 그래서 임은정 검사 “무죄구형”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하지만 상급자인 부장검사는 “백지구형”을 하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구형은 재판이 끝나기 전에 재판을 맡은 검사가 재판부에 피고인의 형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과정입니다. 보통은 “(이런 저런 사정을 고려하여) 피고인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식으로 말을 하죠.
검사는 피고인에게 죄가 있다고 생각하여 재판을 청구한 사람이므로 피고인을 처벌해달라고 요청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과거 판결에 문제가 있다는 게 상당 부분 밝혀져서 다시 재판을 하는 재심사건에서는 유죄 선고를 해 달라고 말하기가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그건 과거 검찰이 실수를 했다는 걸 인정하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당혹스러운 상황을 피하기 위한 방편이 “백지구형”입니다. 백지구형은 ‘법과 원칙에 의한 판단을 구한다’라는 의사를 표시하는 것인데, 사실상 아무런 의견을 제시하지 않고 재판부가 알아서 판단해 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일종의 백지수표를 내미는 것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죠.
부장검사는 “백지구형”을 하라고 지시했지만 임은정 검사가 따르지 않았죠. 그러자 부장검사는 임은정 검사를 해당 사건에서 배제시키고 다른 검사에게 백지구형을 하도록 지시하는 직무이전명령을 하였습니다. 이 사건에서 손을 떼라는 명령입니다. 보통의 검사라면 이 정도에서 물러섰겠지만 임은정 검사는 달랐습니다.
재판 당일 아침에 검찰 내부 게시판에 “징계청원”이라는 제목의 글을 예약 게시한 임은정 검사는 법원으로 갔습니다. 법정에 있는 검사 출입문에 “징계청원을 게시판에 올려두었다. 무죄구형을 할 것이다.”라는 메모지를 붙이고, 검사 출입문을 잠갔습니다. 다른 검사가 자신을 대신하여 구형을 하는 걸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다른 검사는 검사 출입문이 잠겨있자 민원인 출입문을 통해 법정에 들어갔지만 이미 임은정 검사는 무죄구형을 한 뒤였습니다. 그리고 그날, 재판부는 피고인 윤 모씨에게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무죄구형을 한 임은정 검사는 검찰청으로 돌아가지 않고 12시 경 퇴근하였습니다. 전날 오후 반일연가를 신청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 “징계해야 한다.” vs “잘못한 게 없다.”
검찰은 임은정 검사에게 정직 4개월의 징계 처분을 하였는데, 검찰이 제시한 징계 사유는 4가지였습니다.
첫째. 부장검사가 임은정 검사가 아닌 다른 검사로 하여금 사건을 맡도록 하고 무죄구형을 하도록 지시를 했음에도 임은정 검사는 직무상 지시를 따르지 않고, 무죄구형을 하여 직무상 의무를 위반하였다.
둘째, 법정의 검사 출입문을 잠금으로써 다른 검사가 법정에 출입하는 걸 막아 직무상 의무를 위반하였다.
셋째, 검찰 내부 게시판에 “징계청원”이라는 글을 올리고 이 글이 외부에 전파되도록 하여 검사로서의 체면이나 위신을 손상하는 행위를 했다.
넷째, 오후 반일연가는 오후 2시부터 사용할 수 있는데 12시 경에 법원에서 바로 퇴근하여 성실의무를 위반했다.
과연 법원은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요?
징계 사유가 타당하지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먼저 임은정 검사를 재판에서 배제시킨 부장검사의 직무이전명령이 적법한 것이었는지를 알아봐야 합니다. 검찰청법에 따르면 검찰총장, 각급 검찰의 검사장 및 지청장은 소속 검사의 직무를 다른 검사에게 이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상급 검사는 하급 검사에게 직무이전명령을 할 수 있기는 한데, 모든 상급 검사가 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제한된 사람만 가능합니다. 그런데 부장검사는 검찰총장, 검사장, 지청장이 아니므로, 기본적으로 직무를 이전시키는 명령을 할 수 없습니다.
검찰은 “원래 검사장이 해야 하는 게 맞지만 검사장을 업무를 부장검사가 대신해서 한 것이다.”라고 주장했지만 그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검찰청의 장은 소속 검사에게 검사의 직무 이전에 관한 일을 위임할 수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부장검사가 대신 그 일을 하려면 “직무이전 명령을 위임할 수 있다.”라고 명확하게 정해놓은 위임규정이 있어야 하는데, 이 사건에서 그런 위임규정은 없었습니다.
한 마디로 부장검사가 임은정 검사를 배제시킨 행위는 법률상 근거가 없는 위법한 것이었고 임은정 검사는 여전히 그 사건의 적법한 공판검사였던 것입니다. 그러니 공판검사로 출석하여 무죄구형을 하고, 다른 검사의 출입을 막은 행위는 징계 사유가 아니라고 법원은 판단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백지구형이 아니라 무죄구형을 한 행위는 어떨까요? 대법원은 무죄구형을 한 행위 자체가 징계사유가 아니기 때문에 자세한 언급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고등법원은 무죄구형이 적법하다고 명시적으로 밝혔습니다.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이기 때문에 공소사실(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범죄사실)에 대해 유죄인지 무죄인지 의견을 제시하고, 유죄라면 그에 상응하는 형에 관한 의견을 진술할 법적인 의무와 책임이 있다는 겁니다. 즉 고등법원은 검사가 피고인이 무죄라고 판단한다면 무죄구형을 하는 것이 법에 맞는 행동이고 오히려 무죄구형은 법에 부합하는 행동이 아니라고 봤습니다.
법원은 검찰청의 내부 게시판에 글을 쓴 행동도 징계사유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검찰 내부 게시판은 검찰 구성원 사이의 자유로운 의사 개진을 통해 소통을 장려하기 위한 용도이므로 게시글을 올리는 것 자체가 문제되지는 않습니다. 임은정 검사의 글이 외부로 공개되기는 하였지만 임은정 검사가 외부로 유출했다고 보기도 어렵죠.
“과거사에 대한 검찰의 입장이 전향적으로 재검토되는 전기가 마련된다면, 하여 검찰이 재심사건을 포함한 모든 사건에 있어 일관되게 죄에 상응하는 구형을 하게 된다면 검사로서 제가 할 도리를 한 것 같아 여한이 없을 것 같다.”와 같이 검찰에 다소 비판적인 표현을 사용한 건 맞으나, 특별히 자극적이거나 정도가 심한 주장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법원은 판단했습니다.
검찰이 징계사유로 삼은 4가지 중에서, 3가지는 아예 징계사유가 아니라고 법원이 판단하였으니 이제 남은 건 하나입니다. 바로 반일연가는 2시부터 사용해야 하는데, 12시부터 사용했다는 것이죠. 사실 이렇게 사소한 것까지 징계사유로 삼은 걸 보면 검찰이 임은정 검사를 얼마나 징계하고 싶었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겨우 1~2시간 일찍 집에 갔다고 징계를 하는 건 좀 치사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규정을 어긴 건 사실입니다. 법원도 연가 사용규정을 어긴 것 자체는 징계사유에 해당하지만, 1~2시간 정도 일찍 연가를 사용했다고 해서, 정직 4개월이라는 중징계에 처하는 건 지나치게 과도하다고 판결했습니다.
결국 1심, 2심에 이어 3심인 대법원까지 임은정 검사에 대한 징계 처분은 위법하여 동일한 결론을 내렸고 임은정 검사에 대한 징계는 취소되었습니다.
<사족>
조직 생활을 해 본 사람은 상급자가 내리는 명령을 거부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압니다. 특히 검찰처럼 상명하복의 문화가 강한 곳이라면 더욱 그럴 겁니다. 검사는 검찰사무에 관하여 상사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이른바 검사동일체의 원칙을 법률(검찰청법)에 명시하고 있던 조직이 바로 검찰입니다(현재는 검찰청법이 개정되어 검사동일체의 원칙은 법률상으로는 사라짐).
그런 엄격한 분위기 속에서도 임은정 검사는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바로 잡기 위해 용감하게 목소리를 냈습니다. 검찰 조직 구성원이면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에 대해서 임은정 검사는 “괴물을 잡기 위해 검사가 됐는데, 알고 보니 우리가 괴물이구나’ 싶었다. 간부들과 동료들에게 띄운 나의 글들은 검찰에 대한 연서(戀書)다. 사랑한다면 포기할 수 없고, 포기할 수 없다면 몸부림쳐 봐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