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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도스로 Oct 27. 2020

군대: 병역은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한다

- 조선시대 병역체계와 유승준 사건

○ 조선시대의 군역

 조선은 양천제(良賤制)를 근간으로 한 신분 사회였습니다. 백성은 양인(良人)과 노비(奴婢)로 구분되었는데, 원칙적으로 모든 양인 남성은 군사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군역(병역) 의무를 부담했습니다. 군역 의무를 지는 나이는 16세에서 60세까지였으니 평생 군역의 굴레를 져야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양인과 달리 천인(노비)은 군역 의무가 없었습니다. 권리와 의무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인데 양인은 자유인으로서 권리를 누리지만, 천인은 그런 권리를 누리지 못하므로 군역 의무도 부담하지 않는 것입니다.

 원칙적으로는 천인을 제외한 모든 양인이 군역 의무를 져야 합니다. 하지만 예외 없는 원칙은 없는 법이고, 조선 시대의 군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현직 관료, 성균관 유생과 같은 학생, 2품 이상의 전직 관료는 군역을 면제받았습니다. 조선이 유교국가라는 점을 반영하여 노부모를 모시는 자녀(70세 이상의 부모를 모신 경우는 아들 한 명, 90세 이상의 부모를 모신 경우는 아들 모두)도 군역이 면제되었습니다. 

 군역을 부담하지 않는 대표적인 부류로는 승려가 있었습니다. 승려에 대한 군역 면제는 조선시대 내내 논란이 되었는데, 군역을 기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승려가 되는 사람이 많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1616년(광해군 8년) 11월, 유학생 박경준은 “중(僧)은 쌀을 훔쳐먹는 도적”이라는 주장까지 합니다.

 군역 의무를 진다고 해서 반드시 군대에서 복무를 해야 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몸이 아닌 돈으로 군역을 대신할 수 있었는데 군역의 복무를 다른 사람이 대신하게 하고 일정한 대가를 지불하는 걸 대립(代立)이라 합니다. 임진왜란 후에는 실제 군복무를 하지 않는 대가로 1년에 2필씩의 군포(軍布)를 냈는데, 이를 국가 재정에 충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돈을 받고 다른 사람의 군역을 대신 해주는 사람을 대립군(代立軍)이라 불렀는데, 2017년에 이들을 소재로 한 영화 <대립군>이 개봉하기도 했죠.

 제도만 보면 조선 시대의 군역이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체계적으로 운영된 것 같지만 실상은 달랐습니다. 조선 시대의 군정은 매우 혼란스러웠는데 특히 조선 후기에 이르면 그 정도가 매우 심각해집니다. 돈과 권력이 있는 양인은 이런저런 핑계로 군역을 면제받고 힘없고 가난한 양인만이 군역을 지게 된 겁니다. 그러니 군포가 부족할 수밖에 없었고 이걸 보충하기 위해 이미 사망한 군역 대상자에게도 그 몫을 가족에게서 징수하는 백골징포(白骨徵布), 16세 미만의 어린아이에게까지 군포를 징수하던 황구첨정(黃口簽丁) 등의 폐단이 만연하였습니다.     

 정치체계, 경제제도, 문화 등의 측면에서 조선과 대한민국은 판이하게 다른데, 둘 다 국가라는 점은 동일합니다. 국가는 외세로부터 국민을 지키기는 걸 기본으로 합니다. 국가(國家)의 국(國)자는 囗(에운담 위)자와 或(혹 혹)자가 결합한 모습인데, 或자는 창을 들고 성벽을 경비하는 모습을 그린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국가와 군대는 불가분의 관계이지만, 군대를 가기 싫어하는 건 조선 시대에나 요즘이나 마찬가지입니다.     


○ 병역여전히 뜨거운 감자

 2002년은 온 나라가 월드컵의 열기로 뜨거웠던 시기입니다. 사람들은 붉은 색 티셔츠를 입고 축구 국가대표를 응원했고, 거리마다 “대~한민국”이라는 외침이 가득 찼습니다. 2002년은 월드컵이 열린 때이기도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제16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 때이기도 합니다.

 당시 선거에서 각축을 벌인 사람은 새천년민주당 소속의 노무현 후보와 한나라당 소속의 이회창 후보였습니다. 선거 초반 매우 높은 지지율을 보이던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이 하락한 배경에는 병역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회창 후보의 아들 두 명이 병역을 면제받아 군대를 가지 않은 것이 병역 비리라는 의혹이 제기되었던 겁니다. 병역문제는 과거 대통령 선거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여전히 한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입니다. 

 헌법은 모든 국민이 국방의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고 국방의 의무에 관한 세부적인 내용은 병역법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병역법에 따를 때 대한민국 국민인 남성은 병역의무를 성실히 수행해야 하고, 여성은 스스로 원하는 경우에 군인으로 복무할 수 있습니다. 원칙은 이렇지만 예외는 늘 존재하죠.

 2018년 아시안게임에서 가장 화제가 되었던 종목은 야구와 축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국가대표팀이 우승을 해서 금메달을 따기를 바랐고, 그 바람은 실제로도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우승 여부에 큰 관심이 쏠린 데에는 병역 문제도 놓여 있었습니다. 아시안게임에서 우승을 하면 병역에 관한 특례를 적용받을 수 있습니다. 흔히 ‘아시안 게임 우승=병역 면제’로 알고 있어 축구 손흥민 선수가 군 면제를 받는지에 세간의 이목이 쏠리기도 했지만 법적인 의미에서 엄밀히 말하면 병역이 완전히 면제되는 건 아닙니다. 아시안게임 우승과 같은 뛰어난 성과를 보인 사람은 예술·체육요원으로 편입되는데 예술·체육요원은 기초 군사훈련만 받으면 되고 보통의 군인들처럼 군대에서 생활하는 건 아니므로 사실상의 군 면제와 큰 차이가 없기는 합니다.

 방탄소년단(BTS)는 빌보드차트 1위를 기록하는 등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며 한류를 선도하였습니다. BTS 더분에 대한민국을 좋아하는 외국 사람들이 늘어나고, 대한민국의 국가적 위상이 높아졌다는 여론이 일면서 BTS의 병역 문제도 이슈가 되었습니다. 스포츠나 클래식 음악 전공자에게는 병역 특례를 제공하면서 왜 대중문화인에게는 그런 혜택을 제공하지 않느냐는 것이죠.  

 종교나 신념을 이유로 입대를 거부하는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십 년간 격렬한 찬반을 불러일으킨 문제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2018년 대체복무제를 인정하고 있지 않은 병역법 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을 내리고, 그 뒤 대법원은 종교와 신념에 근거해 병역을 거부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림에 따라 사법적인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가 정리가 되었지만 아직 사회적인 논란까지 모두 끝난 것은 아닙니다. 종교나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인지를 어떻게 가릴 것인지, 그들에게 어떤 형태의 대체복무를 하게 할 것인지 등 결정해야 할 사항이 아직 많이 남아있습니다.

 이처럼 병역 문제는 여전히 한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입니다. 군대 문제로 큰 파장을 일으킨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파문을 야기한 사람은 바로 가수 유승준입니다.   


   

○ 유승준의 입국이 금지된 이유

 유승준은 1997년 ‘가위’라는 곡으로 화려하게 데뷔하였고 화려한 춤과 수려한 외모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1집 음반은 50만 장, 2집 음반은 60만 장, 3집 음반은 83만 장, 4집 음반은 53만 장이 팔리는 등 그 인기도 꾸준하게 유지되었습니다. 당시 유승준의 별칭은 ‘아름다운 청년’이었습니다. 각종 봉사활동에 열심히 참여하면서 반듯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죠. 대중의 열렬한 응원과 호응을 받던 그가 한순간에 비판의 표적이 된 건 2002년 무렵입니다.

 그는 2001년 징병검사를 받았는데, 그 무렵 언론 인터뷰에서 “징병대상자로 분류된다면 국방의 의무를 다하겠다.”라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그는 자신이 한 말과 정반대의 행동을 합니다.

 2002년 1월 미국으로 건너간 유승준은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고 며칠 뒤에 대한민국 국적상실 신고서를 제출하였습니다. 국적을 상실하여 대한민국의 국민이 아니니 국방의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된 겁니다. 당장 병역 의무를 기피하기 위해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그러자 병무청장은 법무부장관에게 “유승준의 입국을 금지해 달라”는 요청을 하였고, 법무부장관은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입국금지조치를 하였습니다. 유승준은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창에 도착하여 입국하려고 했으나 입국을 거부당한 뒤, 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뒤 유승준이 교제 중이던 여자 친구가 부친상을 당하자, 법무부장관이 입국금지를 일시적으로 해제하여 2003년에 잠깐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일시적인 조치였고 여전히 유승준에게 대한민국은 밟기 힘든 땅입니다.    

 잠잠하던 유승준 사건이 다시 수면으로 떠오른 건 2015년입니다. 유승준은 2015년 8월 LA총영사관에 비자 발급을 신청하였고, 총영사관이 비자 발급을 거부하자 이게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비자의 정식법률용어는 ‘사증(査證)’인데, 사증은 여권이 합법적으로 발급된 것이라는 걸 확인하는 문서입니다.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입국하려면 원칙적으로 여권과 법무부장관이 발급한 비자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예외적으로 사증면제협정을 체결한 국가의 국민은 비자 없이도 입국할 수 있습니다. 

 유승준이 주장하고 있는 건, “비자 발급을 해 주지 않는 게 문제이다.”인데, LA총영사관은 왜 유승준에게 비자 발급을 해 주지 않은 걸까요? 그건 유승준에 대해서 입금금지조치가 내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법무부장관은 경우에 따라 외국인의 입금을 금지할 수 있는데, 유승준에게 적용된 사유는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해칠 수 있음’, ‘경제질서 또는 사회질서를 해하거나 선량한 풍속을 해칠 수 있음’이었습니다.

 유승준은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건 병역을 면제받기 위한 게 아니었습니다. 미국에 있는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기 위해서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겁니다.”

 이런 주장에 대해 법원은 어떻게 판단했을까요?     


○ 유승준은 다시 한국에 올 수 있을까?

 먼저 유승준 사건의 1심 법원과 2심 법원의 판결을 보겠습니다.

 법원은 유승준이 가족과 함께 1989년에 미국으로 이주를 하였고, 그의 가족들이 미국에 살고 있던 건 맞지만 유승준이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건 병역을 면제받기 위한 목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유승준은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뒤에 계속 한국에서 활동을 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음반 발매도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족과 함께 미국에서 ‘미국인’으로 사는 것보다는 한국에서 미국 국적으로 가수 활동을 하려는 의도였다고 본 것이죠.

 법원은 유승준이 미국 국적이라는 이유로 병역을 면제받은 채로 한국에 와서 가수로 활동할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우려하였습니다. 일단 군인들의 사기를 저하시킬 가능성이 높습니다. ‘누군 미국으로 이민간 뒤, 미국 국적 취득해서 군대에 안 가도 되는데, 나는 이렇게 고생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법도 합니다. 현재 군대에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앞으로 군대에 갈 예정인 사람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개연성이 있습니다. 연예인이 공인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유명 연예인의 언행은 많은 대중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겁니다.

 헌법이 국방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 이유는 나라를 지키는 일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유승준이 군 면제 후 한국에서 활동하면, 군인들의 사기가 저하되고 앞으로 군대에 입대할 사람들의 병역 기피 풍조를 낳게 할 우려가 있고 이건 대한민국의 이익과 공공의 안전을 해치는 일이니 입국을 거부하는 게 정당하다는 게 1심 및 2심 법원의 결론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1심 및 2심 법원(이하 “하급심”)의 결론은 3심 법원이 대법원에서 뒤집혔습니다. 사실 하급심과 대법원은 사건을 보는 관점이 달랐습니다. 하급심이 ‘유승준의 입국을 금지시킨 일이 타당한가’에 집중한 반면, 대법원은 ‘비자발급을 거부한 행위가 법에 따른 것이었나’에 주목했습니다. 유승준이 제기한 소송은 입국금지결정에 대한 게 아니라, 비자발급거부에 대한 소송이었으니까요.

 LA의 총영사관이 비자발급을 거부한 건 법무부 장관이 입국금지를 했기 때문인데, 대법원은 입국금지와 비자발급은 별개로 다뤄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즉 입국금지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비자발급이 정당한 건 아니니 비자발급을 할 만한 사유인지를 한 번 더 따져봐야 한다는 논리였습니다. 

 그런데 유승준에 대한 비자발급 거부 과정에는 절차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원래 행정청이 어떠한 처분을 하려면 말이 아닌 문서로 해야 하고 이 내용은 행정절차법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문서로 해야 처분을 받는 사람이 어떤 내용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LA총영사관은 유승준에게 처분이유를 기재한 사증발급 거부처분서를 작성하지 않았고, 단지 유승준의 아버지에게 전화로 처분결과를 통보했을 뿐입니다.

 또한 대법원은 비자 발급이 재량행위라는 점에도 주목했습니다. 재량행위는 어떠한 행정처분을 할지 말지를 행정기관이 자체적으로 판단해서 재량껏 정할 수 있는 걸 말합니다. 얼핏 보면 행정기관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자체적인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따른 심사숙고를 한 뒤에 결정을 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비자발급 여부를 결정할 때, LA총영사관은 그런 고민을 전혀 하지 않고 법무부장관의 입국금지결정이 있다는 이유로 비자발급을 거부했으므로 법에 어긋난다는 논리입니다.


 유승준이 제기한 소송과 법원의 판결에 대해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을 드렸지만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아마 많은 독자들이 궁금해 하는 내용은 ‘그래서 유승준이 한국에 다시 올 수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일 겁니다. 사실 그건 아직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대법원 판결로 인해 유승준의 입국이 가능해질 가능성이 더 커진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대법원이 ‘유승준을 입국시켜야 된다’라고 판결을 내린 건 아니므로, 앞으로 상황을 조금 더 지켜봐야 그 결론을 알 수 있습니다.       



<사족>

 흔히 국방의 의무는 신성하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젊은 시절의 가장 소중한 시기를 떼어내어 국가에 헌신하는 일은 칭송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국방의 의무가 신성한 것도 사실이지만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는 게 쉽지 않는 것 역시 엄연한 진실입니다. 군대에서 제대한지 한참이나 지난 예비역들이 군생활을 다시 하는 꿈을 꾸다가 소스라치게 놀라는 일은 흔한 일이기도 합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많은 남성들에게 군대는 ‘누군가는 가야 하지만, 나는 가기 싫은 곳’인 지도 모릅니다.

 물론 군대에 가기 싫다는 마음이 자연스럽다고 해서 병역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게 정당화되지는 않습니다.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성인 남성은 군대에 가야한다는 게 우리나라의 법이고, 법을 어기면 제재를 받습니다.

 유승준은 법적 우리나라의 국민이 아니라 대한민국 병역법에 따른 병역의무를 지는 건 아니지만, 우리나라에 입국을 하려고 하면 대한민국 법의 적용을 받습니다. 최종적으로 법원이 유승준의 입국에 대해 어떤 판결을 할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분명한 건 병역은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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