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도스로 Oct 27. 2020

침략: 피해자에게 돌을 던져서는 안 된다

- 병자호란 환황녀와 제국의 위안부 사건

○ 병자년의 난리그리고 피해자

 여진족의 족장이던 누르하치는 1616년 만주를 기반으로 하여 후금을 건국하였습니다. 당시 중국의 중원은 명나라가 차지하고 있었는데, 누르하치는 명나라를 공격하여 중원까지 차지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누르하치에겐 한 가지 걱정이 있었습니다. 후금이 명나라를 공격하는 동안 조선이 배후에서 공격할 우려였죠. 후금이 선택한 방법은 조선을 먼저 치는 것이었습니다.

 1627년 후금의 왕자 아민이 3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조선을 쳐들어 온 사건이 바로 정묘호란입니다. 당시 후금의 공격을 막지 못한 조선은 후금과 화친을 통해 싸움을 끝냅니다. 협상의 내용은 조선은 명나라의 연호가 아닌 후금의 연호를 쓰고 후금과 형제의 관계를 맺는 대신, 후금은 즉시 군사를 물린 뒤 다시 압록강을 넘어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정묘호란 이후 후금은 수시로 압록강을 건너 민가를 약탈하는 일을 반복하였습니다. 후금과 화의를 맺기는 했지만 조선은 여전히 후금을 형제의 나라가 아닌 오랑캐의 나라로 인식했습니다.

 한편 후금은 1636년 청나라로 국호를 바꾸고 홍타이지가 황제로 등극합니다. 청나라는 조선에 대해 점점 더 무리한 요구를 하는데, 이미 청나라에 대한 반감이 높았던 조선은 청나라의 요구를 거절합니다. 그러자 청 태종 홍타이지는 12만의 대군을 이끌고 직접 조선을 침공합니다. 이게 바로 병자호란입니다.    



 청나라 군대는 빠른 속도로 조선을 침공하였고, 놀란 인조는 급하게 남한산성으로 몸을 숨깁니다. 청나라에 완전히 포위된 조선 조정은 화의를 할 것인지, 전쟁을 벌일 것인지를 두고 주화파와 척화파가 격렬하게 논쟁을 벌입니다. 결론은 화의였습니다. 결국 인조는 청나라 황제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라는 치욕적 항복 장면을 연출하게 되죠.

 병자호란으로 인한 고통은 인조만의 몫은 아니었습니다. 수십만 명의 백성들이 포로로 청나라에 끌려갔습니다. 포로로 끌려갔던 사람들 중에서 천신만고 끝에 고향으로 돌아온 여성들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들을 환향녀(還鄕女)라고 불렀습니다. 이 말이 비속어인 ‘화냥년’으로 변질되어 욕설로 사용되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환향녀를 대하는 조선 사람들의 태도는 싸늘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남편으로부터 이혼을 요구받았고, 정절을 버렸다는 이유로 뭇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습니다.     

 전쟁은 누구에게나 큰 고통을 야기하지만, 고통은 평등하지 않습니다. 힘이 없을수록 약할수록 고통은 깊은데, 특히 여성에게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조선시대에 병자호란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대표적인 여성들이 환황녀라 불리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도 그 고통의 역사가 반복되었는데, 태평양전쟁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 법정에 선 교수

 일본군 위안부를 다룬 여러 책 중에서 2013년 발간된 “제국의 위안부”만큼 큰 논쟁을 불러일으킨 책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 책을 쓴 세종대 박유하 교수는 일본 문학을 전공한 학자인데, 그녀는 이 책으로 인해 법정에 서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은 주요 부분 34곳이 삭제된 채 2015년에 다시 출간되었죠.



 이 책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저자가 위안부를 매춘부와 비슷하게 봐서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였다”고 주장하였고, 저자는 “비판자들의 주장은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해서 생긴 오해”라고 반박하였습니다.

 검찰은 비판자들과 같은 입장이었습니다. 박 교수의 책이 사실과 다른 허위의 사실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박 교수를 명예훼손죄로 기소한 겁니다.          

 책의 내용 중 검찰이 문제라고 지적한 내용의 일부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위안부’의 본질을 보기 위해서는 ‘조선인 위안부’의 고통이 일본인 창기의 고통과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점을 먼저 알 필요가 있다.”

 “’위안부’들을 ‘유괴’하고 ‘강제연행’한 것은 최소한 조선 땅에서, 그리고 공적으로는 일본군이 아니었다.”

 “일본인, 조선인, 대만인 ‘위안부’의 경우 ‘노예’적이긴 했어도 기본적으로는 군인과 ‘동지’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     

 ‘뜨거운 가슴’으로 보면 위안부 할머니들을 나쁘게 묘사한 박 교수에게 엄한 처벌을 내리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차가운 머리’의 관점으로 접근하면 이 문제가 마냥 단순한 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과 그 사람을 법적으로 처벌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기 때문이죠.

 박 교수가 “제국의 위안부”라는 책을 통해 명예훼손이라는 범죄를 저질렀는지에 대해 법원은 어떤 판결을 내렸는지 알아보겠습니다.     


○ 생각은 처벌할 수 없다?

 명예훼손죄가 되려면 ‘사실을 적시’해야 합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어떤 행위가 사실의 적시가 아니라면 명예훼손이 아닙니다. 사실의 적시가 아닌 행위의 대표적인 예로는 의견 표명이 있습니다. 단순화시켜서 설명하면, “변학도가 춘향이에게 수청을 강요했다.”는 사실의 적시이지만, “변학도는 나쁜 사람이다.”는 의견 표명입니다.

 누구나 표현의 자유를 가집니다. 표현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기본권이기도 합니다. 표현을 하고자 하는 욕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기본적인 욕망이라서 당연히 존중 받아야 합니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도 중요합니다. 비판은 권력의 전횡과 독재를 막는 중요한 수단이기도 하죠. 즉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밝히는 건 권장되는 일이지 금지되는 일이 아닙니다.

 만약 생각을 밝혔다고 처벌을 하면 일상적인 행동에 많은 제약을 받게 됩니다. 예컨대 어느 국회의원이 기업으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았다는 기사를 접하고 분노를 느껴 ‘이런 사람이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라는 사실이 참 부끄럽다’와 같은 댓글을 쓰려고 하다가도, ‘혹시 처벌되는 거 아냐’라는 걱정이 들면 움츠러들 수밖에 없죠.

 개념적으로 보면 의견을 표명하는 일과 사실을 적시하는 일은 구분될 것 같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습니다. 의견 표명과 사실 적시 모두 인간의 의식을 반영된 결과물이기 때문에 둘은 어느 정도 중첩될 수밖에 없습니다.

 앞서 검찰이 문제 삼은 표현 중 “’위안부’의 본질을 보기 위해서는 ‘조선인 위안부’의 고통이 일본인 창기의 고통과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점을 먼저 알 필요가 있다.”라는 문장은 어떨까요? 이건 ‘사실’일까요, ‘의견’일까요? 쉽게 단언하기 어렵습니다.

 법률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검사와 판사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이 문장을 두고 검찰은 사실 적시라고 봤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위안부가 등장한 역사적, 사회적 배경에 대한 박 교수의 의견 내지 주장이라는 이유로 사실 적시가 아닌 의견 표명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의견 표명은 원칙적으로 명예훼손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법리를 듣고 나면, ‘그럼 의견 표명하는 것처럼 사실 적시를 하면 되겠구나’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지도 모릅니다. 일종의 꼼수인 셈인데, 법은 이런 꼼수를 쓰는 걸 허용하지 않습니다. 의견을 표명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더라도 그와 동시에 어떠한 사실을 전제하고 있다면 전제되는 사실을 적시한 것으로 봅니다.

 의견 표명 같은 사실 적시와 관련하여 실제 있었던 사례를 하나 소개하려고 합니다. 성형외과에서 시술을 받은 어느 환자가 인터넷 게시판에 “내 눈은 지방제거를 잘못 했다고... 모양도 이상하다고 다른 병원에서 그러던데... 인생 망쳤음... ㅠ.ㅠ”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그 환자는 그 병원에 대한 주관적인 의견을 표명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으나 법원은 그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피고인이 피해자로부터 눈, 턱을 수술 받았으나 수술 후 결과가 좋지 못하다’라는 사실을 적시한 성격이 더 강하다고 본 겁니다.     

 박 교수의 재판을 담당한 법원(서울고등법원)은 박 교수을 처벌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먼저 “제국의 위안부”에서 문제가 되었던 문장을 의견 표명과 사실 적시로 일일이 구분하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검찰이 기소한 부분은 총 35군데였는데, 이 중 법원이 사실 적시라고 판단한 부분은 11개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위안부가 된 과정(“위안부들이 군인을 상대하는 매춘임을 알면서도 본인의 선택에 따라 위안부가 되었다.”), 위안부의 역할(“위안부들은 일본군과 동지의식을 가지고 일본군에 애국적, 자긍적으로 협력했다.”), 일본군의 개입(“위안부 동원과정에서 일본군의 강제연행은 없었다.”)에 관한 부분이 사실 적시라고 봤습니다.     


○ 허위인가아닌가?

 명예훼손죄는 유의할 사항은 허위가 아닌 진실을 말하더라도 처벌될 수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A부장은 다른 직원을 성추행해서 징계를 받았다”라는 말을 하는 경우, 실제 그와 같은 사실이 있더라도 함부로 그런 말을 하면 다른 사람에게 하면 명예훼손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진실한 사실을 말했는데도 형사처벌을 가한다는 게 맞는 지에 대해 논쟁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현행 형법에 따르면 위법입니다.

 진실한 사실을 말하더라도 명예훼손인 건 맞지만, 그 표현이 허위인지 진실인지는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진실 여부에 따라 적용되는 법 조항이 다르고, 그에 따라 형벌의 종류도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는 허위 사실을 말하면 진실한 사실을 말하는 경우보다 더 무겁게 처벌됩니다.

 박 교수가 말한 내용을 요약하면, “위안부는 당사자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이고, 일본군은 책임이 없다”인데, 이게 허위라는 건 지극히 상식적이라 논증이 필요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법원의 사법적인 판단은 상식에 따라 내리는 게 아니고 증거로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법원이 증거로 채택한 UN인권위원회의 보고서만 봐도 일제가 강압적인 방법으로 위안부들을 동원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 정부와 군부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아시아 전역에 걸쳐 강간수용소의 설립에 직접적으로 관여했다는 것은 이제 명백하다… 위안부를 조달하기 위해 일본 군부는 물리적 폭력, 유괴, 강요와 속임수를 강요했다.”     

 무엇보다 일본 스스로도 과거에 위안부에 대한 책임을 인정한 바 있는데, 1993년에 발표된 고노담화가 대표적입니다.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대해서는 구 일본군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이에 관여했다. (중략) 당시 한반도는 일본의 통치 하에 있었기 때문에 모집, 이송, 관리 등도 감언, 강압 등에 의해 총체적으로 본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이루어졌다.”     

 이와 같은 객관적인 자료에 반하여 박 교수는 마치 피해자들이 스스로 위안부가 되었고 일본군은 관여하지 않은 것처럼 말하고 있으니, 명백히 허위 사실인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허위 사실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사회적 평가를 깎아 내려 명예를 훼손한 것임은 별도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명백합니다.     


○ 피해자 특정의 문제

 명예훼손에서 주로 문제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피해자 특정의 문제입니다. 명예훼손죄가 되려면 명예를 훼손당하는 피해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범위가 좁혀져야 합니다. 개인이 아닌 집단의 명예를 훼손하는 발언을 하더라도 명예훼손죄는 아닙니다. 예를 들어, “김 씨는 거짓말을 자주하는 사람들이다.”라는 말을 해도 명예훼손으로 보기는 어려운데, 그건 우리나라에 김 씨 성을 가진 사람이 워낙 많아 이 말이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 알 수 없어 특정한 개인의 명예가 깎이는 일은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강용석 전 국회의원이 아나운서 비하하는 발언을 하여 문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강 전의원은 전국 대학생 토론대회에 참여했던 학생들과 저녁회식을 하는 자리에서, 장래의 희망이 아나운서라고 한 여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아나운서 지위를 유지하거나 승진하기 위하여)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 할 수 있겠느냐. ○○여대 이상은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못하더라.”

 이 말이 알려지자 전국의 여성 아나운서들이 크게 반발하였고, 검찰은 강 전 의원을 법정에 세웠습니다. 검찰이 기소한 죄명은 모욕으로 모욕죄와 명예훼손죄는 엄밀히 말하면 다른 죄이지만 둘 다 피해자가 특정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합니다. 

 이 사건에서 강 전 의원은 모욕죄에 관해서 무죄를 선고 받았습니다. 법원은 이 발언이 여성 아나운서에 대하여 수치심과 분노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경멸적인 표현이라고 보면서도 그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는데, 주된 이유는 피해자의 특정이 되지 않았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즉 ‘여성 아나운서’라는 집단은 직업과 성별로만 분류된 집단의 명칭인데 공중파 방송, 유선방송, 라디오 등 아나운서로 활동하는 여성 아나운서가 매우 많고 ‘여성 아나운서’라는 집단 자체의 경계가 불분명하고 그 조직화 및 결속력의 정도 또한 견고하다고 볼 수 없다는 논리였습니다.     

 박유하 교수도 이 논리를 활용하였습니다. 설령 “제국의 위안부”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위안부 할머니 ‘개인’을 지칭한 것이 아니라 위안부 할머니 집단 전체에 대한 것이므로 명예훼손죄가 아니라는 주장이었죠. 궤변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법적인 논리 면에서만 보면 타당성이 전혀 없는 주장은 아닙니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정확한 수를 알기는 어렵지만 연구자들에 따르면 수만 명에서 수십 만 명까지 추산될 정도이니 매우 큰 집단인 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집단을 상대로 한 명예훼손이 항상 괜찮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 법에 따를 때 경우에 따라 집단에 대한 명예훼손도 범죄가 될 수 있습니다. 구성원 수가 적거나 당시의 주위 정황에 따라 판단할 때 집단 구성원 개개인을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때에는 개별구성원이 피해자로 특정됩니다.

 이 사건에서는 피해자가 특정되었을까요? 법원은 그렇다고 판단했습니다. 실제 위안부로 끌려간 사람은 훨씬 많겠지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을 한 사람은 총 239명이고, 이 중 2017년 10월 기준으로 생존하고 있는 사람은 36명 정도에 불과합니다. 박 교수가 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위안부는 “위안부임을 밝히고 일본 정부에 사죄와 책임을 요구하는 위안부 할머니”들이므로 그 범위가 어느 정도 좁혀졌다고 본 겁니다.     



<사족>

 표현의 자유, 학문의 자유는 보호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모든 자유가 그러하듯 일정한 한계가 있습니다. 그 표현이 피해자들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라면, 표현의 자유나 학문의 자유를 방패삼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위안부 할머니 문제는 한국 근현대사의 가장 가슴 아픈 사안입니다. 그분들이 겪은 고통과 상처는 이루 말로 표현하기 힘듭니다. 1992년에 시작된 수요집회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위안부 문제는 현재진행형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민감하고 아픈 사안을 다룰 때에는 피해자들이 혹시 받을 지도 모르는 상처까지 고려했어야 마땅합니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로 끌려간 조선의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일제에 의해 강제로 끌려간 위안부 할머니도 역사의 피해자입니다. 피해자가 받아야 할 것은 손가락질이 아니라 위로입니다.     



※ 참고

 이 글에서 말하는 법원의 판단은 제2심인 서울고등법원 2017노610 판결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사건은 아직 판결이 확정된 것은 아니고 현재 사건이 대법원에 계류 중이므로, 향후 대법원 판결에 따라 법원의 판단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전 04화 역사: 역사는 함부로 고칠 수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