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13일 밤.
뭔가 낌새가 이상했다. 여성은 뒤를 돌아봤다. 10m 정도 떨어진 곳에 승합차 한 대가 정차되어 있었다. 여성이 걸음을 떼자 약간의 시차를 두고 승합차도 출발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집까지는 느긋하게 걸으면 15분, 빠른 걸음으론 10분 정도였다. 여성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러자 승합차도 점점 속도를 높였다.
큰길가를 벗어나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늦은 밤이라 인적은 드물었다. 걷는 속도는 더욱 빨라져서 이제 거의 뛰다시피 했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다. 아직 집까지는 거리가 좀 남아있었다. 여성은 다급하게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길게 울렸다.
서류 뭉치 위에 놓인 휴대폰이 진동했고 화면에는 ‘예지’라는 이름이 떴다. 서류 뭉치 옆에는 한 남성이 책상에 엎드린 채 누워 있었다. 이틀이나 밤을 새워 일한 그는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제발... 전화 좀 받아.’
여성은 간절했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없었다.
“고객님이 전화를 받지 않아...”
다시 전화를 걸었다. 휴대폰의 진동이 한참이나 울렸을 때 남성이 잠깐 몸을 뒤척였다.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한창 잠에 취해 있는 그는 이게 휴대폰 진동 소리라는 인식이 없다. 다시 잠의 세계로 빠져든 남성. 부재 중 전화는 2통이었다.
여성은 112를 눌렀다. 통화 버튼을 누르면 경찰이 전화를 받을 것이다. 하지만 경찰에게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 할까를 생각하니 막막해졌다. 집에 들어가고 있는데 누가 쫓아오는 것 같다고 말하면 경찰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폭행이나 협박을 당한 것도 아니고 범죄의 징후가 명확하지도 않은데 이런 일로 112에 신고했다고 타박을 받지는 않을까. 결국 통화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최근에 겪은 일들 때문에 내가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는 걸지도 몰라. 별일 아닐 거야.’
심호흡을 크게 한 뒤 고개를 내밀어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폈다. 조용했다. 다행히 승합차도 보이지 않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여성은 다시 걸음을 뗐다.
집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뒤에서 갑자기 승합차가 나타나더니 뒷문이 열렸다. 여성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밤하늘을 갈랐다. 강제로 승합차에 탄 여성은 온몸으로 반항했다. 하지만 반항은 오래가지 못했다. 정체불명의 남성이 매캐한 화학약품 냄새가 나는 수건으로 입을 막자 온몸의 힘이 점점 빠져나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을 차려보니 괴한의 어깨 위였다. 괴한은 구불구불한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여성은 발버둥을 쳤지만 손과 발이 묶인 상태라 소용이 없다. 고함을 지르려고 해도 이미 입이 테이프로 막혀 있어 차마 소리가 되지 못했다. 공터에 도착한 괴한은 여성을 바닥에 집어 던진 뒤 이마의 땀을 쓱 닦은 뒤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 시각, 승합차 운전석에 한 남성이 앉아 있었다. 그는 짝눈이었는데 눈빛은 불안감에 가득 차서 심하게 흔들렸다. 얼굴엔 식은땀이 가득한 채로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참다못한 남성은 운전석에서 내려 산길을 쳐다봤다. 하지만 뒤쫓아가지는 못했다. 여성을 어깨에 메고 간 사람의 험상궂은 표정과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엽총이 생각났던 까닭이다.
담배를 끝까지 태운 괴한은 엽총을 장전했다. 땅바닥에 쓰러져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여성은 온몸이 바르르 떨렸고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괴한. 길게 끌 것 없다고 생각한 괴한은 총을 여성의 머리에 겨눴다. 탕!
소리는 널리 퍼져 승합차까지 닿았다. 짝눈의 남자는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탕! 다시 한 발의 총이 발사되었다. 일을 마친 괴한은 총을 옆으로 던져 놓고 다시 담배를 피웠다. 괴한의 앞에는 두개골이 함몰된 여성이 피를 흘리며 누워 있었다. 그리고 쓰러진 여성과 몇 걸음 떨어진 곳에 곱슬머리 남자가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는 손으로 입을 막고 있었는데 그 남자의 입 주위에는 붉은 피가 선명했다.
“뭐해? 빨리 마무리 안 하고?”
괴한이 소리치자 곱슬머리는 엉거주춤 일어나서 휴대폰을 꺼냈다. 휴대폰을 든 곱슬머리의 손이 심하게 흔들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괴한이 곱슬머리에게 쌍소리를 하며 휴대폰을 빼앗아 대신 여성의 사진을 찍었다. 괴한이 앞서 걷고 곱슬머리가 그 뒤를 따랐는데 곱슬머리의 발에 하얀색의 조그마한 치아 조각이 밟혔다.
***
고혁두의 앞에는 하얀색 천이 놓여 있었다. 고혁두는 차마 그 천을 걷지 못했다. 대신 경찰이 나섰다. 하얀색 천이 조금씩 걷히고 차가운 철제 테이블에 누워있는 사람이 드러났다.
고혁두는 입을 틀어막았다. 그동안 검사로 일해오면서 숱한 시체를 봤지만 그 경험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예지는 창백한 얼굴로 누워있다. 하나뿐인 내 동생. 유일한 피붙이. 살아가는 이유. 내 목숨보다 소중한 존재. 고혁두는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대고 짐승처럼 울어댔다.
***
고예지의 장례 절차를 모두 마치고 다시 서울중앙지검에 출근했다. 하지만 예전의 고혁두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고혁두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고 늘 직각을 유지하던 어깨도 축 처졌다. 단 며칠 사이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이다.
고혁두는 출근하자마자 조소희 부장검사의 방을 찾아갔다.
“고생 많았지?”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될 수도 없다는 걸 알기에 섣부른 위로 대신 고혁두의 손을 지긋이 잡았다.
“바쁘신 와중에 조문 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저.... 부장님....”
고혁두의 손이 왼쪽 정장 속의 안주머니에서 하얀색 편지 봉투를 꺼냈다. 사직서였다.
“고 검사, 힘든 건 알겠다는 이건 아니지. 성급하게 굴지 말고 좀 쉬면서 몸도 마음도 추슬러. 내가 차장검사님께 말씀드려서 특별 휴직 알아볼게.”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고 검사가 얼마나 검사 일을 사랑하는지, 그리고 훌륭한 검사인지는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아. 그리고 좀 있으면 부부장 검사로 승진도 할 거잖아. 지금은 승진이니 뭐니 하는 말들이 귀에 들어오지는 않겠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돼. 동생도 고 검사가 그만두는 걸 원하지는 않을 거야.”
고혁두는 대답이 없었다. 조소희가 다긋치듯 말했다.
“고 검사. 정신 안 차릴래?”
당근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감지한 조소희는 채찍을 들기로 한 것이다.
“고 검사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어? 이렇게 나약한 사람이었냐고? 동생에게 극악한 짓 저지른 그놈이 바라는 게 바로 이런 상황일 거야. 고 검사가 정신 못 차리고 모든 걸 포기하는 거. 지금 이렇게 떠나버리면 넌 패배자가 되는 거라고. 내 말 알아들어?”
한참 가만히 있던 고혁두가 입을 열었다.
“부장님 말씀 다 맞습니다. 저도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이제 그만하고 싶습니다, 아니 할 자신이 없습니다.”
조소희가 다시 한 번 고혁두를 불렀지만, 이미 고혁두의 마음은 확고했다. 한 번 마음 먹으면 좌고우면하지 않는 게 고혁두의 특성이었다. 좋게 보면 뚝심이었고, 나쁘게 보면 고집스러움이었다.
사직서를 제출한 뒤 집도 부동산에 내놓았다. 변호사로 개업할 수도 있지만, 일을 할 의지가 없었다. 직장이 없어졌으니 서울에 있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고혁두는 차를 몰았다. 도착한 곳은 강원도 양양군. 총 20 가구가 되지 않는 작은 산골마을이었다. 그마저도 집들이 매우 멀리 떨어져 있어서 한 마을이라고 해도 웬만해선 얼굴을 보기 힘든 오지 중의 오지였다.
고혁두가 고른 집은 지은지 40년이 넘어 낡고 다 쓰러져 가는 집이었다. 그곳엔 적막과 고요만 있었다. 그곳에 고혁두는 1년을 지냈다. 마치 세상에 없는 사람처럼.
***
1년 뒤. 고예지의 기일을 맞아 고혁두는 동생의 유골이 있는 납골당을 찾았다.
문득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오빠, 얼굴이 왜 그렇게 상했어? 요즘도 맨날 야근하고 그래?”
“나야, 뭐 늘 그렇지.”
“아니, 대한민국에 검사가 오빠밖에 없어? 오빠 머리 좋고, 사명감 뛰어난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너무 몸 혹사시키지 마. 오빠가 무슨 20대 청춘도 아니고.”
“그래, 알았어. 앞으로 밥도 잘 챙겨먹고 그럴게. 예지 너는 어때? 요새 별일 없고?”
“나야, 취업 준비하느라 바쁘지.”
“근데 여기까진 어쩐 일이야?”
예지는 하늘색 종이가방을 내밀었다.
“딱 보니 김밥 같은 걸로 대충 끼니 때우나 싶어서 도시락 좀 싸 왔어. 여기 보온병에 들어있는 건 오빠가 좋아하는 미역국.”
예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늘 자신보다 먼저 오빠를 걱정하는 사려깊고 마음 따뜻한 동생. 부모님이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뒤에 고혁두는 동생 예지의 부모 역할을 대신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오히려 동생인 예지가 오빠인 혁두를 보살피고 챙겼다.
“취업준비만 해도 바쁠 텐데, 뭘 또 이런 걸 준비했어? 다음부터는 이런 거 준비하지마.”
그게 고혁두가 예지에게 건넨 마지막 말이었다. 그때 그걸 알았다면 괜한 핀잔 대신, 고맙다는 말을 했을 것이다.
아니다. 그게 예지의 마지막 모습인 걸 진작에 알았다면 그렇게 예지를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하늘이 두 쪽이 나고 목숨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기필코 그 일을 막았을 것이다.
“예지야... 너무 오랜만에 와서 미안해. 그동안 잘 있었어? 꽃이라도 사왔어야 하는데, 빈손으로 왔네. 그리고... 다... 미안해... 모든 게 다 내 잘못이야...”
고혁두의 어깨가 들썩였다. 그렇게 고혁두는 한참을 숨죽여 울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고혁두는 예지의 사진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유리가 가로 막혀 있어 손은 사진에 닿지 않았다.
“또 올 게. 잘 있어.”
고혁두가 뒤돌아서서 봉안실을 나설 때 50대 중반의 아주머니 한 명이 들어왔다. 고혁두가 막 봉안실을 벗어나려 할 때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저기요.”
아까 그 아주머니였다.
“왜 그러시죠?”
“이거 바닥에 놓여져 있던데, 혹시 이거 놔두고 가신 거 아니에요?”
아주머니가 건넨 건 검정색 휴대폰이었다.
고혁두는 아무 것도 들고 오지 않았던 터라 아주머니가 착각을 한 것이라 생각했다.
“이건 제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돌리려고 하는데, 어딘가 낯익은 휴대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커버 때문이었다. 그 커버는 예지가 좋아하던 만화 캐릭터로 장식되어 있었다. 하지만 커버가 같다고 예지의 휴대폰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화면을 켰다. 바탕화면을 본 고혁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바탕화면에 있는 건 분명 예지의 사진이었다.
“아니 이게 어떻게...”
그 휴대폰은 고혁두가 예지에게 생일선물로 사준 것이었다. 그 휴대폰을 마지막으로 본 건 사건에 관한 증거서류와 증거물품을 살필 때였다. 휴대폰은 상당히 심하게 망가져있었다. 액정 화면은 크고 작은 금이 가득했고 모서리 부분은 깨져서 움푹 들어간 상태였다. 군데군데 묻어있는 붉은 선혈은 그날 사건이 얼마나 참혹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고혁두의 눈앞에 있는 휴대폰은 조그마한 흠집도 없는 말짱한 상태였다. 무엇보다 이상한 건 검찰청에 보관되어 있어야 할 예지의 휴대폰이 왜 여기에 있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 거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란 건 이런 때 쓰라고 있는 말 같았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라 머릿속이 하얘지는 느낌이었다.
고혁두가 넋이 나간 상태로 서 있자, 아주머니가 다시 물었다.
“이 휴대폰 주인 맞으세요?”
예지의 물건으로 확인된 이상 일단 고혁두는 휴대폰을 챙기는 게 우선이었다. 고혁두는 휴대폰을 들고 납골당을 빠져나왔다. 그 휴대폰이 고혁두를 어디로 이끌지에 대해서 그때의 고혁두는 전혀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