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도시 매거진 vol.03_군산 (2)
9회 말 투아웃, 투 스트라이크 노볼.
타석에는 3번 타자 김준환. 군산상고의 마지막 희망입니다. 투수 와인드업. 김준환 선수, 배트를 크게 휘둘렀습니다. 공이 내야를 빠져나갑니다. 타구가 너무 빨라 2루 주자가 홈에 들어오기 힘든 상황. 주자는 거침없이 3루를 돌아 홈으로. 홈으로.
... 세이프. 기적의 역전승입니다.
군산상고는 올드팬들은 누구나 아는 야구 명문 고등학교입니다. 역전의 명수라는 별명으로 유명합니다. 이 별명이 붙은 이유는 바로 1972년 황금사자기 결승전 때문입니다. 군상상고는 부산고와의 대결에서 1:4로 지고 있던 상황을 뒤집고, 9회 말 기적의 4 득점으로 창단 첫 우승을 가져갑니다.
100년 한국 야구사史 최고의 명경기 중 하나이자, 호남 야구 부흥의 출발점으로 기억되는 순간입니다.
카 퍼레이드가 벌어졌습니다. 영웅들을 태운 오픈카가 전주와 익산을 거쳐 군산으로 들어섰습니다. 시민들이 몰려나와 선수들을 따라 시내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구도심의 팔마 광장, 째보선창, 군산역 로터리, 금광동을 거쳐 시청에 도착했습니다.
영원히 기억될 군산의 영광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그로부터 46년 후. 일요일 아침 8시, 군산상고의 운동장.
선수들이 가볍게 뛰며 몸을 풀고 있습니다. 곧 열릴 세명고와의 연습경기를 준비 중입니다. 2월의 아침 공기가 아직 쌀쌀한데, 선수들은 씩씩하게 구령을 붙여가며 스트레칭을 합니다. 운동장 뒤편 학교 건물에서 감독님이 등장하자, 절도 있게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입니다. 짧고 우렁찬 기합 소리가 운동장에 울립니다. 그리고 다시 하나의 동작으로 몸풀기. 타이거즈, 트윈즈, 베어즈 팬으로 이루어진 매력도시 연구원들은 근처 <영국빵집>에서 빵을 하나씩 먹은 후 (야채빵! 추천) 야구 소년들을 구경하러 군산상고에 왔습니다.
군산상고가 있는 곳은 도심 외곽 문화동입니다. 낮은 집들 사이의 한적한 골목을 따라 걸어가면 군산상고의 초록색 운동장이 나타납니다. 학교를 안온하게 둘러싸고 있는 월명산은 바다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을 걸러줍니다. 야구팬이라면, 특히 고교야구를 그리워하는 올드팬이라면, 봄날 아침, 월명공원과 명문 야구 고교를 둘러보는 산책 코스로 마음에 들만한 동네입니다.
군산은 일제 강점기 때 강제로 빼앗은 쌀을 일본으로 실어 나르던 항구도시입니다. 민족 전체로 보면 분하고 뼈아픈 시절이었지만, 인근 곡창지대에서 쌀이 쏟아져 들어오고 큰돈이 오가던 군산의 호시절이 바로 이때였습니다. 도로가 반듯하게 정비되었고, 관공서와 은행 건물이 (당시에는) 현대적 스타일로 세워졌습니다. 돈과 얽힌 인간의 욕망을 밑바닥까지 보여주는 채만식의 소설 <탁류>의 배경이 군산인 이유는, 아마도 당시로서는 이런 질펀한 일들이 일어날만한 곳으로 가장 적합한 소도시였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근사한 서양식 건물과 일본식 집들이 들어서던 당대의 군산은, 그래서 영榮과 욕辱이 하나로 얽힌 곳입니다. 치욕의 역사를 거치며 군산은 세계의 배들이 드나드는 국제 도시가 되었습니다.
<탁류>가 나오고 30년 후, 군산상고의 야구소년들은 강점기 때 세워진 도시의 랜드마크들을 돌며 카퍼레이드를 했습니다. 그리고 또 한 세대가 지난 오늘, 군산은 매력도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유는, 당대에 세워진 건물들 때문입니다. 새로운 세대들의 눈에는 붉은 벽돌로 지은 관공서와 일본풍 목조 가옥이 인스타그램 사진의 근사한 배경으로 보였습니다. 쌀을 저장하던 창고들은 로스팅한 원두를 쌓아둔 카페로 바뀌었습니다.
안타까운 역사는 항구도시 군산을 태어나게 했고, 영욕이 깃든 건물과 도시 공간은 군산의 매력 자산이 되었습니다. 아, 굿바이 안타의 주인공 김준환 선수. 해태 타이거즈에서 프로 선수로 뛴 후, 대학팀 감독을 하다가 은퇴를 했다고 합니다.
매력도시연구소가 취재한 군산은 지금도 아이러니한 에너지, 그 자체였습니다. 젊은이들이 서울 생활을 버리고 군산의 뒷골목으로 들어가 작은 책방과 술집을 열고 있습니다. 맛집과 게스트 하우스 파티를 찾아 KTX와 고속버스를 번갈아 타며 이곳까지 놀러 옵니다. 부모님 세대에 입었던 교복 차림으로 손을 잡고 철길을 걷는 고등학생들이 찾아오는가 하면, 호수를 바라보며 이탈리아 와인을 마실 수 있는 실력 있는 레스토랑에 외국인들이 붐빕니다. 스페인 추로스를 파는 군산의 토박이, 홍대 앞 출판사를 다니다 적산가옥敵産家屋에서 서점을 연 서울분.
모순과 혼돈의 에너지야말로 지금, 군산의 매력입니다.
혼돈의 에너지
지금, 군산의 매력
최근 군산은 핀치에 몰렸습니다. 지역 경제를 떠받히던 대형 산업체들이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물론 군산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커다란 공장을 세우고, 쉼 없이 일해서 물건을 만들고, 해외에 물건을 팔아 성공해 온 국가가 맞이한 변화의 시기, 바로 지금이기 때문입니다. 하필 그 피할 수 없는 변화의 중심에 탁류와 황금사자기의 도시 군산이 있습니다.
자, 군산은 이 위기를 벗어나 멋지게 역전할 수 있을까요? 매력도시연구소가 만난 군산의 매력 사람들을 통해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일요일 이른 아침, 우승을 노리는 야구 소년들은 씩씩하게 몸을 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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