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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력도시 연구소 May 12. 2018

마을의 파수꾼, 게스트 하우스: 죽성동 화담여관

매력도시 매거진 vol.03_군산 (4)


<화담여관> 최봉준 대표의 본색이 드러나는 순간은 밤이라고 합니다.

매일 밤 화담여관에 묵는 손님들을 위해 조촐한 파티를 여는데, 최봉준 대표는 커다란 디귿자 모양의 주방 테이블 뒤에 서서 사람들과 즐겁게 어울립니다. "대화를 모으는 기술이 있어요." 여러 번 화담여관의 파티에 참석했던 윤주선 박사의 증언입니다." 서먹서먹하던 숙박객들은 최봉준 대표를 중심으로 모이고 음식을 나누면서 친구가 됩니다.  

"그냥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쪽입니다." 대화 모으기의 달인답게 최봉준 대표는 심플한 비결을 제시했습니다. 눈이 반달 모양이라 담담하게 이야기를 하는데도 늘 미소를 짓고 있는 인상입니다. "애초에 이런 테이블을 만든 이유도 손님들이랑 같이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며 이야기하려는 거였죠." 캐나다에 워킹 홀리데이를 갔을 때 식당에서 일해 본 경험이 계기가 되어 음식 만들기를 익혔다고 합니다.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이때부터였습니다. 해외에서는 젊은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여행 문화가 된 숙박시설을 우리나라에서 시도해보고 싶었습니다.



"같은 숙소를 쓰는 사람들이 음식을 나누는 것, 실은 손님들이 자연스럽게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게 맞는 건데, 아직 (국내 여행객들은) 조금 서먹서먹함이 있어요. 그래서 숙소 주인인 제가 멍석을 깔아주는 거죠. 차차 이런 모임이 게스트 하우스의 자연스러운 문화가 될 때까지요."

'화담여관'의 화담話潭은 '대화가 모이는 연못'이라는 뜻이라고 하니, 이름과도 썩 잘 어울리는 게스트 하우스입니다. 최봉준 대표에 따르면, 최근 그 숫자가 급속히 늘어난 국내의 게스트 하우스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뉘어 자리 잡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화담여관 처럼 게스트 파티로 유명한 곳과 한적한 곳에서 조용히 쉬는 게스트 하우스로 말입니다. 파티형 게하(게스트하우스)로 갈까, 휴식형 게하로 갈까. 게스트 하우스의 특성에 맞게 놀고 쉬는 문화가 조금씩 자리 잡는 중입니다.


화담여관에서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모이는 파티가 가능한 것은 건물의 구조도 한몫합니다. 최봉준 대표가 집을 직접 고치고 설계했는데, 객실을 줄이고 사람들이 충분히 모일 수 있도록 주방과 거실을 넓게 확보했습니다. 숙박시설의 경영 관점에서 생각하면 침실의 개수를 늘리고 거실의 면적을 최소로 만드는 것이 상식적인 계획입니다만. 객실 개수 = 수입이라는 공식을 최봉준 대표가 모르진 않았을 텐데요?

 "저 혼자 감당할 수 있는 개수. 그 손님 수만큼 침대를 두기로 했어요." 화담여관의 총 객실 수는 8개. 손님이 가득 차면 총 26명까지 묵을 수 있습니다. 객실수에 대한 욕심을 줄인 덕분에 손님들의 이야기가 모이는 큼직한 연못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단정하고 예쁜 집입니다. 흰색 벽에 검은색 기와를 얹은 2층 집인데 일본풍인 듯, 현대풍인 듯, 두 가지 스타일이 조화롭게 섞여있는 외관입니다. 집은 작은 마당을 둘러싸고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앞쪽이 앞서 말한 파티를 위한 거실 공간이고, 마당을 따라 이어진 복도를 지나면 안쪽 공간에 침실이 있습니다. 벚나무 한그루 심어둔 평화로운 마당이 떠들썩한 파티 공간과 조용히 쉬는 공간을 나눠줍니다.

 


최봉준 대표에 따르면, 이 건물은 원래 1932년에 지은 주택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이후에 <천안여관>이라는 이름의 숙박시설로 사용되었습니다. "70, 80년대에는 군산에서 첫째, 둘째 가는 여관이었다고 해요. 선대 운영자가 돌아가시면서 공간이 버려지듯 남겨져 있었죠. 그 점도 안타까웠고요."

군산의 어르신들께 여쭤보면, 당시에 천안여관이 있던 동네는 나름 북적이던 시내 중심가라 말씀하신다고 합니다. 오가는 사람들로 활발하던 동네의 번화함은 2000년대 초반까지 잘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릅니다. 온갖 카페와 술집으로 들썩이는 영화동과는 달리, 화담여관이 있는 죽성동은 한적하기만 합니다. 신도심과 관광지가 생기면서 한때 번성했던 구도심이 쇠퇴하는 현상. 지방 소도시라면 어디나 겪고 있는 골칫거리가 군산에서는 죽성동 인근입니다. 아무리 반듯하게 정리된 다정한 뒷골목이라도 사람들로 채워지지 않으면 걷기 꺼려지는 으슥한 길이 되고 맙니다. 밤이면 더욱 그렇고요. 상업시설의 불빛이 밤늦도록 이어지는 영화동에서 이곳까지는 불과 걸어서 15분 거리지만, 밤의 에너지가 이곳까지 이어지지 않습니다.



"군산이 고향인가요?"

"고향은 울산인데,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녔어요. 광주에 있는 게스트 하우스에서도 일했구요." 최봉준 대표는  어쩌다가 군산에, 그것도 한적한 죽성동에 자리 잡았을까요?

"광주에서 게스트 하우스 운영에 대해 배우고 나서 독립을 하기로 했어요. 어디로 갈까, 궁리했는데, 마음속에 후보 도시 몇 군데를 찍어 놓고 있었어요. 게스트 하우스에서 일하다 보니 사람들이 여행의 목적지를 어디로 잡는지 잘 알고 있거든요."

원래는 대천 해수욕장을 가고 싶었으나, 집 값이 너무 비싸서 포기. 통영도 후보였지만, 도시가 순식간에 관광지로 주목받는 바람에 제외. 안동, 포항... 이렇게 하나하나 정착하고 싶은 소도시를 살펴봤다고 합니다. 그리고 군산에서 오래된 집을 하나 발견하고 마음을 정했습니다.


고향도 아닌 군산에서, 게다가 아직은 사람들이 찾지 않는 구도심을 선택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요.

"처음에는 물론 영화동을 돌아봤어요. 사람들이 걸어서 돌아다닐 수 있는 마을이란 점이 너무 매력적이었거든요." 주민과 관광객이 걸어서 돌아다니는 영화동이 당연히 게스트 하우스의 위치로는 1순위겠지만, 단점도 있었습니다. 동네가 뜨자, 임대료와 땅값이 순식간에 너무 많이 올라버린 거죠. 조금 범위를 확장해서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영화동에서 1킬로미터 정도 걷는 거리 정도라면 도보 여행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어요. 무엇보다 일단 이곳 죽성동은 아직 임대료와 땅값이 저렴해요."



여기서 잠깐. 게스트 하우스를 상업적 관점에서 살펴볼까요? 게스트 하우스의 장점은 무엇보다 저렴한 숙박비입니다. 20대, 30대 여행객들이 '게하'를 선택하는 1번 조건, 단연코 가격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저렴한 숙박 가격을 맞추기 위해서는 건물 임대료, 건물 구입비, 인테리어 비용 등 시설 투자비가 적어야 합니다. 초반에 이런데 돈을 많이 쓰면 게스트 하우스다운 저렴한 숙박비가 성립할 수 없습니다. 전 세계 어느 도시를 가든 게스트 하우스는 대부분 땅값이 저렴한 도심 외곽에 자리 잡고 있는 이유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 게스트 하우스의 주 고객인 20대, 30대는 다리가 튼튼합니다. 무거운 짐을 끌고 저렴한 숙소를 찾아 하염없이 걷는 일에 큰 불만이 없습니다. 오히려 게스트 하우스를 찾아 한적하고 다정한 골목길을 걸어가면서 사진 찍고 커피 마시고 귀여운 소품 가게를 구경하는 일을 즐깁니다. 도보 범위를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임대료가 도심보다는 저렴한, 그 절묘한 경계 지역을 찾아 게스트 하우스가 자리 잡게 됩니다. 매력도시연구소와 함께 군산 취재를 한 <건축도시공간연구소> 윤주선 박사는 이를 '임대료 절벽 지역'이라고 설명합니다.

"조사를 해보면 중심가의 높은 임대료가 길 하나 차이로 급격히 떨어지는 지역이 있어요." 이런 곳에 딱 들어가기 좋은 시설이, 비교적 넓은 면적이 필요하고 젊은 층들을 대상으로 하는 게스트 하우스입니다.


매력도시가 되고 싶다면, 도시 경계부에 들어서는 젊은이들의 숙소를 크게 반겨야 합니다. 어두운 골목길을 밝혀주고 낙후된 동네에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조금 멀어도 씩씩하게 잘 걸어오고, 먹고 마시는 소비력이 왕성하고, 밤늦도록 모여서 이야기하길 좋아하는 젊은이들의 에너지는 어두운 구도심을 변화시키는 힘입니다. 

이런 젊은 에너지를 끌어들여 도시가 변한 사례도 이미 많이 있습니다. <에이스 호텔>은 범죄가 빈번히 일어나는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에 문을 열었습니다. 순식간에 인근 브로드웨이가 힙스터들의 활기로 가득 찼습니다. 호스텔 <하나레>는 도쿄의 한적한 외곽 마을에 자리 잡았습니다. 숙박객들이 골목을 산책하고, 동네 목욕탕을 가고, 숨겨진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합니다. 



호텔은 밤이면 어두워지게 마련입니다.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서 객실 문을 꼭 닫아걸고 편안하게 쉬는 것이 호텔의 중요한 역할이니까요. 아침에는 끼리끼리 조식을 먹고 체크아웃하고 바쁘게 각자의 길을 갑니다. 

게스트 하우스는 조금 다릅니다. 해가 지면 숙박객들이 하나 둘 나타나서 거실 테이블을 둘러싸고 앉습니다. 입담 좋은 손님 한 분이 자신이 발견한 골목 구석의 작은 카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어, 나도 가보고 싶어. 주소 알려줘. 그때 인상 좋은 숙소 주인이 등장합니다. 지역 맛집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며 조금씩 포장해온 음식을 풀어놓습니다. 식당 이모들에게 미리 전화로 부탁해둔 덕분에 따뜻할 때 먹을 수 있게 준비되었습니다. 하하 호호... 내가 사 온 것도 좀 드셔 보세요...

다음날 아침. 숙취가 좀 괴롭긴 합니다만. 긴 밤, 부쩍 친해진 손님들이 함께 커피를 마시고 토스트를 먹습니다. 오늘 어디로? 함께 갈까? 다음 여행은 어디?  


밤늦게 까지 도시가 깨어있도록 만들고, 아침 일찍 동네에 활기를 불어넣는 도시의 파수꾼. 으슥한 뒷골목을 매력적인 산책코스로 만드는 도시의 안내자. 이것이 매력도시의 게스트 하우스가 가진 역할입니다. 게스트 하우스 안에, 혹은 인근에 지역 주민도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카페, 식당, 상점이 더해진다면 금상첨화입니다. 지역주민과 방문객이 스쳐가는 동네 중심 시설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도시의 파수꾼, 도시의 안내자.
매력도시 게스트 하우스의 역할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있습니다. 앞선 글에서 매력도시의 지표생물인 동네 서점을 다루면서, '동네 서점,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라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게스트 하우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 꼼꼼하게 잠자리를 보살펴주는 사람. 어울리기 좋아하고 파티를 즐기는 사람. 지역 맛집의 음식을 포장해와서 손님들에게 권하는 사람. 시간이 남으면 손님들을 데리고 군산의 매력을 보여주러 돌아다니는 사람. 이런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일입니다. 


밤이면 본색을 드러내는 반달눈의 게스트 하우스 대표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습니다.

"사람들과 잘 만나서 성격이라 재미있어요. 서울에서 내려온 <레어 커피> 사장님,  술집 <거북이> 사장님... 두루두루 친해요. 군산에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시기에, 카페 <나는 섬>에 매일 출근하듯 가서 준비를 했었죠. 그때 그곳 사장님과 친해졌고요."

매력적인 사람들이 자신이 살고 싶은 도시에 모여 긴밀하게 교류하고 있다는 것. 우리가 흥미롭게 지켜보는 매력도시 현상입니다. [매력도시연구소]



Reference

<마을이 호텔이 되는 "커뮤니티 호텔"을 통한 도시재생> 윤주선  +


매력도시 매거진 vol.03_군산

1편: 군산, 인터내셔널을 준비하라

2편: 9회 말 투아웃, 역전의 명수 군산

3편: 동네 책방, 매력도시의 지표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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