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영주, 전통과 자연 속에서 보낸 여름방학
무더운 8월의 마지막 주, 영주에서의 일주일은 여름방학의 정수였다.
나의 로컬 탐방기의 시작점이 되었던 익산에서 만난 친구들과 ‘로컬로’라는 로컬 탐방 프로젝트 팀을 결성했는데, 우리의 첫 목적지는 영주였다.
경상북도 영주는 안동과 선비 문화를 두고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도시다. 선비의 고장답게 영주에는 한국선비문화수련원, 선비세상, 선비촌 등 선비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곳들이 많이 있다. 또한 소백산과 국립산림치유원, 부석사, 무섬마을 등 천혜의 자연과 전통문화유산으로 가득한 곳이기도 하다.
우리가 영주를 선택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지자체의 살아보기 지원금이 있었기 때문이다. 국내의 많은 지자체에서는 체류형 관광객 유치를 통한 지역관광 및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역에서 살아보기를 지원하는데, 영주시에서는 '영주에서 일주일 살아보기'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매년 세부 내용은 조금씩 바뀌지만, 지역마다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1~2달까지 지원하니 국내 지역에서 살아보기를 원한다면 각 지역에서 운영하는 지역살이 지원 프로그램을 알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영주에서의 여름방학은 다음의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선비, 전통, 자연, 촌캉스.
영주 선비세상에서는 다양한 선비 문화 체험활동과 함께 한복문화관에서 선비 복식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 우리는 다도 체험과 한지뜨기 활동을 하고, 선비 복식을 대여해서 입어보았다. 다도 체험에서는 전통 다도 예법을 따라 차를 우리고 마시는 일련의 과정을 경험해 볼 수 있었는데, 옛날에는 물을 데우는 것 자체가 오래 걸리고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라 하인이 있는 양반가가 아니면 엄두도 내지 못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한지뜨기 체험에서는 물에 풀어져 있는 섬유를 떠서 열을 가해 한지를 만들어보는 과정을 경험했는데, 에전에는 열을 가하는 기구가 없으니 섬유가 완전히 마를 때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렸을 것이다. 옛날 같았으면 오래 걸리고 번거로운 일을 현대에는 기술로 빠르고 편리하게 해결할 수 있게 되었지만, 옛날에는 천천히 물을 끓이고 차를 우리며 종이가 마르기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았을 것이다. 조금이나마 의도적으로 속도를 늦추고 마음을 챙기는 방법을 배워보는 시간이었다.
익산에서부터 형성된 로컬로 팀만의 중요한 전통이 몇 가지 있는데, 하루의 마무리를 그림일기와 그날의 플레이리스트 선곡으로 마무리하는 것, 그리고 지역의 코스튬 체험 장소에서 꼭 코스튬 복장을 대여해서 경험해 보는 것이다. 익산에서는 숙소 바로 앞에 있었던 익산글로벌문화원과 미륵사지 앞의 익산백제문화체험관에서 각 나라의 전통의상과 백제의 복식을 입어보았는데, 이번에는 조선 시대 선비 복식을 체험했다. 선비 복식하면 도포인데, 도포 중에서도 당사자의 사회적 신분과 혼인 여부에 따라 조금씩 복장이 달라진다. 이번 여행에서 중요한 미션 중 하나는 로컬로 자체콘텐츠 릴스 제작이었다. 영주 곳곳에서 릴스 영상을 찍었는데, 이곳에서도 빠질 수 없으니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최신 유행곡에 맞춰 릴스를 찍었다. 옛것을 힙하고 새롭게 재탄생시키는 일은 그렇게 대단한 것이 필요한 게 아니라, 전통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결합해보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우리는 전체 일정 4박 중 1박은 국립산림치유원에, 그리고 나머지 3박은 부석사 근처의 소백산 끝자락에 위치한 한옥 펜션에서 묵었다. 산골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으면서 프라이빗한 계곡을 끼고 있는, 그야말로 촌캉스 로망을 실현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곳이었다. 앞으로는 무운을 머금은 산봉우리들이 서 있고, 뒤로는 우리만을 위한 자그마한 계곡물이 흐르고, 앞마당에는 사방이 탁 트인 시원한 정자가 있고, 밤에는 별이 총총 빛나는 하늘을 볼 수 있는 곳. 사장님의 인심 덕에 머무는 동안 옥수수와 감자 등 각종 부식거리도 잔뜩 얻어먹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새벽 공기를 맡으며 마당을 산책하고, 청량하고 맑은 계곡물에 다리를 담그며 위에서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을 올려다본 기억. 비오는 날, 마루에 앉아 시원한 경치를 바라보며 찰옥수수 한 점 했던 기억. 저녁에 테라스에서 먼발치에 물들어가는 노을을 감상하며 바베큐 파티와 화채까지 야무지게 즐긴 기억. 별이 총총 쏟아지는 밤하늘 아래에서 불꽃놀이로 마지막 밤을 장식한 기억. 모두 소중한 여름방학의 추억으로 남았다.
영주에서 로컬로 팀이 방문한 곳들을 아래 간략히 소개한다. 영주의 선비문화와 자연을 경험할 수 있는 로컬로 픽!
무섬마을
우리가 첫날 들른 무섬마을은 물 위에 떠 있는 섬을 뜻하는 ‘수도리’의 우리말 이름이다.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이 3면을 휘돌아 흐르고, 안쪽으로 넓게 펼쳐져 있는 모래톱 위에 자리하고 있는 작은 마을인데 그 모양이 마치 연꽃이 물에 떠 있는 모양을 닮았다. 무섬마을은 외나무다리로 유명한데, 조선 시대에는 마을과 외부를 잇는 유일한 통로였다고 한다. 다리는 성인 한 명이 겨우 지나갈 만큼 좁았는데, 과거에는 가마꾼들이 가마를 이고 이 좁은 다리를 건넜다고 하니 조상님들의 균형감각이 감탄스러울 뿐이었다. 마을 안에는 아기자기한 식당과 카페들도 있고, 숙박이 가능한 고택들도 있으니 고즈넉한 고택에서 하루를 보내고 싶다면 좋은 선택이 될 것 같다.
국립산림치유원
국립산림치유원은 소백산에 위치해 있는데, 내부에 숙박 시설과 함께 치유장비 체험, 휴식 해먹체험, 숲 산책 프로그램 등 다양한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는 1박을 머무르며 오전 휴식 해먹 프로그램을 경험했는데, 숲 속에서의 휴식과 이완을 누릴 수 있었다. 소백산의 정기와 산림욕을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묵을 가치가 충분하다.
부석사
신라 문무왕 시대에 세워진 사찰로, 목조건축물 중 한국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며 아름다운 미를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무량수전으로 유명하다. 201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선비세상
한국선비문화수련원, 선비세상, 선비촌이 모두 한 곳에 붙어 위치한다. 시간이 된다면 다도, 한지뜨기, 한복체험 등 선비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체험해 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선비세상 안을 운행하는 미니 열차도 귀여우니 타보는 것을 추천.
소수서원
소백산자락길 1코스(구곡길)
소백산에는 여러 가지 등산 코스가 있는데, 우리는 소백산자락길 1코스를 선택했다. 구곡길이라고도 불리는 이 길은 선비촌 근처에서 시작하는 길로, 구곡은 산림을 굽이굽이 흐르는 물줄기 가운데 경치가 아름답거나 깊은 뜻이 담긴 아홉 굽이를 의미한다. 이 구곡은 구곡 문화라고 불리울 정도로 조선의 성리학자들에게 널리 향유되었는데, 전국에 있는 150여개의 구곡 중 경북에 43개가 있다고 한다. 조선의 유학자들은 구곡길에서 정신을 수양하고 학문을 갈고 닦았는데, 선비들이 산수를 유람하며 즐거움과 삶의 지혜를 찾고 마음을 치유한 힐링 공간이자 자연과 문학, 미술이 모두 융합된 옛 선현들의 진수를 담은 문화공간인 셈이다.
우리는 배점주차장에 차를 대고 초암사까지 걸어올라가는 코스를 택했는데, 9곡부터 1곡까지 거꾸로 아홉 계곡이 펼쳐지는 계곡 트레킹을 경험할 수 있었다. 계곡과 산을 타고 가는 길과 차를 타고 갈 수 있는 포장 도로 두 가지 길이 있어서, 올라갈 때와 내려갈 때 체력에 맞게 선택하여 난이도를 조절할 수 있다.
촌캉스 숙소(그곳에 가면)
부석사 근처 부석면의 소백산 속에 위치한 촌캉스 숙소. 펜션 부지 내에 계곡과 수영장이 있어서 물놀이를 숙소 안에서 즐길 수 있다. 바베큐가 가능한 야외 테라스와 시원한 바람을 즐길 수 있는 정자도 있고, 기치료도 가능하신 사장님의 넉넉한 인심은 덤. 시골 할머니 댁에 온 것 같은 여유롭고 평화로운 찐 촌캉스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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