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의령, 일과 삶의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
의령은 갑작스레 떠나게 되었다.
예산에 다녀온 뒤로 거의 한 달 넘게 꼼짝 없이 집에만 있었더니, 날은 덥고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다시 내 안의 떠나고 싶어하는 마음이 소리를 치고 있었다. 의령에는 < 워킹홀리데이 in 의령 > 이라는 일과 여행을 함께 즐기는 컨셉의 프로그램으로 가게 되었다. 프로그램을 신청한 전 주의 막바지에서야 가까스로 운영진 측에서 연락이 왔고, 무더운 8월의 한가운데 3박 4일의 워킹홀리데이를 의령으로 떠났다.
경상남도 의령군은 나도 이전에 들어본 적이 거의 없는, 인구소멸 위기를 겪고 있는 지역이다. 청년 인구는 특히 소멸 직전인 심각한 상황이다. 때문에 지역의 고령화가 점점 심화되고, 지역의 전통을 이어 나가거나 반대로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의령의 청년마을은 이러한 문제 인식을 바탕으로,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가치를 지닌 전통을 기반으로 청년들 각자의 삶과 개성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하여 다양한 청년들이 함께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마을을 지향하고 조성해 나가고 있다.
의령에서의 워킹홀리데이에서 우리가 맡은 'working'은 의령 청년마을 사무실 바로 앞에 있는 '점빵'을 리브랜딩해 팝업스토어를 여는 프로젝트였다. 점빵이란 경상도 어르신들이 동네의 조그마한 슈퍼나 구멍가게를 이르는 말로, 전포의 비슷한 말이다. 작은 교차로의 한복판에 있는 점빵은 옛날에 수많은 사람들이 오갔던 버스 정류장을 품고 있는 작은 동네 가게로, 나이 지긋한 노부부 어르신들이 그 자리에서 50년 넘게 운영하고 계시는 곳이었다.
우리가 할 일은 팝업스토어의 컨셉을 정하는 기획부터 사전 준비, 우리가 떠나는 마지막 날에 맞추어 행사를 운영하는 일까지 모든 A부터 Z를 3일 안에 해내야 했다. 시간이 많이 없으니 현실적으로 가능한 정도에 맞추어 빠르게 기획하고 준비하는 게 관건이었다. 우선 팝업스토어의 컨셉을 정하기 위해 참가자 및 운영진들과 1차 아이디어 회의를 했고, 당사자인 점빵 주인이신 노부부를 만나 아이디어 디벨롭 겸 실현 가능 범위를 타진하기 위해 인터뷰를 했다. 점빵의 히스토리와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 이 자리에서 점빵을 운영하신 50년의 역사를 여쭤보고 듣는 시간을 가졌다. 노부부 어르신들이 타 지역에서 의령군으로 이주해 오셔서 1971년에 시작한 점빵의 이름은 신포상회로, 과거에는 근처 학교의 학생들과 행인들, 타 지역 사람들이 하루에도 수백 명이 오가는 교통의 요지였다. 칠곡초, 의춘중학교 학생들의 단골 분식집이자, 남해고속도로가 뚫리기 전에는 의령을 지나는 모든 차들의 정류장이자, 하루에도 버스가 24대씩 활발하게 오가던 버스의 종점 집합소였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는 그 영광이 저물고 지역 버스와 동네 어르신들, 단골손님들 정도만 오가는 곳이 되었다.
의령군 칠곡면의 원조 점빵인 신포상회의 이름과 얼굴을 찾아주고 싶었다. 가게 외관에는 그 흔한 간이 간판 하나 없이 휑했고, 노부부 어르신들께서는 한사코 본인들이 드러날 필요 없다고 하셨다. 한 자리에서 50년 넘게 일하신 것은 어떤 일이든 간에 매우 존경스러운 일인데, 세월에 그저 묻혀 있는 그분들의 이름과 얼굴을 찾아드리고 싶었다. 우리는 신포상회의 간판을 만들어 달고, 가게 내부를 꾸며서 팝업스토어 행사 당일 오시는 손님들에게 신포상회에 대한 설명과 함께 뽑기 선물을 드리는 자그마한 이벤트를 준비하기로 했다. 두 분과의 인터뷰에서 파악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간판에 점빵에 대한 설명과 함께 두 분의 모습을 귀여운 캐리커쳐로 표현해 넣고, 단골손님들의 최애픽 메뉴로 뽑기 선물을 구성해서 꾸렸다. 간단한 이벤트지만 이름도 없이 그 자리에 존재했던 점빵의 이름과 주인 노부부의 얼굴을 알리는 일이었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이벤트 당일, 준비한 간판을 가게 앞 커다란 나무에 달고 텅 비어 있던 유리창 문에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가게 내부를 담은 사진들로 포토 가렌더를 만들어 붙였다. 청년마을에 있던 야자수와 의자, 스피커와 비눗방울도 가져와 꾸몄다. 점빵 물건들 중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최애 아이템은 '할매픽'과 '할배픽'으로 귀여운 네임태그를 만들어 꽂았다. 그날따라 그래도 차를 타고 지나가던 외부 손님들이 많이 들렀고, 우리는 뽑기 선물 이벤트로 손님들을 회유하며 간판과 함께 신포상회의 역사를 슬쩍 소개했다. 짧은 팝업스토어 이벤트가 끝나고, 할아버지 할머니와 헤어질 때가 되자 두 분은 언제 손사래쳤냐는 듯 아쉬워하셨다. 간판도, 사진도, 팻말도, 뭘 하는 것도 모두 싫다고 하셨는데, 소중하게 간판과 사진을 잘 걸어두시겠다고 하시는 말씀을 듣자 안심도 되고 웃음이 나왔다. 내심 정말 싫으셨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신포상회의 간판은 여전히 가게를 우뚝 지키고 서 있는 나무에 잘 걸려 있다고 한다. 오며 가며 지나는 이들이 그걸 볼 테고, 무엇보다 점빵을 삶의 터전으로 지키며 살아가시는 두 분께서 가게를 들고 나실 때마다 보실 터이다. 보실 때마다 우리 점빵의 이름을, 당신들의 얼굴을, 본인들도 잊고 사셨던 그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셨으면 하고 바란다. 한 자리에서 보낸 당신들의 지난 50여 년 간의 수고는 헛된 게 아니라고, 충분히 자랑스러워 하실 일이라고. 묻혀 있던 이름과 얼굴을 복원하고 그 가치를 찾아주는 일, 로컬에 묻혀 있는 또 다른 이름과 얼굴들은 얼마나 많을까.
*의령 청년마을(홍의별곡): https://localro.co.kr/village/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