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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스 Oct 27. 2024

익산 포레스트_휴식과 현재의 가치

전라북도 익산, 로컬 탐방기의 시작

퇴사 후 한 달이 다 되어 갈 때, 나는 정말이지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출퇴근에 갇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살던 집에서 떠나, 새로운 곳에서 몸과 마음을 리프레쉬하고 싶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지하철 왕복 2시간의 출퇴근과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로 점철된 인공 도파민이 주된 휴식 방법이던 일상에 지쳐버렸다. 익숙한 일상의 장소들에서 벗어나 어디론가 떠나서 내 안의 고요와 평온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해외여행을 가자니 재정 상태가 걱정이며, 한달살기를 하자니 이것저것 준비할 것이 너무 많았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짧지만 일상에서 완전히 탈출해서 휴식을 누리는 시간이었다. 그러던 중 익산에서 5일간 살아보는 로컬 살아보기 프로그램을 발견했다. 4박 5일간 일상에서 벗어나 익산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로컬의 매력을 느끼고 힐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모집 공고를 보고 이거다 싶었다. 모집 대상자는 지친 일상으로 휴식이 필요한 청년, 로컬 속에서 마음의 평온을 찾고 싶은 청년, 도파민 가득한 삶에서 벗어나 진정한 힐링을 원하는 청년. 나잖아!


그렇게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되던 6월의 마지막 주, 나는 익산으로 떠났다.

익산의 청년마을인 지구장이마을에서 운영하는 < 익산 포레스트 >는 '고요, 자연, 예술, 만남'의 4가지 휴식 테마를 바탕으로 하는 로컬스테이 힐링 프로그램이다. 근데 이제 디지털 디톡스와 친환경, 제로웨이스트를 곁들인. 익산 포레스트에서는 활동 내내 저녁에 1시간을 제외하고 휴대폰 등 전자기기를 사용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그래서 하루를 기록하는 방식으로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저녁에 그림일기를 그리고, 오늘의 테마곡을 정해서 날마다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었다. 휴대폰 없이 동네를 돌아다니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필사를 하고, 요가를 하고, 목재로 우드카빙 스피커를 만들고, 그 날의 하루를 기억하며 어울리는 나만의 향수를 만들고, 노을지는 베란다에서 영화를 봤다. 휴대폰 없이 사람들과 함께 하루를 사니, 매 순간이 선명했다. 순간을 필름카메라로 담아내고, 그 시간들을 기억하며 하루를 그림일기로 기록하니 하루가 여유로우면서 꽉 차는 느낌이 들었다.


첫날 저녁, 처음으로 휴대폰 없이 밤산책을 나왔을 때 아무것도 없이 나오는 감각이 생소했다. 바로 집 앞을 나가도 휴대폰만은 꼭 챙겨 나가는 게 현대인의 생활방식 아니던가? 폰 없이 밖에 나와본 적이 얼마만인가. 왔던 길을 기억해서 돌아가야 하니, 길을 잃지 않도록 조심조심 동네를 탐색했다. 어둠 속을 걷다 보니 언덕 위에 있는 학교가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이리여자고등학교라고 쓰여 있는데, 올해로 설립 100주년을 맞은 유서 깊은 학교였다. 늦은 시간, 낯선 곳에 와서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있는 학생들이 드문드문 있는 학교에 와 있자니 기분이 새로웠다. 여행이 아닌 진짜 로컬에 살고 있는 느낌이었다. 근데 이거.. 생각보다 재밌다. 별일 아닌 것도 유심히 관찰하게 되고, 지금 여기의 현재를 충분히 감각하게 된다.


휴대폰이 없으니 익산 시내를 돌아다닐 때도 관광안내소에서 만든 종이 지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종이 지도를 보면서 다니는 여행이라니, 어렸을 때 자동차 여행을 가면 엄마 아빠가 전국 지도를 펼쳐놓고 어느 출구에서 빠질 것이냐는 토론을 했었던 기억 이후로 거의 처음인 듯싶었다. 종이 지도에는 생략된 것들이 많았다. 길이 헷갈릴 때마다 동네 부동산, 슈퍼, 택시 기사님을 붙잡고 여기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여쭤보았다. 그러면서 이 동네에는 뭐가 있고, 어디는 꼭 가봐야 하고 등의 유용한 정보들을 더 주워들었다. 


  매 순간 집중력을 앗아가는 휴대폰이 없고, 사람들이 몰리는 볼거리나 유명한 것들이 없으니 주위의 모든 사물과 풍경, 그리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집중하게 된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쳤을 사소한 것들도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유심히 보게 된다. 지금 나와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 집중하게 되고, 그냥 지나쳤을 사람들과 소통하게 된다. 지금 현재, 여기에 집중하는 감각. 사소한 것들을 마음 기울여 세밀하게 관찰하는 감각. 평소의 것들을 특별하게 발견하는 감각. 로컬에서 배운 휴식의 방법, 현재를 누리는 방법이다. 



*익산 청년마을(지구장이마을): https://localro.co.kr/village/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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