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멋있다고 느꼈을 때
한가로운 토요일 오후, 거실 가운데 작은 상을 펴고 13살, 10살 두 아이는 서로를 마주 보며 다정하게 종이인형을 오리는데 여념이 없다. 작은 아이는 언니와 함께 놀겠다며 종이인형 도안을 검색해 블로그 이곳저곳을 종횡무진했다. 9장의 도안을 프린트해 한 장 한 장 코팅을 한 뒤 언니에게 펼쳐 보이며 "언니 이제 같이 오리자!" 하며 함박웃음을 지어 보인다.
해맑게 웃는 동생을 본 큰 아이는 잠시 놀란 듯했으나 이내 미소를 지으며 동생이 내어준 오리기 과제를 건네받았다. 동생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내어준 큰 아이가 대견하고 멋있게 느껴졌다.
"앗 어떡해 잘못 오렸어!"
"아니야 언니 그 정도는 실수해도 괜찮아"
가위질이 어긋난 큰 아이가 속상한 마음을 드러내자 그런 언니의 마음을 헤아렸는지 작은 아이는 이내 언니의 마음을 보듬는다. 티격태격 논쟁을 하다 상처를 주고 눈물짓는 날도 있지만 이렇게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며 따뜻한 말을 건넬 때면 엄마는 마냥 고맙기만 하다.
"우와 언니 나 이제 진짜 잘 오렸지? 역시 난 멋져~"
작은 아이는 자신의 가위질 솜씨가 마음에 들었는지 하나를 오릴 때마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자랑을 한다. 그런 동생을 귀엽게 바라보며 인정하고 칭찬하는 큰 아이. 내 눈에는 어린 동생을 품어주고 너그러운 마음을 보이는 큰 아이가 참 멋있었다.
나는 나 스스로 가장 멋지다고 느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해오던 일의 결과가 좋으면 성취감을 느끼고 뿌듯했던 경우는 더러 있었다. 과제를 위한 주제를 받아 들고 호기롭게 어려울 것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기세 등등하던 모습도 잠시, 내 삶에서 가장 멋지다고 느꼈던 순간이 언제였을까. 먼 곳의 기억을 끄집어내 보았지만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얕은 한숨을 한 번 내뱉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리저리 눈을 굴려보았다. 왠지 이렇게 하면 뭔가 기억이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나의 지난날들이 무수하게 스쳐 지나갔다.
초등학교 2학년 때 <함박눈>이라는 제목의 동시가 학교 문집에 실렸었고, 짝사랑하던 오빠에게 고백도 받았었고, 결혼을 하고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고단한 공부와 논문을 통과해 대학원을 졸업했고, 꿈에 그리던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웃고 울었던 시간들을 떠올리니 한 편의 단편 영화를 보는 듯했다. 참 열심히 살았구나. 어깨가 우쭐했다. 또 한 번 내가 멋지다고 느끼는 순간이다. 그동안 잊고 지내왔던 일들을 소환하며 절로 웃음이 났다. 과제를 통해 어린 시절을 그려보고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 소설 속 주인공의 삶을 엿보듯 꽤나 즐거운 일이었다. 나는 언제, 어떤 모습의 나를 기억하고 싶은 걸까.
이러저러한 상황에서 복잡하게 뒤엉킨 시간들을 멋지게 살아왔다. 무수히 많은 날들이 있었지만 그 안에서 내가 가장 멋지다고 느꼈던 순간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글을 쓰며 살겠다고 다짐했던 나의 모습이다. 초등 시절에는 시인을 꿈꿨고 중. 고등 시절에는 시나리오 작가를 꿈꿨다. 단 한순간도 글과 나의 삶을 분리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글을 쓰며 살겠다는 나의 신념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 번의 고배를 마신 뒤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합격 소식에 운전하던 차 안에서 나는 열렬히 소리치며 기뻐했다. 혼자 있는 차 안에서 합격 소식을 접하게 돼서 다행이었다. 정식으로 책을 출간한 작가는 아니었지만 브런치라는 공간에서 만큼은 작가인 내가 너무 자랑스러웠다. 읽고 쓰는 일에 마음을 두고 사랑하는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었다.
글을 쓰는 일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쓰고자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글을 쓰는 일은 어지러이 떠도는 나의 생각들을 차근차근 정리해나가는 과정이다. 나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감정과 생각의 근원지를 고민해 보게 된다. 그런 과정에서 나를 이해하게 되고 내면의 나와의 관계가 더욱 깊어진다. 개인으로서 ‘나’라는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는 과정들이 나를 글쓰기로 이끌었고, 한 편의 글을 완성할 때마다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앞으로 남은 삶을 ‘글을 쓰며 살겠다’고 다짐한 지금 이 순간. 내가 가장 멋지다고 느끼는 순간이다.
<함께 읽으면 좋은 추천 도서>
정수현 작가의 '완전 멋진 나?'
학교에서 창피를 당하고 친구들에서 상처를 받은 아이는 마음이 작아져 속상하고 슬프기만 하다. 힘들어하는 아이에게 엄마는 알을 키워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한다. 아이는 알을 키우며 그동안 몰랐던 자신만의 알을 찾게 된다.
나만의 알을 찾으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정수현 작가의 <완전 멋진 나?> 그림책을 통해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을 위해서는 어떤 일들을 하고 마음을 닦을 수 있을지 고민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