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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원 J Feb 07. 2024

결국 세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우리잖아.

내가 책을 쓴다면 이것이 서문이 되지 않을까.

#나를 찾아가는 기록들 2


24.01.01


아주 어릴 적, 내일 세상이 멸망하면 뭘 하고 싶어? 하는 나의 질문에, "그냥 평소처럼 행동하고 싶어, 아침에 일어나 직장 갔다가 집에 와서 밥 먹고 너희들이랑 티비 좀 보면서 쉬다가 잠들기."라고 대답한 사람이 있었다. 


내일 세상이 멸망해 버린다면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고 하는 모든 것들을 먹어치워 버리는 것이 꿈이었던 어린 내겐, 앞 문장의 맥락이 너무 충격적이었던 터라, 지금 생각해보면 더 중요했던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와 관련한 설명은 잊은지 오래다. 


그 대답을 들은지 20년도 더 지났으려나. 유난히 자기주장이 강했던 나는 스무살이 되면서 질서 없이 뭉게뭉게 떠 있는 나의 경험들과 생각들을 어찌저찌 엮어내어 너저분한 글을 써내려가곤 했다. 그리고 그 생각들은 점점 나의 주관이고 가치이자 철학이 되어갔다. 그 철학 중 하나는 장뤽고다르 아저씨 마냥 유행에 반문하고 흐름을 끊어내고 설득되지 않는 이상 행동하지 않는 나의 반항아 본질과 관련된 것인데, 그 선천성을 거부하지 못한 채, 모두가 한 해를 마무리하며 행복을 기약하는 이 때 이 시간, 어떠한 기도도 기념도 회고도 없이 처음으로 본가에 내려가지 않고 홀로 신촌의 스타벅스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평소 좋아하던 두유라떼를 마시며 오늘이 마치 아무 날도 아닌양* 글을 쓰고 있다. (물론 '아무 날도 아닌 양'이라고 쓴 이상 나는 오늘이 특별한 날임을 인지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터이겠지만 어쩌겠는가, 돈도 빽도 없는 나는 이렇게라도 다르고 싶다.)


그토록 오래 전의 한마디가 여전히 내 머릿속에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남아 있는 건, 예상을 뒤흔든 대답에 대한 충격과 그에 동반된 반항아 기질이 내 마음 속에서 눈을 뜨게 된 시작점이 된 까닭이 아닐까(하며 제목을 쓴지 5분도 안되어 또 다시 의미부여를 하고 있는 나의 기질을 다시금 고찰해 본다). 그러면서 '마치 아무 일도 아닌 듯' 행동하는 세상의 문법에 스크래치를 내는 행위라는 것이 마치, 대만 카스테라, 뚱카롱 등이 한창 유행했던 201x년도, '난 그거 안 먹어봄ㅋ'하며 찌질한 멋짐을 과시하는 것 마냥, 오늘도 그렇게 나는 나만의 특별함을 주장하겠지. 


여하튼 이 특별한 날, 위 주제에 대한 글을 쓰고자 하는 것은 2023년의 조각과 관련한 인생 회고라든지 2024년도에는 어떤 인생을 살 거라든지 하는 새해의 맥락과는 일절 관련이 없음을 드러내고자 함이었으며 이토록 구구절절함은 나의 기질이니 혹시라도 우연찮게 들어와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은 그냥 '얘는 생각과 말이 참 많은 녀석이군' 하고 마음 편히 넘겨주시면 감사하겠다. 오늘 쓰고 싶은 글은 요즘 들어 내가 인지하던 그 '반항아 기질'이라는 것이 사실은 세상에 대한 의미 부여와 관련된 것이었음을 깨닫는 중이기에 그것과 관련된 생각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넌 생각이 너무 많아. 생각을 죽여야 해. 기대하지 마, 실망하면 아플 뿐이야. 그냥 해. 회사 일이든 무엇이든 그냥 아무생각 없이. 시키면 하고, 욕심도 부리지 마. 


소위 '멘탈관리'라는 특훈 아래에 나는 나를 위와 같은 말들로 꽤나 오래간 잠재워왔다. 어쩌면 회의감이었고, 어쩌면 단념이자 포기였고, 어쩌면 대통령이 꿈이었던 어린 아이가 성장하고 현실을 직시하며 작은 사람이 되어버리는 그런 서글픈 과정인 것 같았다. 


기대해서 실망했고, 너무 열심히 해서 지쳤고, 너무 진심이라 다쳤고, 목적이 너무 뚜렷해 괴로웠다. 지치고 다치고 힘들고 괴로웠기 때문에 자연히 겁이 났고 조급했다. 지치고 넘어진 나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빠르게 노선을 변경하여 새로움의 자극을 주는 방법으로 나를 지켜내고 살아오던 내가, 어느날 뒤를 돌아보니 나도 모르게 사랑해서 꾸준히 하던 것들-가령 글쓰기나 운동과 같은-이 내게 있어 얼마나 큰 부분을 이루고 있는지 우연치 않게 깨달았다.


그 뒤로 꾸준함, 시간의 힘이라는 새로운 인생의 열쇠를 찾아내며, 그 열쇠를 손에 쥐기 위해 '인내'라는 능력을 지닌 사람들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꾸준함이라는 방법으로 세상을 이겨내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의 축적속도에 맞추어 이전만큼 훌쩍 성장했다거나 완전히 새로운 하루하루를 보낸다거나 매일이 새로운 자극이라기보단, 오히려 어제와 같은 오늘, 그제와 같은 내일을 살아가는 잔잔한 매일을 보냈다. 그리고 난 그것을 '밀도를 채우는 과정'이라 명명했다. 나를 보호하기 위한 다지기 단계였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해내기'는 꾸준함과 인내의 실력을 늘리는 좋은 연습장이었다. 이 주문을 왼지 오래진 않았지만 최근에야 나는 이 주문이 내게 '의미 부여하지 않기 연습'이었음을 알았다. 동시에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나의 장점이고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더 다채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 또한 알았다. 다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너무 벅차기 시작할 때, 의미를 싹둑 잘라버릴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작년 한 해 내가 열심히 받아들였던 '그냥하기' 훈련이었다는 사실이 정리가 되었다. 그동안 몰라줘서 미안했고 그럼에도 계속 해줘서 고맙기도 대견하기도 했다.



사실 생각해보면 이 세상은 내러티브로 가득하다. 인간은 병적으로 논리와 서사를 사랑하며 이건 의심의 여지 없이 우리가 존재하기 위한 기본적인 충족 요건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단어에서 그 서사라는 개념은 배제될 수 없는 것이다. 내러티브는 인간이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존재하고, 인간도 그로써 존재한다. (그런 개념을 뭐라고 하더라, 서로가 존재하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는 그런 존재랄까) 


여하튼 난 이 의미 부여, 즉 내러티브를 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열심히 글을 쓰는 것, 일러스트와 프리미어를 열심히 공부해 이미지로 표현하는 것은 내가 세상을 보고 듣고 느끼는 것, 즉 나만의 서사 부여의 결과물을 나의 표현 방식으로 공유하고 싶은 욕심 때문일 것이다. 좀 더 추상적인 느낌을 전달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나 음악 쪽으로도 요즘 들어 부쩍 관심이 생기는 듯한 것도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더불어 사람들과 이야기를 잘 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3이라는 단어를 언급함으로써 2와 4가 존재함을 알기 때문이라는 것, 2와 4를 앎으로써 1과 5도 알 수 있다는 것들. 그렇게 한 사람을 서사적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대화는 그래서 재미있는 것이었다.


여하튼 나름의 훈련을 통해 나는 내가 의미와 서사 부여를 잘 하는 사람임을, 좋아하는 것 이상으로 의식적이지 않은 순간에서까지 의미와 서사를 부여하고 살아가던 사람임을 깨달았고 그것이 인생을 다채롭게 살 수 있는 강력한 재능임을 알았다. 다만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로, 재능은 내가 자유자재로 써먹을 수 있을 때 진정한 무기가 된다는 것, 그렇기에 의미 부여의 완급 조절, 의미를 자유자재로 변경할 수 있는 능력 등 배움 차원으로는 부가적이나, 질적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스킬셋도 함께 꾸려가야 할 필요가 있음을 깨달은 것 같다. 


고로, 이를 깨달은 이제부터 내게 주어진 프로젝트는, 의미 없이도 즐겁고 행복한 감정을 포착하고 집중하기(몰입)와 그에 대한 의미 부여하고 추진력 불 붙이기를 연습하면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프로젝트를 건강히 잘 진행시키기 위해 프로젝트 리더인 뇌를 위해 건강한 음식과 충분한 잠을 통해 건강한 호르몬들이 원활히 촉진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고, 프로젝트 오너인 지성을 위해 책을 읽어주고 몰입을 통한 휴식을 부여할 것이고, 가끔 인센티브로 맛있는 음식들과 재미있는 활동 같은 빠르고 높고 새로운 자극들을 불어 넣어 줄 것이고 프로젝트 매니저인 몸에게는 운동을 통한 체력관리와 질 좋은 음식들을 보급해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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