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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E스포츠 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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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마태 Sep 27. 2023

E스포츠 에코시스템Ⅰ

Chapter1-1 Outline

전 세대를 통틀어 인류는 게임을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은 적이 없다. 


‘게임=스포츠’, ‘보는 것=관람’ 


최신 기술은 게임을 디지털 세계에서도 할 수 있게 했다. 이후 이 활동은 방송 콘텐츠로 제작되어 세상에 나왔다. 시장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렇게 오늘날의 모습으로 거대하게 성장했다. 날이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더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스포츠는 약 20년 전에 본격 태동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올타임 각광받는 콘텐츠다.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든 디지털 디바이스만 있다면 이 콘텐츠를 소비한다. 앞으로 펼쳐질 수많은 미래 기술들도 이 콘텐츠를 활용하기 위해 주목한다. 


그렇다면 ‘이스포츠’란 과연 무엇일까?


신기술이 출현하고 사업화되면 사람들은 관심을 가진다. 대게는 전통적 가치관을 투영해서 이해하려 한다. 이스포츠도 예외는 아니다. 그중 일부는 이스포츠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분야로 판단한다. 보통 스포츠로 또는 엔터테인먼트의 한 종류로 접근할 때 그러하다. 그런데 알아갈수록 생각하는 것과 같지 않아 당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스포츠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래서 쉽지는 않다. 


전통과 현재는 항상 맞닿아 있다. 따라서 비슷한 점이 많다. 다만 문제는 다른 점이다. 변화가 발생한 부분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인간은 프레임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본다. 이스포츠라는 단어에 포함되어 있는 스포츠라는 표현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모든 프레임은 프레임 밖을 보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다. 이스포츠를 처음 접한다면 다른 점이 꽤 많을 거라고 생각하는 편이 차라리 나을 수 있다.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의 대부분은 젊은이들에게는 당연하다. 이미 삶에서 통용되고 있는 이야기다. 반대로 기성세대는 쉽게 해석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그래서 먼저 확인해야 하는 것은 이스포츠 해석하는 기준이 된다. 이 책은 5개를 제시한다. 모든 길의 시작은 해석이 없다면 그 길 끝에서 볼 때 여기까지 오는 데에 전혀 무관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보다 더 의도하는 바는 본격적으로 E스포츠를 알기 전에 세대 간의 접점을 마려하기 위함이다. 굳이 언급하면 구세대를 신세대로 당기는 작업이다. 

 

접근법#1 사업성의 의미


인간은 인간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값을 지불한다. 가치를 생산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받는다. 1인미디어를 예로 들면 1인미디어의 가치 생산자는 크리에이터이다. 그런데 이 가치라는 것은 생산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가로 결정되지 않는다. 한 크리에이터는 100만 뷰를 달성하지만 다른 크리에이터는 100 뷰가 채 나오지 않는다. 한 편의 영상을 위해 촬영, 편집, 업로드 등과 같은 동일한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이처럼 결과는 다르다. 노력이 결과의 가치를 결정하지 않는다.  


가치가 곧 돈이 아니다. 방송국은 시청률만 생각한다면 드라마 또는 예능만 편성해야 한다. 그런데 다큐멘터리도 편성한다. 다큐가 예능 프로그램보다 가치가 낮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다큐가 드라마나 예능만큼 돈을 벌어 온다는 뜻도 아니다. 가치 중에 돈이 되는 것만 사업성이 있다고 표현한다. 따라서 사업성이 있다는 말은 가치가 있음과 동시에 수익성도 있다는 뜻이다. 결국 100 뷰 크리에이터보다 100만 뷰 크리에이터는 가치가 높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표현에는 ‘상업적’이라는 의미가 사실상 포함되어 있다. 반대로 사업성이 없는 것은 사업이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생태계를 파악이란 산업 내 이해관계자들의 사업에 대한 이해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상품을 만든다. 만들 수 있는 근거와 만든 상품으로 창출된 가치, 그리고 그 가치를 소비자가 소비하게끔 하기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스포츠도 예외가 아니다. 이스포츠 산업이면서 사업이다. 따라서 이 생태계에 속한 사람들은 그 속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 그들도 이 동일한 개념과 이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핵심만 있는 짧은 미팅만으로도 상호 사업에 대해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접근법#2 소비의 대상


들풀은 살 사람이 없다. 팔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도 없다. 소비가 없기에 생산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꽃에는 생산과 소비 활동이 발생한다. 들풀과 꽃은 모두 동일한 생물학적 활동을 통해 자라지만 하나는 사업 활동이 일어나지 않고 다른 하나는 일어난다. 꽃의 생산의 의미는 자라게 하는 것이다. 잘 자라게 하기 위해서 시절에 따라 씨앗을 심고 물을 주는 것과 같은 노력을 한다. 최종적으로 생산이 완료되면 상품이 된다. 아름답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기에 판매가 된다. 


꽃은 차에 넣어 마시거나 꽃병에 꽂아 두고 감상함으로써 소비한다. 친구 또는 가족 중에 누군가가 생일을 맞이했거나 졸업이나 입학 등의 이벤트가 있으면 축하하기 위해서 구입한다. 이처럼 소비의 대상이 되는 것을 사업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그런데 모든 소비가 곧 가치인 것은 아니다. 매에게 쥐란 사냥감이다. 그래서 매에게는 쥐가 가치가 있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쥐는 그렇지 않다. 인간이 판단 기준이다. 이스포츠는 인간이 소비한다. 결국 인간이 많이 소비했기에 사업성을 갖게 된 것이다.   


접근법#3 생산의 복잡성


인간은 꽃을 가꾸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한다. 밭을 일구고 씨앗을 뿌린다. 싹이 올라오면 정성을 다해 돌본다. 그러나 그 활동은 꽃을 싹 틔우고 자라게 하는 핵심 기술이 아니다. 핵심 기술은 햇빛과 흙 그리고 물로 대변되는 자연이다. 더 나은 꽃 상품을 만들기 위해서 인간이 하는 일은 고되다. 그러나 하는 일이 고된 것과 생산기술 차원의 수준은 서로 관련이 없다. 이 시대는 꽃을 키우는 것처럼 매우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것이 있다. 그런데 어떤 생산은 도저히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모르겠는 것도 있다.  


버스를 타기 위해 회수권을 구매할 때가 있었다. 당시 학생 중 몇은 커터칼로 교묘하게 10장짜리를 11장으로 잘라내곤 했다. 그런데 이후 버스 카드는 이런 실물을 0과 1로 된 디지털 정보로 바꿔 놓았다. 스마트폰의 NFC 기능은 이 버스 카드도 대체했다. 스마트폰을 인식기에 대면 ‘띡~’ 하는 소리와 함께 결제가 된다. 스마트폰이 아니라면 버스 카드를 사용한다. 그런데 미래에는 또 어떤 기술이 등장하게 될지 모른다. 버스가 안구 인식을 통해 개인을 인식하고 청구를 시도할 날이 올 수 있다. 


우리는 버스 카드가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결제가 되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데이터 송수신이 어떤 방식으로든 되어서 돈이 빠져나갈 거라는 상상만 한다. 마찬가지로 이 편리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많을 것이고 또 어려울 것으로 예측하는 것도 그래서 당연한 것이다.   


지금은 산업 혁명의 시대다. 기술이 사회와 경제를 바꿔버렸다. 학창 시절에 포드사의 컨베이어 벨트 그림을 본 기억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빙빙 돌아가는 벨트에 사람이 하나의 공정만을 맡아서 생산성을 높인다. 보는 즉시 어떻게 기계 공장이 처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직관적으로 알게 된다. 포드사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자동차를 대량으로 생산하지 못했다. 사람이 각각 하나의 공정만 맡게 됨으로써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생산 단가가 낮아져서 싼 값의 자동차 공급이 가능했다. 


대량으로 팔게 되어 이윤이 많이 남았다. 대량 생산의 결과는 자본의 급격한 증가였다. 자본력을 바탕으로 대규모 투자가 발생했다. 초대형 회사들이 등장했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신기술이 앞다투어 출현했다.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에 몰렸다. 몰린 시민들은 새로운 형태의 사회를 형성했다. 세상은 그렇게 발전했다. 이 산업혁명은 1차에서 4차까지 차수가 있다. 디지털 콘텐츠의 대표주자인 이스포츠는 4차에 속한다. 이스포츠가 복잡한 시스템을 필요로 할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접근법#4 기술의 불가항력성  


한 때 인간은 시장에 가서 쌀과 물고기를 교환했다. 이후에는 화폐를 사용했다.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디지털 정보를 사용하는 시대로 넘어왔다. 지금은 회수권뿐만 아니라 종이로 된 현금이 없어도 불편함이 없다. 심지어 카드도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인간은 세상을 발전시키는 존재이지만 반대로 세상의 발전을 받아 들어야만 하는 숙명을 지녔다. 세상의 발전은 인간 사회를 변화시킨다. 그런데 이 발전은 등속이 아니다. 어느 순간에는 평범한 사람들은 쉽게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속도가 확 빨라진다. 더욱이 이런 종류의 변화의 중심에는 예외 없이 기술이 있다. 학창 시절에 배운 것으로는 바퀴, 종이, 인쇄, 화약, 나침반, 비료 등이 있다. 비교적 최근 기술인 인터넷이나 인공 지능 등도 전부 같은 맥락이다.  


변화는 순차적이다. 부모님이 커다란 오디오에 LP판을 올려 음악을 듣는 모습을 보았다면 학창 시절에는 워크맨이라고 불리는 소형 카세트기기를 가지고 다녔을 수 있다. 대학 초년생 때는 CD 플레이어를, 복학생 때는 MP3플레이어를 사회에 나가서야 스마트폰을 만져 봤을 수 있다. 그런데 알파 세대(Z세대 이하)들은 오직 스마트폰만 안다. 음악을 듣기 위한 과거의 기계들을 알지 못한다. 대부분의 세대는 음악이 MP3파일로 되어있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알파 세대는 모른다. 처음부터 스트리밍으로 만났다. 음악 파일을 내 디바이스에 저장하는 활동이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른다. 


(기술자들이 무엇을 말하건 간에) 알파 세대 소비자는 스마트폰 안에 디스코드나 카카오톡과 같이 음성 송수신을 지원하는 다용도 메신저 프로그램과 일반 전화가 따로 구분이 되어 있는 것에 대해서 왜 그래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알파세대에게는 음성 채팅이든 일반 통화든 그것이 뭐든 상관없이 전부다 음성을 전달하는데 쓰이는 도구다. 너무 빠르게 변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 중에는 통화 요금과 데이터 요금이 따로 있는 이유를 알 수도 있다. 그러나 굳이 따로 계산되어서 부과되어야 하는지는 여전히 납득하기 어렵다.  

 

기성세대들에게 음성 채팅이란 더 이상 개인 정보(전화번호) 공개, 자료 검색, 자료 입력 등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 그러나 접속이 안될 수 있는 지역이 있을 수 있다는 것 정도로 생각될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점에서는 좋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의 세대는 그와 같은 생각을 전혀 안 할 수 있다. 메신저에 친구 아이디를 등록하는 거 외로 더 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짜증이 날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오늘날의 소비자는 기술을 자세하게 알 필요가 없다. 이 기술이 편한지 또는 불편한지만 따진다. 이스포츠도 동일하다. 디지털 기술의 변화, 콘텐츠 산업의 동향, 에코시스템 등을 몰라도 소비하는데 지장이 없다. 필요한 것은 유튜브를 열어 구독한 채널에 새 영상이 올라왔는지 확인하는 것이 전부다. 트위치TV 플랫폼에 접속할 수 있다면 이스포츠 경기를 라이브로 보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이처럼 사회가 또 소비자가 기술에 적응했다는 의미는 기술을 잘 안다는 뜻이 아니다. 세상은 개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계속 발전하고 모든 개인이 그 속에 있기에 할 수 있는 상태에서 적응을 해나가는 것뿐이다. 


사회 속의 개인이 소비자로 계속 남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발전된 기술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MP3대신 스마트폰을, 다운로드 대신 스트리밍을, 전화 대신 디스코드를 받아들이고 배운다. 또한 인간은 영원히 사회 변화에 적응하며 산다. 이제는 버스 10장 값으로 11번을 탈 수 없다. 심지어 현금을 사용할 수 없는 버스가 돌아다닌다. 개인의 상황이나 처지나 환경과 상관없이 기술이 인간의 삶을 결정한다. 어쩌면 아직은 버스비를 깜빡 잊고 못 가져와도 기사님의 재량으로 한 번쯤은 태워 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안구 인식이 되면 그마저도 가능하지 않게 된다. 그 시대가 올 것이라는 것을 모두가 안다. 


그런데 여기에 공급자는 제외다. 이스포츠가 생산되고 소비되는 일련의 과정을 전부 이해해야 한다. 그 속 각각의 사업 영역에 적용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이 있다. 또한 모든 영역의 중심에는 예외 없이 기술이 있다. 따라서 이스포츠 공급자는 기술의 불가항력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소비자를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소비자는 알 필요가 없는 기술로 상품을 만드는 일 중 어딘가에 속해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이것은 오직 어떤 진보된 기술이 있고 그 기술을 어떻게 상품에 적용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다. 게임을 잘 아는가나 이스포츠를 많이 봤는가와 같은 소비와 전혀 관련이 없다.    


접근법#5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


같은 양의 노력을 한다고 해서 같은 가치를 가지는 것이 아닌 것과 같이 생산품이 모두에게 동일한 가치를 주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먹는 것이 제일 중요할 수 있다. 그런데 다른이에게는 패션이나 문화생활이 중요할 수 있다. 커피 한잔에 5천 원을 넘는 것을 이해할 수도 못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0과 1로 만들어진 게임 아이템이 집이나 차나 가구나 애인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취향저격 영상이지만 다른 이에게는 아무런 재미를 못줄 수도 있다.  


이 세상에는 명작 게임과 졸작 게임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이스포츠라면 어떤 종목이 왜 인기가 있는지를 납득할 수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대세인 LOL도 ‘영 못 보겠다’는 개인의 취향은 어쩌지 못한다. 열성 게이머라면 게임을 하고 있는 중간에는 먹는 것이나 씻는 것과 같은 일은 비교적 덜 중요한 일이라고 느낄 가능성이 높다. 어른 게이머는 실제로 많이 그렇게 행동한다. 그렇지만 아이들을 대하는 부모는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밥을 먹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일이라고 여길 수 있다. 문화는 대중적이면서 또한 이처럼 상대적이다. 그래서 메이저 혹은 반대로 마이너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아이가 온라인 대회에 출전해 이스포츠 경기를 하고 있다면 이는 다른 이야기가 된다. 그때는 부모라도 밥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 사회가 상대적인 부분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가을 운동회에서 1학년 3반과 1학년 5반의 반 대항 축구 경기가 한창 진행 중이다. 이 경우에 엄마가 밥을 먹으러 오라고 했다고 해도 선수는 경기장을 떠날 수가 없다. 사회에는 부여된 책임이 있다. 책임을 수행하는 것은 밥을 먹는 것과 같은 일에 비해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따라서 개인의 상대성이 주장될 수 없게 된다. 

 

엄마가 그것을 모르지 않는다. 반 대항 축구 경기가 한창일 때는 밥을 먹으러 오라고 하지 않는다. 이스포츠도 동일하다. 메타버스의 세계에서 벌어진다는 차이만 있다. 메타버스의 세계도 그 속에 인간이 있고 인간이 완성한 사회이며 온전히 사회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 사회 활동에 부여된 동일한 책임이 있다는 뜻이다. 기술로 인해 새로운 환경이 형성되고 그로 인해 사회에 대한 인식에 변화가 찾아왔고 가치 판단 기준도 함께 따라갔다. 어느 날 갑자기 아시안 게임에서 이스포츠를 볼 수 있게 된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언급한 접근법들은 이스포츠라는 작물의 토양과 같다. 땅을 모르면 자라는 작물을 제대로 키우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배경을 알지 못하면 이스포츠를 이해함에 있어 그 시작이 꼬여버린다. 총 5가지를 같이 살펴보면서 알게 되었다. 이제부터 이 토대 위에 이스포츠를 올려보자.


이스포츠의 정의 


모든 게임은 경쟁적이다. 아주 옛날 게임인 테트리스나 보글보글도 경쟁이 있다. 타이쿤류, 캔디크러쉬류, 보드게임, 심지어 리니지 라이크도, 소울 라이크도 누가 더 잘하나를 확인할 방법이 있다. 마인크래프트나 로블록스와 같은 메타버스 게임에도 고수들이 존재한다. 모든 게임이 경쟁적이라면 대결이 성사된다. 대결이 된다면 경기가 가능하다. 대결에 공정을 더하면 경기다. 경기가 발생하면 승패가 가려진다. 최종 단계까지 승패의 가름을 계속 수행한다면 그것이 바로 대회다. 그래서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게임은 전부 이스포츠가 될 수 있다. 이스포츠란 한마디로 게임 대회다.

  

물론 게임 대회라는 단어만으로 모든 이스포츠에 일괄 적용하는 해석을 할 수는 없다. 이스포츠화 할 수 있다고 해서 다 같은 이스포츠인 것은 아니다. 게임화한 것 중에 특별히 비디오 게임이 따로 구분되어 있는 것과 같다. 이 세상에는 더 경쟁에 적합한 게임이 있다. 우리는 이 더 적합한 게임으로 더 고도화된 형태를 만든다. 그 형태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오면 그때는 통상적인 의미의 이스포츠가 된다. 필자는 지금 원론적인 것과 실제를 나누어 언급하고 있다.

    

영국 이스포츠 협회의 체스터킹 대표는 이스포츠를 ‘Organized Competitive Video Gaming’ 이라고 설명한다. 의역하면 “경쟁에 적합한 게임으로 대회를 만든 것!” 정도로 풀이된다. 이 작업을 전문적으로 수행해서 충분한 수준에 이른 형태를 만드는 것을 고도화라 표현할 수 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이 고도화된 이스포츠를 즐기고 좋아한다. 그래서 타이쿤류, 메타버스, 캔디크러쉬 같은 게임보다 오버워치, 리그오브레전드, 배틀그라운드, 스타크래프트 등과 같은 종류의 게임 대회가 훨씬 더 많이 열린다. 

 

고도화에는 공통점이 있다. 선수가 투입하게 될 ‘전략’과 ‘피지컬’이다. 이스포츠에서 관람객의 감정 이입 요소는  ‘머리싸움’, ‘손 싸움’  이 두 가지이다. 이스포츠는 이 활동을 잘하는 그 분야 전문가를 프로게이머(선수)라고 부른다. 이들은 경기에서 평범한 게이머가 하지 못하는 플레이를 실현한다. 소비자는 그 실현을 보고 감동을 받는다. 이후 이스포츠 콘텐츠의 매력에 빠진다. 그렇게 오늘날의 소비자는 고도화된 이스포츠를 그렇지 않은 것보다 더 많이 보고 있다.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의미는 만들만한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최종적으로 더 경쟁에 적합한 게임이 이스포츠로의 가치가 높다는 말이 된다. 


팀리퀴드의 CEO 빅터는 그 부분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게임에는 랭킹이라는 시스템이 있는데 게임 플레이어들은 모두 이 랭킹 시스템 내에서 평범하게 게임을 한다. 그런데 종종 어떤 친구들은 등장하자마자 가파르게 랭크가 상승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친구들이 프로가 될 소질을 가지고 있다. 일반인들이 만약 바로 옆에서 그 친구들이 게임을 하는 것을 실제로 지켜보면 게임에 대한 이해와 반응 속도에 감탄과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즉, 한마디로 실력이다. 


Competitive gaming at a professional level and in an organized format with a specific goal and a clear distinction between players and teams that are competing against each other. 


이스포츠 산업 규모 및 트렌드를 연구 및 발표하는 리서치 기관 Newzoo는 이스포츠를 위 문장과 같이 정의했다. 국문으로는 '명확한 목표 설정이 있고 상호 경쟁하는 선수(팀) 간의 구분이 명확한 프로 수준의 조직화된 경쟁 게임 활동' 정도로 번역이 가능하다. 전체 문장에서의 핵심 되는 두 단어를 다음과 같이 집어 볼 수 있다. ‘Competitive(경쟁)와 organized(조직)' 앞서 체스터킹이 정의한 ‘Organized Competitive Video Gaming’과 사실상 차이가 없다.  


정리하면 세상에는 많은 게임이 있고 전부 이스포츠가 가능하다. 그런데 그중에 개인(선수)의 실력을 더 잘 보여줄 수 있는 구조를 지닌 게임이 있다. 그런 게임은 고도화된 이스포츠에 적합하다. 사람들은 경쟁에서 보여지는 게이머의 뛰어난 실력에 감명을 받는다. 실력이 잘 (더 드라마틱하게) 드러나는 구조일수록 더 진한 감동을 준다. 인기가 있어지게 되고 대게 이런 게임이 이스포츠화 할 때 가치가 더 높아진다. 이 경쟁을 조직화하는 것을 대회라 부른다. 조직화의 중요한 두 가지 요소는 목표와 선수(팀) 간의 구분이다. 

 

정의란 아무리 자세하게 한다 해도 결국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30년 전에 누군가가 타임 슬립으로 현재에 왔다고 가정하자. 그 사람은 스마트폰을 보고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물을 수 있다. 우리는 음성, 이미지, 영상 등을 송수신하고 기타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할 수 있는 장치라고 설명할 수 있다. 이 설명은 스마트폰의 핵심 가치와 핵심 기능을 잘 담았다. 그러나 그 설명이 스마트폰의 전부는 아니다. 이스포츠도 같다. 어떤 정의도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다만 “이스포츠가 뭐예요?”라고 누군가가 물을 때 “이스포츠는 이거예요.”라고 간단히 대답하기 위한 용도라면 오늘 우리가 이야기한 것으로 충분하다.  


대회, 선수, 그리고 팀


우리 중 누구도 대회, 선수, 팀, 이 세 단어 중에 생소한 것이 없다. 스포츠에서 사용하는 것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스포츠를 처음 알아가는 시점에서 각 단어의 의미를 재차 확인하는 것이 좋다. 나름대로 이해하고 있는 개념들을 한번 맞춰보는 시간이다. 보통 업계에서 계약이나 기타 다양한 협업을 추진할 때 이런 수준의 단어에 대한 정의는 따로 하지 않는다. 생소하지 않아 필요 없다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호 이해는 중요하다. 업계에서 일을 할 때 오히려 이런 단어에서 서로 이해하는 바가 다른 경우가 종종 있다. 작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큰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이스포츠는 역사가 비교적 짧다. 학술적 접근이 적다. 그래서 이견 없이 널리 통용되는 개념이 많지 않다.    


(대회)


대회는 경쟁을 하나의 완성된 형태로 조직화한 것이다. 달리 해석하면 조직화란 선수들이 실력을 공정하게 펼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과정이다. 과정이란 이를 테면 1등을 뽑으려고 하는데 1등이 어떤 방식을 통해서 나오게 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 일을 하는 곳을 조직위라고 한다. 다만 조직위가 방송국인 경우에는 약간의 관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공정한 경쟁이라는 테마는 같다. 그런데 시청자의 입장에서 더 극적으로 보게 될 방법도 같이 고민한다. 토너먼트에서 싱글 엘리미네이션은 한 번이라도 지면 인기 선수라도 더 경기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 더블 엘리미네이션은 패자조에서 극적으로 결승까지 진출할 수 있다. 방송사는 상황에 따라 더블 엘리미네이션을 선택할 수도 있다.


대회는 크게 토너먼트와 리그로 구분된다. 토너먼트는 승자끼리 연속으로 붙어 최후의 승자를 가리는 방식이다. 로마의 검투사와 같다. 패배하면 죽기 때문에 다음 기회가 없다. 리그는 조직에 속해 있는 팀들이 한 번씩 돌아가면서 경기를 치른다. 따라서 토너먼트는 리그보다 더 극적이다. 16명이 경쟁을 해도 4번만 이기면 우승이다. 승자가 빨리 출현한다. 짧은 일정에도 소화가 가능하다. 연간으로 볼 때 몇 번이라도 개최할 수 있다. 추가로 후반부로 갈수록 집중도가 높아진다. 따라서 클라이맥스가 분명하다. 설치와 해체 작업이 필요한 비상설 경기장에서 대회를 운영해야 한다면 적합하다.

  

리그는 경기에 참가한 모든 팀이 서로 한 번 이상 겨루어 가장 많이 이긴 팀이 우승한다. 따라서 리그에 참여한 팀은 안정적으로 참가할 수 있는 경기수를 보장받는다. 리그오브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LCK)는 축구나 야구와 같은 전통 프로 스포츠와 동일한 리그 구조를 가지고 있다. LCK는 연간 총 2회를 개최한다. 스프링 시즌과 서머 시즌이다. 이후에는 월드 챔피언십이라는 국제무대가 열린다. 이후 휴식 기간인 스토브리그가 이어지고 곧 다음 해 스프링 시즌이 펼쳐진다. 정규 시즌은 풀리그, 포스트 시즌은 토너먼트 형태이다. 결과적으로는 일종의 하이브리드라고 할 수 있다.  


PUBG의 대회는 미리 공개된 규정에 따라 라운드별 경기 포인트를 분배한다. 대회 기간 동안 연속해서 경기를 치른다. 각 팀은 합산된 성적으로 순위를 가린다. 최대 포인트를 받은 팀이 우승한다. 배틀로얄 장르가 갖고 있는 특징을 잘 살린 펍지만의 방식이다. 하스스톤이나 룬테라와 같은 TCG 장르는 각각의 선수가 다수의 선수와 경기하는 라운드 로빈을 채택한다. 간단하게만 살펴보고 있지만 실제 이스포츠는 이런 형식들을 일종의 장르라고 말을 해도 될 정도로 변형이 다양하다. 적용 게임, 대회 환경, 참가 형태, 진행 일정 등에 따라 적합함이나 장단점이 세세히 나뉜다. 방송을 한다면 방송 횟수, 방송 일자, 방송 시간, 송출 플랫폼 등과 같이 추가로 점검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 조금이라도 나을 수 있는 여지가 많이 있다.  


(선수)


선수는 경기에 참여한다. 선수가 경기에 참가할 때는 일반적으로 무언가를 대표한다. 이를테면 우리 반을 대표할 경우 우리 반 대표 선수다. 학교를 대표하면 학교 대표 선수다. 나라를 대표하면 국가 대표 선수가 된다. 선수라는 단어는 공인이나 면허와 같이 자격을 부여받아야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무언가를 대표한다면 그 대표를 보증할 수 있는 방법만 필요하다. 만약 아무것도 대표하지 않을 수 있다. 이때 선수라는 말을 사용할 수 없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내가 나 자신을 대표해도 선수는 될 수 있다. 


선수는 인정의 개념이다. 인정은 권위에서 나온다. 권위는 사회가 가지고 있다. 따라서 사회가 있다면 그 사회는 언제든 편하게 이 단어를 활용할 수 있다. 이 권위에는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한 유저가 어떤 클랜에 가입해 거기서 다른 클랜원과 같이 게임을 해왔다. 이후 퍼블리셔로부터 클랜전 개최 소식을 듣게 되었다. 만약 이 유저가 클랜의 이름으로 대회에 출전하는 것을 클랜 사람들에게 허락받는다면 그 즉시 클랜 대표 선수가 된다. 다만 클랜에 대한 권위만 있지 그 외의 것에는 없다. 클랜 정도의 권위로는 국가 대표와 같은 규모를 선발하는 경우가 그래서 없다.   


선수와 선수 자격은 다른 말이다. 내가 나를 대표한다고 해서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을 무시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반대로 참가 자격만 갖춘다면 어떤 대회든 참가할 수 있다. 어떤 자격을 가졌는가를 물었을 때 개인 자격이라고 대답하면 된다. 이때는 조직위가 인정한 선수가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를 풀어서 표현하면 '나는 선수인데 나는 나를 대표한다. 내가 이 대회를 참가할 수 있는 있는 이유는 대회 참가 요건에 충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개인 자격으로 이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다.'가 된다.


도봉구청에서 구내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카트라이더 대회를 개최했다. 대부분은 학교 대표로 참가를 신청했다. 그런데 한 학생은 자기 이름만으로 참가 신청을 했다. 구내 초등학생이었기 때문에 요건에 부합한다. 그래서 참가 확정을 받았을 수 있다. 이 경우 당연히 선수다. 소속이 없어도 상관없다. 권위를 소유한 조직위가 인정한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끝으로 선수라는 단어는 개인을 수식하는 수단일 뿐이다. 그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는다. 이를테면 선수 활동으로 얻는 인기나 수익 등과 관련이 없다. 국가대표 발탁에 실패한 한 선수가 있다. 지금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다음번 선발을 꿈꾸고 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유는 생계를 꾸리기 위함이다. 수익은 아르바이트로 벌어들인 돈뿐이다. 예전에는 선수 활동으로 수익을 얻었었다. 그런데 지금은 선수로의 수익은 전혀 없다. 이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물을 때 스스로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물론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근로자라고 말을 해도 된다. 그러나 선수라고 설명할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이 사람이 오늘 편의점 일을 마치고 저녁에 훈련장으로 운동을 하러 간다면 선수가 아니라 할 사람은 없다. 이 일련의 흐름 속에 인기나 돈, 아니 다른 그 어떤 것도 전혀 역할을 하는 바가 없다. 만약 누군가가 자신이 선수라고 생각하고 그에 걸맞은 태도와 행동을 한다면 그동안은 언제까지나 선수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개념에 대한 원론적인 접근들은 이처럼 대게 호의적이다.  


(프로 선수)


티원을 대표하는 페이커 이상혁 선수는 옵션까지 포함해 연봉이 50억이 넘을 것으로 추측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이상혁 선수에게 별개의 면허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선수의 원론적 의미의 개념과의 차이는 분명 있다. 특정 영역에서 활동하는 선수는 사회가 정한 기준에 의거되어 분류된다. 범용적 의미로 프로 선수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페이커 선수가 활동하고 있는 LCK 리그는 2군까지 최저 연봉이 보장된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로스터에 선수의 이름을 등록하게 되어있다. 이 리그에서는 2군 선수까지 프로 선수라는 표현을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 것이다. 그러면 통용하는데 무리가 없어진다. 이처럼 선수 제도란 사회가 구분되어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인식할 경우 만들어진다.


대회를 개최하기 위해서는 선수라는 말에 대한 정의와 자격을 명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각자의 편의에 맞게 해석할 여지가 있다. 정의는 '자격에 해당하는 자를 조직위는 선수로 판단한다'와 같으면 된다. 따라서 권위는 사람이나 기관에 의존하지 않는다. (공정한) 제도와 시행에 기인한다. 사회는 특수 목적을 위해 선수 자격을 부여하고 관리할 수 있다. 대게 반영구적으로 적용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경우에 그러하다. 규칙은 한번 정해졌다면 권위의 규모와 상관없이 임의로 변경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러나 상황은 변할 수 있다. 변경을 하지 않는 것이 반드시 답이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팀)


팀은 선수들의 모임이다. 그런데 팀에 몇 가지 활동이 더해진다면 모임은 전문적인 조직으로 바뀐다. 전문적 조직으로의 팀의 대표적인 활동은 선수의 대변이다. 경기에 참여하려면 경기 활동 외로 해야만 하는 행정적인 일들이 있다. 경기에 관해서 조직위를 상대로 의사를 표현해야 할 일도 있다. 선수는 오로지 경기에만 집중해야 한다. 자연히 이런 종류의 부차적인 일은 하기 어렵다. 팀은 그 외로도 여러 일들을 대신한다. 이 책은 이후 챕터에서 이런 팀 활동의 특징에 관해 전체적으로 상세히 알아본다. 다만 여기서 팀 고유의 활동 중 하나를 언급하면 선수 활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가치의 환산이 있다. 


선수 활동이 돈으로 직접 전환되는 것은 상금이다. 그런데 팀은 수익을 발생시킬 수 있는 다른 방법도 있다. 선수의 인기를 돈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는 파생 가치의 상품화라고 정의할 수 있다. 또한 그 작업을 곧 팀 비즈니스 활동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연예계는 광고 의뢰 등의 비즈니스 활동을 소속사에서 한다면 이스포츠는 팀이 한다. 연예계나 이스포츠나 모두 인기 자체는 돈이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 그 인기를 활용해서 상품을 홍보하고자 한다면 상업성을 갖게 된다. 이 과정에서 무형의 인기는 유형의 돈으로 바뀐다.  


선수는 대회에 출전해 높은 성적을 거두면 인기를 얻는다. 좋은 성적을 유지한다면 인기는 계속 올라간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선수를 좋아하게 된다. 자연히 이 선수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활용하고 싶어 하는 기업이 등장한다. 조건이 맞으면 후원 계약은 체결된다. 인기라는 무형의 가치가 후원금이라는 유형의 돈으로 그 순간 바뀐다. 오늘날 이스포츠 업계는 상위 평준화된 비즈니스 활동을 하고 있지는 못하다. 매우 활발하게 또 수익성이 높게 비즈니스 활동을 수행하는 팀이 있는 반면 고정 운영비도 제대로 충당하기 어려운 팀도 있다. 낮은 시장 성숙도 내지는 부족한 전문성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자세히 알아보겠지만 현대의 팀은 선수 가치와 권리 활용에 대한 특별한 이해와 비즈니스 성사를 위한 전문화된 기술이 필요하다. 


끝으로 선수의 가치활용은 간혹 충돌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리그와 팀이 서로 생각이 다른 경우가 종종 있다. 리그는 홍보를 위해 리그에 참여하는 선수를 활용하기를 원한다. 이 경우 어디까지가 팀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선인지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 더불어 팀에 지원금을 지급할 때 최근에는 그 대상을 법인에 한정하는 추세다. 지원 대상 팀의 개념을 명확하게 하려는 시도다. 최대한 상세하게 사용처도 지정한다. 이해관계자들은 생각이 다 다르기에 (이와 같은 정책이 없이는) 주최자의 지원금 지원 의도가 달성되기 어렵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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